# 220
리나(Leena).
원래 한국에서 하늘소녀의 신곡과 ESP의 신곡을 모두 마무리 짓고 다시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공식적인 일로 미팅이 필요하다는 제이니의 말에 진행 중인 일은 맡겨두고 미국으로 먼저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인 출국이었는데,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팬들이 아닌 기자들이었다.
“아 글쎄. 기사에 나온 그런 이유로 혼자 먼저 출국하는 게 아닙니다.
일 때문에 미국 업체와 미팅 건이 있어서 일정을 당겨 출국하는 거지, 기사에 나온 것처럼 YEG를 견제하거나 방해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방해할 이유도 없고요.
기사도 방금 기자님들이 알려줘서 알게 된 겁니다.”
“MSM에선 교포 출신 중에서 영어사용에 문제가 없는 뮤지션들을 따로 모으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LA 지역지에 신문광고까지 낸 걸 본지가 확인했고요.
그런 작업들이 미국에서 YEG가 데뷔시킨 ‘리나(Leena)’를 견제하고자 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알려지고 있는데, 정말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리나’를 방금 신문기사로 처음 알았습니다.
이제 미국에 갓 데뷔한 신인인데 견제를 하고 말고 할 게 있겠습니까?
비행기 시간 때문에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막아서는 기자들을 뿌리치며 겨우 비행기에 올라 핸드폰으로 기사를 찾아봤다.
‘진짜 K-POP으로 미국 본토 공략하는 YEG의 리나(Leena)’
기사에는 YEG에서 미국 교포 출신의 16살 천재 소녀인 ‘리나(Leena)’를 미국에 로컬 데뷔시켰고,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였는데,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난리가 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상해서, 다른 기사를 계속 찾아보니 방금 기자들이 들이닥치게 만든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서로 진짜 K-POP이라는 ‘리나’와 ‘ESP’ 과연 누가 진짜 K-POP일까?]
한국인이 포함되지 않은 미국인으로 이루어진 ‘ESP’가 미국에서 인지도를 쌓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국적의 한국 토종 ‘리나’가 한국 데뷔 없이 바로 미국에서 데뷔를 했다.
YEG에서 심혈을 기울인 ‘리나’인 만큼 리나의 데뷔에 대한 미국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중략...
한국인 멤버 없이 K-POP 그룹이라며 미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그룹 ‘ESP’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데뷔하는 한국인 ‘리나’는 서로가 비교될 수밖에 없다.
과연, K-POP 팬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귀추가 주목 된다.
“이 기레기 새끼가 돈 받고, 엉겨 붙는 기사를 써준 거네.
이제 막 미국에서 데뷔했는데, 무슨 미국 팬이 있고, 반응이 뜨거워? 짜증 나네. 우린 이런 가수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기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전형적인 신인 띄우기 마케팅 방법이었다.
여자 솔로가수가 데뷔를 하면 기자들이 다들 ‘아이유 거기서, 이젠 OOO의 시대야’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사가 나왔고, 9인조 신인 걸그룹이 데뷔하면 ‘9인조 걸그룹의 세대교체. 트와이스의 라이벌로 떠오른 OOOO’ 같은 식으로 유명한 연예인을 떡밥 삼아 홍보기사를 쓰는 게 신인 홍보기사의 기본이었다.
문제는 그런 홍보를 위한 타겟이 우리의 ESP라는 거였고, 팝 칼럼리스트인 임진모씨 같은 전문가가 K-POP이라고 인증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문제 삼으며 기사로 의도적인 비교질을 했다는 거였다.
그리고, 거기에 달린 몇몇 댓글에서 기사의 의도적인 비교에 넘어간 사람들이 논란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 이제 한국에서 데뷔 없이 바로 미국 본토 공략을 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K-POP 잘나가네.
└ 데뷔는 예전에도 많이 했었음. JYG에서 몇 명이나 했었는데 다 망했으.
└ 결국, 결과가 나와야 하는거네.
-그럼 빌보드 50~60위권에서 왔다 갔다 하는 ESP는 결과가 나온거 아니냐? 그 정도는 성공한거 같은데.
└위에 기사 안봄? ESP는 한국인이 없어서 진짜 한국 그룹으로 봐야 하는지 알 수 없다잖음.
└하긴 한국인이 한 명도 없는 그룹이면 K-POP으로 보긴 힘들지.
└윤소원이 거기 멤버 아니었어? 뮤비에도 나오고 활동도 같이 하던데.
└제작자이면서 객원 멤버래. 아마도, 다음 앨범에는 없을걸.
└그래? 그럼, 진짜 ESP를 한국 그룹이라고 보기 애매하다.
└그냥 미국에서 돈 땡겨보려는 거지 뭐.
- 그런데 리나가 미국에서 데뷔 일주일째라는데, 인기가 확실히 있는거임?
└반응이 있으니깐 윤소원이 급하게 미국 들어가는 거겠지. 원래라면 하늘소녀 신곡 나오면 미국 간다고 했었는데, 급작스레 출국한다고 하더라고.
급하게 미국 들어가서 ESP 신곡 발표 준비하겠지.
└ 지금 트위터에 기자들 피해서 급하게 출국하는 윤소원 사진 올라옴.
└오, 그 정도로 리나가 미국에서 반응이 있는 거야? 다음 주 빌보드 싱글차트 기대 되네.
댓글 작업도 하고 있는지 꾸준하게 이런, 댓글들이 올라왔다.
이게 MSM에서 공식적으로 내가 미국으로 출국하는 이유를 밝히고, ‘리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이라고 대응하기도 곤란했고, 또 대응을 하지 않으면 기사가 맞는거라고 인정하게 되는 일이라 참 난감했다.
YEG가 리나를 띄우기 위해서 벼르고 벼른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오피셜 뮤직비디오를 보니, 15살 정도의 어린 소녀가 R&B 스타일로 호소력 있게 영어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뭔가 일본의 우타다 히카루 같은 느낌이었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조회 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스타일은 괜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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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반응이 별로 없다고?”
“네, 사장님.
저도 사장님 연락을 듣고 부랴부랴 알아봤는데 다들 그런 이름을 가진 가수는 처음 들어본다고 합니다.”
‘핸리 챙’의 매니져인 최덕한은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이야길 했다.
‘리치 아시안 웨딩’에서 주연으로 이름을 알린 ‘헨리 챙’은 영화 이후로 미국에서 활동을 했는데, 덕분에 핸리의 담당 매니저인 최덕환도 미국에서 계속 체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연락해서 YEG에서 데뷔시켰다는 ‘리나’에 대해서 현지 반응이 어떤지 좀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리나에 대해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제가 아는 주위 사람에게 물어봐도 다들 모른답니다. 코리아타운에 다들 살다 보니 한국어 노래가 아니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아는 미국인들에게 물어봐도 처음 들었다고 합니다.
Lena Park 박정현은 들어봤다고 할 정도로 한국 노래를 잘 아는 미국 친구도 처음 들어봤다고 합니다.
저는 배우 쪽이다 보니, 뮤지션 쪽 인맥이 없다보니 음악 전문가들에겐 물어보진 못했습니다.”
“흠. 한국에서 나온 기사는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거 우리가 그냥 당한 거네요. 햐. 이렇게 당하네. 허허.”
공항에서 기자들에게 쫓기며 급하게 비행기를 탄다고 고생을 했는데, 작업에 당했다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났다.
“기자들이 화제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우릴 이용한거에요.
유튜브에서 100만 뷰 겨우 넘었길래 긴가민가했는데, 제대로 당해버렸네요.”
“네? 그러면, 미국에서 전혀 화제가 되지 않지만, 미국에서 인기 있다고 한국에 기사를 내고, 외국에서 인기 있으니 한국에서 화제를 역으로 만들어 인지도를 올리겠다는 그런 작전이었습니까?”
“아마도 미국에선 바닥부터 올라가기 힘드니, 한국에서 역 작업으로 화제를 만들고, 그 화제성을 발판으로 미국에서 인지도를 만들려고 했겠죠. 허허.”
이제껏 지혜 덕분에 언론 플레이나 댓글 작업을 우리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제대로 당해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대로 한국에서 먼저 인지도를 얻고 그걸 발판으로 미국에서 영어로 활동하게 된다면, 우리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특히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한국 멤버가 없는 K-POP그룹이라는게 발목을 잡을 것 같았기에 머리가 복잡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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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FOX의 제작부서 쪽 이사와 담당자들이에요.
원래라면 이사인 프랭크와 둘이서 오려고 했는데, 케일리와 스웨인이 꼭 소원씨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같이 왔서요.”
FOX로 이직한 제이니와 점심 식사를 겸해서 만나기로 했는데, 이미 그쪽에선 실무자들도 정해 졌는지 담당이라고 하는 두 명도 같이 나왔다.
“프로듀서99를 제이미의 추천으로 정주행을 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둘도 같이 프로그램을 보았기에 호프 윤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나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케일리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스웨인의 눈은 동경하는 스타를 보는 듯이 초롱초롱했다.
“여기 CD를 가지고 왔는데, 사인 좀...”
“전 셀피 좀 같이 찍으면 안 될까요?”
주문한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둘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을 같이 찍어준다고 정신이 없었다.
“제이니가 우리 회사로 옮겨 오면서 열었던 첫 컨텐츠 회의에서 호프 윤이 나온 프로듀스99를 추천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호프 윤이 데뷔하는 것을 모두가 같이 보았죠.
시즌 2인 콜라보걸 까지 모두 다 챙겨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듀서99의 미국판을 제작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프 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길 나누어 보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50대의 전형적인 백인인 프랭크가 큰 덩치를 으쓱거리며 나를 보고 싶었다고 이야길 하자 당황했다.
“네? 그게 무슨...”
제이니가 전화로 일을 해보자고 했을 때, 워너브러더스에서 FOX사로 이직했으니 당연히 영화 관련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프로듀서99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워너에서 만났던 그 날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대여할 수 있는 가게를 알려줬잖아요? 거기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보았고, FOX로 이직하며 한국의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FOX의 컨텐츠 담당자들에게 알려주었어요.
처음엔 다들 아시아 프로그램 뭐 볼 게 있을까 하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자막까지 친절하게 있다 보니 다들 한국의 프로그램에 빠져버렸어요.
지금 프랭크의 팀은 소원씨가 나온 프로듀서99에 대해서 파악을 하고 있고, 다른 팀들도 아마 한국의 유명 프로그램 제작사들과 컨텍중일꺼에요.”
“아, 그러고 보니 FOX는 영화사이면서 방송 채널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제이니와 영화 일을 했다고, 당연히 영화 관련 일로 저를 보자고 한 줄 알았습니다. 하하”
FOX사는 키스 루퍼트 머독(Keith Rupert Murdoch)의 소유로 머독은 여러 신문사와 방송국 영화사들을 가진 언론 재벌이었는데, 제이니가 단순히 FOX사로 이직했다고 해서 21세기 FOX사만 생각했던 내 생각이 짧았다.
“그런데, 갑자기 FOX사에서 한국 관련 방송 컨텐츠에 왜 관심을 가지는 건가요? 아무리 제이니가 FOX로 이직하며 알려주었다곤 하지만, 몇 개의 팀이나 나서서 그렇게 할 정도인가요?”
“흠. 내부적인 일이라 모든 걸 다 알려드리긴 힘들지만, 컨텐츠 부문에서 성과가 필요해서 그래요.
이미 한국의 K-POP이 미국과 제 3국에서 인기가 있고, 소원씨가 나온 프로듀서99는 시즌제로 들어갔고,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도 같은 포맷이 만들어지고 있을 정도로 아시아에서 검증을 받은 컨텐츠에요.
특히나 중국에서는 1억 명이 시청했다는 수치가 있더군요.
확실하게 성공이 가능한 컨텐츠를 찾는 입장에서, 아시안들에게 흥행으로 검증을 받은 프로그램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컨텐츠니깐요.
거기에, 영화 ‘리치 아시안 웨딩’이 북미에서 4주간 박스 오피스 1위를 하며 북미에 아시안 문화가 먹힌다는 걸 증명해 줬으니 더 이유가 있을까요?”
제이니의 실패하지 않을 성과가 필요하다는 말에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21세기 FOX사가 디즈니에 올해 말에 판매가 되었다는 기억이었다.
아마도, FOX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실패하지 않을 컨텐츠가 필요했고, 한국과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듀스99가 그들의 눈에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