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95화 (195/237)

# 195

역대급 데뷔 (3).

- 7화 -

“진유화! 너 뭐 하자는 거야? 또 반 박자 빠르잖아. 정신 안 차릴래!”

안무를 맡은 노지희 선생님의 눈에서 불똥이 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높은 언성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오늘도 늘 그렇듯이 난 선생님께 지적을 받는다. 아니, 지적이 아니라 야단을 맞는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잘하고 싶은데, 왜 나는 안되는 걸까.

애들은 내가 반 박자 빠른 건 마음의 조급함도 있지만, 타고 난 거라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해 주지만, 내가 정확히 하는 것 자체를 기대하지 않는 그 위로가 더 슬프다.

연습을 마치고 수업이 끝났지만, 난 남아서 연습을 더 할 수밖에 없다.

다른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거의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해온 애들이고 난 이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

어쩔 수 없는 걸 아는데도 거울에 비친 나는 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화는 진짜 안 되겠는데.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하는데, 애가 기본이 없다 보니 따라오지를 못해.

이 상태로는 회사 내부 데뷔 조 경쟁에서도 질 수 있어. 다른 부장들이 준비하는 데뷔 조도 만만치가 않아. 내부 경쟁에서 이기려면 10인조가 아니라 9인조로 어쩔 수 없이 유화를 빼야 할 것 같아.”

안무를 담당하는 노지희의 진유화를 빼야 한다는 말에 보컬 담당 선생님인 성대현이 깜짝 놀랐다.

“네? 그래도 애가 배우 지망했던 애라서 비주얼은 괜찮잖아요.

센터에 세워도 나름 괜찮아 보이던데. 그 비 오는 날 촉촉하게 젖은 긴 머리가 어울리는 그런 분위기가 있잖아요.

막 우산을 잃어버려서 슬픔에 빠져있는 그런 느낌요. 화려하게 생긴 제이나 우혜와는 다른 맛이 있어서 전 좋던데.”

“네 말대로 분위기 때문에 센터 세우면 다 망해. 애가 리듬감이 특이해. 그루브 타는 뒤 박자가 아니라 앞 박을 타버려. 그렇게 반 박자가 빠르다 보니 센터에 세웠을 때 뒤에 있는 다른 애들까지 영향을 받아버려.

센터 따라가려다 보니 박자가 개판이 되어 버려. 지금 그대로 유화를 두게 되면 다른 애들 다 잡아먹게 된다니깐.”

“그 정도예요? 그러면 안 되는데, 애가 처연한 분위기가 있다 보니 마조성향으로도 살짝 보여서 십덕후 몰이를 좀 할 것 같아서 기대했는데.”

“비주얼 센터로는 혼혈인 제이도 있고, 우혜도 있으니깐 비주얼로도 최고급은 아냐. 일단, 보컬, 춤 다 안된다는 게 제일 큰 문제야.”

“내부 경쟁 전에는 멤버들 모두가 센터로 일일이 다 들어가게 되는데 센터로 앞에 서서 반 박자 빨라지기 시작하면 박자 개판 날 수도 있겠네요.

흠. 일단 영상 찍은 거 들고 한번 위에 이야기해 볼게요. 다 같이 살고 싶지만, 그게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죠.”

**

<탁. 탁. 탁. 탁>

하루 종일 박자를 세어주는 메트로놈을 거울 밑에 두고 연습할 때도 최대한 박자를 맞추기 위해 움직였다. 댄스에 강점이 있는 소옥이나 리브의 춤 선과 박자를 기억하며 움직이는데도 움직임에 자신감이 없었다.

“유화 지금도 연습하는 거야?”

집으로 가기 전에 들린 것인지 교복을 입은 루시아가 연습실로 들어섰다.

“응. 어떻게든 내일까지 맞춰야지. 내가 너희들 발목 잡을 순 없잖아.”

“너도 참 대단하다. 11시가 넘었어. 집엔 언제 가려고? 전에도 연습실에서 잠잤다며? 그러면 안 돼 몸 상해. 빨리 집에 가자.”

“안돼. 나는 이거 다 하고 가야 해. 먼저가.”

“에휴 그럼 같이하자. 혼자 하는 거보다는 같이 해야 좀 더 박자에 대한 감이 잡힐 거야.”

집에 가려던 루시아가 다시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데뷔곡으로 정해진 ‘말해봐’를 같이 연습해 주었다.

그리고, 미영이와 제이, 소옥이...슬그머니 한 명씩 다시 연습실에 모여들어 안무를 맞추기 시작했다.

“너희들 집에 안 가도 되는 거야? 이러면 너무 미안해지잖아.”

“그러면 잘하던지. 난 데뷔 못 하면 엄마 식당가서 일해야 해.

너도 박자 못 맞춰서 조급해하겠지만, 우리도 다 조급하거든. 너 때문이 아니니깐 쓸데없는 걱정 마.”

츤데레 캐릭터라는걸 나타내려는 듯 미영이는 툴툴거렸지만, 땀을 닦으라고 수건을 던져 주었다.

“박자를 제대로 못 맞춰서 너도 갑갑하겠지만, 어떻게 보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야. 팀의 문제지.

그리고, 사실 나도 집에 가더라도 잠이 오지 않아.

데뷔의 기회가 왔다지만, 회사 내부의 데뷔 조들끼리의 경쟁도 해야 하고, 그들을 물리치고 데뷔의 기회를 잡더라도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이 되어서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아.”

루시아도 데뷔에 대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며 한숨을 쉬었다.

“나도. 잠이 안 와. 나랑 우혜는 이번 데뷔를 하지 못하면 비자 문제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한단 말야. 그래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 해. 어떻게든 한국에서 데뷔하고 싶단 말이야. 불법 체류자로 강제추방되는 거 싫어.”

중국 멤버들의 사정도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쫓기고 있는 거네. 유화는 반 박자 빠른 메트로놈에, 우리는 우리 대로의 각자의 사정에···. 참 인생 쉽지 않네. 아주 모드가 하드 모드야 하드 모드!

하드 모드 게임은 죽으면 끝이니깐 힘들더라도 한 번 더 해보자. 살아야지.”

리브의 말에 모두 다 웃으며 다시 음악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빠르게 박자를 타는 진유화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져 갔다.

**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들은 그대로야. 유화는 이제 데뷔 조가 아니야. 이번이 아닌 다음에 다시 데뷔 조에 도전하고 싶다고 데뷔 조에서 빠지고 싶데.”

안무를 담당하는 노지희 선생의 말에 다들 입을 열 수 없었다.

“왜요?”

루시아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선생님들과 상담을 했어. 유화가 더는 너희들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 자기 욕심을 위해 너희들 발목을 잡고 넘어트릴 수는 없다고 하더라.

유화도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결정을 내렸겠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오늘 새벽까지도 같이 남아서 연습을 했는데, 갑자기 데뷔 조를 나가다니요? 선생님들이랑 부장님이 다른 데뷔 조에 밀릴까 봐 강제로 유화를 내보내신 거 아니에요?”

“사실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우리가 그런 이야길 꺼내기 전에 유화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었어.

마침, 저기 오네. 직접 이야길 들어봐.”

눈물 자국이 가득하다 못해 눈이 퉁퉁 부은 진유화가 연습실로 들어오자 방금까지만 해도 노지희에게 따지던 애들이 다들 뛰어가 진유화를 부둥켜안았다.

진유화도 애들도 서로 말은 하지 않고 그냥 부둥켜안고 있더니 유화가 울자 다들 따라서 울기만 했다.

몇 개월 동안 매일 늦은 시간까지 함께 땀 흘리며 연습을 했던 동지애가 눈물을 불렀던지, 아니면 선생님의 말마따나 자발적으로 데뷔 조를 나가겠다고 했을 그 마음이 느껴졌는지 다들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 덩어리가 되어 울었다.

“울지만 애들아.”

“이 바보야. 왜 네가 먼저 나간다고 한 거야? 끝까지 버텨야지. 이렇게 나갈 거면 왜 새벽까지 혼자 남아서 청승 떨면서 연습을 한 건데? 왜?”

미영이의 추궁하는 말에 눈물을 흘리던 유화가 트레이드마크 같은 처연한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을 위해서야. 내가 좋아하는 너희들을 위해서 그랬어.

이렇게 같이 울어주고, 같이 있어 주는 너희들을 위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다 같이 가야지. 데뷔 조에 다들 들어왔을 때, 다 같이 데뷔하기로 했잖아.”

“나도 내 실력 알아. 나를 위해 너희가 힘을 내라고 하지만, 그게 잘못 된 거야. 너희들만큼 노력해서 준비된 애들이 데뷔를 하는 게 맞아.

그저 운 좋게 너희들 사이에 끼어서 데뷔하고 어영부영 활동하는 건 다른 연습생들에게 미안해서 안 될 것 같아.

내가 먼저 나가줘야 너희들이 다른 데뷔 조를 이기고 데뷔를 할 수 있을 거잖아.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 같아.

너희들은 나쁜 게 없어. 어떻게든 같이 끼어서 데뷔하려 했던 내가 나쁜 거야.”

말을 하면서 짓는 미소와 함께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처연해 보여 또 다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

“너희가 데뷔하고 유명하게 되더라도 나를 잊지 않아 주면 되는 거야. 그거면 되는 거야. 나는 그거면 돼...”

진유화의 독백과 같은 대사를 끝으로 화면이 점차 어두워지며 페이드 아웃 되었다.

「오늘 저희 하늘소녀 데뷔 쇼케이스에 와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 하늘소녀를 여러분들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영상에는 커튼 뒤에서 조명을 받아 보이는 실루엣이 보이며 드라마가 끝이 났는데, 실루엣의 숫자는 9명뿐이었다.

- 와, 열불나네. 결국 진유화가 자기 희생해서 애들 데뷔시켜주는 거야.

└뭐래, 그 반대지, 희생이 아니라 적성에 안 맞는 애는 애초에 아이돌 지망하지 말라고 하는 교훈을 주는 드라마구만.

└이새끼 말 개같이 하네. 진유화의 소중한 희생을 뭐? 적성? 이 개 새끼야!

- 시바 너네 7화 안 봤다면 절대 보지마라...부족한 내 자신의 문제로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내가 겹쳐 보여서 진짜 많이 울었다. 시바 내가 진짜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왜 이리 눈물이 나오냐...

- 너보다 잘난 친구랑 같이 보고 있으면 일단 꺼라.

그리고, 친구 보내고 혼자 7화 봐라. 친구들이랑 같이 보면서 울었더니 마스카라 떡지고 개판이다.

- 애인이랑 같이 보다가 둘 다 가슴이 먹먹해서 울었다. 세드엔딩 개 같네.

- 그림자가 9명이던데, 그러면 진짜 진유화 빼고 9명이서 데뷔하는 거야?

이거 리얼리티였어? 대본 있는 리얼리티? 페이크 드라마야?

└네이버에 하늘소녀 쳐도 멤버 수랑 이름이 안 나옴.

- 가볍게 본 드라마인데 뭔가 생각할 꺼리를 많이 안겨주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해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부족한 ‘소’ 가 알아서 ‘대’를 위해 없어져 줘야 하는지 하는 가치관의 문제까지 이렇게 건드릴 줄 몰랐다.

└역시, 토니상 극본상을 받은 김켈리라 다르네. 그냥 하이틴 뮤직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치열한 아이돌 판과 희생에 대한 가치관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버리네. 이야 오진다.

- 우리 유화 살려내라 유튜브 놈들아!

- 진짜 진유화는 하늘소녀로 데뷔 못 하는 거임? 한 편당 50분씩 350분 동안이나 우리는 10명의 소녀들과 함께 했다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10명의 소녀들이 데뷔해서 성공하길 바랬다고.

그런데, 이렇게 한 명을 버리면 안 되는 거지. 너희 놈들 제정신인 거냐? 나에게 똥을 선물하는 거야? 미국이었다면 제작진들 밤길 조심해야 할 거다.

- 동양인들은 나이를 알 수가 없다. 왜 다 동갑으로 보이는 거지? 진짜 루시아가 25살인 거야? 교복이 너무 잘 어울리잖아.

└25살 맞음. 우리도 너네 백인, 흑인 나이 구분하기 어려움 마찬가지임.

“뭔가 예술 영화에 달리는 댓글들 갔지 않습니까?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리틀 붓다’에 달린 댓글들보다 더 심각한 내용의 댓글들이 달려있습니다.”

“그 ‘리틀 붓다’는 보지 않았지만, 뭔가 우리가 생각했던 반응과는 좀 다르긴 하네요. 그런데, 핫해서 좋긴 좋네요.”

“그리고, 시청 연령이 10대가 아니라, 30대가 35%가 넘습니다. 이 연령별 수치도 역대급입니다. 아마도 김감독님 영향으로 뮤지컬을 좋아하는 30대의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그런 수치 같은 것도 보도자료로 뿌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 쇼케이스 홍보영상도 최대한 지원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자정부터 매일 5시간씩 메인페이지 베너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그럼, 내일 지사장님과 같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유튜브 코리아의 황과장과 통화를 끝내고 보니, 유튜브 코리아의 지사장이 직접 찾아오겠다고 하는 이것도 역대급인 것 같았다. MSM에서도 유튜브 코리아 지사장을 보려면 전상일 본부장이 찾아가고 하는데, 그쪽에서 온다고 하니 나에겐 이게 더 의미심장했다.

“지혜야 뮤지컬 커뮤니티 쪽 뮤덕라이프 반응은 어때? 유튜브 황과장은 역대급이라고 계속하는데, 그런 수치 말고, 뮤덕들의 호불호는 파악이 되고 있어?”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지만, 다들 호의적인데, 디즈니의 하이스쿨 뮤지컬보다 더 좋다는 말도 있고, 글리처럼 병맛만 되지말라는 글도 많아.

그리고 황과장님 말처럼 ‘에게 겨우 7화가 끝이야?’ 하는 말이나 ‘너네 7화 보고 열 받아서 뭘 던지게 될 거다.’라는 경고 글도 있고.

이 정도 반응이면 이때까지 했던 뮤직 드라마 중에서는 최고의 반응이야. 걱정 안 해도 되겠어.”

“다행이네. 애들에겐 좋은 댓글만 따로 뽑아서 너희가 전해줘. 일부러 애들에게는 인터넷 사용 못 하게 하고 있으니깐.”

“알았어. 그런데, 문화훈장 주는 장소랑 일정이 나왔는데, 별도의 행사는 없데. 아쉽게도 그런 공적인 행사에서 공연하는 홍보는 날아 간 거 같아.”

“어? 팀장님. 사장님 빨리 와서 이거 보세요.”

홍보팀 부팀장인 혜린이의 다급한 목소리에 뛰어갔다.

「문화훈장을 받으시는 김켈리 감독님의 독단적인 극본으로 인한 하늘소녀 9인조 데뷔를 취소시켜 주시길 청원 드립니다.

하늘소녀는 10인조여야 합니다. 꼭 그래야만 합니다. 진유화를 데뷔시켜주십시오.」

“아니 이 병신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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