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유튜브 홍보금지.(400자 분량추가19.01.01)
“30년 전이면 둘 다 흙탕물 마실 때잖아. 그땐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로 힘들었었어. 무명 밴드는 밥을 먹는 것도 사치였으니깐.”
“네, 그땐 그랬죠. 신입이었던 제가 무명이었던 Afeel의 공연중계에 나갔을 때 어찌나 황당하던지.”
총괄 PD인 츠기모토는 그때가 다시 생각난다는 듯이 싱긋이 웃었다.
“난처했지, 콘서트를 한다고 아는 인맥을 동원해 방송국에서 촬영을 왔는데, 관객은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깐.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등에 땀이 흐르는군.”
다카미씨는 츠기모토PD와는 다르게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생각하기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네. 그래서 제가 아사히TV에서 연출하는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이 ‘Be together’를 하기로 한 겁니다.
저와 다카미씨에게는 30년 전 신인과 신입일 때의 기억을, 야기에게는 소속사에서 말리는 밴드 드럼연주자로 데뷔할 기회를...
그리고, 일본에서 데뷔한 저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신입, 신인일 때 느꼈었던 것들을 알려주고 싶어서요.”
“뭔가 심오하게 이야길 하지만, 결국 아사히TV를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를 만들 본인에게 신입일 때의 기억을 추억할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거잖아.”
“네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이곳에서 다카미씨가 30년 전 했던 진짜 공연을 재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 아무리 사람이 없더라도 그때보다는 많이 오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리고, 토모와 소원씨는 신인이니 나중에 아주 먼 미래에 기억할 만한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는 거죠.”
‘그런 추억은 만들고 싶지 않은데요.’라는 말이 튀어 나올뻔했다.
방송국 놈들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미친놈들이 많은지 자신의 추억을 되짚어 보기 위해 이런 예능을 기획했다고 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뭐, 옛날을 단순히 추억하는 거라면 좋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당시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관객 없는 공연을 해라고 하니 그게 문제였다.
“저, 츠기모토씨 내일 공연을 위해 오늘 여기서 연습을 하기로 한 거지요? 그러면, 그 연습하는 장면을 유튜브 라이브로 올리면 안 되겠습니까?
아무리 허허벌판이라고 해도 그런 홍보를 미리 하면 사람들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유튜브라...공연 홍보를 위해서는 아주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불가합니다.”
단호하게 유튜브 라이브는 안된다고 하는 츠기모토PD의 말에 놀랐다.
홍보, 마케팅의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릴 정도인 유튜브 라이브를 하면 안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네? 아니 왜 안 되는 건가요?”
“당연히 방송 때문이지요. 지금 우리를 촬영하고 있는 4대의 카메라들이 왜 있겠습니까? 방송에서 보여줘야 할 장면들을 유튜브에서 먼저 보여주게 된다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아사히TV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튜브에서 다 보여준다고 하면 누가 TV를 보고, 그 누가 TV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겠습니까?”
스냅사진이나 1분 내외의 짧은 근황 영상이라면 인터넷에 올려도 되지만, 유튜브 라이브 중계라거나 전체 곡이 다 들어간 영상은 인터넷에 올리는 게 금지입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게 일본방송의 기본입니다.”
이미 한국계정의 유튜브에는 한글 자막까지 붙여서 일본방송이 많이 올라가 있다고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그런게 다 불법적으로 올라가 있는 거라는 생각에 입을 더 열 수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방송 프로그램이 유튜브에 올라가는 한국 방송시장이 특이하거나 문제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거, 그러면 아예 홍보도 옛날 방식으로 하자는 거구만.”
“네, 다카미씨 그때 Afeel 멤버들이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CD를 판매했던 것처럼 해주시면 됩니다. 아, 지금은 CD를 판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다르겠네요. 자, 그럼 연습하는 영상을 따고, 손발을 맞추어 보고 교토 시내로 나가보도록 하죠.”
예능에 캐스팅 이후 공연할 예정인 곡을 미리 알려줘서 연습했던 것도 있지만, 드럼과 기타가 잘 리드해줘서 손발을 금방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츠기모토PD의 말을 듣고 보니, 한국에서 한번 해봤던 게릴라 콘서트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아? 이런 현장을 일일이 찾아가는 방송 포맷은 아주 오래된 컨셉이지.”
나이 차이가 그래도 많이 나지 않는 야기씨에게 이런 형태의 방송이 일본에도 흔한지 물으니, 친절하게 이야길 해줬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초부터 이런 홍보, 흥행방법을 많이 썼어. 지금처럼 현장 라이브 공연 보다는 앨범 발매를 원하는 팬들의 서명 10만 명분을 받아오기 같은 미션형이었지.
번화가에서 서명을 부탁한다고 가수들이 돌아다니며 흥미를 유발하는 형태야.
그리고, 그 인원수를 채우지 못하게 되면 CD 발매가 중지되거나 아예 팀이 해체하는 방식이었어. 이런 미션형 이벤트가 시청자들에게 몰입감을 가지게 해서 시청률도 좋게 나왔거든. 그래서 요즘도 가끔하는 방식이지.”
야기가 핸드폰으로 이리저리 검색해서 보여주는데, 진짜 우리나라의 게릴라 콘서트와 똑같은 컨셉의 프로그램들이 몇 개나 나왔다. 숫자 앞자리를 숨기고 클라이막스에서 보여주는 진행까지 판박이였다.
“소원형. 우리 어머니 말로는 2004년 일본 문화개방이 완전히 되기 전에는 엄청 많은 한국예능들이 일본방송을 표절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마에 단어를 붙이고, 그 단어를 말하면 물을 뿌리거나 의자가 날아가고 하는 것도 그렇고, 방석 빼앗는 컨셉이라든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였데요.”
“문화개방 이후에는 그런 표절이 없어졌고, 지금은 중국이 그렇게 한국방송을 표절하고 있으니 참 재미있네.
그리고, 이젠 오히려 아이돌 쪽은 한국의 문화나 방식이 일본으로 수출이 되고 있으니 재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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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던 공터에서 연습을 하고 교토의 최대번화가인 가와라마치 역 앞에서 홍보 무대를 준비했는데, 인스타에 공연하러 가고 있다고 올린 짧은 영상을 보곤 우리 팬들 몇 명이 와주었다.
상점가가 인접해 있다 보니 금세 역 앞 공터가 가득 메워질 정도로 사람이 몰렸지만, 역 앞 공터 자체가 협소하다 보니 100여 명 이상이 되자 경찰들이 사람들을 강제로 해산시킬 정도가 되었다.
다카미와 제임스가 속해있는 Afeel의 히트곡 ‘Don’t Go Baby’를 불렀는데, 확실히 일본에선 아직도 밴드가 인기 있다는 걸 보여주듯이 중장년층 남자들이 노래를 같이 불러줬다.
[Go For It~
자 같이 가보자.
마주 잡은 손은 굳게 잡은 채로.
넌 아직 옛 애인을 생각하는구나.
너의 말투에서 느껴지잖아.
끝없이 사랑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이야길 했잖아.
의미 없이 그를 더 그리워하지 마.
아무것도 남겨두지 마.
Go For It~
Don‘t Go Baby~
Don’t Go Baby~ 날 떠나가지 마!]
두 번째 곡을 하려고 했으나, 안전문제로 인해 경찰이 공연을 중지시켜 어쩔 수 없이 공연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저 드럼 치는 녀석 개그맨 야기아냐? 저놈이 왜 저기에 있는 거지?”
“개그맨을 그만뒀나 보지.”
“뭐 이젠 웃기지 못하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러고 보니, 다카미도 그렇고, 퇴물들의 공연이구만.”
“그래도 사흘 후 공연은 한번 가보고 싶긴하네.”
무대가 끝나며 내려오는 내가 들었을 정도면 따라 내려오던 야기 도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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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곡을 따로 연습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어요?”
“두 곡 다 기타와 드럼이 엄청나게 강조되는 곡인데, 그러면 한국에서 온 너희들의 분량이 줄어들 텐데.”
“곡 연주는 할 수 있으신 거죠? 그거면 되죠. 주목을 두 분이 받더라도 보컬을 우리가 하면 되니깐 그렇게 튀는 무대는 아닐 겁니다.”
“힘들겠지만, 최대한 연습해봐야지. 다카미씨도 노익장을 보여주세요.”
“나보단 너의 드럼이 걱정인데. 단단히 연습해. 그런데, 너희 진짜 인기 있는 거 같은데.”
“네?”
“저기 봐. 아까 공연 이후 식당까지 팬들이 다 따라왔다고. 역시 아이돌은 이런 열성 팬이 있어야 멋진 거지. 카메라도 큰거 들고 있고.”
야기씨의 말처럼 우릴 따라 패밀리 레스토랑까지 들어 온 팬들이 10여 명 있었다.
여기까지 따라와 준 팬들이 고마워서 식대를 내가 계산을 해주었더니 야기씨가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왔다.
“한국은 월급을 받지 않고, 개인 사업자처럼 돈을 받는다고 하던데, 신인이라도 돈을 많이 버는 거냐?”
“뭐 그런 것도 있는데, 소원이 형은 그냥 부자예요. 우리 회사 소속으로 되어있지만, 따로 회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오! 오너라고? 한국은 그렇게 해도 되는 거야?”
“뭐, 부자가 아이돌을 할 수도 있는 거죠. 이 식사 비용도 제가 계산하도록 하겠습니다.”
허세 캐릭터를 어필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밥값을 내며 큰소릴 쳤다.
“이런 부자 멤버가 있으면 밴드 하기가 쉽지. 왜 우리가 데뷔했을 때는 부잣집 도련님을 멤버로 넣을 생각을 못했던 걸까.
그럼 기획사 오너니깐 유튜브에서의 홍보가 금지라면 어떻게 해야 좋겠어?”
“일상영상은 올려도 된다고 하니 짧은 영상은 유튜브에 올리고, 트위터를 이용해야죠.”
“그건 또 어떻게 이용하는 거야? 트위터는 팔로워 수가 많아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하루 이틀 만에 만들기가 불가능하잖아.
그리고, 그 팔로우 된 사람들이 전부 다 공연하는 지역의 사람도 아닐테구.”
“네 그런 문제가 있지만, 트위터 팔로우 수가 안 많아도 홍보 할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거기다, 우리가 공연하는 지역 한정으로 마케팅도 가능하고요.”
“아니 팔로우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그게 되는 거야?
그게 진짜라면 우리 회사 놈들은 이런 것도 모르고 있고 말이야.”
“저도 전문가에게 조언을 들었어요. 주로 10대 20대 젊은층 들에게 유명한 트위터 계정이 있어요. 바로 각 지역을 대표하는 ‘알려드립니다.’라는 계정이에요. 그 계정을 이용하는 거죠.”
“알려드립니다? 아, 알겠다. 나도 본 적이 있어.
역 앞에 새로운 도시락 가게가 오픈했다거나, 지하철 사고로 인해 도내 전철이 지연된다고 하는 멘션을 녀석들이 보내 왔었던 적이 있어.”
“네 맞아요. 그 지역을 담당하는 ‘알려드립니다.’ 트위터에 우리 공연 정보를 보내고, 홍보를 부탁하려고요.
정부나 지자체에서 공식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기에 상업적인 홍보 안내는 금전적인 대가가 따르지만, TV 방송의 녹화와 같은 정보는 대부분 무료로 홍보해 줄 거에요.”
“오 역시 회사의 오너는 이런 홍보 적인 부분에서 다르구만. 나도 트위터를 하는데, 한번 그 ‘알려드립니다.’ 계정을 찾아서 보내봐야겠어.”
야기씨가 대단하다며 극찬을 했지만, 이것도 유튜브가 막히자 동생에게 물어보고 찾은 방법이었다.
“일본은 마케팅 창구로 쓸 수 있는 SNS가 트위터야. 2CH같은 커뮤니티는 한국과 달라서 마케팅 툴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다 죽어 가는 트위터지만, 일본에서는 가입자 수도 그렇게 가장 활발한 게 트위터야.”
“이런 SNS 사용도 한국과 일본은 차이가 있는 거야?”
“당연하지 한국 일본은 완전히 행동방식이 달라.
일본은 보은문화(おんがえし)라는게 있어. 그래서 아는 사람이 글을 올리면, 반드시 좋아요. 같은 리액션을 해줘야 하는데, 트위터의 리트윗이라는 기능이 있어서 보은하기 좋은 거지.
리트윗을 해준 게 그 사람에게 보은을 했다고 여겨지거든.
페이스북은 자신의 개인 사생활이 드러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보여줘야 하다 보니 일본에선 트위터보다 이용자가 적어. 인스타도 마찬가지고.
그러니 일본에서는 트위터로 홍보를 하는 게 가장 좋아.
‘알려드립니다’란 계정 자체도 일본에서 먼저 개념을 만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한것이고.”
“외국이 만든 플레폼인데, 일본식으로 진화를 한거구나.”
“맞아. 문화 관련으로 팔로우 많은 사람이라거나 알려드립니다 계정에 누구인지를 밝히고, 공연에 대한 홍보를 부탁한다고 보내면 대부분의 헤비사용자들은 다 해줄 거야. 단순히 리트윗만 해주면 되니깐.
내가 그런 쪽 사람들 정리해서 리스트를 보내줄 테니까 오빠가 직접 DM을 보내보면 될 거야.”
“그런데, 넌 어떻게 일본 트위터 사용자들도 다 아는 거냐? 전문가가 다 되었네.”
“그게...다 하면 알게 되어있어. 덕은 덕끼리 통하니깐.
여튼 일본에서 영상 찍으면 나한테 바로 보내. 기원이 오빠랑 같이 영상 작업해서 한국에는 우리가 올릴 테니까.”
내가 일본에 와 있는 동안 고3인 지혜가 조기 취업으로 기원형이 만든 원원엔터에서 일을 한다고 했는데, 이젠 진짜 홍보마케팅의 전문가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오옷 이거 진짜 신기한데. 트위터 ‘오사카 알려드립니다’에서 우리 공연 홍보를 해줬어. 이렇게 온라인 홍보가 쉬운 거였어?”
“그건 개그맨 야기씨니깐 가능한 거예요. 실제 유명인이 온라인으로 자기를 인증해 가며 트위터를 보내면 다들 좋아해 주니깐요.
그래서 실제 연예인들이 온라인에 진출할 때 쉽게 안착을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유명세가 있다면 어디서 뭘 하든 될 겁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어. 30년 전에는 일일이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고, 연예인이 되면 이런 홍보 일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패밀리 레스토랑에 앉아서 핸드폰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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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에서의 B-nation 공연이 끝나고 다시 다음 공연장소인 오사카로 이동을 해서 홍보 공연촬영을 하는데, 트위터 홍보의 영향인지 오사카 공설운동장 옆에 있는 보조경기장에 500여 명의 사람이 몰려들었다.
10대에서 20대가 많을 줄 알았지만, 다카미씨의 밴드인 Afeel의 팬들인지 30~40대도 의외로 많았다.
“이 정도로 사람이 많으면 교토처럼 따로 번화가에서 홍보 공연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이게 된 거지?”
츠기모토PD는 따로 홍보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10여 명의 사람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사람들이 몰리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진짜 우리 ‘Be together’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 맞아요?”
츠기모토PD는 다시 확인까지 하며 방송에 쓸 공연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준비한 Afeel의 히트곡 3곡 외에 따로 준비한 곡을 시작했는데, 다들 난리가 났다.
“X-JAPAN의 X라고? 드럼 연주가 가능해?”
“개그맨 야기가 요시키처럼 드럼이 된다는 말이야?”
둥둥둥둥 거리며 시작된 강렬한 드럼연주에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진짜인지 확인을 할 정도였는데, 드럼 영화인 ‘위 플래시’가 나오기 전까지 일본 드러머들에게는 최고 난이도를 가진 드럼 연주로 추앙까지 받는 곡이었다.
그런 곡을 개그맨 출신인 야기가 솔로로 진행을 하고 있으니 ‘감히’ 라는 감정과 ‘실수’, ‘설마’ 하는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교차되며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가사를 아는 토모가 미친 듯이 악을 쓰며 락커처럼 노래를 부르자, 당시 X-JAPAN의 공연장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몇몇은 양손으로 X를 그리며 제자리에서 뛰는 사람도 나왔다.
곡이 종반부로 가니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사람들도 이 노래를 잘 소화했다는 것에 감탄했다.
“개그맨이 드럼 친다고 무시했는데, 엄청 연습한거 같은데.”
“그러게. 요시키 만큼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비슷하게 드럼은 칠 줄 아네. 개그맨 야기의 새로운 발견이다.”
“개그가 아니라, 진심으로 드럼을 치는 것 같은데.”
야기는 아마도 교토에서 공연이 끝나고 들었던 개그맨이 드럼 친다는 말을 어떻게든 바꾸어 보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기타리스트 다카미를 위해 준비한 다음 곡이 앰프에서 찢어져라 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