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문화수출이 매국?
“그게 어떤 방법인가요? 어떻게 하면 망작을 만들어도 계속 감독을 할 수 있는 건가요?”
“망작을 만들어 낸다고 해도 계속 감독을 하기는 의외로 쉬워.
보통 영화감독들은 첫 데뷔작에서 다음 작을 찍을만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거나, 평단의 인정을 받거나 해야 다음 영화를 기약할 수 있어.
하지만, 그 경우가 아닌데도 계속 메가폰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어. 바로 이름을 빌려주면 되는 거야.”
“그럼, 바지 사장 같은 그런 건가요?”
“비슷하지. 그냥 이름만 감독 이름으로 올리고 실제 촬영은 촬영감독이나 조감독이 다 하는 거지. 그런 영화의 진짜 감독은 대부분이 주연배우야.”
“네? 주연배우가 감독요? 그럼 연기도 하고 감독도 같이한다는 거예요?”
“그래, 아마 진유화를 캐스팅하겠다는 그 영화의 상대 배우나 가장 비중이 많은 주연이 누구인지를 확인해봐. 아마, 이름값이 비싼 배우일 거야.
망작 감독이 계속 메가폰을 잡고 있고, 계속 같은 제작사와 작업을 한다면 99.99% 그 영화의 감독은 그 주연배우야.”
“연출을 진짜 공부하고 감독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분량 때문에 그렇게 제작을 하고 하는 건가요?”
“그래. 자기도 이제 제작사 차리고, 자기를 주연으로 해서 영화를 찍고 싶은데, 이런 이름 있는 주연배우가 제작에 관여한다고 하면, 감독은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찍지 못할 가능성이 100%야.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감독들은 절대 그런 영화를 맡으려고 안 하지.
그러다 보니, 김호재 감독처럼 망작만 있고, 히트작이 없는 감독들의 이름이 올라가는 거야.
그런 감독들의 입장에서는 이름만 빌려주고 돈을 받으니깐 이미 똥칠한 이름 더 판다고 하는 거고.”
“영화 제작은 상대 주연배우와 제작사가 어디인지를 꼭 확인해봐야 하는 거군요.
그러고 보니 주연배우가 제작에 참여하는 헐리우드의 ‘히어로맨’ 같은 경우에도 매 편마다 감독이 바뀌던데, 다 그런 케이스였군요.”
“그렇지. 주연배우 입김이 더 큰 미국에서는 아마 배우가 각본은 물론 연출까지 참견할 거야. 그러다 보니 감독들이 못 버티는 거지.
배우가 제작까지 해서 돈줄을 잡고 있으니, 어느 감독이 그 배우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겠어?”
김용호 실장의 말을 듣고 보니, 영화판이나 음악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작곡 능력은 없고, 이름만 높은 가수들은 프로듀서들에게 욕을 해가며 프로듀싱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했다.
음반을 만들 능력이 있으면 자기가 직접 하면 되지만, 그럴 능력은 없다 보니 프로듀서와 부딪힐 일이 많이 생겼고, 어쩔 수 없이 연차가 높고 이름 높은 가수와의 프로듀싱 작업은 점점 신인 프로듀서들이 붙어서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물론 대부분 신통찮다.
그러다 보니 자기 마음대로, 자기 의도대로 곡을 만들고 싶어 하는 노련한 프로듀서들은 시킨 대로하는 신인들과의 작업을 더 좋아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자작곡에 프로듀싱 능력이 있어야 롱런 할 수 있는 실력 위주의 음악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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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기모토PD님이 소개해주신다는 분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느낌이 다르네요.
처음 뵙겠습니다. 윤소원입니다. 이쪽은 이제일 입니다.”
츠기모토PD와 약속된 장소로 가니 나에게 소개해주겠다는 사람이 업프론 레코드의 책임 프로듀서인 층쿠였다.
AKS의 48 걸그룹이 대두되기 전 일본을 사로잡았던 ‘모닝 무스’란 걸그룹을 만든 사람이었다.
프로듀싱 한 앨범의 총판매량이 3천만장을 넘었고, 여러 음악상을 받은 프로듀서이자, 본인도 밴드 보컬로 히트곡이 있는 가수이다 보니 느낌이 확실히 달랐다.
어쩌면 우리 MSM의 유영찬 총괄 프로듀서와 같은 위치의 사람이었다.
물론, 근래에는 히트곡을 못 내고 있다는 것까지 둘 다 비슷했다.
“몇 년 전 엔오원으로 데뷔 때 생중계 방송을 하는 걸 직접 봤었습니다. 그 컨테이너 트럭에서 생중계를 했던 그 방송요. 그러고 보니 벌써 몇 년이나 지났네요.”
“아, ‘마이 리틀 채널’을 보셨었군요.”
“그때 한국에서 실제로 보고 이후로 쭉 지켜봐 왔습니다.”
데뷔했을 때부터 층쿠가 나를 지켜봤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소원아 이 말을 그대로 들으면 안 되는 거 알지? 혼내, 타테마에(겉마음, 속마음) 가 있으니 조심해서 들어.
이 친구는 사실상 걸그룹에 관심을 가지지 남자 아이돌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구.”
옆에 있던 츠기모토PD가 우스갯소릴하자, 우리는 물론 층쿠도 웃으며 분위기가 쉽게 풀리고 서로가 눈치를 보던 게 좀 줄어들었다.
“사실상 AKS의 48 그룹 이후 일본의 여자 아이돌에게 댄스 실력이나 보컬 실력보단 어떻게 하면 더 웃음을 짖게 만들고, 귀엽게 보일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어.
애교와 웃음으로 어떻게든 음반 판매고를 올릴 수만 있다면 최고의 아이돌이 되는 거지. 물론, 그 악수회와 총선거라는 것도 마찬가지고.”
“업프론 레코드 쪽은 그럼 악수회나 총선거 같은 걸 하지 않는가요?”
“우리 쪽도 하이터치(하이파이브) 회는 하고 있지. 하지만, 노골적으로 화류계에서 써먹던 방법인 악수회는 하지 않고 있어.
그리고, 총선거는 결국 팀내 멤버들간의 불화를 만들어 낼뿐이라 아예 하지 않고 있지. 멤버가 10명 내외라면 결국 누군가는 상처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니깐.”
“그러고 보니, 48쪽은 인원이 몇백 명으로 많다 보니 총선거에서 감정이 상해서 상처를 받게 되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겠네요.
하지만, 악수회나 총선거 같은 게 없으면 48 계열과의 경쟁이 힘들지 않을까요? 결국 일본에서의 음반 매출은 그 악수회라는 것과 총선거를 위해 팔리는 앨범의 숫자로 결정한다고 하던데.”
“그렇지. 그래서 지금 새로운 음악을 하는 한국의 프로듀서들을 만나기 위해 나온 거야.
가수라면 아니 아이돌이라면 음악과 안무로 팬들을 즐겁게 해줘야지. 단련되지 않은 성대와 율동으로 보여주는 어설픈 무대가 아니지.
일본의 젊은층에게는 한국의 K-POP 스타들이 대유행이야.
48그룹 때문에 일본의 여자 아이돌 팬이라면 나이든 오타쿠 말곤 없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든 바꿔 보려는 게 우리의 목표지.”
듣고 보니 층쿠는 아마도 48 그룹과의 차별화를 하기위해 우리와 만나 프로듀싱을 맡겨 보려는 것 같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런 오타들을 본격적으로 만들어 낸게, 층쿠를 비롯한 ‘업프론 레코드’야. 한때 남자는 주니스, 여자는 업프론으로 대표되는 아이돌 오타 제조기 기획사였거든. 그런 거로는 그 두 곳이 쌍벽이었어.
뭐, 이젠 두 곳 다 낡아빠져서 재개발해야 하는 오래된 건물이 되어 버렸지만.
그래서 그 재개발 겸 48그룹의 로비 같은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다시 본연의 음악으로 돌아가 보고 싶어 하는 거야.”
“츠기모토는 요즘 이렇게 나를 놀려먹는데 재미를 느끼는가봐. 그 입을 좀 다물어 줬으면 좋겠는데.”
“후후. 그리고, 층쿠도 나름대로 몇 년이나 그 음악 본연의 매력으로 48 그룹을 이겨보고자 ‘모닝 무스’ 애들에게 보컬 수업도 제대로 시키고, 안무도 거의 K-POP 가수들 만큼이나 끌어 올렸어.
하지만, 이젠 층쿠도 늙은 거지. 내일모레면 환갑이거든. 한국처럼 일본도 환갑을 기점으로 대부분이 은퇴하다 보니 이제 이 친구도 준비를 하는 거지.”
“보통 일본에서는 후계자나 전인 같은 걸 만들지 않나요? 음악 쪽도 대부분 제자를 가르쳐서 물려주고 하던데.”
“그건 도제 같은 제자를 들였을 때 이야기지, 층쿠 밑으로 프로듀서들이 많아도 뭐랄까. 예전의 층쿠에게서 나왔던 빛이 난다는 그런 음악을 만들어 내는 친구들이 없거든.”
“빛이요?”
“그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면 노래와 음악을 듣고 병이 치료되었다는. 그런 황당한 이야기들 있잖아.
그때의 층쿠가 만들어 내는 노래들은 진짜 마음속에서 즐거움이 만들어지고 그 즐거움이 빛처럼 발산되는 그런 느낌이었거든.”
“그리고, 이번 하늘소녀의 노래와 소원군의 솔로 앨범 곡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어.
그런 곡으로 우리 업프론 소속의 아이들을 다시 위로 올리고 싶기에 이런 자리를 만든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일단, 곡들을 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레드샵 소속의 아티스트들과 객원 프로듀서들이 힘을 합쳐서 만드는 겁니다.
저 혼자 오늘 결정을 하기는 힘들 것 같네요. 먼저 우리 쪽의 의견들을 정리하고 나서 이후에 다시 만나서 세부 협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자 그럼 우리 쪽이 어떤 음악을 해왔는지 들려주기 위해 CD와 DVD를 들고 왔어. 한번 들어보고. 우리 ‘업프론 레코드’의 색깔을 잘 구현해 주길 바라네.”
오후 내내 일본 전통 요릿집에 앉아 노트북으로 노래와 영상을 보며 층쿠에게 일일이 곡과 아이돌 팀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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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이거 문제인데, 난 그냥 단순히 우리가 만든 곡을 판매하고 프로듀싱 해주는 거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3시간이 넘는 미팅 후 호텔로 돌아오니 제일이 형이 심각하다며 나를 붙잡아 앉히곤 이야길 꺼냈다.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건 매국노 짓일 수도 있어.”
“매국노 짓요?”
“그래, 매국노. 한번 들어봐. 층쿠에게 들어보니, 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대부분의 아이돌 문화가 일본의 주니스에게서 배워서 넘어 온 거였어.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그 일본에서 배워온 걸 우리가 더 발전시켜서 반대로 일본에 알려주고 있고.
생각해봐. 그러면 다시 몇 년 후에는 일본이 또 우릴 이기게 되지 않을까?
단순히 우리는 곡을 판매하고 일본의 아이돌들에게 한국 아이돌의 트레이닝법이나 안무를 알려주는 거지만, 그런 게 누적될수록 일본 쪽에서 발전시켜서 지금의 한류를 이겨서 일류를 만들어 내지 않을까?
이름도 하필이면 일류야. 니뽄류로 불러야겠다. 일본의 실력을 우리가 길러주게 되는 거라고. 그러니 그게 매국노 짓이지.”
“형 말이 맞는 거 같지만, 일본에게 따라 잡혀서 우리가 질 것 같다고 문화교류나 실력을 주고받는 걸 금지하면 절대 안 돼요.
지금 일본이 왜 문화적으로 갈라파고스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일본은 쇼케이스나 오프라인 행사는 무조건 유튜브에 올리지 않아요. 무조건 직접 와서 보라고 하는 구식 방식이에요.
그러다 보니 세계적으로 아이돌을 알리고, 팬들을 불러모으는 걸 실패한 거예요. 덕분에 우리가 쉬운 접근성으로 한류를 만들어 낸 거예요.
조선 시대의 쇄국정책 결과가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지키기 위해 문을 걸어 잠그면 뒤처져서 지금의 일본처럼 될 뿐이에요.
로마에는 이런 말이 있잖아요. 발전하려면 길을 만들어 교류하고, 망하려면 길을 막는 성을 쌓으라고요. 문화는 흐르고, 여러 가지가 섞여야 발전하는 거예요.
우리가 일본에 돈을 받고 가르쳐 준다고 무조건 우리가 손해 보는 게 아니에요. 일본에서 가르치다 보면 또 우리가 배우는 게 있지 않겠습니까?”
“흠. 듣고 보니 그건 또 그렇네.”
“어휴 형 팔랑귀네.
그리고,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곡을 주고 한국 방식으로 밥을 떠먹여 주다 보면 나중에는 숟가락을 드는 방법까지 까먹게 될지도 몰라요.
문화는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 우린 최대한 많은 이익을 받아내고 우리가 일본 아이돌들을 프로듀싱했다는 프로듀싱의 한류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예요.”
“역시, 그렇게 또 한류를 만들면 되겠구나. 아예 너희 회사에서 키운다는 ESP처럼 한국에서 한국말로 먼저 데뷔시키라고 해버려야겠다.”
“제일이 형은 YAM 멤버들이 어떻게 일본 쪽과 연계할 수 있을지 생각 좀 해두세요. 전 잠시 밖에 다녀올게요.”
고민하는 제일이 형을 두고 미리 알고 있던 24시간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저녁 9시가 넘어 미리 약속을 해두었던 은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