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88화 (188/237)

# 188

아름다운 해체.

왜 갑자기 MSM이 이때까지 하지 않았던 섹시컨셉으로 ‘나인피치’ 애들을 컴백시키는지 궁금했고, 은채와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일본에서의 스케줄이 먼저였다.

“헐, 이게 다 뭔가요?”

호텔을 나서는 나와 토모는 물론이고 다카미씨와 제임스까지도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마칭밴드(marching band)라구, 마칭밴드! 우리의 마지막 공연이라고 방송국에서 보내줬다니깐. 하하하.

우리가 마칭밴드의 배웅을 받는다고. 이런 호사를 누리게 되다니 인간 야기 인생의 봄날이 왔구나!”

우리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마칭밴드는 관악기와 드럼을 두드리며 행진을 시작했는데, 흔들리는 깃발을 자세히 보니 ‘비투게더의 나고야 공연 축하’ 라고 고급스럽게 자수가 되어있었다.

“인근의 3개 고등학교 연합 마칭밴드인데, 우릴 배웅해 준데. 타카미씨도 마칭밴드의 배웅을 받아 본 적은 없지요?”

“당연히 처음이지. 그런데, 츠기모토PD 이것도 방송국에서 하는 거야?”

“네. 편성 시간이 좋아서 그랬는지 1화 시청률이 2.4%였는데, 어제 2화는 3.6%였습니다. 이때까지 퇴사하는 PD들은 찍은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이랍니다. 이 추세라면 5% 이상 나올 것 같으니 방송국에서도 신경을 쓰는 겁니다.”

“하긴, 몇억 엔이 들어가는 분기 드라마도 10% 시청률을 못 넘기는 게 많은데, 최저 예산으로 이렇게 5%가 나오면 위에선 좋아할 수밖에 없겠군.

아, 그러고 보니 한국에선 이런 마칭밴드가 잘 없지? 일본에서는 뭔가 큰 이벤트에는 마칭밴드가 꼭 앞에 붙게 되어있어. 방송가 성공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일본만의 문화를 즐겨.”

“거기다 오늘 공연은 특별하게 B-nation의 본 무대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물론, 출연순서는 어쩔 수 없이 첫 번째입니다. 이것도 방송국에서 신경을 많이 써드린 겁니다.”

“에? 본 무대라면 미즈호 육상경기장이잖아? 27,000명이 들어가는 공연장이라고. 그 정도 규모면 우리 Afeel이 전성기 때도 아슬아슬한 관중 규모야.”

“뭐, 마지막 공연이니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요? 다들 B-nation을 보러 온 팬들이겠지만, 나름대로 화제이니 오프닝 무대에 서주는 걸 좋아해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런 팬들에게 둘러싸인 방송영상이 나가게 된다면 시청률은 알아서 올라갈 거구요.”

츠기모토PD는 아사히 TV 방송국에서 엄청 많이 신경을 썼다고 강조를 했고, 특별 효과까지 빵빵하게 준비했기에 거기에 맞게 Afeel의 노래 두 곡을 더 부르게 되었다고 생색이란 생색을 모두 다 내었다.

그리고, 츠기모토PD의 장담대로, 본 무대에 오르기도 전에 대형 전광판엔 우리의 이름이 뜨고, 방송이 화제라는 홍보영상이 계속 상영되었다.

그 영상과 함께 다카미씨를 선두로 무대로 오르자 엄청난 환호가 우리에게 쏟아졌다.

“어엇? 순나이씨? 에에? 진짜 오신 겁니까?”

환호를 받던 다카미씨와 제임스의 뒤에서 거동이 힘든 노인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다카미씨가 깜짝 놀라더니 노인을 부축해서 무대로 올렸다.

그리고, 카메라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서 노인들과 인사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방송국에서 우리들 몰래 야기씨와 이벤트를 마련한 것 같았는데, 그래서 츠기모토PD도 아침부터 그렇게 생색을 내며 연막을 친 것 같았다.

“토모야, 분위기를 보니 저분들이 Afeel밴드 멤버인거 같은데 맞아?”

“네. 맞아요. 다카미씨의 밴드 Afeel이 활동하지 않은지 10년이 넘었데요. 보컬인 순나이씨가 60이 넘고 나서는 노래가 안 나와서 가장 어렸던 다카미씨와 제임스가 예능 게스트로 나오며 밴드가 살아 있다는 걸 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저렇게 Afeel 응원 수건을 든 사람이 많았구나. 30년이 넘은 밴드를 아직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이쪽의 팬 문화가 부럽기는 하네. 우린 보통이 7년인데...팬과 같이 늙어가는 그런 장수 아이돌이 되어야 할 텐데.”

“그렇죠. 안 그래도 어제 갓 데뷔한 우리에게도 5년 남은 계약 후 YAM도 해체를 하는지 질문하더라고요. 재결합한 전설의 ‘SHOT’이나 20년째 해체하지 않은 ‘화신’처럼 우리도 오래가야 할 텐데. 형이 좀 신경 써주세요.”

토모가 받았다는 인터뷰 질문처럼 일본에선 한국의 아이돌은 왜 그렇게 수명이 짧냐고 비꼬는 질문을 갓 데뷔한 신인들에게 자주 했다.

일본의 아이돌들은 인기가 있으면 대부분 수십 년을 이어가며 활동을 하는데, 한국 아이돌들은 계약이 끝이 나면 대부분이 해체를 해버리니 그런 부분은 문제가 아니냐며 우릴 걱정하는 투로 질문을 했었다.

실제로도 그런 케이스가 많기도 했고, 사실이기도 해서 뭐라고 시원하게 대답할 말이 없었다.

뭐, 일본 음악계에서 한국 아이돌을 깔 때 유일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약점이 짧은 아이돌 수명 말곤 없었으니 그렇게 질문을 하는 그들의 의도와 목적도 이해가 되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팬들과 같이 늙어가는 일본의 밴드 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오늘은 사실상 우리 Be together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자 기타와 베이스를 맡고 있는 다카미씨와 제임스가 속해 있는 Afeel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기도 합니다.”

야기가 개그맨답게 마이크를 들어 진행했다.

“사실, 방송에 도움이 되는 건 마지막 콘서트이니만큼 순나이 옹이 예전처럼 마이크를 들고 무대를 뛰며 공연을 피날레 하면 좋겠지만, 슬프게도 이젠 거동이 불편하신지라, 무대 옆에서 관전하시기로 했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바로 노래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다카미씨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오늘 이 무대에 오를 때는 단순히 방송 프로그램이 끝이 나는구나 하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랐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밴드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밴드란 서로 다른 음악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곡을 만들어 가는 모임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어릴 때는 그냥 단순히 기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무모하고, 철없이 밴드를 시작했지만, 세월이 지나다 보니 내 옆에서 악기를 같이 연주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같이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좋아서 음악을 그리고 밴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카미씨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순나이씨가 울었고, 다카미씨도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Afeel 결성 후 31년간 힘들고 지칠 때면 밴드를 탈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늘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지금까지 밴드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행복한 순간에 함께 해주었던 동료들이 있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멋진 동료들이 있었기에 저 다카미가 있을 수 있었고, 그리고, 지금의 동료인 야기와 소원, 토모가 있었기에 이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밴드가 너무나 좋습니다.”

다카미씨도 말을 하며 감정이 격해졌는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이야길 이어갔다.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좋아해 주신 여러분이 있기에 저 다카미는 여전히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의 노래를 들어주셔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우리 Afeel 의 마지막을 이렇게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다카미씨가 마이크를 순나이씨에게 넘겨주자, 다 죽어 가던 노인네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크게 구호를 외쳤다.

“Go For It~!”

Afeel의 히트곡 Don't Go Baby의 첫 구호가 외쳐지자, 연주가 시작되었고, 노래를 아는 관객들의 떼창이 이어졌다.

[자 같이 가보자.

마주 잡은 손은 굳게 잡은 채로.

넌 아직 옛 애인을 생각하는구나.

너의 말투에서 느껴지잖아.

끝없이 사랑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길 했잖아.

의미 없이 그를 더 그리워하지 마.

아무것도 남겨두지 마.

Go For It~

Don‘t Go Baby~

Don’t Go Baby~ 날 떠나가지 마!]

노래를 부르는데, 옆에 앉아 있는 순나이씨는 물론, 다카미씨와 관객들도 눈물을 흘리자 나도 감정이 욱해서 눈물이 나올뻔했다.

다행히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였기에 감정전달이 직접적이지 않아 겨우 눈물을 참아 낼 수 있었지만, ‘still got the blues’를 부를 때는 울부짖듯 울어대는 다카미씨의 기타 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한국 스케줄 때문에 내일 아침 일찍 출국하는 거지?”

“네 츠기모토 PD님. 마지막 공연을 유튜브에 올리는 건 방송이 끝난 이후에나 올릴 거니깐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거 당부하려고 오신 거죠? 이미 서류로 전달받았어요.”

“하하하. 그거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우리가 찍은 공영 영상이나 입장료를 낸 유료 공연의 경우에는 우리가 삭제 조치를 할 수 있으니 그건 뭐 별 상관없어.

출국하는 길에 좋은 선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온 거지.”

“오 기념품인가요?”

“기념품은 아니고, 좋은 소식이 있어. 3회 방송 시청률이 4.9%로 또 급상승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6회 방송이 7회 방송으로 한 회 추가 편성을 받았다는 걸 직접 말해 주고 싶었거든.”

“와, 진짜 우리가 인기가 있는 거군요.”

“거기에 더해서, 정식으로 베타벡스와의 계약으로 내년 B-nation부터는 정규방송화하기로 했어.

시즌 편성이 확정되었다는 거지. 내년 여름에도 Be together 밴드를 하는 거야.

그래서 그런데, 내년에도 자네와 토모가 같이 밴드를 해줬으면 하는데.”

“오. 1년 후의 스케줄이라 멋진데요. 아마도, 저와 토모는 좋지만, 회사는 어떨지 잘 모르겠네요. 출연 계약은 회사에서 결정하는 거라 제가 확답을 드릴 수가 없네요.”

“그거면 된 거야. 그 말을 듣고 싶었어.

가수 본인의 의사가 재출연하겠다고 하면 이후는 방송국에서 알아서 하는 게 맞지.

내년에는 YAM이 일본에서 더 인기가 올라가서 출연료는 오르겠지만, 정규방송으로 편성이 되면 제작비 자체도 올라가니, 충분할 거야.

다음에 일본으로 오면 그때 따로 한잔하자고. 토모는 미성년자라서 어쩔 수 없지만, 몇 달 후에는 야기나 다카미씨도 좀 한가해 질 테니 그땐 추억을 안주 삼아 한잔할 수 있을 거야.

그때 보자고. 그리고 그때 따로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네 PD님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뵐게요.”

**

“오빠! 공항에서 바로 온 거야?”

“본사 들렀다가 바로 왔어.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뭘 찍는 거야?”

“아 오빠 몰랐구나, 김켈리 감독님이 찍는 유튜브 오리지날 뮤직드라마를 우리 연습실에서 찍어. 드라마 배경 자체가 예술학교라서 연습실 씬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우리 연습실에서 촬영하고 있어.”

그러고 보니, 김켈리 감독이 찍고 있는 뮤지컬 드라마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일본에서 사 온 과자들을 들고 연습실로 올라갔다.

“아니, 그게 아니지. 채희 네가 중심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면서부턴 도도한 여왕벌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야.

노래 가사는 ‘너 뿐이면 족해,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그 반대로 여왕벌처럼 주인공 태민이를 꼬시겠다는 그런 눈빛을 보여야 한다고. 다시 한번 더!”

유튜브 오리지날 드라마의 촬영이라고 그냥 카메라 1, 2대로 찍고 있겠구나 싶었는데, 카메라가 무려 4대가 있었고, 천정에서 찍는 지미집까지 세팅이 되어서 촬영 중이었다.

찬찬히 촬영장을 보는데, 다른 걸 다 떠나서 1500만 원의 제작비로 이게 다 감당이 되는 건가 하는 걱정부터 되었다.

“어? 뭐지? 왜 하늘소녀 애들이 9명이 아니라 10명인 거지?”

정해진 안무를 하는 애들을 다시 한번 세어봤지만, 분명 10명이었다.

“왜 저 사람이 여기에 끼어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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