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다른 이름의 데뷔 조?
스타팬텀에서 개그맨 3인방과 함께 영입해온 배우 진유화가 하늘소녀 애들 사이에서 땀을 흘리며 안무를 하고 있었다.
“지혜야, 왜 진유화씨가 하늘소녀 사이에 끼어있는 거냐? 설마 내가 없는 사이에 형이나 다른 사람들이 하늘소녀에 진유화를 합류시킨 거야?”
내가 일본에 간 사이에 내 허락 없이 새로운 멤버를 마음대로 팀에 집어넣었다는 생각에 얼굴이 굳어졌다.
“아, 오빠 모르고 있었구나.
김켈리 감독님의 극본을 보면 바로 이해가 갈 건데, 유화 언니가 하늘소녀 멤버가 된 건 아니니깐 안심해. 일단 극본부터 먼저 읽어봐.”
지혜가 뮤지컬 드라마 극본을 나에게 건네주었는데, 표지에 적힌 뮤지컬의 제목이 ‘데뷔조’ 였다.
그러고 보니 일본 활동을 한다고 김켈리 감독에게 전권을 위임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상황에서 김 감독님이 알아서 일을 해주고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촬영 중인 연습실을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극본을 처음부터 읽어봤고, 극중 사용될 노래도 빠짐없이 다 들어봤다.
그리고, 왜 진유화가 하늘소녀 애들 사이에 끼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극본을 보고 진유화씨가 배역을 맡고 싶다고 한 거야?”
“아니, 김켈리 감독님이 픽업을 했어.
사실 유화언니 때문에 기원 오빠가 고민을 많이 했어.
오디션도 오빠가 같이 가서 영업도 해보고 김영민 샘한테 연기 수업도 다시 받게하고 했는데, 김영민 샘 말로는 배우로서는 그냥 그렇데...
그리고, 레드샵이든 원원엔터든 배우를 키워 본 적도 없고, 서포트 해줄 지원도 사실 없잖아.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서포트 해줄 수 있는 유튜버를 한번 해보라고 기원 오빠가 권했어. 그게 현실적인 결론이었어.”
“유튜버?”
“응. 뷰티 유튜버. 일단 단역이었지만 배우이기도 하고, 어디 빠지는 얼굴도 아니잖아. 배우 메이크업 같은 특정 분야 전문 유튜버도 잘 어울릴 것 같고.”
“진유화가 뷰티 유튜버? 김미미가 아니라 진유화에게 뷰티 유튜버를 권했다는 말이야?”
“응. 유화언니도 동의를 했었어.
근데, 소원 오빠는 개그우먼 김미미 언니가 뷰티 유튜버에 맞다고 생각하는 거야? 음. 그 언니도 말주변이 좋아서 유튜버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다이어트 유튜버라면 몰라도 뷰티 쪽은 아닌 거 같은데.
오빠 취향 참 특이하네. 덩치 있고, 살 집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 거야?”
내 취향이 특이하다고 이상하게 보는 지혜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내가 결정한 결과 때문에 달라진 운명의 길을 걷게 된 두 사람의 미래가 걱정되어 한참이나 말을 하지 못했다.
“오빠. 취향이 특이해도 괜찮아. 내 동창 친구 중에는 이상형이 강부자 선생님같이 푸근한 엄마 같은 여자라고 하는 친구도 있어. 그 애에 비하면 뭐 김미미 언니라면 괜찮은 거지. 취향 존중해줄게.”
“그럼, 김미미씨는 지금 활동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개그맨 황금호 오빠, 김유일 오빠랑 같이 먹방하고 있지.
원래 그 언니 자체가 먹는 걸 좋아하는 것도 있고, 인터넷 방송 ‘잘먹는 삼총사’란 채널도 구독자가 10만 명이 넘었어.
구독자가 많아지니깐 케이블에서 따로 먹방 프로그램 고정으로 만들자고해서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
“뭐, 두 사람 다 지금의 일에 만족한다면 된 거긴한데...”
희극인을 그만두고 뷰티 유튜버가 되는 김미미의 인생이 희극인으로 계속 살 수 있게 바뀌었고, 연예계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던 진유화는 배우 겸 뷰티 유튜버로 미래가 바뀌게 되었지만, 둘 다 만족한다면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김켈리 감독님 눈썰미도 보통이 아닌 거 같아. 유화 언니가 뷰티 유튜버를 하면서 메이크업 연습 겸해서 촬영장에 온 첫날에 바로 극본을 바꾸고 했거든. 어떻게 된 일이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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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배경이 예술 고등학교니깐 색조 화장 없이 투명 메이크업으로 하는데, 애들 전체적으로 스크럽도 되어있고 필링도 주기적으로 받고 있으니깐 화장이 잘 먹을 거예요. 일단 한번 해보시면 제가 다시 한번 봐 드릴게요.”
원래 김정화는 연예인 전문 출장 메이크업 아티스트였지만, 김일규 부장의 부탁으로 5개월 동안 레드샵엔터에 나와서 데뷔 준비를 하는 하늘소녀란 팀의 메이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뷰티 유튜버를 준비하고 있다는 진유화란 배우까지 보조로 떠맡게 되어서 일이 더 늘어난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랬다.
“네.”
그래도 진유화는 메이크업을 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서툰 손동작이 보였지만, 9명을 모두 메이크업해야 하는 김정화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긴 했다.
뮤직드라마이다 보니 첫 공연영상이 가장 중요했고 얼굴 클로즈업 버전도 따로 찍다 보니 전문가인 김정화는 물론이고 보조로 붙은 진유화에 멤버들까지도 서로 얼굴에 달라붙어서 비비크림을 신경 써서 펴 바르는 작업을 했다.
한 명의 멤버당 2명씩 서로 달라붙어서 1mm씩 펴 바르니 잡티나 기미 같은 것이 감쪽같이 사라졌고, 아직 어린 피부들이라 뽀얀 광채가 나는 피부가 될 수 있었다.
“자 의상 메이크업이 대충 되었으니 리허설 한번 해봅시다. 스태프분들 빠져주세요.”
촬영 감독 겸 조감독인 김기호가 외치자, 스태프들이 주변을 정리하며 옆으로 빠졌다.
“응? 기호야 저 애 하늘소녀 아니었어?”
“네? 누구요?”
“저 초록색 PK티셔츠 입은 애.”
김기호는 김 켈리 감독의 말을 듣고 스태프들 쪽을 보니, 감독의 말처럼 확실히 눈에 띄는 애가 보이긴 했다.
“그렇네요. 연령대도 비슷해 보이고, 스포티 하게 입고 있어서 그런지 같이 세워 두면 멤버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겠네요.”
“그렇지? 저 정도 얼굴이면 써먹을 곳이 있을 것 같은데. 저 애 한번 데리고 와봐. 단역으로 한번 쓰자.”
진유화를 데리고 오라는 말에 김기호는 뛰어가 몇 마디를 나누어 보고는 진유화를 데리고 왔다.
“감독님, 확실히 안목이 있으신데요. 배우랍니다. 메이킹 현장 찍는 원원엔터 소속이라고 하네요.”
“그래? 그럼 연기도 되는 거야? 경력이랑 나이는?”
“네 22살 진유화입니다. 스타팬텀에 있을 때 ‘국제만장’에 단역으로 출연을 했었고. ‘특별국민’에서 진하역으로 출연했습니다.”
“흠. 목소리도 좋네. 소원이 형 회사 소속이면 그냥 여기 출연시켜도 상관없겠지?”
김 감독의 갑작스러운 출연 제의에 진유화는 혼자서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촬영장에 구경하려고 와 있던 윤지혜를 쳐다봤다.
이제 고3이고 회사에 들어온 지는 한 달도 안 되었지만, 원원엔터 사장 동생이니 어떻게 보면 책임자이긴 했다.
“네 당연히 됩니다. 무슨 역이든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역인가요?”
지혜가 극본을 뒤적거리며 누구의 역할인지 궁금해했다.
“아니, 극본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아. 유화씨를 보니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좀 바꿔야겠어.”
원래 찍어야 했던 공연 영상은 뒷전으로 밀리고 김 감독이 극본을 수정하는 걸 한참이나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자, 변경된 부분 알려줄게. 다들 잘들어.
예술종합학교의 아이돌 반이 배경인 건 변함이 없어.
반 전체가 같이했던 정기 공연영상을 보고 기획사에 모두다 스카웃 되어서 데뷔 조로 준비를 하는 것도 같아.
달라진 건, 9명이 반이었는데 진유화까지 해서 10명이 한 반이고, 10명이 데뷔 조인걸로 변경이 되었어.
원래라면, 9명 반에서 9명 모두가 데뷔를 하늘소녀로 하는 것으로 했지만, 변경해서 10명 반에서 9명만 데뷔를 하고, 진유화는 데뷔 조에서 탈락이 되는 거야. 변경사항 다들 알겠지?”
“저, 극본이 유튜브 코리아에 다 넘어갔는데, 변경해도 될까요?”
“그쪽에서 안 된다고 해도 내가 하겠다는데 무슨 상관있어? 그리고 이게 더 재미있을 거야.
9명 반 모두가 으쌰으쌰 해서 데뷔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좀 더 극의 절정을 위해서는 10명 중 1명이 탈락을 하며 데뷔의 영광과 탈락의 쓰라림을 보여줘야 더 자극적인 재미가 있지. 안 그래?”
김감독의 말을 들은 스태프들은 물론이고, 하늘소녀 애들까지도 합격과 탈락이 들어가게 되면 극적인 재미가 생긴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 그런데, 제가 춤이나 노래를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그래서 더 좋은 거야. 하늘 소녀 애들은 이미 몇 개월 동안 연습을 했기에 어느 정도 수준은 되어있어.
그런데, 너 같은 경우에는 춤, 노래에 대한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있으니 딱 좋은 거야.”
“아, 못해야 탈락을 했을 때 다들 납득한다는 말이군요.”
“그래, 대신에 그런 게 들키지 않게 더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거지. 드라마의 장치라고나 할까.”
“저 감독님! 제가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옆에서 구경만 하던 지혜가 당돌하게 끼어들었다.
“사실, 네이버에서 하늘소녀라고 검색하면 프로필이 아직 안 뜨거든요. KBC1의 돈가스 창업 방송에 잠시 나오긴 했지만, 멤버 수가 몇 명이라는 걸 아예 사람들이 모른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런데, 아예 홍보 전략으로 드라마를 통해 최종 데뷔 멤버가 결정된다는 그런 작업을 좀 쳐도 될까요?”
“프로듀스처럼 방송을 보고 사람들의 투표를 받아서 데뷔를 시킨다는 말이야?”
“프로듀스처럼 하게 되면 감당이 안 되니깐 힘들고, 유료 유튜버 콘텐츠는 한 번에 모든 편수가 공개되는 시스템이라 그런 방식 자체가 불가능 할거에요.
그냥 드라마 촬영 중에 최종 멤버가 결정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가자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누가 떨어지고 누가 붙을지 궁금해서 끝까지 정주행을 할 거 같거든요.”
“내부적으로는 진유화가 떨어지는 게 확정되어 있지만, 그걸 속이자는 거네.”
“네, 페이크 죠. 시청자를 기만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지만, 뮤직 드라마의 재미와 멤버들에 대한 애착, 누가 탈락하냐 하는 궁금증 유발까지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방법입니다.”
이건 홍보 전략을 넘어 사기꾼 기질이라고 까지 할 수도 있는 방법이었지만, 지혜의 말을 듣고 보면 묘하게 맞는 말 같고 좋게 느껴졌다.
“흠. 진유화씨 본인 생각은 어때요?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데뷔를 위해 몸부림치는 그런 연기가 되겠어요? 그리고, 그런 연기가 들통나지 않게 진짜 죽을 둥 살 둥 연습하고 해야 할 건데. 할 수 있겠어요?
이 드라마가 인기 없이 그냥 묻힌다면 별 상관없겠지만, 만에 하나 어느 정도 인기가 생기게 되면, 기본이 없어서 탈락한 사람이라는 불명예가 생길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해서 대답하세요.”
모든 이야기를 다 같이 들은 주위의 스태프와 하늘소녀 애들의 시선이 진유화의 입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저..저의 연기 경험이라고 해도 단역밖에 없다 보니 사실 제가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래서 데뷔 조에서 데뷔를 위해 연습하는 걸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짜 하늘소녀로 데뷔하겠다는 생각으로 연기가 아닌 노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방법이 가장 좋은 연기일 것 같아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래, 사실 춤, 노래 다 몇 개월간 연습한 애들보단 못할 거야. 그게 우리는 물론이고 시청자들에게도 보일 거고. 하지만, 진짜 데뷔하고 싶다고 노력하는 게 진짜라면 진짜처럼 보일 거야. 그런 마음가짐으로 한번 해보자.
이제부터 유화 너도 하늘소녀 데뷔 조야.”
하늘소녀 애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지켜봤기에 리더인 루시아가 먼저 다가와서 진유화를 이끌었다.
탈락이 확정된 멤버라기보다는 하늘소녀가 데뷔하는 영광을 위해 희생해 주는 비운의 조연이라는 걸 알기에 다들 진유화를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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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근데 넌 고3이 나쁜 건 어디서 다 배운 거냐? 페이크를 쓸 생각을 하고. 김 감독님도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페이크 드라마에 동의하다니. 사람이 물러.”
“이 세상이 나를 만들었지 뭐. 하하하. 만약에 말이 새어 나가서 들킨다고 해도, 말 그대로 드라마잖아.
프로듀스처럼 팬들 투표를 받는 리얼 예능도 아니고, 드라마이니 이 정도 꼼수는 충분히 용인될 거야. 오히려 이런 거로 화제가 더 되었으면 좋겠다.
엇! 오빠, 나인피치 정식 MV가 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