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0
핵인싸의 경험 있잖아요?
“은채 언니 이번 주 ‘주간 연예가’ 봤어요?”
“응? 못 봤는데 왜?”
뜬금없는 성희의 말에 뭔가 나쁜 게 나왔는가 싶어서 긴장했다.
“하긴 주간 연예가 프로그램 자체가 인기가 없긴 없죠.
거기에 소원오빠 인터뷰가 나오더라고요. 소원오빠가 또 은채언니가 이상형이라고 인터뷰를 했더라고요. 기사는 두 개밖에 올라오지 않아서 크게 화제가 되거나 하진 않았는데, 언니 괜찮아요?”
“으응? 난 뭐 괜찮지. 덕분에 나도 그렇고, 우리 나인피치 지명도가 조금 올라가긴 했으니깐. 난 오히려 소원이에게 고마운데.”
“그건 그렇죠. 커뮤니티에 사진 올라가면 철벽치는 여자 아이돌로 언니 이름이 거론되니깐 나름 언니 캐릭터도 만들어진 것 같고.
저도 그냥 혁이에게 소원이 오빠처럼 기자회견 해달라고 해버릴까.”
“혁이가 한다고 하면 해버려. 그런데, 그건 너희 둘이 알아서 하고, 빨리 연습실 가자.”
성희를 앞세우고 가며 매니저의 핸드폰으로 나인피치 공식 SNS를 살펴봤다.
- 은채 언니 우리 소원 오빠랑 그냥 사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자숙한다고 싱가포르에 있다 보니 다른 YAM오빠들 활동에서도 빠지고.
그냥 둘이 사귀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귀어 주시면 안 돼요?
- 은채언니 우리 오빠 불쌍해서 못 보겠어요. 우리 오빠랑 사겨주심 안될까요?
- 선남, 선녀인데 잘 사귀어보지 아쉽네.
‘회사랑 팀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요.’라고 댓글을 달고 싶은 좋은 댓글에는 슬며시 미소가 나왔다.
- 아이돌은 연애도 못 하냐? 연애 한 번도 안 한 사람들만 소원이에게 돌을 던져라!!
└그러면 이미 돌에 맞아서 소원이 주금.
- 소원이 남자다잉~ 게이가 아니었구나. 아쉽다. - 홍모씨
- 그래 그동안 소원이 오른손이 힘써줬지. 은채가 다이어트 겸 송원이 위에서 힘 좀 써줘라.
└너 성희롱으로 고소! pdf 떴다. 이 개새끼야. 우리 은채를 부들부들.
- 그런데, 이제 은채 수녀로 전직해야 하는 거 아니냐? 윤소원을 깔 정도면 웬만한 연예인들은 들이대기 힘들 것 같은데. 이렇게 되면 내가 은채를 데리고 가야 할 수밖에 없겠네.
└ 미친. 너 소원이보다 더 나은 게 있냐?
└내 주니어는 소원이 보다 더 우람하지 않을까? 으헤헤.
└너도 고소다 새끼야! 경찰서에서 보자.
이런 비꼬는 댓글이나 성희롱 드립은 그래도 양호한 거였다.
처음 사진이 올라왔을 때 부모님 욕과 걸레가 아무렇게나 다리 벌리고 다닌다는 인신공격성 댓글에는 진짜 눈물이 나왔었다.
회사에서 고소를 위해 자료를 받겠다는 공지사항이 뜨자 그런 댓글들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눈살이 찌푸려지는 댓글들이 한두 개씩 보이긴 했다.
- 그런데 찌라시 도는 거 보니깐 둘이 사귀는 사이 맞고, 은채 카바쳐 주려고 소원이 혼자 뒤집어쓰고 싱가포르로 유배당했다고 하던데.
└ 내가 본 찌라시는 둘이 너무 좋아해서 일부러 회사에서 소원이를 귀양 보냈다더라.
└ 이제 아이돌 연애설 터지면 남자는 열애설에서 좀 더 자유로우니깐 남자가 대시했다가 까여서 귀양 가는 거로 정리를 한다고 하더라고.
└유배니 귀양이니 무슨 조선 시대냐? 웃기네.
그리고, 내부에서 나간 이야기인지 진실을 꿰뚫어 보는 말들도 돌긴 돌았다.
뭐, 찌라시가 돌든 뭐든 최악의 상황은 이제 넘어선 것 같았고, 조금이지만 동정표도 얻긴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입에 오르내린 덕분인지 나인피치도 후속 앨범을 준비하며 팬몰이를 시작하긴 했다.
**
“필립. 좀 더 여유 있는 표정과 자세를 보여줘야지. 어깨를 좀 더 펴서 자신감을 보여줘. 이 파티의 주인공은 바로 너라고.”
존 추 감독은 본명인 헨리보다 영화 속 이름인 필립으로 아예 부르며, 연기가 처음인 ‘헨리 챙’에게 좀 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 달라고 주문을 했다.
“하지만, 전 이런 삶을 살아 본 적이 없다고요. 이런 부자들의 삶을 겪어보질 않았어요.
필립의 삶은 저와는 너무나 괴리감이 있다고요. 휴. 연기를 하는 게 아니었는데...”
감독의 말에 항의하는 말도 자신감이 없는지 혼잣말의 끝도 말려들어 가듯이 소리가 작았다.
그리곤, 화려한 파티장 옆 의자에 머리를 감싸며 그냥 주저앉아 버렸다.
영화의 70% 이상이 주인공인 필립과 실라의 장면이다 보니, 연일 계속된 촬영에 멘붕이 온 거 같았다.
존 추 감독은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답게 양손을 들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움직이지 않았고, 우리의 정신적 지주와 같던 양재경은 이 씬에 출연이 없다 보니 현장에 없었다.
헨리를 꼭 주인공으로 해야 한다던 원작자 마크 콴도 지금 없다 보니 다른 스태프들이 나를 쳐다봤다.
마치, 영화 내용처럼 사촌 동생역인 내가 나서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실제 영화에서도 여주인공에게 가족들을 소개해주는 문제에 대해서 조언을 내가 해주는 내용도 있었고, 이제 처음 연기를 시작한 사람이라 이런 이야길 해줄 관계자나 매니저도 없었다.
매니지먼트 회사를 알아보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 이런 힘든 상황에 옆에 있어 줄 사람이 없다 보니 촬영 딜레이가 길어질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옆에 있어 줄 수밖에 없었다.
싱가포르의 타이거 맥주 한 병을 건네주며 옆에 앉았다.
“헨리. 맥주나 한잔해요.”
사실 이런 상황에서 연기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이야기 해봤자 귀에 들어갈 리 없었다. 자기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
그저 옆에 같이 앉아 주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파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주시하는 이런 상황을 버티기가 힘들어.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스태프가 나를 집중해서 보는 게 힘들어.”
“헨리는 리포터로 5년 넘게 일을 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쳐다보는 게 익숙하지 않나요?
캐스팅되던 날 저를 인터뷰하기 위해 왔을 때는 이런 부담감이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리포터랑은 다르지. 리포터는 주시를 받는 사람이 아니니깐.
리포터가 인터뷰를 받아내는 사람이 카메라의 중심이니깐. 리포터는 중심축에서 벗어나 있고, 주목을 받지 않아.
이렇게 내가 카메라의 중심이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어.
이제야 그때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상황이 이해해 가.
그땐, 왜 이렇게 이야길 못하지? 왜 정확한 표현을 못 하는 거야? 하며 무시를 했는데, 지금 카메라의 중심이 내가 되니깐 정신이 없어. 모든 게 내가 중심이 되다 보니 그 무게감이 너무나 힘들어.”
리포터 때 카메라 앞에 서는 무게감과 지금의 무게감이 너무나 다르기에 그 부담감이 정신적으로 힘든 것 같았다.
“그거참 이상한데요.”
“응? 뭐가?”
내가 건넨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다 내 말을 듣곤 뭐가 이상한지 물어봤다.
“헨리의 말이 이상해요.
카메라의 주인공이 받는 무게감, 부담감이 힘들다고 하지만, 헨리는 늘 그런 걸 받으면서 살지 않았나요?”
“아니, 리포터랑은 다르다니깐.”
“리포터였던 이야기가 아니에요. 자 제 옆에 바짝 붙어 보세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헨리를 억지로 바짝 끌어당겨 둘이 붙어 셀카를 찍었고, 그 사진을 내 인스타에 올렸다.
『영화 ‘리치 아시안 웨딩’의 주연배우인 ‘헨리 챙’이에요. 이 형 잘생겼죠?』
인스타 팔로워가 170만 명이다 보니 내가 글을 올린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한글과 일본어, 영어로 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댓글을 헨리에게 보여줬다.
“자, 이거 봐요. 다들 헨리를 핸썸하다느니, 잘생겼다고 하죠?”
헨리에게 내 핸드폰을 보여주고 있는 중에도 실시간으로 헨리가 잘생겼다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댓글을 보니 기분은 좋은데. 그런데, 이게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자, 헨리 잘 생각해봐요. ‘리치 아시안 웨딩’의 원작가인 마크 콴은 우연히 TV에서 당신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곤,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당신을 이 영화의 주연배우로 세우고 싶어 했어요.
그리고, 방금 올린 단 한 장의 사진을 사람들이 보곤 헨리가 잘생겼다는 걸 인정해 줬어요.
당신은 요즘 말로 하면 ‘핵인싸’에요.
남자인 마크 콴이 봐도 잘생겨 보이고 친근감이 가는 외모에요. 여자는 두말할 필요도 없죠.
자, 그럼 기억해 봐요. 어릴 때부터 여자들이 헨리를 봐왔던 그 눈빛을요.
다들 헨리를 좋아하고, 백마 탄 왕자님까진 아니라도 잘생긴 이성으로 선망의 눈빛으로 봤을 거라고요.”
“음. 그렇긴 했지.”
헨리는 어릴 때부터 이성에게 그런 눈빛을 받았다는 걸 회상하는지 방금까지 촬영에 힘들어하던 슬픈 헨리는 없어지고,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며 미소를 짓는 헨리 챙이 되어있었다.
“봐요. 헨리는 어릴 때부터 이미 인생의 주인공이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선망의 눈빛을 받으며 주의의 신경을 써온 사람이라고요.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의 부러운 눈빛을 받는 ‘필립 골드’의 삶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요. 주인공의 삶이 우리의 일상생활이라고요.
좋은 외모를 부모님께 물려받은 이유만으로 이미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거라고요.
그리고, 이 영화를 시작으로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사람이 헨리 당신이에요. 어때요? 이제 다시 연기하고 싶죠?”
“후훗 그래 그러고 보니, 이미 인생의 주인공이었구나.”
헨리는 금세 자신감을 얻었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아까 그거 뭐라고? 핵인사?”
“핵. 인. 싸요. 인사이드(inside) 중에서도 원자 분자의 핵같이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그래, 이 영화는 아시안 중에서도 그 부유함의 중심이지. 그 중심에서 연기할 힘을 얻은 거 같아. 고맙다.”
“그럼, 제가 속해 있는 회사와 계약하는 건 어때요?”
“후훗. 알겠어. 일단 내일 한번 보자고.”
웃으면서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헨리를 보니 영화 속 필립 골드처럼 진짜 부자이자 인생의 모든 것을 가진 남자로 보였다.
그리고, 내 회사의 소속 배우가 될 사람으로 보였다.
**
“헨리 챙과 계약은 끝났고, 같이 온 매니저가 이젠 붙을 거야.
MSM에 태국에서 자란 한국 매니저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싱가포르 근무가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거야.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축 늘어져 있냐?”
“기원형. 그 매니저에게 영화가 잘되면 LA에서 체류할 수 있다고도 이야기했지?”
“당연하지. 그런데, 영화가 확실히 대박치겠어? 드라마 내용이 그냥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 수준이던데.”
“내가 선택한 영화인데 당연히 성공해야지.
OST도 성공해야 하고. 그래서, 지금 80년대 90년대 나온 중국, 홍콩, 대만 노래 다 들어본다고 머리가 멍하다고.
아시아의 감성과 유럽 감성이 같이 녹아있는 고급스런 음악 찾다가 내가 먼저 뻗을 것 같아. ESP 애들은?”
“나이트 사파리 인가 동물원에 구경 갔어.”
“어, 그런가 보네 저기에 나오고 있네. 지혜랑 촬영 스태프들이 같이 온 거야?”
내 노트북을 기원이 형이 볼 수 있게 돌려줬다.
“하하하. 다들 싱가포르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ESP애들 티저영상도 찍을겸 해서 왔지. Live 알람이 뜰지는 몰랐네.”
“유튜브 채널 구독해뒀더니, 실시간 Live 방송한다고 알림이 뜨네. 이런 돌발 행동 할 사람은 지혜밖에 없긴 하지. 형 싱가포르에서 벌금 내는 건 지혜 월급에서 다 차감해. 쪼끔 한 게 겁이 없어.”
유튜브 라이브가 돌발 행동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일단 라이브화면에서 ESP 애들이 실탄소년단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자 그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싸듯이 몰려드는 건 좋았다.
‘그래, 동남아시아든 동북아시아든 백인이 핵인싸이긴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