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86화 (186/237)

# 186

선곡의 힘.

방금까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둥둥거렸던 드럼의 소리가 심장을 달리게 만드는 열정의 노래였다면, 지금 앰프가 찢어져라 울부짓는 일렉기타의 하울링 소리는 슬픔을 쥐어짜내는 우는 소리 같았다.

{찡지징~ 찌지징~}

과도하게 잡힌듯한 이펙트의 울림과 같이 타카미의 기타 솔로가 나오자, 키보드를 토모에게 맞기고 마이크를 잡았다.

[Used to be so easy to give my heart away

But I found out the hard way

There's a price you have to pay

I found out that love was no friend of mine

I should have known time after time.....]

전설의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Gary Moore의 Still Got The Blues를 내가 부르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는데, 기타연주와 보컬이 같이 돋보이는 곡을 찾다 보니 1990년에 나온 개리모어의 노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X-japan의 X가 시대에 대한 불만과 젊음의 자극을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서 날뛰어라는 그런 젊음의 뜨거움을 노래했다면, Gary Moore의 Still Got The Blues 는 사랑의 아픔과 그 사랑을 하며 겪어야 했던 슬픔과 우울한 추억에 대해서 울면서 이야기하는 곡이었다. X와는 곡의 분위기가 극과 극이었다.

두 곡의 가사를 모르더라도 미친 듯이 두드리는 X의 드럼과 울부짖듯이 울어대는 일렉기타의 전율만으로도 두 곡이 나타내고, 말하고자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터였다.

“타카미의 얼굴을 봐! 진짜 혼신의 힘으로 기타를 연주하잖아. Afeel의 오랜 팬으로서 황혼에 접어든 타카미씨의 이런 열정을 오늘 느끼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

“나도 나도!

타카미씨가 평생을 기타연주를 했지만, 늘 음악적 능력보단 전문 예능게스트로 유명했는데 이렇게 음악적 열정을 폭발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타카미씨의 기타도 좋지만, 보컬이 장난 아닌데. 호소력이 있잖아. 원곡보다 더 좋은데.”

“일본인이 맞긴 한 거야? 진짜 미국인이 부르는 거 같았다고.”

“한국의 무슨 가수라고 하던데. 아 여기 있다. 한국의 아이돌이라는데. YAM 의 소원?”

“아이도루? 한국의 아이돌은 저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 거야?”

아마도 한국이나 일반적인 공연장에서 이 곡을 불렀다면, 일렉기타의 울 듯이 연주되는 이 노래를 듣고서도 대부분의 팬들은 이게 무슨 노래인지 몰랐을 터였다.

하지만, 밴드를 좋아하는 오래된 Afeel의 팬들이 절반 정도 섞여 있다 보니, 개리모어의 곡을 알아듣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환호하는 긍정적인 팬들의 반응에 이 두 곡이 정규 레파토리로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35살 이미애는 여행사에 다니면서 네이버 일본여행카페의 게시판 지기이기도 했다. 네이버의 대표카페이다 보니 회원 수가 120만 명이나 되었고, 하루에 올라오는 글만 3천 개가 넘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 관광 상품을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마다 자체적으로 카페운영자와 계약을 맺고 게시판을 받아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출근을 하게 되면 카페 내에 올라오는 글을 모니터링하고 카페에서 허락받지 않은 패키지 상품을 홍보하는 업체나 개인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글들은 찾아서 지우는 게 출근한 이후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흠. 오늘은 ‘문화 행사 안내 게시판’에 어제보다 글이 20여 개가 더 많네. 무슨 행사가 있었던 건가?”

일본에서 열리는 행사일정표를 봐도 특별한 행사가 없었고, 여행견적 게시판이나 숙소 문의 게시판에 비해서 올라오는 글이 작았던 문화 행사 게시판에 더 많은 글이 올라오고 있으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일일이 게시판 글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일정에는 없는 게릴라 콘서트 같은 문화 행사가 있었고 그로 인해 게시판에 글이 많아진 것 같았다.

[한국에선 성덕이 못되었지만, 일본에서 성덕이 되었음! 연예인 주의]

글에 달린 댓글이 50개가 넘은 걸 보니 이 게시물 때문에 게시판이 흥한 것 같았다.

<일본 친구랑 교토에 있었는데, YAM 토모가 일본에서 게릴라 콘서트 한다는 인스타 글을 올렸었음. 운 좋게 바로 근처라서 가서 공연도 보고,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따라갔었는데, 소원 오빠가 밥도 사줬음.

내가 아이돌 덕질은 졸업했는데, 밥을 사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내 카메라 렌즈가 소원 오빠를 찍고 있더라. 이렇게 밥 얻어먹고 입덕했다.

나란 뇬 밥만 사주면 다 좋아할 듯.

사진 보면 알겠지만, 밥 먹는 것도 진짜 개 귀욤.

토모 팬인 일본 친구도 차애로 소원오빠 바로 등록함.

그리고 난 학교 때문에 한국 왔는데, 일본 친구가 결국 오사카 공연까지 따라갔음. 오늘 영상을 받았는데, 한국에서 보던 아이돌이 아니라 진짜 락스타 같았음.

공연영상 올리지 말라고 해서 캡쳐 사진만 올림.>

└제가 야미인데 공연 영상 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메일주소 [email protected]

└저도 좀. 메일주소...

└그런데, 영상 올리지 말라고 한 건 거기 현장의 일본이지 않나요? 한국은 올려도 될 것 같은데.

└맞음. 영상 올렸다고 일본에서 찾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좀 올려주세요. 일단 저도 메일주소...

└그냥 유튜브나 네이버 TV에 좀 올려주세요. 제발!! MSM에서는 터치 안 해요 언니!

.

.

.

└너무 많은 분들이 메일로 영상을 보내 달라고 하셨는데, 일일이 메일 보내는 게 안될 것 같아요. 그래서 알아보니, 지식in에서 올려도 된다고 해서 유튜브에 올렸어요. 링크 주소 http://....

└헐, 토모가 부른 일본 노래랑 소원 오빠 노래까지 10분짜리 혜자영상임.

└복 받을거임. 아리가또~!

└이야. ‘다이다 형제단’에 게스트로 나오는 다카미가 진짜 기타리스트가 맞구나. 밴드라는 걸 안 믿었는데, 대박임.

└야기도 그냥 모무스 프로그램에서 흥하고 난 이후 하락세라고 봤는데, 드럼치고 있었네. 추억의 X-Japan 노래를 이렇게 듣게 되네. 아련하다.

X-Japan 노래로 일음 접하고 일본 여행 가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이 동영상에는 추억과 현대의 아이돌이 잘 믹서 되어있네.

“이야 일본방송 좀 봤다는 사람들이 다 달라붙었네.

하긴, 다카미나 야기나 일음이 잘나갈 땐 다들 매주 보는 얼굴들이었으니, 추억의 영상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어휴~ 멍청하게 지식in에서 올려도 된다고 믿고 영상을 올리는 애도 있구나. 뭐 신경 쓰지 말고, 나도 영상이나 한번 보자.”

무심코 클릭해서 본 유튜브 영상은 벌써 5만 조회가 넘어가고 있었고, 유튜브에 달린 댓글들도 네이버 카페에 달린 댓글들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다만,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보다 더 많은 것 같았고, Afeel 밴드의 팬들이 많은지 새로운 보컬을 알아간다며 긍정적인 댓글이 많았다.

“흠. 아이돌이다 보니 얼굴은 좀 괜찮네. 추억의 X라 그래 한때는 좋아했었지 드럼으로 치기 어려울 텐데, 야기가 드럼은 좀 치려나...”

그냥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던 영상은 야기의 신명 난 듯한 드럼으로 시작을 했고, 30초..1분..3분..5분이 지나가며 울리는 기타 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어? 이미애 대리님 우세요? 어디 아프세요?”

“아..아니야. 모니터를 너무 오랫동안 봤더니 눈물이 나네. 별일 아니야.”

옆에 사람이 있다 보니 급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왜 갑자기 눈물이 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추억이구나. 90년대 말에 일본 음악과 방송을 처음 인터넷으로 접하고 친구들과 같이 듣고 보며 즐기던 그 옛날 음악이구나.

그리고, 그런 추억을 떠올릴 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나를 저 우는듯한 기타소리와 소원이의 슬픈 목소리가 자극해 해버렸구나.’

그때 같이 일음을 듣고, 비스트로 스맙과 우타방을 같이 보며 깔깔거리며 웃던 친구들은 하나둘 시집을 가버렸고, 시집을 가지 않았다고 해도 일본 음악을 듣는 친구들은 이제 없었다.

아니, 한국방송이 발전함에 따라 제자리걸음 중인 일본방송에 더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다.

본인만이 일본 여행 전문여행사를 다니며, 일 때문에 가끔 찾아서 일본방송을 보는 게 전부였다.

문득, 그때 같이 동영상을 돌려보며 같이 이야기를 하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이젠 애들을 키운다고 자주 연락하기도 힘든 사이가 되어버렸다.

유튜브에 일본어로 달려있는 추억의 밴드와 새로운 아이돌의 형태가 섞여 있다는 댓글이 눈에 보였다. 동의한다는 대댓글도 많았다.

‘그래, 어쩌면 과거의 친구들이 이제는 인터넷 댓글 창에 다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구나.

같은 것을 보고 같이 즐기는 이게 진정한 소셜(social)이구나.’

이미애는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감해줄 사람들이 있는 일본음악 게시판과 일본 가수 팬카페로 동영상을 퍼 나르고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과 같이 과거의 일본음악을 추억하는 친구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종착점은 일본에서 활동을 하고있는 윤소원의 공식 유튜브 계정이었다.

**

“츠기모토 PD님 이거 큰일인데요. 한국에서 공연 영상이 올라갔는데, 지워 달라고 유튜브에 저작권신고를 했는데, 실질적인 노래의 저작권자가 우리가 아니라서 삭제가 안 된답니다.”

“X-Japan과 개리모어의 저작권을 가진 유니버셜에 연락은 해봤어?”

“네 연락을 하니, 요시키는 그냥 놔두라고 했답니다. 오히려 자기 트워터에 유튜브 영상을 링크를 해버렸습니다.

유니버셜은 유튜브에서 광고에 대한 저작권을 자신들이 가지기 때문에 돈이 자기들에게 들어오니 상관없답니다.”

“빌어먹을 놈들 왜 다들 유튜브의 편인거야. 이러다가는 TV 방송이 다 망하게 된다고. 제길.”

화를 내고는 있었지만, 츠기모토도 알고 있었다.

50이 넘은 자신들의 친구들마저도 아메바TV로 동영상을 보고 유튜브와 트위터를 하며 TV를 직접 보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는걸.

그리고 지금의 10대들이 20대가 된다면 매체가 가지는 파워를 TV가 아닌 스마트폰이 가지게 될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 흐름과 함께 하기는 싫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반대를 하며 흐름을 거스를 수는 또 없었다.

유튜브에 이미 영상이 올라갔다면, 빨리 편성을 잡아서 방송해야 했기에 국장실로 발걸음을 급히 옮겼다.

“아 츠기모토 PD님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늘 한가하던 국장의 비서는 물론이고, 그 앞쪽에 있는 편성부 전체가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와 전화를 받으며 응대하는 소리로 정신이 없었다.

“너도 정신없겠지만, 우리도 정신이 없어.

그런데 왜 이런 사고를 치는 거야? 아무리 퇴사 전의 마지막 프로듀스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편성국 시게무 국장은 웃는 얼굴이긴 했지만, 추궁하는 말투로 츠기모토에게 앓는 소리를 했다.

“네?”

“모르는 척 할 거야? 밖에 편성국이랑 지금 전화 오는 게 다 ‘Be together’ 때문이잖아. 20년 이상 근무한 PD들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프로그램을 만들게 해준다는 관례 때문에 편성도 없이 촬영을 시작하게 해주었는데, 이렇게 애를 먹일 줄은 몰랐다고.

금요일 오후 4시 20분으로 6회 편성 줄 테니까 가 편집본 나오면 내부 시사회 한 번 하지.”

“그..금요일 오후 4시 20분입니까?”

“그래, 그 이상은 아무리 전화로 빨리 보고 싶다고, 빨리 편성하라고 난리를 친다고 해도 올려줄 수가 없어.

퇴사 전 연출 프로그램 중에선 가장 좋은 시간 편성이니깐 마지막 마무리 잘하라고. 나가봐.”

내쫓기듯이 국장실을 나왔지만, 츠기모토PD는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보통 마지막 연출작은 새벽 2시가 넘어서 편성이 잡히거나, 히트작이 있는 PD의 경우에는 화요일이나 수요일 오후 1~2시쯤으로 편성을 잡아줘서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그렇고 그런 프로그램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후 4시 20분이라면 나름 저녁으로 가는 길목의 편성이라 시청률도 어느 정도 나올 것 같았다.

촬영을 위해 회사를 나서야 하는 발걸음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

“요시키가 멘션을 보내줬다니깐요. 제가 인정을 받은 거라니까요.”

촬영을 위해 다시 모이니, 야기씨가 입을 한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뮤지션에게 자신도 뮤지션으로 인정받은 것과 같다고, 이젠 개그맨이 아닌 드러머로 자막을 넣어 달라고 설레발을 쳤다.

“츠기모토 PD의 퇴사 작이라고 했을 때 출연을 고민했는데, 너희 둘을 보고는 출연을 결정했다니깐.

내가 말이지, 아이돌과 예능방송을 하면서 10년 넘게 숱한 아이돌을 슈퍼스타로 만들어 줬다고.

그런 내 눈에 너희 YAM이 일본에서 뜰 것 같았다니깐. 이거봐 이거봐. 내 트위터는 물론이고, 너희 둘 트위터도 팔로우 수가 10만이 넘었어. 다카미씨도 5만명이 넘었어요. 60살 넘은 연예인 중에서는 아마 탑 급일겁니다.”

“그 입 좀 다물어, 운전하다가 사고 나겠다.

그리고, 연락받았는데, CDTV에 우리 ‘Be together’ 밴드로 출연 요청이 왔어. 거기 말고도 지방 방송국까지 네다섯 군데는 될 거야.

우리와 야기는 되는데, 너희 쪽은 시간이 되는 거야? B-nation 투어도 이제 끝이 나잖아?”

“네 그렇지 않아도 일정을 조율하고 있어요.

일단 CDTV까지는 다 될 것 같아요. 이후 한국에서 일주일 정도 스케줄을 처리하고 다시 오든지 해야 할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일본에서 갑자기 반응이 오는 게 좋다고 하지?

하긴 뭐, 잘되고 있으니깐 따로 매니저와 VJ카메라가 추가로 붙은 거겠지.”

같이 밴드를 하는 다카미와 야기가 볼 때는 일본의 인기를 고려해서 인력이 더 붙은 것으로 보일 테지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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