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74화 (174/237)

# 174

바지가 필요해. (1)

은채의 전화를 받고 급히 간 곳은 63빌딩이었는데, 우울한 목소리에 대한 걱정과는 달리 카페에 앉아 있는 모습이 편안해 보여서 안심을 했다.

창밖 전망을 보기 위해 창에 붙어 있는 테이블이라 같이 창밖을 보며 앉았다.

“전망 좋지? 회사 연습실에서 바로 온 거야?”

“그래, 전화 받고 바로 왔어. 괜찮은 거야?”

“좀 그래, 그런데 YAM은 좋겠다. 우리 ‘피치나인’은 어제 활동이 끝났어. 오늘부터는 자유인데, 할 게 없더라.”

“그런데, 이렇게 너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활동이 없더라도 숙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마스크는?”

커피를 주문하는데, 우리 둘을 힐끔거리는 웨이터가 의식되어 밖에 다닐 때 쓰는 마스크를 가지고 왔는지 물었다.

창밖을 보는 자리라 직접적인 얼굴을 보이는 자리가 아니기는 했지만, 주위의 신경이 쓰이긴 했다.

“숙소는 집에 간다고 하고 나왔어. 집이 지방인 애들은 어쩔 수 없지만, 서울사는 애들은 스케줄 없을 때 그냥 집에 가서 있어도 된다고 하더라. 언제 다시 스케줄이 잡힐지 모르니 방치되는 거 같아.”

“회사에서는 수고했으니깐 쉬게 해주는 거겠지. 활동 끝나고 나면, 재충전이 필요하긴 해.”

“YAM은 좋겠다. 스케줄도 있고, 할 일도 많고.

있지, 나 여기 어떻게 온 지 알아? 그냥 지하철에 버스 타고 왔어. 처음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누군가가 날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사실 좀 했었다.

그래서 마스크도 챙겼었어. 그런데,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 웃기지? 알아볼까 봐 마스크도 챙겼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고 관심받지 못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은채를 어떻게든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평상시라면 ‘이 관심종자가 오바하네!’ 하면서 장난치듯이 말을 했겠지만, 지금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2집에서 대박이 나면 앞으론 대중교통 이용이 불가능할 거니깐 지금을 즐겨. 나중엔 지금의 이런 자유를 그리워하게 될걸. 자유로울 때 즐겨. 나중에 되면 진짜 지하철 버스 타는 것의 소중함이 그리울거야.”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거 알아? 지금 우리가 있는 63빌딩 스카이라운지 카페가 예전에는 커피 한잔시키고 이렇게 2~3시간 앉아 있을 수가 없었데.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 커피를 마시면 바로 일어나야 했었데.

하지만, 지금은 내가 커피 한잔에 3시간 넘게 있어도 아무 말 안 할 정도로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

“옛날엔 최고 높은 건물이었지만, 이젠 더 높은 건물이 많아지다 보니 어쩔 수 없지.”

“그래. 이젠 그냥 오래된 건물일 뿐이야. 아이돌도 63빌딩 같아 더 높은 건물이 생겨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처럼 인기 없는 아이돌들은 지금의 63빌딩 같아.

찾아 주는 이,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무명 아이돌 같아.

유튜브나 빌보드에서는 K-POP을 찬양하지만, 나 같은 무명 아이돌은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아. 마치, 손님이 없어서 한가한 이 63빌딩 스카이 라운지 같아.”

지금 자신의 처지가 손님 없는 63빌딩 같다는 말을 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데, 그런 은채를 보니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고대하던 MSM 걸 그룹으로 데뷔를 했지만, 그 결과가 오히려 전보다 못하니 실망한 것 같았다.

5년 가까이 걸그룹 데뷔만을 보며 연습을 하고, 그 전엔 프로젝트로 데뷔했던 ‘영시스터’가 어느 정도는 인지도가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데뷔한 ‘피치나인’의 결과가 오히려 더 좋지 않으니 뭔가 퇴보한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긴 것 같았다.

‘내가 널 알아봐 주잖아.’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런 입에 발린 칭찬보다는 눈물을 흘리며 속에 들어찬 화를 흘려보내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우는 은채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감싸 안고 한참이나 우는 은채를 안아줬다.

내가 들어오며 주문한 커피를 웨이터가 조심스레 놓고 가고 다른 자리의 손님들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렇게 둘이 한참이나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에서 빛나는 저 불빛들만큼 나도 빛날 수 있을까? 저 수 많은 불빛 중에서도 크게 빛날 수 있을까?”

“그럼 물론이지. 이제 2집이 나오면 반응이 엄청나게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요즘은 데뷔 1집부터 인기 끌면서 대박이 터지는 게 거의 없어.

우리 YAM도 데뷔 앨범 망한거 알잖아. 지금 최고의 인기 걸그룹인 블루코튼도 3집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음악방송에서 1위를 했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MSM은 반드시 1위를 하게 만들어 주니깐 걱정하지마. 이번에 NTC321도 4년 만에 공중파 1위였어.”

“선배들도 데뷔 앨범이 그냥 흘러갔을 때 나처럼 이렇게 힘들었을까?”

“선배들도 힘들었겠지. 그리고 그걸 다 이겨 냈잖아. 특히나, ‘피치나인’은 데뷔 시기가 너무 안 좋았어. 데뷔 후에 바로 금한령이 터지면서 회사가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서포터를 해주지 못한 거였잖아.

이제 2집에서는 회사에서 제대로 서포터 해줄 테니까 걱정 마.

제대로 서포터 해주기 위해 일정을 짠다고 2집 일정이 늦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게 더 좋은 걸 거야.

그리고, 내 눈엔 창밖의 저 불빛들보다 네가 제일 빛나고 있어. 눈이 부실 지경이라니깐.”

내 말에 슬며시 웃는 은채를 보니 실컷 울고 난 이후에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았다.

우울해하는 은채의 기분을 살리기 위해서 무한 칭찬을 해주며, 예쁘다고 주문처럼 계속 속삭여 줄 수밖에 없었다

**

“창가에 있는 저 커플 연예인 같은데, 누구지? 디스패치에 신고하면 바로 알려주려나?”

“여자가 처음에 왔을 때 미끈한 게 모델급이라 엄청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온 남자도 만만치 않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진짜 연예인인가?”

“그런데, 저렇게 안고, 뽀뽀하고 하는데, 사진 찍히는걸 두려워하질 않네.”

“그러게, 연예인이 아닌가? 진짜 저 정도도 연예인이 안 되는 건가?”

“연예인이라도 듣보겠지. 이름 있는 애들이 저렇게 여기와서 꽁냥 거리겠어? 그리고, 유명한 연예인들은 그 프라이빗한 집으로 불러서 만나거나 매니저가 잡아 준 호텔에서 만난다잖아.”

“진짜야?”

“그래, 남친 집에 찾아가던 기현이 사진 봤잖아. 유명한 연예인들은 비싼 오피스텔이나 빌라로 불러서 만나지 이런 데는 안 오지.”

“그렇겠네. 63빌딩 스카이 카페에 와서 저렇게 몇 시간 있을 정도면 진짜 일반인 훈남 훈녀거나 신인 듣보 연예인이겠네. 제보해도 별 재미 없겠다.”

“그러니, 다들 신경끄고, 마감 정리나 시작하자. 누가 재들에 마감 시간이라고 알릴래?”

**

“은채야 여기 영업시간 끝났나 보다 우리도 나가자.”

우는 은채를 내가 감싸 안아준 이후로 나에게 딱 붙어 있는 은채를 그대로 옆에 끼고 63빌딩을 나서는데, 여기저기서 마주치는 시선 때문에 둘 다 마스크를 쓰고 급히 택시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숙소 나올 때는 진짜 짜증 나고 우울했는데, 너랑 이야기하고 하니깐 기분이 좀 나아졌어.”

“다행이네. 어서 집에 들어가 아파트 현관 들어가는 거 내가 보고 있을게.”

“고마워.” 하며 은채가 다시 안기는데,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아파트 단지에 사람들이 보였지만, 주위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마음이 가는 데로 나도 은채를 마주 안았다.

“소원아, 이거 하나만 약속해주면 안 돼?”

“무슨 약속?”

“일단 손가락 약속부터 해줘.”

품에 안긴 체 내밀어진 은채의 손가락과 손이 바르르 떨렸는데, 뭔가 마음을 먹고 하는 것 같아서 무슨 약속인지 더 묻지 않고 나도 손을 내밀었다.

은채가 키가 큰 만큼 새끼손가락도 가늘고 길었고, 우윳빛의 뽀얀 손은 내 손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가냘파 보였다.

뱀이 서로 몸을 비비 꼬듯이 내 새끼손가락과 은채의 새끼손가락이 엉키듯이 꼬였고, 접혀진 손가락들이 마주 붙으며 서로의 엄지가 자석마냥 끌어당겨 연결되었다.

내 턱 밑까지 올라온 은채의 손에서는 복숭아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부드러운 과육을 움켜쥔 듯이 은채의 손은 부드러웠다.

약속의 도장을 찍고도 둘의 손은 한참이나 가만히 있었다.

한참이 지나 둘의 엄지손가락이 떼여졌지만, 엉겨 붙은 새끼손가락은 쉽게 풀어지지 않았다.

“그래, 무슨 약속이야?”

“네가 언제까지나 지금의 소원이로 있어 준다는 약속.

내가 인기 없는 여자 아이돌이 되더라도, 언제나 나를 만나주겠다는 약속.

그리고, 내가 너만큼 높이 올라갈 때까지 거기서 날 기다려 준다는 약속.”

세 가지나 되는 약속을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했는데, 말을 끝내고 나서는 숨을 몰아쉴 정도였다.

아마도, 자신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나는 높은 곳에 있다 보니 거기서 오는 불안감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약속이라면 언제든 할 수 있지. 그 반대의 경우에는 은채 너도 약속한 거다.”

“알았어. 나도 꼭 지킬게.”

“그래, 나 다시 회사 들어가 봐야 해. 약속은 오늘부터니깐 높은 자리에 계속 있기 위해 노력해야지. 어서 들어가 봐. 지켜보고 있을게.”

내가 흔쾌히 약속을 해줘서 기분이 좋은지 아파트 입구로 가면서도 덩실거리며 걸어갔고,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갈 때는 양손을 흔들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8층 은채의 방에 불이 켜지고 창문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곤 다시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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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윤사장 늦은 시간에 회사로 들어오라고 해서 미안해.

회장님이 시차 적응이 아직 안 되다 보니 늦은 시간에도 여러 사람을 불러선 회의를 하시고 있어. 이해 좀 해.”

“일본진출 결정을 바로 해주셔서 그거 준비한다고 다들 밑에 있었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전상일 본부장이 미안해했지만, 대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우리 MSM의 중역뿐만 아니라, 타 기획사의 사람들까지 30여 명이 가득 들어차서 특이한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래, 소원아 너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걸그룹이 있다고 했지?”

민수민 회장이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훅 치고 들어왔다.

“네, 유영찬이사의 권고대로 데뷔를 미루고 있습니다.”

“그럼, 준비가 이미 다 되어 있는거네, 당장 데뷔 시켜.”

“네? 왜 갑자기 그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전략기획팀의 김우성입니다.

레드샵의 걸그룹과 영찬기획의 나르걸스, 페스티발엔터의 어웨이, 엘리멘탈엔터의 레츠걸까지 2주마다 한 팀씩 데뷔하기로 이야길 하고 있습니다.

레드샵의 걸 그룹까지 2달 동안 데뷔하는 4개 걸그룹을 우리 MSM과 여기 모이신 다른 엔터 업체에서 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주마다요? 이게 무슨....”

“CH 미디어에서 데뷔하는 ‘콜라보원’을 견제하기 위해서지.”

콜라보원이면, 이번 프로듀스108에서 만들어진 걸그룹이었다. 갑자기 콜라보원 걸그룹을 견제하기 위해 다른 걸 그룹들을 데뷔시키겠다는 말을 들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소원이 네가 데뷔했던 엔오원은 매니지를 대행했던 대상프랜차이즈란 별도의 기획사가 있었지만, 이번엔 아예 CH미디어에서 매니지먼트를 직접 한다고 하더군.

방송 채널에서 이젠 가수들을 직접 소유하는 시대로 역행을 하려고 하는 게 문제인 거야.

내가 처음 데뷔했던 1976년도에는 방송국의 전속 가수, 전속 배우, 전속 개그맨이 있었던 때지.”

민수민 회장이 마치 옛날을 생각하듯이 눈이 가늘어지며 내게 이야길 시작했다.

“그땐 가수든, 배우든, 개그맨이든 방송사 사장이 새벽에 오라고 하면 가야 하는 시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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