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B-nation.
“그런데, 형들 일본에는 다들 가 보셨죠? 일본에서 TV 방송을 봤다면 아시겠지만, 일본 방송이나 잡지에서 하는 질문은 한국이랑 좀 많이 다를 거예요.
미리 좋아하는 음식, 색상, 취미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답을 준비해야 할거에요.
그리고 일본에 이미 방문해 봤다면 어떤 일본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생각해 두어야 해요. 진짜 시시콜콜한 잔잔바리 같은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일본 혼혈인 토모와 일본어 수업을 겸해서 놀고 있는데, 일본 데뷔 날짜가 결정되면서부터는 늘 일본 이야기를 토모에게 듣고 있었다.
“거기다 우리가 데뷔 무대를 가지게 될 ‘B-nation’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음악 축제에요.”
“부산 록 페스티벌이나 지산 록 페스티벌 같은 거 아니냐? 영상 찾아보니깐 비슷해 보이던데. 일본 데뷔 무대를 음악방송이 아닌, 페스티발 무대에서 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소원형, 음악방송보다는 이 ‘B-nation’ 무대에서 데뷔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에요. 말 그대로 개이득요.
일단 한국의 음악 축제들은 지역 명칭을 쓰는 만큼 한 지역에서 2~3일 일정으로 공연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뮤직 페스티벌들이 끝나요.
하지만, B-nation은 일본의 대도시를 여름 내내 돌면서 공연을 해요.
음악 장르도 록뿐만 아니라 댄스, 발라드 등 구분을 하지 않고요.”
“오, 여름 방학 시즌에 벌어지는 전국 투어 페스티벌이구나. 그러면 규모 자체가 한국과는 아예 다르겠네.”
“네, 투어 콘서트라 관중 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죠. 초창기에는 베타벡스란 회사에서 자기회사 소속의 가수들과 프로젝트 형식으로 열었던 여름 음악 축제인데, 이게 인기가 생기고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기획사 가수들이 다 참여를 하는 일본 최고의 여름 전국 투어 페스티벌이 된 거예요.
우리 회사 선배인 동방정기는 물론이고 빅턴, FR ISLAND등등 한국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는 아티스트들이라면 통과의례처럼 같이 투어를 도는 공연이에요.”
“그렇다면, 이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이유가 확실히 있는 거네. 홍보, 마케팅에서 작업을 치기 좋다는 말이잖아. 일본 전역 10여 개 대 도시를 돈다면 따로 일본 진출에 대해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될 거고, 이건 마치 한국 가수들을 일본 전역에 알리기 위한 공연 같네.”
“역시, 소원이 형은 경영자의 입장이네요, 홍보 비용이 절감되는 거라고 좋아하는구나.”
“소원이 말처럼 그런 마케팅 비용 부분에서 세이브된다는 이점이 확실히 있지.
그래서 일본에서도 이 ‘B-nation’을 그렇게 전국 홍보의 장으로 이용하려는 기획사들이 많이 있어.”
옆에서 이야길 듣고 있던 이용민 실장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토모는 알고 있겠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방송환경 자체가 좀 달라,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하는 방송을 전국의 시청자가 다 같이 보는 시스템이지만, 일본은 지역 민방이라고 하는 방송국들도 많고, NHK를 빼곤, 관동과 관서를 거의 별도의 방송환경으로 여기기도 해.
각 지역 기반의 연예인들이 활동하는 특이점도 있고. 그래서 전국적인 히트를 하는 게 참 힘든 동네야. 일본 전국으로 송출되는 음악 프로그램도 실질적으로는 NHK의 우타콘(うたコン) 밖에 없거든.
한국에 많이 알려져있는 TV아사히의 뮤직스테이션(엠스테), TBS의 CDTV도 실제로는 도쿄권만 송출이 되거든. 한국으로 치면 수도권 정도라고 보면 될 거야.”
“에? 전국에 송출되는 음악방송 자체가 1개 밖에 없다는 거예요?
아 그러고 보니 일본은 음반 판매량에 따른 오리콘차트는 있지만, 음악방송 자체적인 순위를 매기는 음악방송은 없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아예 음악방송 편성 자체가 작으니 그런 거군요.”
옆에 있던 제일이 형은 전국에서 볼 수 있는 음악방송이 1개라는것에 엄청 놀라는 것 같았다.
“제일이 말처럼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일본의 버블기라고 하는 1980년대에는 지금의 한국처럼 음악순위 프로그램도 있었고, 음악방송이 몇 개 더 있었지.
하지만, 버블이 끝나면서 1회 방송제작에 들어가는 돈이 드라마나 예능보다 큰 음악방송들이 비용적인 문제로 사라져 버렸어.
그때 이후 음악방송에 들어가는 비용 자체를 줄이는 게 지금도 남아있다 보니 한국과 비교해서 무대 규모나 질이 낮은 무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거지.
NHK의 우타콘의 전신인 팝잼의 경우에는 같은 무대를 5년 내내 사용했다고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음악 프로그램에 투자를 안 하는지 이해가 되지?”
“신기하네요. 음악방송은 없는데, 음반 시장은 세계 2위라니.”
“오히려, 그래서 콘서트, 공연 문화가 발달하게 된 거지 희한한 선순환이지?
팬들도 투자 없는 TV 음악 프로그램보다는 화려한 콘서트를 보고 싶어 하는 거지.
특히나 화려하기로 소문난 한류 가수들의 콘서트는 비싸더라도 그 화려함을 보기 위해 오는 거지. 단체 응원봉, 움직이는 무대효과 등등 시초는 일본이지만, 그런 게 다 K-POP에서 꽃이 펴버렸어.”
“그런데, 일본 가수들도 자기들 콘서트 무대를 좀 더 화려하게 하고 싶어 하지 않나요? 한국 가수들은 자기 콘서트에 시그니처 무대를 만들거나,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특별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고민을 하는데, 일본은 그런 고민을 안 하는 건가요?”
내가 이용민 실장에게 물어보자 그제야, 다른 멤버들도, 그래 왜 일본 가수들은 자기 콘서트 무대인데 한국 가수들보다 밋밋하게 하는 거지? 돔이나 큰 공연장에서 할 정도라면 그런 요구를 분명히 할 수 있을만 한 인기가 있다는 건데, 왜 안 하는 거지? 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흠. 그건 제가 보기엔 두가지 이유가 있는거 같아요.”
일본 혼혈인 토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연예인들이 월급제이기 때문일 거예요. 한국은 자기가 벌어들인 수익의 %를 가수들이 가져가겠다고 계약을 하지만, 일본 기획사들은 몇 군데를 빼곤 직장인처럼 월급을 받는 구조거든요.
연예인이 되는 것도 우리처럼 계약보다는 회사에 입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직장상사 같은 기획사 사람들에게 강하게 요구를 못 하는 걸 거에요. 직장 상사에게 대 놓고 뭘 해달라고 말 할 수 있는 일본인은 거의 없거든요.”
토모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캐스팅되어 소속되는 게 아니라, 입사를 하여 직원이 되는 거라면 자신의 의견을 위에 강하게 말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돔 투어를 할 정도의 가수들이 일본에는 밴드 팀과 주니스 소속의 남자 아이돌밖에 없다 보니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단 음악성과 다정함 같은 걸 더 강조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콘서트의 화려함은 차선으로 밀려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모르지만, 아버지 말로는 80년대 일본 아이돌인 소년대나 히카루겐지 같은 팀들은 지금의 K-POP 가수들처럼 댄스와 노래가 다 되는 아이돌들이었다고 하거든요.
그런 아이돌 보단 다정하게 다가와 주는 아이돌들이 대세가 되다 보니 지금의 일본 아이돌계가 기술적으로 퇴화가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토모 아버지가 제대로 아시네. 방송의 전체적인 방향이 버블붕괴 이후 예능 방송으로 웃겨주는 형태로 바뀌자 노래 잘하고 춤을 잘 추는 아이돌보다는 예능 방송에서 웃겨주는 아이돌, 이성에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아이돌이 대세가 되어 버린 거지.
주니스에서 스맙보다 1년 빨리 데뷔한 ‘닌자’라는 그룹이 있어.
무대에서 군무와 백텀블링을 하는 나름의 육체파 아이돌이었는데, 춤도, 노래도 더 못하는 스맙이 다정다감을 무기로 승승장구했고, 노래와 댄스에 치중했던 닌자는 신인상 이후로는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어.
그래서 스맙 이후의 아이돌들은 댄스나 노래 같은 실력보단 예능에서의 캐릭터 성을 더 키우는 게 중점이 된 거지.”
“이용민 실장님 그럼 우리도 일본 예능에서 보일 다정다감을 연습해야 하는 거예요?”
애교가 없어서 다정다감이 좀 힘든 정환이가 심각하게 물어봤다.
“아니,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거야. K-POP 한류 아이돌은 완벽한 댄스, 가창력이 생명이야. 그거면 충분해.”
“토모와 실장님의 말을 들으니 일본 데뷔가 대충 파악이 되네요. 그리고, 우리가 ‘B-nation’에서 뭘 보여줘야 할지도 알 것 같아요.
음악방송으로 커버가 안되는 지역은 ‘B-nation’과 같이 움직이며 우리 YAM을 최대한 홍보해보죠.
주최사인 베타벡스에서 알아서 대도시마다 관중들을 모아줄 테니 최대한 화려한 무대를 보여줘야겠습니다. 그래야 일본 아이돌과는 다르다는 게 어필이 될테니깐요.”
“소원이가 정확하게 봤어. 그래서 우리 회사에서 일본으로 진출했던 모든 가수가 B-nation으로 일본 데뷔를 하는 거야.
거기다, 공연하는 대도시 간에 이동하는 날짜를 배려했는지 공연 일자에 여유가 좀 많아. 그래서 한국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쉬워.
여러 부분에서 우리에겐 아주 큰 이득이 되는 음악 페스티발이야. 그러니 한국처럼 음악방송이 아니라, 이런 축제 무대에서 데뷔하는 걸 이상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네, 이런 일본 특유의 상황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거긴 진짜 뮤직 페스티벌이라 무대 뒤 대기실에서 술도 마시고, 뮤지션들 끼리 즉흥연주나 단체 술자리 같은 것도 자주 만들어지니깐 꽤나 재미있을 거야.
물론, 미성년자는 당연히 제외야. 그리고, 너희가 기대하는 여자 가수들은 대부분의 술자리에는 안 나타나니깐 기대는 말고.”
“형들 아쉬워하는 표정이 바로 나오는데요. 하하하
그리고, 거기서 여러 뮤지션들을 만나더라도 조심해야 하는 곳이 있어요.
바로 주니스 사무소라는 곳이에요.”
“왜? 거긴 남자 아이돌 전문이잖아? 남자들끼리도 스캔들 신경 써야 하는 거야?”
“아,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페스티벌 대기실에서 서로 알게 되어 친해지더라고 주니스 소속의 사람들과는 셀카를 절대 찍으면 안 돼요. 남자 연예인들끼리 친해져서 자기 사진을 SNS에 올리듯이 주니스 소속의 친구와 찍은 사진을 올리면, 바로 주니스 사무실에서 연락이 와서 지우거나 초상권료를 내라고 하는 곳이에요.”
“헐? 진짜야? 보통은 그 정도는 놔두지 않냐?
초상권이나 인물저작권에 민감한 미국도 SNS는 홍보에 도움이 되니 그냥 놔두잖아.”
“네, 한국이나 미국이라면 그럴 거예요. 하지만, 일본은 그런 게 안 돼요.
주니스란 회사가 원래 그래요. 그러니 일본에 있을 때는 무조건 경치 사진만 올리세요.
한국에선 미성년자 아이돌 멤버가 술, 담배 정도 하는 거로는 웬만해서는 팀에서 방출이나 탈퇴를 당하지 않잖아요. 그냥 사과하고, 자숙을 하며 몇 년 쉬다 오면 다 받아주니.
그런데, 주니스 기획사는 미성년자가 음주, 흡연하다 걸리면, 팀에서의 방출은 물론이고 아예 연예인으로서 생명이 끝이 나버려요. 마치 실직을 당하는 것과 같죠.”
“미성년자라는 게 조금 그렇게는 한데, 음주, 흡연을 했다고 팀 방출에 아예 연예인 생명이 끝나는 건 좀 그렇네.”
“거기다, 부업도 마찬가지예요.”
“부업?”
“아, 겸업 금지라고 하는 게 더 빨리 이해가 될 것 같네요.”
토모가 단어를 바꾸자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미 MSM을 휩쓸고 간 문제였다.
“일본에선 연예인 생활하면서 다른 직업을 가지거나, 연예인의 유명세로 개인적인 이득을 보게 된다면 계약 불이행으로 회사에서 방출을 해버려.
원래는 한국도 마찬가지였지만, 동방정기의 화장품 사업사건 이후로는 아예 회사에서 아티스트의 겸업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버렸지.
일본과는 확실히 다른 거야.”
이용민 실장의 말을 들어보면 MSM은 사고가 난 이후엔 그래도 외양간은 고치긴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은 팬들의 직캠이나 사진에 대해서는 거의 무한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해주지.
심지어, 굿즈까지 만들어서 팔아도 전국 유통만 아니라면 그냥 넘어가 주고 있어. 시장을 키우기 위한 작업을 하는 거지.
하지만, 일본의 5대 기획사니 7대 기획사니 하며 불리는 유명한 기획사에서는 사진 한 컷, 목소리 한 부분이라도 다 초상권을 따져 버려.”
“와, 저작권, 초상권이 어마어마하네요.”
“그래, 그러니 혹시라도 주니스 그쪽 애들과 방송하다가 친해지더라도 사진은 절대 올리지 마.
이런 특유의 폐쇄성을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해.
심지어, 대부분의 한국 기획사라면 다 가지고 있는 유튜브 공식 채널도 아직 없는 기획사 들이 많아.”
“이야, 그건 너무한데, 기획사가 일을 하지 않는 건가?”
“그러게, 그런데, 이용민 실장님 이야길 듣고 보니 왜 지금의 일본음악이 힘을 못 쓰는지도 알 것 같네."
인터넷과 유튜브가 덕질을 위한 가두리 양식장인데, 그런 부분에 신경을 안 쓰거나 초상권으로 돈을 벌 생각만 하고 있으니, 같은 일본 안에서도 팬질 자료의 공유가 힘들었을 테고, 유튜브에서 화제가 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연예계가 갈라파고스화되어 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