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꿈은 높게 현실은 두근거리게.
“이 노래는 들어봤는데, 이렇게 영상을 보는 건 처음이에요.”
“전 응팔 드라마에서 처음 노래 들어봤어요.”
“그런데, 선생님 ‘담다디’라고 계속하는데 저건 무슨 뜻인가요?”
“아무런 뜻이 없어 그냥 의성어지. 나~ 나난나~ 같은 반복구로 흥을 돋우기 위한 추임새 같은 거야.
이상은은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고, 대상곡인 담다디 노래로 1988년도 모든 가요대상을 싹쓸이했던 전설의 아이돌이야.
트로트나 락이 아닌 노래로 가요대상을 수상한 건 이상은이 처음이지.
더구나 원 히트 원더도 아니야. 담다디 이후에도 ‘사랑할 거야’, ‘그대 떠난 후’, ‘언젠가는’ 등등의 히트곡이 많고, 유학 이후로는 지금의 아이유처럼 뮤지션으로서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비밀의 화원’ 같은 히트곡을 만들어냈지.
자, 내가 왜 소녀연대의 편집무대 영상을 보여주고, 이상은의 같은 무대 2개를 보여주었을까? 그 이유를 알 것 같은 사람 없어?”
“안무와 퍼포먼스를 구분할 수 있게 보여주신 것 같아요. 말로만 안무와 퍼포먼스를 이해하는 게 아리송했는데, 영상으로 보니깐 바로 알 것 같아요.”
“그것도 맞지만, 예전 가요계의 아이돌과 지금 KPOP으로 불리는 아이돌의 비교를 위해서이기도 해.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안무를 짜주지 않았어. 지금으로 치면 포인트 안무까지만 만들어주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가수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를 가수들이 할 수 있도록 안무 자체에 비어있는 타임이 들어가 있었어.
그게 무대에서 훨씬 자연스럽기도 했고, 모든 안무를 다 지정해 주고, 모든 무대에서 똑같이만 따라 추는 건 가수가 아니라 댄서로 취급하는 관계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어. 립싱크도 마찬가지지.”
“아, 그래서 2000년도에 립싱크 표시하고 하는 그런 시기가 있었던 거에요?”
“그래 맞아. 2000년도 당시만 해도 라이브 없이 립싱크하는 게 무슨 가수냐고 비난을 많이 했지.
만들어준 안무로 춤을 추고 립싱크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가수가 아니라고 하는 관계자들이 많았으니깐.
하지만, 가요계의 주도권이 아이돌로 넘어오면서 이젠 립싱크와 퍼포먼스까지 포함돼버린 안무가 아이돌의 기본 사항이 되어 버렸어.
그러다 보니 안무와 퍼포먼스가 분리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고.
그래서 너희 하늘소녀는 힘들더라도 매 무대마다 특색이 있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게 안무를 짤 거야.”
“아,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시간이 따로 있는 거군요.”
“맞아. 캐치가 빠르네.
멤버들이 원을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을 때마다 수화를 할거야. 모든 멤버들의 수화가 모여서 문장이 되는 퍼포먼스를 하는 거야.
이걸 바로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레 화제가 될 거고, 설령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언플을 할거야. 수화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이돌이 있다고 보도자료 돌리고 하면, 나름의 화제는 될수 있겠지.
자 다들 줄 서봐. 하늘 향해 두 손 올리고. 한번 해보자.
루시아는 수화로 ‘우리’를 나타내고, 미영이는 ‘무대를’ 제이는 ‘지켜봐’를 소옥이는...”
둥글게 서서 밖을 보고 선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수화 퍼포먼스는 ‘우리의 무대를 지켜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세요.’라는 단순한 메시지였다.
한국에 있는 40만 명의 농아들이 이 수화를 알아봐 준다면 확실히 언론플레이할 수 있는 소스가 될 것 같았다.
“지금의 수업은 안무 중간에 정말 짧은 틈을 활용해서 수화 퍼포먼스를 하는 거야.
나중에 너희들이 유명해지고, 진짜 영향력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면, 크고 중요한 무대에 서게 될 거야. 그런 무대마다 이런 독창적인 퍼포먼스를 너희가 생각해서 선보여야 할 거야.
그때가 오게 되면 너희들이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건 신선함이야.
늘 같은 무대를 봐온 팬들에게 더 멋지게 보이기보다는 독특한 안무, 특별한 퍼포먼스를 새롭게 보여줘야 하는 거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새로운 먹을 것, 새로운 덕질 거릴 줘야 팬들이 좋아한다는 걸 명심해. 알겠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사실 이렇게 퍼포먼스 자체를 지정해서 가르쳐 주는 것도 웃긴 거야.
아티스트의 즉흥적인 그런 필이 들어가야 하는데, 아예 그런 창의성까지도 지정해 주는 거니깐.
뭐, 지금 가요계의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지. 너희가 슈퍼스타가 되면 바꾸도록 한번 해봐.
신인일 땐 어쩔 수 없이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이 수화 퍼포먼스를 너희가 자율적으로 변형해봐. 그게 진짜 퍼포먼스니깐.”
“네!”
“그리고, 나중에 너희들이 아이돌을 넘어 제대로 된 뮤지션이 되고 싶다면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늘 노력하는 아이돌이 되어야 해.”
<컷! 좋았어>
“어케이. 여기서 수화로 노래를 하는 <마법의 성> 공연 영상으로 바로 연결이 되는 거야. 윤사장 수고했어.”
“감독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감독님 극본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 드라마가 아닌 느낌이에요. 아무리 유튜브 유료콘텐츠라지만, 수화를 하면서 노래 부른다는 생각은 진짜 해보지도 못했거든요?”
“재미와 감동을 다 주려고 나름대로 고민한 결과물이지. 그리고, 뭐랄까 약간은 서양 애들의 시선도 신경 쓴 거야.”
“서양 애들의 시선요?”
“그래, 북미 쪽에서 한국이나 일본의 아이돌을 보는 시선이 어떨 것 같아?
극본에도 조금 언급했지만, 진짜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인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윤 사장이 뮤직드라마를 나에게 극본, 연출을 다 맡기는 바람에 나름대로 조사도 하고, 이쪽 시장에 대해서 분석을 했다고.
그러다 보니 서양 애들이 우리나라 아이돌을 보는 시선이 참 기분 나쁘더라니깐.
회사의 말을 잘 듣는 예쁜 인형으로 보고 있더라고.
뭐, 회사의 노예보다는 좋은 이미지이지만. 그런 부분도 생각해서 짧은 시간이지만, 개별적으로 수화를 하고 멤버들 마음대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감독님 나름대로 인형이 아니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거군요.”
“그렇지. 바로 이해를 하네.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는 걸 서양 애들에게 알려줘야지. 윤 사장도 이왕 걸그룹을 데뷔시킨다면 미국을 목표로 하라고.”
김 켈리 감독이 뜬금없이 미국을 목표로 하라는 말에 ‘무슨 말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 웃기지 않아? 뮤지컬 ‘고스트’를 연출한 김켈리는 같은 사람인데, 토니상 후보에 오른 김켈리와 그냥 한국 뮤지컬 감독 김켈리는 참 많은 차이가 있더라고. 나는 그냥 같은 사람인데, 나를 보는 사람들의 대우가 달라.
지금 장안의 화제인 실탄소년단도 마찬가지야.
한국이나 일본, 중국에서 인기 있는 건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야. 미국에서 인정을 받아야 해. 미국에서 인정을 받으면 바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거로 통하고 있다고.
웃기지만, 문화의 중심이 미국이라고 한국 언론에서부터 떠들고 있어.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언론이 짜증 나긴 하지만, 목표는 높게 잡아야지.”
김켈리 감독의 말을 들으니 나름대로 높게 잡아둔 목표가 부끄러웠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동남아를 휩쓸며 대박을 터트리고 돈을 갈퀴로 끓어 버리겠다고 목표를 잡았는데, 김 감독은 그 이상을 꿈꾸고 있었다.
“설령 미국 진출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만큼 노력했다면 일본, 중국이라도 진출할 수 있겠지.
그리고, 진짜 일본, 중국을 휩쓸고 나서도 미국이라는 목표가 있으면 위를 보고 노력할 수 있잖아. 꿈을 크게 가져야 그 반이라도 갈 거 아냐.
이미 윤사장은 소년이 아니지만, 꿈과 목표를 크게 가지라고.”
목표를 높게 가지라고 외치는 김켈리 감독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단순히 대학교에서 교수님으로 뮤지컬 과목을 나에게 가르쳐서 교수님이라고 부르거나, 일을 할 땐 단순히 감독님으로 불렀는데, 일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미래를 준비하고 하는 부분에선 존경할만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전생에서 김켈리 감독이 한국 뮤지컬계를 이끌며 질적이나 양적으로 탈아시아급으로 한국의 뮤지컬계를 끌어올렸던 것이 생각났다. 내가 인생의 스승을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 그리고 촬영도 막바지인데, 촬영 기간을 이틀만 좀 연장을 했으면 하는데.”
“네? 뭔가 다른 걸 찍으실 겁니까?”
“그게, 아예 뮤지컬 고스트도 공연 실황을 찍어서 유튜브에 유료콘텐츠로 등록을 하려고. ‘노틀담의 곱추’ 오리지날 팀의 공연은 유료콘텐츠로 있더라고. 그래서 우리 뮤지컬도 올려보려는 거지.
담당하는 황과장도 긍정적인 것 같으니까 한번 찔러보는 거지.
아 물론, 우리 뮤지컬에 윤사장도 지분이 있으니깐 촬영기간이 길어지는 부분은 윤사장이 좀 부담을 하고.
뮤지컬 업계 어려운 거 다 알잖아.
있는 사람이 좀 써줘. 부탁 좀 할 게 알았지?”
부탁한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 가는 김 감독을 보니 인생의 스승이라고 생각했던 건 보류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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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중국 위안화 벌이가 좋은가 봐. 소혁이랑 위안이 둘 다 얼굴에 기름이 줄줄 흐르네. 부자라는 거 너무 티 내는 거 아냐?”
“하하하. 형들 오랜만이에요. 급하게 온다고 제대로 메이크업도 못하고 얼굴이 난리에요.”
근 1년 만에 중국 멤버인 소혁이와 위안이가 A&R(Artist and Repertoire )실로 왔는데 살이 찐 건 아닌데, 뭔가 확실히 부해 보였다.
“소혁이랑 위안이가 시간이 빠듯하다 보니깐 바로 곡 선정하자.
이때까지는 주로 소원이나 소원이 회사인 레드샵의 아티스트들이 만든 곡으로 앨범을 준비했지만, 이번 앨범은 리더인 제일이를 비롯해서 멤버들이 만든 자작곡을 수록하는 만큼 우리뿐만 아니라 A&R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타이틀과 수록곡을 오늘 결정하자.”
나와 토모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동안 제일이 형과 멤버들이 만든 곡을 MSM에 고용된 작곡가들과 A&R팀에서 편곡하고 곡의 퀼리티를 올렸는데, 7곡의 노래를 들어보니 모두 부족한 느낌 없이 다 좋았다.
문제는 내가 전생에선 들어보지 못한 곡이라 이게 뜰지 안 뜰지 판단을 할 수가 없다는 거였다.
“어때요? 일단 우리 A&R팀이나 작곡가들은 모두 제일씨가 만든 ‘Hi High!’란 노래가 리드미컬한 느낌이라서 좋다고 하는데, 다들 어때요?”
멤버들은 다들 자신이 만든 노래를 타이틀로 하고 싶어 해서 그런지 눈치를 본다고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저는 좋아요. 제목도 인사를 하는 느낌이라 마음에 드네요.”
중국 멤버인 소혁이가 좋다고 하자, 바로 위안이도 좋다고 했고 이용민 실장도 바로 편을 들었다.
금한령이 슬슬 풀려가고 있다 보니 이용민 실장은 중국 멤버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리더의 곡이니 어느 정도 더 마음이 끌리는 그런 것도 있었다.
“네. 그럼 새 앨범의 타이틀곡은 ‘Hi High!’로 정하죠. 우리 A&R팀이 스튜디오 일정을 잡으면 바로 실장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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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나인피치다!”
A&R팀 사무실을 나오는데, 복도 끝에 있는 나인피치를 보곤 규일이가 크게 외쳤다.
애들도 우릴 발견했는지 쪼르륵 뛰어와서는 인사를 했다.
“선배님, 나인피치입니다! 소원 선배님이 주신 1위 트로피 덕분인지 저희들 1위 했어요. 비록 케이블방송이지만, 소원 선배님의 기를 받은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 그래그래. 기 좀 더 받아가라. 악수나 한번 씩 하자.”
몇 개월 만에 은채를 봐서 그런지 애들과 일부러 악수하며 겨우 은채와 손이라도 잡아 볼 수 있었다.
나인피치 애들이 A&R팀 사무실로 들어가자 우리도 연습실로 향했다.
“소원이 악수할 때 눈빛이 야릇하던데, 나인피치에 마음에 드는 애 있는 거 아냐?”
제일이 형의 말에 마음속으로 덜컥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