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데뷔의 향방.
“소원아, 우리가 만든 곡 중에서 진짜 김 켈리 감독님이 마음에 들어 하는 곡이 있었다고?”
“네, 형이 보내준 곡 중에서 8곡을 뮤지컬 드라마에 쓰고 싶데요. 다만, 뮤지컬 형태로 편곡이 좀 들어갈 거고요. 그리고, 곡비는 신인 작가들 평균기준으로 계산해드릴게요. 결국, 다 제 돈으로 나가는 거라 이해해 주세요.”
“뭐, 그 정도면 괜찮지, 우리가 YAM이지만 저작권 쪽에서는 신인이니, 신인 작사가나 작곡가가 자기 이름도 못 쓰고 곡 뺏기기도 하는 게 이 바닥이잖아. 곡비까지 준다면 다행이지. 그런데, 계속 카메라가 붙는 거야?”
“아, 카메라 들고 있는 게 제 친형이에요. 제일이 형이랑 동갑이에요. 카메라 장비를 천만 원대로 사고 나서는 찍는 거에 맛 들여서 무조건 찍어요. 실력만 된다면, 뮤지컬 드라마 비하인드 형태로 한편 만들어 본다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나는 물론이고 제일이 형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부담이 없다 보니 기원이 형의 카메라를 달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연습실로 움직였다.
YAM 멤버들이 만든 노래들을 뮤지컬 드라마에서 부르기로 한 것도 있지만, 제일이 형이 우리 중에서는 가장 긴 시간인 5년 동안 연습생으로 있었기에 그 연습생의 기준에서 코멘트를 듣고 싶어서 따로 부른 거였다.
“안녕하세요! 하늘 소녀입니다!”
애들도 연예인을 본다는 게 기쁜지 웃으며 반겼고, 제일 형도 예쁜 여자애들을 마주하게 되자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소원이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열심히 준비하고 있고, 데뷔전 뮤지컬 드라마에 우리 YAM이 만든 곡들을
부른다고 해서 굉장히 많이 기대하고 왔습니다.
일단 편안하게 이제껏 연습해왔던 거 한번 볼까요?”
“저.. 뮤지컬 곡은 아직 안무나 노래가 1절 정도밖에 숙지가 안 되어있어서요.”
“아, 곡이랑 받은 지 얼마 안 되었구나. 그럼 연습한 것까지 한번 보여주세요. 지켜보고 있다고 너무 부담가지지 말고요.”
제일이 형은 나름 생글생글 웃으며 애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듯이 한쪽에 앉았다.
[하루종일 나를 웃게해 i like it you~
눈부시게 밝은 선샤인, 설레이게 우리를 비추고
모두가 발을 맞추어 걷고, 모두가 같이 가네.
마음을 모아봐, 널 향한 Peep-bo!
Ra Ra Ra~ 늘 바래왔던 그 꿈이 오늘 이루어지는 거야...]
다현이가 만든 곡으로 ‘모두의 미래’란 곡인데, 김켈리 감독이 선곡 후 편곡을 했기에 처음의 곡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편곡과 안무가 나오는 기간이 있었기에 실제 연습은 사나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제이는 삑사리를 내고, 미영이는 안무를 실수하며, 거의 전 멤버들이 실수 연발이었다. 그래도, 실수했음에도 웃으며 다시 곡을 소화하는 게 다행으로 보였다.
“이 노래 받은 지 며칠 되었어요? 제대로 연습한 거 맞아요?”
노래가 끝이 나자마자 제일이 형이 질문을 했다.
“삼 일 전에 받았습니다.”
연습실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생글거리는 웃음 대신에 정색한듯한 제일이 형의 표정을 보곤 루시아가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습니다’를 붙이며 대답을 했다.
“사흘이나 연습을 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면 너무 습득이 느린데, 이래도 데뷔가 되려나? 소원이가 한번 봐달라고 한 이유를 알겠네.
기본적으로 댄스를 하면서 노래를 같이하는 건 참 좋았는데, 노래 실력이 부족한 친구들이 너무 많아.
파트분배를 다시 하든지 해서 좀 더 보컬에 강한 친구들에게 제대로 부를 기회를 줘야 할 것 같아.
댄스에 강점이 있는 친구들은 댄스에만 좀 집중해야겠고. 다시 파트 분배를 해야 할 것 같아.
지금 파트 분배는 누가 했어? 너무 기계적으로 분배한 거 같은데.”
“리더 언니가요.”
“리더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라, 리더는 파트 분배할 때 감정이 없어야 해.
파트 분배할때 이 애는 보컬이 좋다면 보컬을 몰빵해주던지 해야지 멤버마다 균형 있게 배분해준다고 해서 깍두기 썰듯이 파트를 나눠 버리면 죽도 밥도 안되는 거야.
시간이 있을 때 파트 분배를 다시 해, 보컬에 강한 친구들에게 파트를 많이 줘. 그게 팀이 사는 거야.”
“네에.”
“그리고, 외부인이 와서 연습장면을 보는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외부인에게 본인들의 무대를 보여준 거야. 실수했을 때도 절대 웃으면서 얼버무리면 안 되는 거야.
나중에 무대에서도 실수했다고 웃으면서 그냥 넘길 거야?
멤버들끼리만 있고 내부인들만 있다면 웃으면서 야 틀렸어! 하는 말도 하면서 연습을 할 수 있어.
하지만, 외부인이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그 연습도 무대가 되는 거야. 절대 웃으며 장난치면 안 되는 거야.
데뷔를 한다면 프로의식을 가지고 프로처럼 행동해야지.”
제일이 형의 지적에 하늘소녀 멤버들은 물론이고, 나도 느끼는 게 많았다.
“이미 회사에서 데뷔 일자가 정해지고, 이제 진짜 데뷔한다고 마음이 들뜬 건 알겠는데, 너무 마음을 풀어 둔 거 같아.
정말 간절한 사람이 데뷔를 할 수 있는 건데, 소원이네 회사의 하늘소녀 친구들에겐 전혀 간절함이 보이지 않아.
데뷔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데뷔에 대한 간절함을 좀 더 가져.
그게 데뷔하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한 예의니깐.”
제일이 형의 말을 듣고 애들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보일 것 같았기에 제일이 형을 데리고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그냥 단순한 감상을 이야기해달라고 했는데, 너무 안 좋은 말만 해서 미안하네.”
“뭐, 저걸로 좀 깨닫는 게 있겠죠. 멤버로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있다 보니 모진 말을 제가 하기는 힘들었는데, 제일이 형이 모진 말을 해줬으니 알아서 잘하겠죠.”
“햐, 이렇게 나만 쓰레기가 되는구나. 애들 예쁘던데.”
나쁜 사람으로 몰려버렸다는 것을 한탄하는 제일이 형을 웃으며 달래주었다.
**
“엔오원의 뒤를 이어 국민들의 투표로 선발된 프로듀스 108의 주역 콜라보걸입니다!”
개그맨 출신 진행자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실루엣으로 보이던 소녀들이 무대로 나타나자 무대를 둘러싸듯이 지켜보는 팬들은 열광의 함성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어지는 데뷔곡 ‘ride on the wind’ 노래가 나오자 중계를 해주는 카메라가 흔들릴 정도로 열광의 도가니가 연출되었다.
“이야, 노래 제목처럼 바람에 올라타듯이 날아오르겠네. 부럽다.”
“그러게. 나도 저기에 뽑힐 수 있었는데, 아쉽다.”
“미영이 넌 40위도 안 되었었는데, 오바가 너무 심하다야.”
자극을 좀 받으라고 하늘소녀애들과 같이 콜라보걸의 데뷔 콘서트를 보고 있었는데, 데뷔 콘서트에서부터 대박이었고, 같은 경쟁자의 입장임에도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데뷔한 엔오원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본격적인 매니지먼트사업으로 진입하는 CH미디어의 압도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무대였다.
네이버의 실시간 순위까지 모두 점령을 한 것을 보니, 콜라보걸의 견제를 위해 데뷔시킨다는 다른 기획사의 걸그룹은 그냥 생매장이 될 것 같았다.
이주마다 데뷔하는 다른 팀들이 어떻게 될지 뻔해 보였다. 어떻게든 데뷔하는 시기를 늦추어야 했다.
“네 태수형. 전화 받았어요. 이 시간이면 무대 올라갈 시간 아니에요?”
“소원아! 놀라지 말고 들어! 고스트가 토니상 극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단다. 지금 언론사들이 연습실로 들이닥쳐서 난리다. 너도 빨리 와야겠어. 민호형도 지금 바로 오기로 했으니깐 빨리 와라.”
태수형의 전화를 받고 나서 드는 생각은 ‘그래 이거다!’ 하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물론, 내가 고스트에 투자한 투자자이기도 했기에 앞으로 공연에서 들어올 이익을 생각하니 더 기분이 좋았다.
연습실로 급하게 가니 태수형의 말처럼 난리까지는 아니라도, 언론사와 기자들이 와서 인터뷰를 따고, 연습장면을 찍고 있었다.
“아, 소원이가 왔네요. 윤소원과 김민호, 서태수 이렇게 세 명이 우리 고스트 뮤지컬의 주연입니다.”
김켈리 감독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서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처음부터 무대를 같이 준비했던 배우들 모두가 들떠있었다.
급하게 민호형과 같이 옷을 갈아입고, 연습실에서 무대의 몇 장면을 보여줬고, 이후엔 인터뷰에 들어갔다.
“현재 고스트 이외에는 다른 작품 연출을 하지 않으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혹시 김 감독님이 따로 연출하고 싶은 작품이 있으신가요?
그런 작품이 없다면 고스트처럼 김 감독님만의 오리지날 뮤지컬을 준비하고 계시는가요?”
“아, 현재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유튜브와 함께 뮤지컬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걸 밝혀도 될는지 모르겠네요.”
김 감독이 내 눈을 쳐다보자 난 고개를 급하게 위아래로 움직였다. 제발 소개해주세요. 하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고스트 뮤지컬에도 투자를 했던, 윤소원 사장이 제작을 의뢰한 작품으로 유튜브 프리미엄 공개 작품입니다.
‘플라이 하이(fly high)’ 란 제목인데, 제목 그대로 K-POP 스타로 데뷔해서 성공을 꿈꾸는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아, 그럼 기존의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상 쪽으로도 진출을 하시는 건데, 그러면 앞으로는 계속 영상 쪽으로 진출을 하시는 건가요?”
“저도 처음으로 도전해 보는 장르이다 보니 확답을 드리기는 곤란할 것 같군요. 다만, 음악이 흐르는 모든 것은 다 재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뮤지컬이든 뮤지컬 드라마이든 앞으로도 국내 뮤지컬 분야를 위해 힘쓸 예정입니다.”
김켈리감독의 인터뷰에 언급은 되었지만, 이 몇 마디 말로 화제가 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
“다행히, 기자들이 아는 친구들이라 말이 좀 쉬웠습니다. 하하하.”
“뭐가 말인가요?”
인터뷰를 끝내고 연습실을 나오는데, 김일규 부장이 한껏 웃으며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
유튜브 전달 건에서 사고를 쳤을 때 한소릴 해서 조용히 하늘소녀 애들만 케어하는지 알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웃으니 걱정이 되었다.
“고스트의 토니상 노미네이트와는 별도로 따로 기사를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토니상 후보로 오른 김켈리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뮤지컬 드라마를 만든다는 기사를 내어주기로 했습니다.
뭐, 영업비로 얼마 정도는 들겠지만, 그런걸 윤사장님이 원하신 거 아닙니까?”
“진짜 따로 기사 내어준답니까?”
“그럼요. 저도 뮤지컬 쪽은 잘 몰라도 토니상이 뮤지컬 계의 아카데미상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상에 후보로 오른 사람이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하기로 했다면 대단한 거라고 봐야죠. 기자들도 받아 먹은 게 있는 만큼 알아서 잘 써줄 겁니다.”
“역시, 이런 데서 이 바닥 연륜이 드러나는 거 같네요.
기사 나오면 그거 들고 같이 MSM으로 들어가죠. 민수민 회장이 미국으로 가 있을 때, 이걸 핑계로 어떻게든 날짜를 미루어 봅시다.”
내가 잘했다는 듯이 칭찬을 하자, 김일규 부장은 자신만 믿으라며 크게 웃었다.
그리고, 다음날 김 부장의 호언장담대로 고스트의 토니상 노미네이트와는 별도로 김켈리 감독이 연출하는 뮤지컬 드라마 ‘플라이 하이’에 대한 기사가 3개나 올라왔고, 이 기사들을 보여주며 데뷔 일정을 늦추기 위해 MSM으로 향했다.
“만들어 낸 핑계가 이거야?”
“네? 핑계라니요?”
김일규 부장과 같이 스크랩한 기사들을 내밀자마자, 전상일 본부장은 핑계가 이거냐며 물어왔다.
“이미 다른 기획사 사장들이 오늘 아침부터 와서는 데뷔날짜 미뤄달라고 난리를 피우고 갔다.
회장님이 미국으로 출국한 것도 있겠지만, 그냥 녹아웃(Knockout) 패배야.
어제 데뷔한 콜라보걸 음원이 줄 세우기 하고, 네이버 점령하면서 그냥 게임은 끝난 거야.
너랑 김 부장도 이걸로 데뷔 날짜 미뤄 달라고 할거잖아.”
“네..그게 맞습니다.”
“뭐 어쩔 수 없지, 경쟁자가 없을 때 데뷔해도 될까 말까인데, 대형 걸그룹이 확실해져 버린 콜라보걸과 싸우기가 힘들지.
기획사 2~30년의 의리로 CH 미디어를 막겠다고 마음을 합친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이렇게 되어 버리네.
래드샵이야 자회사이다 보니 강제로라도 날짜 지켜서 데뷔시키면 되겠지만, 이미 다른 회사들이 이탈을 해버렸는데, 데뷔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잖아.”
전상일 본부장은 같이 방송국에 종속되는 매니지먼트업계를 지켜내겠다며 항전의 의지를 보인 기획사들이 금세 꼬리를 말아 버리자 이 바닥의 의리란 것에 대해서 현타 같은 게 온 것 같았다.
“아마, 지금은 그냥 넘어가겠지만, 첫 번째 프로듀스와 두 번째 프로듀스까지 성공했으니, 향후 세 번째를 할 때쯤이면 그 규모가 더 커질 거야.
어떻게 화제를 만들고, 어떻게 매니지를 해야 뜰 수 있을지를 CH 미디어 산하의 기획사들이 배웠을 테니깐.
회장님은 그걸 두려워했기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다른 기획사의 싸울 의지 자체를 콜라보걸 애들이 꺾어 버렸어.
그러니 윤사장도 애들 데뷔는 알아서 해. 경쟁해서 싸우겠다는 건 이미 끝난 거니깐.”
MSM의 건물을 나오는데, 다행이면서도 씁쓸했고, 그제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전생에서도 프로듀스를 통해 나오는 그룹들과 그 그룹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그룹들이 아이돌 방송의 절반 가까이 차지를 했었다.
그러다 보니, Big3 기획사를 제외하곤 중소 기획사는 어쩔 수 없이 연습생을 프로듀스 방송이나 오디션 프로그램에 보낼 수밖에 없었고, 기획사들의 자체적인 기획력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될 수밖에 없었다.
“괜히 회사를 차린 거 같다는 후회가 드네요. 그냥 아이돌만 할 걸 그랬네요. 생각할 게 너무 많아요.”
“그게 경영자라는 거지. 그리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만큼 더 많은걸 얻게 되니깐.
그건 그렇고, 혹시 여유자금이 좀 있긴 있어?”
갑자기 돈 좀 있냐고 물어보는 김일규 부장의 말에 걱정이 두 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