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206화 (206/237)

# 206

오디션.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하는 노래가 계속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는 거 같았다.

아침 일찍 레드샵 사무실에 출근해 있으면, 자연스레 민호 형도 출근하듯이 우리 사무실로 출근해선 각설이처럼 나를 놀려댔다.

“천하의 윤소원이 까이고 그걸 또 공개적으로 ‘저 까였어요.’ 하면서 자진해서 수치 플레이를 당할 누가 알고 있었겠냐? 생각할수록 웃기네. 크헤헤헤”

“민호형 안 바빠요? 왜 매일 와서 죽치고 있는 거예요. ‘고스트’ 오픈런 들어갔으면 거기 연습실에 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미 거의 1년이 다 되다 보니 연습할 거도 없어. 그리고 여기가 재밌잖냐 크흐흐. 오늘은 시타도 스케줄이 없다고 해서 와서 같이 웃기로 했다. 저녁에 한잔 때릴까?”

“자숙하기로 했는데, 술은 무슨 술이에요. 그거 알려지면 욕 더 들어요. 절 매장하고 싶은거에요?”

“여기 연습실에서 시켜서 먹으면 되지. 너 내일 스케줄 없잖아. 시타랑 셋이서 안주시켜서 한잔하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우리끼리 술 한잔하겠냐? 콜?”

“어휴 알았어요. 대신에 형들 온 김에 우리 애들 포인트 레슨 좀 해주세요.”

“누구? 하늘소녀 말고 또 팀이 있어? 아아. 그 외국인으로 구성된 팀 말하는 거지? 오키. 그렇지 않아도 너희 회사에 외국인 애들로 이루어진 팀이 있다기에 궁금했어. 시타오면 같이 한번 보지.”

민호형은 일부러 나를 놀린다고, 기자회견 영상도 다시 돌려보며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재미있다고 난리였다.

시간이 지나, 시타형이 루이스 형까지 데리고 같이 오자 자연스레 대현 형도 합류를 했고, 프로듀스99를 통해 만들어졌던 엔오원의 5명이 오랜만에 모이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형들은 나를 놀리는 게 제일 재미난 일인 듯이 놀려대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이야기 해봐 진짜 안 사귀는 거야?”

“이리저리 들리는 말로는 사귀는데 둘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소원이 네가 뒤집어썼다는 말도 있던데, 뭐가 맞는 거냐?”

시타형이나 루이스 형의 말을 듣고 진실을 아는 대현 형은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시타형 기자회견을 좀 믿으세요. 들이댔다가 까였다니깐요.”

“그래? 그럼, 이참에 소개팅 한번 할래?”

“하고는 싶지만, 자숙 기간이라 두세 달은 집, 사무실만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진짜 글래머에 은채랑 비슷한 느낌 나는 애 있는데, 당분간은 어쩔 수 없겠네. 뭐 내가 사귀지 뭐. 헤헤헤.”

이렇게 놀리는 형들을 쫓아내고 싶었다.

“민호형 말로는 술 네가 산다고 연습생들 포인트 레슨 시켜달라고 했다는데 애들 오라고 해봐. 한번 보자.”

호기있게 애들 오라고 부른 루이스형은 키 180대의 외국인 5명이 연습실로 들어오자 당황해했다.

그리고 ESP 애들도 갑자기 포인트 레슨을 위해 나타난 엔오원 멤버들을 보자 당황했다.

“오 저 알고 있어요. 김시타! 와우! TV채널에서 보던 프로듀스99의 우승자를 보다니 놀라워요.”

“한국에 오면 혹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다니 와우!”

다행히, 엔오원 멤버보다는 ESP애들이 더 빨리 정신을 차리고 TV에서 봤다고 아는 척을 하며 다가왔다.

외국인이 연습생이라는 걸 모르고 있던 시타와 루이스는 머뭇거리다가 그제야 팬이라고 내미는 손을 마주 잡으며 악수도 하고 인사를 했다.

“야, 이젠 한국인 없는 외국인으로 팀을 만드는 거야? 이야,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한 명쯤은 한국인 넣는 게 어떻냐? 한국말은 하긴 하지만, 역시나 억양문제가 있잖아.”

시타형이랑 루이스 형이 작게 귓속말로 이야길 하며 약간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역시나, 한국에서 외국인만으로 이루어진 팀은 부정적인 여론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흠. 그런데, 이런 시도는 괜찮은 거 같아. 일본 혼혈인 내 관점에서는 아예 혼혈로 이루어진 팀을 만들어 보고, 이후에 해외 진출을 위한 외국 국적 애들만으로 이루어진 팀을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계단 효과처럼 처음부터 전원 외국인보다는 혼혈 혹은 한국인 한두 명이 있어서 낮은 계단을 먼저 만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야 더 쉽게 한국에 스며들 수 있을 것 같거든.”

시타형의 말을 들으니 그렇게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긴 했다.

나까지 다섯 명의 엔오원 멤버가 모이다 보니 ESP의 멤버 다섯 명에게 1대1로 레슨이 가능했다. 그래도 몇 주간 ESP 애들도 제대로 안무 기본을 배웠는지 처음 봤을 때의 그 엉성함은 많이 없어져 있었다.

그리고, 1시간여 후에는 사무실에서 책상을 붙여놓곤 중국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는데, 왠지 대학교 동아리실에서 회식을 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레밍턴. 인스타나 트위터에 사진 올릴 때 내가 없는 사진을 올려. 한국에선 물의를 일으키고 자숙할 땐 이렇게 술자리에 있는 것도 문제가 되거든.”

“오케이. 이런 차이점도 이제 알 것 같아요. 나중에 우리가 데뷔했을 땐 이런 사고는 없도록 할게요.”

그렇게 말하며 민호형에게 받은 소주잔을 고갤 돌려 마셨는데, 그걸 보니 이미 명예 한국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레밍턴 뿐만아니라 탐스는 이미 소맥을 마는 법도 알았는지 숟가락으로 탁탁 쳐서 거품까지 만들어서 맥주잔을 돌리고 있었다.

“이야, 애들 젓가락질도 잘하고 한국 현지화는 완료되었네. 이제 데뷔해도 되겠는데.”

“레드샵 글로벌 한데. 자자 한잔 더 받아. 잘마시네.”

“선배님들과 술을 같이 먹게 될지 몰랐어요. TV에서 보던 K-POP스타들과 술자리라니.”

“다들 즐거운 술자리인데, 오빤 이제 더 이상 먹지 말고, 물만 마셔.”

자숙해야 하는 내가 같이 사무실에서 술 먹고 노는 게 보기 싫었는지 지혜가 물병을 건네주며 훼방을 놓았다.

“아 왜? 스케줄도 없는데, 나도 좀 놀자 야.”

“스케줄이 없었는데, 방금 생겼어. 내일 오디션 스케줄이 급하게 잡혔어.”

“오디션 스케줄? 무슨 오디션인데?”

“MSM에서 영화 오디션을 잡아 줬어. 내일 비행기 타야 하니깐 먹는 거 관리해.”

“비행기? 제주도에서 오디션을 보는 거야?”

“아니, 싱가폴. 내일 급하게 싱가폴로 가야 할 것 같아.”

“싱가폴? 무슨 영화 오디션이길래 싱가폴에서 오디션을 하는 거야? 싱가폴 올로케야? 감독님은 누구인데?”

“미국 할리우드 영화야. 영화 제목이 리치 아시안 웨딩? 인가 하는 건데, 싱가폴, 말레이시아, 미국에서 촬영하는 거래.”

영화 제목을 들으니 몇 잔 마신 소맥 술이 확 깨는 거 같았다.

**

백인이 장악한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 영화라고 하면 당연히 블랙 무비라는 흑인 영화를 뜻했다.

미국 전체 인구의 6%에 해당하는 아시안계 영화는 아예 유색인종 영화라고도 불리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나 상징적인 가치가 거의 없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의 유리천장을 깨트리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영화가 바로 ‘리치 아시안 웨딩’ 이었다.

한국에서 리포터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인 에릭 최가 애틀란타의 한 극장 티켓을 모두 다 구매해서 아시안들만 모여서 단체 관람을 추진했다고 해서 한국에서도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물론, 한국에선 동시개봉이 아니었고, 이 영화보다 더 막장인 시월드와 부자들의 이야기가 이미 많았기에 그저 그런 신데렐라 이야기로 흥행에 참패했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억 7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과 1993년 아시안들만으로 만들어졌던 최초의 아시안 영화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 만에 다시 만들어진 아시안들만의 영화라는 타이틀이 시사하는 바가 컸다.

애초에는 북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배우인 켄정만이 출연을 했는데, 어디서부터 바뀐 것인지 주인공의 사촌역으로 미국에서 가수 활동을 하는 배역이 생겨 있었다.

두세 달 자숙 기간을 가져야 했기에 한국에서 집과 회사만 왔다 갔다 하기보단 바람도 쉴 겸 오디션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소원 오빠! 여기요.”

리치 아시안 웨딩 오디션으로 MSM에 오니 나인피치 멤버이자 일본에서 봤던 성희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어서 40E 연습실로 가보세요. 빨리요.”

성희의 말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뛰듯이 4층 연습실로 가니 40E 연습실 문밖에 나인피치 애들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 보라는 듯이 고갯짓을 하는 걸 보곤 눈치를 보고 연습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생각이 맞았는지 연습실엔 은채가 혼자 있었다.

어떻게 내가 MSM으로 오는 걸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팀에 큰 피해 없이 일이 마무리되었다고 나에게 시간을 만들어 준 것 같았다.

“미안해. 그날은 진짜 너무 무서웠어. 둘이 어떻게 하자고 했던 생각이 정말 하나도 안 났어.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질 않더라. 나 때문에 너 혼자 욕 듣고 미안해.”

“괜찮아. 만약에 회사 말처럼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을 때 내가 너 옷 속으로 손 넣고 했던 사진이 추가로 올라왔으면 더 큰 일이 났을 거야.

이렇게 내가 혼자 책임을 져야 나중에 추가 사진이 올라왔어도 대응을 할 수 있었을 거야.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어. 뭐 덕분에 이렇게 여유있게 영화 오디션으로 외국도 나갈 수 있는 거지. 자책하지마.”

“그러면 가슴에서 손부터 좀 뺄래.”

“에이 오늘은 연습실이라 진짜 아무도 없잖아.”

“밖에 다 있거든. 우리 멤버들이 너 혼자 욕 받이 했다고 일부러 자리를 비워줬지만 어휴. 또 또. 손 그만 빼. 이제 애들 들어온다니깐.”

“쳇 나는 진짜 욕받이였는데. 이것도 못 만지냐? 너 이번 앨범 활동 끝나면 그때 싱가폴에서 꼭! 보자.”

또다시 몇 달간 보지 못할 것 같아 꽉 껴안아 주고 오랜 시간 동안 키스를 나누었다.

**

“저스틴 비버 관련 다큐와 스텝업 같은 영화를 연출한 존추 감독이다 보니 우리에게 오디션 추천을 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바로 다이렉트 오디션을 보는 거야.

극 중 배역 자체가 이민세대이다 보니 네이티브 급의 영어까진 원하지 않는다고 했기에 언어문제도 괜찮을 것 같고.”

내가 혼자서 책임을 져준 게 나인피치와 은채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지 싱가폴로 출국하는 나에게 예전에 내 매니저 일을 했던 기봉이 형을 붙여줬다.

“네. 배역 자체도 미국에서 저스틴 비버처럼 스타가 되려는 가수 역할이니 생활 연기하면 될 거 같네요. 스케줄도 넉넉하니 싱가폴에서 관광도 하고 좀 놀아 보죠.”

“그래, 숙소나 그런 건 우리가 다 챙겨줄 테니 오랜만에 제대로 쉬면서 한번 준비해봐.”

천천히 쉬면서 오디션 준비를 하려고 했는데, 다음날 영화제작사 측에서 바로 보자고 해서 같이 점심을 같이하는 스케줄이 잡혔다.

“오디션을 보기 위해 당신이 온다는 이야길 듣곤, 한국과 일본에서 활동한 영상을 일일이 찾아서 봤습니다. 비주얼적으로는 영화에 어울리는데, 활동하는 모습은 뭔가 아티스트 같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캐릭터는 좀 더 천방지축에 스타의 허세를 부릴 줄 아는 캐릭터입니다. 가능하신가요?”

프로레슬러 같은 덩치와 턱수염을 가진 존추 감독이 나에게 너무 얌전한거 같다고 이야길 하자, 바로 의자에 푹 기대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있던 선글라스도 쓰고 턱을 들었다.

“이런 거요?”

한국에서 사고를 치고 나름 보름 가까이 자숙해서 그런지 어느 정도 기가 죽은 게 존추 감독에게 느껴진 것 같았다.

“훗. 좋은데. 진짜 내 사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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