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사도(邪道).
지혜의 말에 핸드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가서 뮤직비디오를 바로 재생했다.
4~5초의 사진 광고가 나가는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리를 지나갔다.
공항에 도착하고 본사에 갔을 때 전상일 본부장에게 나인피치의 섹시컨셉에 대해서 물어보고 먼저 뮤직비디오를 보고 싶었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서 물어보지 못한 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
아니, 어쩌면 어느 정도의 노출을 하고, 어느 정도의 섹시 컨셉으로 활동을 하는지 듣게 되면 내가 짜증이나 화를 낼 것 같아서 물어보지 못했다.
내 많은 상념과 같이 광고가 끝나고 EDM의 전자음이 울리며 뮤직비디오가 시작되었다.
“누구야? 촬영 중인데, 핸드폰으로 노래 트는 사람이?”
김켈리 감독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다들 촬영 중인 촬영장 근처에서 어떤 미친놈이 노래를 트는지 본다고 시선이 나에게 몰렸다.
“아..아 죄송합니다. 최대 음량인지 몰랐습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급히 핸드폰을 끄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사무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윤사장 일본 다녀오더니 왜 저래? 윤지혜 홍보팀장 오빠 왜 저러는 거야? 일본 가서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거야? 왜 저리 안절부절못하는 거야?”
“그러게나 말입니다. 갑자기 우리랑 상관없는 나인피치 컴백이랑 뮤직비디오에 엄청 신경을 쓰네요.”
“아! 감독님 그 나인피치 요즘 화제에요. MSM 최초의 섹시컨셉 걸그룹이라고요.”
“흠, 윤사장도 남자이니 섹시컨셉에 자연스레 관심이 가는 거겠지.
한국 아이돌은 이게 문제야 가장 혈기 왕성할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을 연애 금지 조항에 걸려서 연애도 못 하고, 그냥 날려 버리잖아.
섹시컨셉에 눈이 가는 것도 당연하겠네. 욕구가 쌓였겠어. 그게 드러나니깐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내려간 건가?”
“아니면 우리들이 데뷔할 때 가장 큰 라이벌이 될 것 같아서 신경을 쓰시고 있는 건지도 모르죠. 뭐니 뭐니 해도 처음으로 데뷔시키는 걸그룹이니깐요.”
리더인 루시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렇네요. 소원이가 학창시절부터 이런 챙기는 부분은 참 다정다감하긴 했어요.
그런데, 예전 중학교 동창인 오 뷰티걸의 애린이 다리에 집착했던 것도 있어서 진짜 섹시컨셉에 눈이 가는 것인지도 몰라요. 애린이 다리에는 돼끼리라는 별명까지 붙여서 놀렸다니깐요.”
“미영이의 동창생 피셜이면 진짜 잘빠진 다리에 관심이 가서 인지도 모르겠네. 그럼 우리도 돌핀팬츠나 짧은 치마 입어야 하는 건가?”
아디다스 반바지를 입은 리브가 말을 하며 다리가 예뻐 보이게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보자 이것도 묘한 경쟁이 붙었는지 다들 자기 다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포즈를 취해봤다.
“웃기고들 있네. 다들 윤사장한테 잘 보여서 뭐 하려고? 너네도 연애 금지 계약으로 다 묶여 있거든.”
다리를 이쁘게 보이려고 포즈를 잡는 애들에게 김켈리 감독이 팩트로 잔소리를 했다.
“그 연애 금지 계약 끝내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 우리 중에서 소원이랑 사귀는 사람이 나오면 되는 거니깐 누구 한 명 희생하면 될 거 같네요. 그러면 자연스레 연애 금지조항 삭제되겠죠. 호호호”
“미영이는 김칫국도 제일 빨리 마시네. 자 다들 집중해서 다시 가자!”
**
후다닥 1층 사무실로 와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뮤직비디오를 플레이했다.
“뭐지?”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지금 보는 게 나인피치의 신곡 뮤직비디오인지 다시 한번 영상의 제목을 확인했다.
티저와는 다르게 그냥 일반적인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였다.
노래 가사가 아무도 모르게 다가와서 자신을 쟁취해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뮤비의 배경이 클럽이긴 했지만, 티저처럼 섹시 컨셉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복이었다. 기껏해야 허벅지 위로 올라오는 핫팬츠인데, 이건 지금 MSM 걸그룹도 입는 거였다.
뭔가 허무한 감정이 들었고, 은채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섹시컨셉을 했다고 서운해했던 게 그냥 사라졌다.
그냥 일반적인 컨셉의 뮤직비디오를 보니 괜히 혼자서 오바 한 것 같았다.
유튜브의 댓글을 새로고침하니 나처럼 의아함을 넘어 당황스러워하는 댓글들이 달려있었다.
─ 우리 낚인거임? 애들 미드가 훌륭하다고 해서 일부러 왔더니. 꽁꽁 싸매고 있잖아.
─ 티저때 입었던 의상은 아예 없는데. 뭐냐?
─ 잠도 안 자고 한 발 빼려고 왔는데 뭐가 없네.
└원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있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네. 사기도 아니고.
─ 이 새끼들 너무하네. 상도가 있지. 티저에선 타이즈에 크롭티로 다 보여줄 듯이 허위광고해놓고는 본편에선 예의 없게 옷을 입히네.
─ 상도덕 없는 놈들임. 홍보는 타이즈로 하고, 활동은 청순이냐? 완전히 낚였네. 파닥파닥.
─ 걸그룹에 성적 대상화를 원하는 당신들이 문제인 겁니다.
└뭐래? 보라고 한걸 보는 게 왜 성적 대상화인 거냐?
└성적 대상화예요. 버럭!
댓글 창이 새로 고침 할때마다 몇십 개씩 늘었고, 조회 수도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피치나인 신곡 봐도 별거 없지?”
어느새 내려왔는지 지혜가 뒤에 서 있었다.
“역시 댓글 창은 난리네. 이걸로 초반 화제성은 잘 끌었네. 네이버 실시간 검색에도 올라오기 시작했고 이러면 성공이네.”
지혜의 말 중에서 ‘역시’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지혜 넌 이럴 줄 알고 있었냐? 티저는 섹시컨셉으로 하고, 본 뮤직비디오에서는 청순으로 가는 거.”
내 말에 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차 싶었다.
“설마, 네가 MSM에 이렇게 작업하자고 한 건 아니지?”
“그게 무슨 소리야?
뮤직비디오는 MSM이나 우리나 며칠 전이면 다 볼 수 있잖아. 그러니 당연히 아는 거지.
난 오빠가 본사에 들렸다가 왔다고 하기에 당연히 티저로 노이즈 마케팅 할거라는 거 아는 줄 알았지.
그리고, 내가 무슨 힘이 있어서 MSM에 이런 사도(邪道)짓을 하자고 하겠어?”
그러고 보니, 지혜는 내 동생이라는 특별한 위치로 마케팅이나 홍보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있는 건 레드샵과 원원엔터 한정이었다.
일본에 한 달 가까이 떨어져 있었고, 은채와는 따로 연락하지 못한 지 오래다 보니 괜히 이상하게 사고방식이 꼬여 버린 것 같았다.
“뭐, 이런 노이즈 마케팅도 생각 안 해본 건 아닌데, 이런 사도의 수법은 단기적으로 화제성 뽑기엔 좋아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제 살 깎아 먹기야.
왜 내가 사도(邪道)라고 부르겠어? 이런 마케팅은 오히려 나인피치에겐 독이 될 거야.
섹시로 기대감 가지게 하고는 안 보여줘 봐 욕하고 침 뱉을걸.
여기 봐. 유리웹에서는 댓글에서 침 뱉는 짤이 올라오고 있네.”
“그러면 이 어그로로 생긴 화제성을 어떻게 긍적적으로 돌리느냐가 문제겠네.”
“뭐, MSM에선 그 해결책까지 있으니깐 이런 노이즈 마케팅을 쓴 거겠지.
그래도 노래는 좋다고 하네. 욕은 엄청나게 먹겠지만 그래도 나인피치의 이름은 확실히 알릴 수 있겠네.”
**
다음날 스케줄보다 2시간이나 일찍 본사로 출근을 했고, 나인 피치를 담당하는 이현수 실장에게 이번 일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 때문에 자리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전상일 본부장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본부장님 이게 티저 보고 팬들 항의 때문에 컨셉을 변경한 거예요? 아니면 끌린 어그로를 다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예요?”
“어그로 풀 수 있는 방법이 당연히 있지. 그렇지 않아도 아침부터 기자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하고 있고, 보도자료도 돌렸다더라.”
“그게 어떤 방법인가요?”
“그런데, 아침부터 날 찾아와서는 왜 이렇게 나인피치에 궁금증이 많냐? 나 바쁜 사람이야.”
“그..그거야. 우리 레드샵에서 데뷔하는 하늘소녀 애들 데뷔에, 참고하려고 하는 거죠.”
“그것도 그렇네. 신경 쓸 만하겠네. 원래부터 이렇게 초반 화제성을 끌기로 한 거야. 1집 때 금한령 때문에 제대로 스포라이트도 못 받고 데뷔해서 결과가 안 좋았잖아.
2집에선 최대한 초반 화제성을 끌고 이름을 알리겠다는 전략이지.
그리고, 그렇게 끌린 어그로를 푸는 방법은 당연히 미성년자 전략이지. 미성년자에게 섹시컨셉을 하면 안 된다는 건 만국 공통이니깐.”
“단순히 미성년자 전략입니까? 그거로 어그로가 다 사라질까요?”
“그래, 그거면 충분해. 나머지는 PC충(Political Correctness)이라 불리는 애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게네들은 올바른 일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올바름만 추구하면서 대신 싸워 주거든. 회사 차원에서는 섹시컨셉을 하려 했으나, 이런 컨셉이 미성년자 멤버들에게 문제가 될 것 같아 철회했다고 알림 문을 하나 띄우면 충분해.
거기에 반발해서 낚였으니 뭐니 따지는 사람들은 PC 충들이 알아서 조져 줄 거야.”
이런 어그로는 금방 풀 수 있다고 자신만만해서 하는 본부장을 보니 믿는 구석이 있는 거 같았다.
“MSM에 홍보 쪽 전문가가 새로 영입된 건가요?”
“원래부터 온라인 홍보 전문가들은 있었어. 다만 이런 방법을 최대한 쓰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지. 회의 잡혀있는데, 다른 일은 더 없지?”
정해진 회의실로 사라지는 정상일 본부장을 보니 생각이 또 많아졌다.
예전이라면 쓰지 않았을 방법을 써야만 새 걸그룹을 띄울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릴 정도로 MSM의 자신감이 떨어졌다는 게 처음 든 생각이었고, 음악 외에 다른 무리한 방법을 써가며 띄워야 할 만큼 새로운 걸그룹이 필요했는지도 의아했다.
한편으론 화제성과 기존 MSM 팬들의 지원으로 스트리밍 10위 언저리까지 올라가 있는 결과를 보니, 신인 걸 그룹을 띄워야 할 때는 이렇게 해야 하는 게 정답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
그리고 ‘데뷔조’ 뮤직 드라마의 촬영이 막바지로 갈수록, 하늘소녀 애들의 데뷔 화제성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도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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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햐 이거 기존의 극본과는 좀 달라졌지만, 일단 공연영상들 퀼리티가 좋은데요. 색감도 강렬한 원색에 카메라 워크가 멋집니다.
진짜 김켈리 감독님이 처음으로 연출하시는 거라곤 믿지 못하겠는데요.
이미 연출작이 서너 편 있는 거 아닙니까? 기대 이상입니다.”
편집까지 끝낸 공연영상 2편을 본 유튜브 코리아의 콘텐츠 담당자인 황윤호과장은 침을 튀겨가며 극찬을 했다.
“사실 유료로 콘텐츠 확정되고 나서 제작비를 주고는 있지만, 아직 전문제작사의 역량이 부족해서 제작비 반도 안 될 것 같은 영상들을 들고 와서 진짜 힘듭니다.
오랜만에 퀼리티 좋은 영상을 보게 돼서 좋네요. 넷플릭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용두사미라고 늘 욕을 듣고 있는데, ‘데뷔조’는 이 퀼리티를 끝까지 유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극본이 좀 달라진 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완성도와 재미를 위해서는 어쩔수 없지요.
엔오원의 민호씨 시타씨 대현씨가 나오는 분량도 많고, YAM의 제일씨나 소원씨가 선생님이나 교생으로 나오는 분량도 많아서 좋네요.
우리가 원했던 그 콘텐츠입니다. 김감독님과 윤사장님은 확실히 감각이 있으시네요.”
“원래라면 오늘 온게 바뀐 극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이유도 있지만, 퀼리티를 유지하다 보니 이미 제작비는 오버가 되었습니다.
아, 물론 추가 제작비를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버 된 제작비는 저희 레드샵에서 감당을 할 예정입니다. 다만.”
“다만?”
“데뷔조의 콘텐츠가 공개되는 날 쇼케이스를 유튜브 공식으로 진행을 하고 싶고, 유튜브에서 공식적으로 라이브중계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공식 쇼케이스로 화제가 되면 당연히 유료 콘텐츠에 가입하는 회원도 증가할 거고, 서로 좋은 것 같은데요.”
“유튜브 코리아가 아닌, 유튜브 본사의 공식적인 홍보 행사를 원한다는 거군요. 흠.
락밴드 ‘콜드라운드’와 테러방지를 위한 공익 콘서트의 경우에는 유튜브에서 공식적으로 라이브 중계를 하고, 메인페이지에 홍보 배너를 넣은 적은 있습니다.
다만, 그 케이스는 유명세와 공익적인 목적이 있어서 가능한 거였죠. 신인 그룹의 데뷔 쇼케이스는 좀 힘듭니다. 본사 설득이 어렵습니다.”
“황과장님 처음이 어려운 거지 않겠습니까? 생각을 해보십시오.
지금 한국 기획사들은 유튜브에 홍보하는 건 좋아하지만, 유료 콘텐츠를 만드는 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유료 콘텐츠와 묶어서 데뷔 쇼케이스를 유튜브와 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인 데뷔시키는 기획사들이 줄을 설 겁니다.
그 기획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기존 한류스타들과의 협업도 당연히 따라오는 겁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유튜브 코리아에서 만들어지는 오리지날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을 거구요.
그럼 그 공(功)이 다 누구 공이 되겠습니까? 처음 어렵게 시작을 하고 핸들링 한 황윤호 과장님의 공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