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209화 (209/237)

# 209

촬영 시작?

“이 부분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단순한 출연자를 넘어 투자자가 되다 보니 워너브러더스 측과 협의를 하는 미팅자리에도 나올 수밖에 없었는데, 존 추 감독이 걱정했던 제작사의 참견이나 이견이 많긴 많았다.

“윤소원이 맡은 역인 저스틴이 미국에서 프로듀서로서 미국인으로 이루어진 그룹을 제작하고 있다는 부분은 변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증권투자가로 성공했다는 주인공 필립 골드가 벌어들인 금전적인 부분을 수정해야 합니다. 연간 2천만 불을 벌어들였다는 부분은 문제가 있는 부분입니다.”

워너브러더스의 투자 부분 부사장인 ‘커트 게릴로’는 싱가포르까지 직접 와선 내가 맡은 배역과 주인공인 필립 골드의 금전적인 성공 부분에서 수정을 요구했다.

“네? 월스트리트에서 성공한 투자가들은 보통 연간 2천만 불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하던데, 일반적인 금액이라 더 올리라는 말인가요?”

“아니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리치 아시안 웨딩’ 영화는 로맨스, 가족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장르의 영화에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명확한 수치로 나오면 안 됩니다.

뭐, 이미 다들 월스트리트의 어두운 면을 알고 있겠지만, 그걸 가족, 로맨스 영화에서 보여주는 건 부정적인 부분이라 벌어들인 금액을 300~400만 불로 수정을 해야 합니다.”

“흠. 그렇다면 금전적인 수치 부분은 변경하도록 하죠. 그런데, 이것보다 먼저 이야기한 저스틴이 프로듀서로 그룹을 키우는 건 어떻게 변경을 하라는 겁니까?”

“현실성이 없습니다. 아무리 아시아의 문화적 자긍심을 보여주고 싶다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어느 정도 기반해야 합니다.

미국엔 아시아인들이 만든 제대로 된 음반사도 없습니다.”

현실성이 없다는 커트 게릴로 부사장에게 그럼 ‘스파이더 맨’이나 ‘아이언 맨’은 현실성이 있는지 되묻고 싶었다.

그리고, 세계 4대 음반사이자 미국 뉴욕에 본사가 있는 ‘소니뮤직’은 제대로 된 음반사가 아니냐고 묻고 싶었다.

아마 커트 게릴로 부사장은 단순히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인이 미국인들로 이루어진 백인 그룹을 프로듀싱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할리우드의 백인 우월주의는 말로만 들어봤지, 호주 오스트리아에서 1978년에 공식적으로 없어진 백호주의(白濠主義) 같은 것이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에 아직 남아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존 추 감독도 인종 문제라는 걸 눈치챘는지 얼굴이 붉어졌는데 흥분한 듯한 그를 대신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럼 커트 부사장은 어떻게 수정이 되었으면 하는 건가요? 좀 현실성 있게, 저스틴이 프로듀서가 아닌 ESP란 그룹의 일반 멤버라면 괜찮겠습니까?”

“흠 그것도 흔하지 않지만, 뭐 ‘파 이스트 무브먼트(Far East Movement)’같은 케이스도 있으니 그 정도로 수정을 하지.

우리 측의 작가들도 젊은 프로듀서보다는 그 댄스 그룹의 멤버가 더 개연성이 있다고 했으니 그렇게 변경을 하는 거로 합시다.”

커트 부사장이 파 이스트 무브먼트를 거론하자 한 대 때리고 싶었다.

파 이스트 무브먼트 팀 자체가 직접 곡을 만들고 프로듀싱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의 그룹이었기 때문이었다.

실탄소년단이 있기 전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차지했던 최초의 한 한국계 미국인들이었다.

물론, 이민 2.5세대라서 한국말도 잘하지 못했고, 한국인이라고 하기엔 좀 힘든 케이스긴 했다.

그런 파 이스트 무브먼트를 거론하는 걸 보니 커트 부사장은 그냥 백인들이 동양인의 밑에서 일하는 걸 보여주기 싫어하는 거 같았다.

“아, 그리고 혹시나 차별이라고 생각할까 봐 이야기하는데, 우리 측의 작가 팀에서 그렇게 만드는 게 좋다고 한 의견을 내가 대신 전달하는 것뿐이니 오해는 하지 마시길.

뭐, 물론, 14명의 작가 중에서 9명이 백인이긴 하지만 집단의 검증을 받은 결론을 따라야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겠소?”

내 배역이 작가들의 검증을 거친 거라고 이야길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커트 부사장의 말 한마디에 변경될 것 같자, 존 추가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그의 눈빛에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여 줬다. 사실, 이 정도라면 다행이었다.

할리우드의 흑백영화 시절에는 동양인들은 무조건 집안의 집사나 농민, 혹은 동양의 마법사 같은 역할밖에 할 수 없었는데, 그런 시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저스틴 배역은 양호한 편이었다.

사실, 아시아인들만이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를 워너브러더스에 투자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였다.

우리나라만 봐도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아들이자 할리우드 스타의 거리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필립 안(Philip Ahn)’을 시작으로 워킹데드의 ‘스티브 연’과 할리우드에서 여러 출연작이 있는 이병헌까지 수십 년에 걸친 도전을 했고, 이소룡과 성룡의 활동으로 주연이 아시아인이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줬다.

이제 진실로 아시아인들만의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이 정도의 수정이나 변경은 언제나 땡큐였다.

배역까지 관여하려는 워너 측에 화를 내려는 존 추 감독을 난 괜찮다고 오히려 내가 달래주었다.

“그럼, 워너 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윤소원이 맡을 저스틴이 ESP의 멤버인 것으로 수정을 하겠습니다.”

**

투자 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다시 양재경과 존 추감독, 원작자인 마크 콴과 모여서 식사를 했다.

“내가 가족영화 장르를 찍으면서 가장 좋다고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홍빠오(红包)가 없어도 된다는 거야.”

양재경의 말에 홍빠오가 정확히 무엇인지 몰라 물어봤다.

“홍빠오요? 그거 새해에 세뱃돈을 넣어주는 붉은 봉투 아닌가요?”

“그래, 보통은 복을 받으라고 돈을 넣어주는 붉은 봉투를 말하는 거지. 하지만, 중화권의 영화계에서 좀 다른 의미도 이 봉투가 쓰여.

바로, 영화상에서 죽는 역할을 하는 엑스트라나 죽임을 당하는 단역 배우들에게 죽음이란 화를 입었으니 복을 다시 받으라는 의미로 홍빠오를 주는 거지.”

“오 경제적으로 어려운 단역 배우들에게 주는 거라니 좋은 거 같은데요.”

“그래, 좋지. 문제는 그 홍빠오에 들어가는 돈을 주연배우가 내야 한다는 거야.

영화상에서 단역이나 엑스트라를 죽이는 역할을 하는 게 주연 배우들이다 보니 작으면 10명 많을 때는 100명에게 줄 홍빠오를 준비해야 해.”

“헐. 제작사에서 주는 게 아니라 주연배우 사비로 주는 거군요. 그렇다면 주인공이 수백 명을 죽이는 영화는 그 돈이 엄청나겠는데요. 예전 홍콩영화는 사람을 엄청 많이 죽였잖아요.”

“그렇지. 홍콩의 누아르 영화는 엄청났지.

그래서 난 이렇게 아무도 죽지 않는 할리우드의 가족영화가 제일 좋은 거 같아. 지금의 홍콩영화계는 그때보다 더 나빠졌으니깐.”

홍콩 누아르 영화를 이야기하는 양재경의 모습에서, 옛날을 추억하다가 다시 지금을 즐기는 모습이 확실히 연륜 있는 배우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전 홍콩의 예전 영화를 TV와 극장에서만 보았기에 그때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홍콩과 대만영화가 확실히 수준이 떨어진 것 같아 안타깝긴 합니다. 이런, 영화의 질적 하락도 홍콩반환 후부터 였죠?”

“그렇지. 존 추 감독은 이때까지 손발을 맞춘 미국인 스태프들을 다 여기로 데리고 온다고 했다는데, 참 잘한 결정이었어.

지금의 홍콩이나 대만에는 그런 실력 좋은 스태프들이 없어. 여기 싱가포르도 마찬가지고.

조금만 실력이 있으면 돈을 더 준다는 중국으로 다 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야. 더구나 싱가포르에선 전문 인력을 찾기도 힘들어. 인구가 없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리고, 그렇게 질이 낮아지니 당연히 개봉실적이나 관객들의 평가도 안 좋을 수밖에 없을 테구요.”

“맞아. 홍콩반환 후 나처럼 배우들은 미국으로 갔고. 액션 히어로 하는 성룡과 이연걸이 미국에서 만든 홍콩영화를 내놓았지만, 스태프 자체가 미국인이다 보니 홍콩영화의 느낌 대신 할리우드의 느낌이었어.

난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 영화도 그 둘의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야.”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스태프들도 아시아인들이 다 맡을 겁니다. 유일하게 백인이 비중 있게 나오는 역은 저스틴과 함께 팀을 이룬 ESP밖에 없을 겁니다. 물론, 거기서 저스틴이 리더로 리드할터이니 ESP의 다른 백인들의 대사는 한두 마디밖에 안 될 겁니다.”

존 추 감독의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양재경은 안도한 듯한 표정으로 차를 마셨다.

“배역에서 아시아인이 백인들을 거느리는 게 안된다며, OST에선 어떻습니까? OST에선 제가 프로듀서를 맡아서 다 처리할 수 있습니다.”

“배역이 수정되었으니, 그렇게 OST에서 해보도록 하지. 그럼 보름 후 촬영 전까지 ESP라는 친구들과 곡이 준비되어 있어야 해.”

“물론이죠.”

**

“윤소원씨는 이번 ‘리치 아시안 웨딩’ 영화를 위해 직접 싱가포르에 와서 오디션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보통 할리우드 영화에 한국 배우들이 오디션을 보는 방법은 영상을 직접 보내서 그걸 보고 통보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과정없이 바로 싱가포르로 왔다고 하더군요. 좀 특별한 것 같아요.

그런 적극성이 어디에서 나온 건가요? 그냥 영화 오디션 정보를 보고 가슴에 팍 꽂히는 그런 게 있었나요?”

영화 크랭크인 후 한국에서도 MSM과 레드샵에서 보도자료가 나갔는데, 내가 500만 불이나 투자한다는 소식에 MSM도 같이 투자를 결정했고 한국 내 흥행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게, 아예 싱가포르로 ‘주간 연예가’ 인터뷰 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이젠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김켈리 감독까지 몇억을 나를 따라 투자를 했기에 김켈리 감독도 주목하는 영화로 한국에는 소문이 났다.

“아시아인들이 모여서 아시아인들의 자긍심과 아시아의 문화를 그린다는 소리에 직접 오디션을 보기 위해 왔습니다.

리포터님도 그런 아시아의 대단함을 보기 위해 오신 거 아니세요?”

“호호. 맞아요. 저도 그런 아시아의 문화를 담은 영화 촬영 현장을 보기 위해 온 거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단 윤소원씨를 더 보고 싶었죠.

저 어때요? 저 글래머인데. 우후~”

개그맨 출신의 리포터이다 보니 이런 멘트도 부끄러움 없이 하며 내게 큰 가슴을 들이밀며 신음소릴 내었는데, 글래머가 이상형이라고 말했던 나를 놀리는 거 같았다.

뭐 이렇게 희극적으로 이용당하는 게 어떻게 보면 열애설(?)을 일으킨 내가 복귀하는 것에 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빚이 있는 방송인이 빚으로 놀림을 당하며,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던 케이스처럼 열애설을 개그 요소로 쓰며 지난 일을 그냥 웃기는 사건으로 만들고 싶어서 몰아가는 것 같았다.

당연히 방송에 그대로 나가기는 힘든 내용이었기에 나도 상황에 맞게 나가기로 했다.

“전 글래머라도 무조건 그런 취향이 아니에요. 나인피치의 정은채가 좋은 거죠. 리포터님은 아니에요. 너무 자신있어 하시네요.”

“이야, 대단한데요. 공개 고백인가요?”

“이미 한번 까였으니 편하게 이야기하는 거죠. 뭐. 하하하. 편집해 주실 거죠?”

“아니요. 그대로 쓸 겁니다. 호호 PD님 이거 살려주세요.”

“안됩니다! PD니임~”

되지도 않은 애교까지 부리며 상황극을 하며 영화 인터뷰와 내 근황을 동시에 보여줬으니 보도자료를 돌리고 싱가포르까지 항공료를 부담한 돈값은 한 거 같았다.

- 아 이 새끼 엄청나게 질척거리면서 너무 구질구질하네. 은채야 한번 줘라. 애 불쌍하다.

- 이야 도끼 10번 찍을 기세네. 소원이의 일편단심 껄~ 떡~ 은 나도 인정해 준다.! 연애 한번 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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