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
일본 진출. (1)
“이야! 이게 일본 앨범이구나. 정말 보고 싶었단다 예쁜아! 쪽쪽~”
거의 2년 만에 앨범이 나오다 보니 다들 기뻐했지만, 그중에서 토모가 앨범이 나온 걸 가장 좋아했다.
하긴, 자신이 태어난 일본에 발매가 되는 앨범이 나왔으니 CD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우리가 요청한 거라지만 아침 7시에 사전녹화라니,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새벽에 일어나서 샵도 다녀오고 진짜 너무 힘들어요.”
음악방송에 오랜만의 출연이었지만, 사전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에 방송국으로 오다 보니 피곤해서 내가 구시렁거렸다.
MSM에서는 앨범 발매일에 맞추어 YAM을 일본에 도착하게 만들고 바로 일본에서 활동할 수 있게 계획을 짰는데, 그러다 보니 한국 팬들을 위해서 음악방송은 사전녹화를 할 수밖에 없었다.
2년 만에 내는 앨범이 한국 앨범이 아닌 일본 앨범이냐는 팬들의 반발을 누그러트리기 위해서 공중파 음악방송에는 나와야 했다.
문제는 노래를 부르기에는 너무 이른 아침 시간이라는 거였다.
“사전녹화가 아침 7시면 방송국에서 엄청나게 배려해 준거야. 다른 팀은 새벽 3시, 4시에 잡혀 있는 경우도 있어.
그럴 땐 진짜 팬클럽 임원들에게 관객으로 와 달라고 하기도 힘들어.”
이용민 실장이 나름 이 시간이 사전녹화의 골든타임이라고 어필을 했다.
“하긴, 새벽 3시에 비한다면 진짜 방송국에서 배려를 해 준거겠네요. 아침 7시니 팬들도 조금은 편할 테고.”
“그리고 아침 시간이니 이렇게 밤새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CD를 받아볼 수도 있는 거야. SNS에는 아직 올리면 안 된다.”
**
사전녹화를 위해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한일 동시발매가 되는 신곡 ‘Run Run’을 불렀다.
[오늘도 계속해서 달린다..
누구라도 앞을 보고 달려야 한다..
시계는 멈추지 않고, 시간은 앞을 향해 흐른다.
되돌아올 수 없는 고속도로
서로와 경쟁하며, 펼쳐진 하나의 길을 나란히 달린다.
조금 더! 더 빨리! 우리는 달린다. 저 앞에 우리의 목표가 있다.
그걸 위해 너를 위해 달린다.
Rap.
이런 결승점은 누가 만들었나?
결승점은 진짜 있는가?
삶은 앞으로만 가지 않아.
누가 정한 길이고, 누가 정한 결승점인가?
어디로 달리든 누구와 달리든
아무 상관없어.
하고 싶은 데로, 놀고 싶은 데로 해.
자기 자신만의 길을 찾아!]
“야 노래가사가 왜 이런 거야? 작사 누구야? 씹구린데.”
“좆망삘. 개허세 가사인데.”
“찾아보니 한일 동시발매라 일본인이 작사한 거 같은데. 일본에서 내는 곡을 그냥 번안해서 한글 노래로 낸 거 같아.”
“일본 노래 가사가 좀 병신같긴 하지. 원래 이런 가사들임.”
“문화 차이 오지네. 중2병 걸린 애새끼 일기장 보는 줄알았어. 근데 일본에선 저런 가사가 진짜 먹히는 거야?”
“일본에선 먹히니깐 저런 곡을 쓰겠지, 한국이나 외국 사람들은 안 좋아하겠지만.”
“일본 갈라파고스화 지리네. 다 이유가 있었네.”
곡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데, 팬들은 애써 웃어주는 것 같았지만, 역시나 한국에는 안 먹히는 노래였다.
작곡도 MSM과 베타벡스쪽이 밀어주는 작곡가가 붙다 보니 이때까지 YAM이 해온 음악과는 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런 팬들의 의아함을 바로 캐치해야 요즘 친구들의 음악적 트렌드에 맞추어 나갈 텐데, 일본 쪽은 물론이고 MSM의 작곡 진들도 너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다 보니 트렌드와 동떨어진 음악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음반발매 초반에는 팬들의 음반 구매와 스트리밍 총공격으로 공중파 1위를 찍지만, 대중들의 트렌드를 쫓지 못한 곡이라 금세 순위가 빠져버리는 게 요즘의 MSM이 가지는 문제였다.
**
“제일상~ 가꼬이~”
“규이일~” “토모~~”
일본에 공식적인 스케줄로 YAM이 처음 방문하는 것이라 그런지 하네다 공항에는 100여 명의 팬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에게 일본식 화과자로 불리는 ‘셋빼’ 세트를 건네주는 팬부터 일본과자, 초코도 잔뜩 손에 쥐여줬다.
“자자, 그만 받고 이제 빨리 차에 올라가자! 소원이는 2호 차에 빨리 타.”
일본 팬들은 팬들 중에서도 질서를 잘 지키는 거로 유명했는데,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패시브처럼 박혀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경호원이 없음에도 남을 배려하며 팬질을 했기에 약간의 소란을 제외하곤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 쪽의 일을 대행하는 베타벡스 관계자들은 이런 작은 소란이 벌어진다는 게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멀뚱거리며 구경을 하고 있었다.
뭔가 이쪽 연예계 종사자가 아닌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마도, 조공문화가 신기했던 것 같아요.”
“응? 토모 그게 무슨 말이야?”
“소원형이 베타벡스 직원들을 신기하게 보고 있어서요.
그런데, 웃기게도 저쪽 사람들은 우리가 신기할 거예요. 이렇게 팬들에게 선물을 받는 건 이제 일본에서는 거의 없거든요.
독극물 사건도 있었고,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 데이때 초콜릿, 사탕을 몇 톤씩 보내는 문제 때문에 이제 일본에서는 연예인들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 자체를 금지하는 게 암묵적인 동의가 되어버렸거든요.
그런 걱정을 하지 않고 선물을 받는 우리가 신기했을 거예요.”
“그런가? 한국은 팬들끼리 뭉쳐서 조공으로 밥차나 커피차 같은 걸 하기도 하는데, 일본은 그런게 없는거야? 이야 확실히 아이돌 팬질에 대한 것도 한국과 일본은 다르구나.”
“네, 그래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만큼의 CD나 굿즈를 사라고 해요.
그게 실질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요.”
“무슨, 개인이 아닌 회사에 더 도움이 되겠지. 그럼, 일본은 팬들에게 선물은 못 받고, 편지 같은 거만 받을 수 있는 거야?”
“네. 하지만, 편지도 직접 받지 않아요. 독극물 사건도 있었기에 편지도 직접 주지 못하고 기획사로 보내면 그걸 기획사에서 가수들에게 전해준다고 하죠. 아, 콘서트나 디너쇼 같은 것에는 꽃다발은 받아요. 물론, 다 경호원이 확인하고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르네. 그래서 베타벡스에서는 아예 공항에 경호원들을 배치하지 않은 건가?”
공항에 내릴 때 공항직원 외에 별도의 경호원들이 없었는데, 그것도 팬 문화가 다르니 이해가 되었다.
“그건 또 아니야.”
이용민 실장이 운전기사인 일본인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베타벡스가 좀 안 좋아 심지어 한국 가수들이 베타벡스를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할 정도야.”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원래 베타벡스는 외국 수입 음반을 취급하는 회사였어.
쉽게 이야기하면 짜집기전문 음반사였어. 유로MIX컨퍼레이션 음반 같은 걸 유통하는 회사였거든. 그러다 유로 음악이 대 히트를 하면서 자금력이 생겼고, 이후 연습생 시스템을 만들고 매니지먼트를 시작하게 된거야.
그때가 90년대 후반이었는데, 이때 우리 MSM와 같이 연계를 하기 시작했지. 우리는 일본에서 SHOT이나 SRS를 매니지먼트 해줄 업체를 찾고 있었거든.”
“아, 당시의 베타벡스는 든든한 음반 유통사지만, 매니지먼트는 거의 신생기업이었으니 한국 가수라고 차별하지 않고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생각을 했었겠군요.”
“맞아. 잘 맞췄어. 우리 MSM 입장에서는 베타벡스가 최고의 파트너였지. 베타벡스도 제대로 된 아티스트가 몇 없어서 힘들었는데, 한국에서 온 아티스트들이 있으니 매니지먼트를 하기도 좋았고.
서로가 서로 이익이었지. 그러다 2000년에 보하와 동방정기같은 가수들이 대박이 터지면서 베타벡스가 엄청 커질 수 있었어. 물론, 베타벡스 소속사였던 아무로 나미에, 하마사키 아유미 등도 같이 대박을 쳤었지.”
“그런데, 왜 요즘 어렵다는 말이에요?”
“베타벡스가 음반 유통사라고 했잖아.”
“아, 맞다. 음원이 아니라 음반 유통사라면 안 좋을 수밖에 없겠군요.”
“그래,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일본, 미국 다 마찬가지야.
빌보드 판매량 차트도 이제는 백만 장으로 1위를 찍을 수 있는 세상이야.
백만 장도 안되는 판매량으로 1위를 찍는 일도 이제는 비일비재하고.
천하의 비욘세도 이제는 백만 장대야. 이제 음반을 판매에서 나오는 돈으로는 스태프들 봉급 맞추기도 힘들 거야.
어쩔 수 없이 음반 수입보단 콘서트나 옷, 굿즈 같은 거로 수익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어.
음반회사에서 먼저 음원사이트를 만들고 했으면 좋았을 테지만, 현재 일본
음원 시장은 '아이튠즈'가 절대강자야 그 밑으로 '레코초쿠' 나 '모라' 같은
사이트가 있고, 그리고 또 웃기게도 일본은 2010년까지도 몇몇 기획사에서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고 온라인 음원과 스트리밍을 하지 않는 곳도 많았다는 거지. 당연히 유튜브에서 공짜로 MV를 올려버리면 DVD 판매가 안되니 유튜브에도 전혀 영상을 올리지 않았어.”
“헐, 음악방송처럼 자국에서 만든 음원사이트도 2개밖에 없는 거네요. 그리고, 플랫폼에 대한 대응이 너무 늦었네요.”
“그게 어쩔 수 없어 음원사이트의 기본이 되는 게 핸드폰인데 자국을 대표할 만한 핸드폰 브랜드가 없다 보니 더 그렇게 되어 버린 거지.
소니는 별도의 음원사이트를 운영하곤 있지만, 전체 휴대폰 시장에서 소니의 점유율을 보면 그 음원사이트의 규모가 얼마나 작은지도 알게 될 거야.
그러다 보니 한국이나 중국의 한류 팬들이 일부러 일본 아이튠즈에서 노래를 다운받고 해서 음원 줄을 세우기도 하는 거고.”
“확실히 지금의 일본은 이런 IT 관련이나 음악 쪽으로는 최악의 시기이네.
그런데 베타벡스는 음반 유통사인데, 그냥 매니지먼트를 차려도 되는 거예요?”
“베타벡스도 레이블을 거느리는 거지. 본사의 음반 유통업이 부진하다고 해도, 기존에 잘 만들어 둔 하위 레이블들이 매니지먼트와 다른 일에서 벌어들이는 거로 버티는 거지.
우리를 일본에서 매니지먼트 하는 ‘베타벡스 트레인’은 ‘SYG’는 물론이고 다른 한국 가수들의 대행 매니지먼트를 일을 하면서 열심히 벌어들이고 있어.
문제는 베타벡스 트레인이 야심 차게 데뷔시켰던 신인들이 줄창 망하고 있다는 거야. 그래서 미래가 없다고 더 걱정하는 거고.”
“확실히 신인들이 어느 정도 올라가지 못하면 걱정이 되죠.
그래도, 하위 레이블로 둔 회사에서 한국 가수들로 벌어들이는 돈이 꽤 된다면 재미는 있을 것 같긴 하네요.”
“그래서 요즘은 일본의 빅4라고 불리는 바닝 프로덕션, 호리프로, 스타더스트, 아뮤즈까지 한국과 연계하려고 하고 있어.
뭐, 빅4에 아뮤즈 대신에 주니스나 AKS를 넣어야 된다는 사람도 있고, 개그맨 전문인 요시모토 흥업을 넣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종합적인 능력을 보면 바닝, 호리, 스타더스트, 아뮤즈까지만 알고 있으면 될 거야.”
“조심해야 할 회사라는 거군요.”
“하하하. 그래, 주니스는 초반에 동방정기가 데뷔할 땐 방해도 있었지만, 한국에 진출하는 주니스 아이돌을 MSM이 지원해주기로 하면서 견제를 풀었어. 우리가 외국인이었기에 가능한 거였지.
그러지 않았다면 주니스가 잡고 있는 메인 예능엔 나가기 힘들었을 거야.
AKS는 여자 아이돌 쪽이니 상관없고, 요시모토 흥업도 개그맨 쪽이라 부딪히는 일은 없을 거야.”
“주니스의 한국 진출을 우리 회사가 돕기로 했다는데, 그럼 그 진출 결과가 안 좋았나요?”
“그래, 일본 내에서도 주니스 아이돌의 전성기는 90년대 2000년 초였어.
그때 우리나라는 일본 문화가 불법이었지. 정식개방이 된 이후에는 이미 서태진과 아이들, 듀슈, SHOT, 젠키, 신화신 같은 한국형 아이돌이 자리를 잡고 난 이후였지.
주니스 계열의 아이돌이 일단 가사전달, 댄스가 힘들다 보니 한국에 정식으로 진출했어도 큰 인기를 얻지 못했어.”
“결국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거군요.”
“그래, 처음엔 일본문화를 겁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았던 거지.
물론,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한국의 대형 기획사들이 하위 레이블을 거느리는 것도 그때 일본의 회사들에게 배운 거지. 직접 하지 않고 하청 주듯이 레이블에 맡겨 버리면 세금도 적게 낼 수 있는 꼼수도 있었으니깐.”
“이것도 우리만의 것으로 또 바꿔 가고 있는 거군요.”
“맞아. 이제는 오히려 일본의 큰 기획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어. 한국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세계시장을 노려보겠다고 하는 거지.
한국에서 이미 일본 기획사가 한/중/일 합작 아이돌을 데뷔시켰어.
더블크로스진이라고 알지? 그 팀이 아뮤즈란 일본회사 소속이야. 뭐 요즘은 활동하지 않지만.”
“한국이 일본에 진출하는 만큼, 일본도 한국과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군요.”
“이젠 서로 뒤섞여서 경쟁하는 거지. 자 도착했다. 여기가 내일 첫 일본 공연을 할 장소야.”
차가 멈춘 곳은 이야기만 들어봤던 요요기 공원이었다.
“공원 한쪽에 만들어진 저기 스테이지 보이지? 도쿄 시민들의 휴식을 위한 공원이자 3~4천 명을 모아서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야.
일단 호텔에서 짐 풀고 오후엔 리허설을 하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