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왜 무대에 서냐? - 9권 시작
“그럼 또 컴백이 기약 없이 미루어지는 겁니까? NTC321과 한 달 차이로 컴백하면 안되는 겁니까?”
“컴백 시기가 겹치는 NTC321 때문이 아니야. 소원이 너 말대로 한 달 차이 컴백이면 괜찮지.
어제 연락을 받았는데 중국의 미준이와 소혁, 위안이가 조만간에 한국으로 들어오기로 했어.
회사로선 완전체로 YAM이 컴백했으면 하는 거지. 그래서 컴백을 좀 미루자는 거야.
너도 이번에 컴백한 슈퍼키즈의 매출 추이를 봐서 알겠지만, 금한령이 내려진 상황에서도 앨범 판매의 40%가 중국에서 나왔어.
심정적인 부분과는 별도로 회사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을 놓아 버릴 수가 없어. 어떻게든 데리고 가야 해.”
보통 컴백일정과 중요한 활동 일정은 전상일 본부장과 이야기를 하는데, 오늘은 유영찬 이사까지 배석했기에 처음에는 컴백 일정과 단독 콘서트라도 확정이 난 줄 알았다.
하지만, 전상일 본부장의 입에서 중국 시장을 위해 중국 멤버들을 기다리자는 말이 나오자 회사의 방식을 이해하면서도 화가 났다.
“이사님, 이미 그 세 명이 우리들 전화도 받지 않고, 아예 멤버들 간에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인데, 한국으로 세 명이 온다고 해도 팀으로서 활동이 쉽게 되겠습니까?”
제일이 형이 팀의 리더답게 팀워크 자체가 이미 무너졌다고 이야길 했다.
팀워크가 무너진 그룹들의 팀 내 은따 논란으로 연예계가 시끄러웠던 적도 있었으니, 사실상 리더로서 중국 애들을 배제하자고 하는 말이었다.
“리더로서 그러면 안 되지 어떻게든 보듬어 가면서 팀을 지켜보려고 해야지. 무작정 쳐내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이후에 다른 멤버들이 문제 일으켰을 때도 지금처럼 멤버들을 쉽게 쳐낼 거야? 도덕적으로 완전무결한 멤버만 남길 거야?”
전부장의 말에 제일이 형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섰다.
“전상일 본부장님. 멤버들 간의 신뢰가 있었다면, 제일이 형이 저런 말을 아예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멤버들끼리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사실상 팀을 구성하는 멤버들 간의 신뢰가 깨진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억지로 비즈니스적인 관계로 뭉친다고 해도 감정의 골만 깊어질 겁니다. 신뢰 없이 일하는 게 얼마나 신경 쓰이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어. 계약기간 동안은 거짓 웃음을 짓더라도 같이 활동을 해야 해. 그게 회사의 결정이야.
너희들이 원한다면 연습도 별도로 하고, 대기실 내엔 칸막이를 치거나 해서 최대한 맞춰 주도록 하마.
무대에서 팀처럼 보이게만 해줘. 무대 아래에서 은따를 하든 뭘 하든 터치하지 않으마. 가증스럽겠지만, 그게 모두를 위한 거야.”
전상일 본부장이 아닌 유영찬 이사가 거짓으로 웃더라도 한팀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길 하자, 우리가 아무리 거부를 한다고 해도 그 결정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아, 소원아 너희들 계약이 4년 넘게 남았어. 어떻게든 중국 애들이랑 화해해서 팀워크를 잘 만들어봐.
그게 팬들을 위한 방법이자 너희들을 위한 방법이야. 부자 되기 싫어?”
전상일 부장의 부자 되기 싫어? 하는 말에 멍하게 다른 곳을 보고 있거나 고갤 숙이고 있던 멤버들이 고개를 돌려 전 부장을 쳐다봤다.
“사실, 우리가 자선사업 하는 게 아니잖아. 돈 벌어야 하잖아?
입으로는 누구나 팬들을 위해서, 무대에서의 열정을 위해서 가수를 한다고 말할 수 있어.
하지만, 진짜 그러냐? 아니잖아~. 우리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
전상일 부장의 말에 제일이형은 물론이고 나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래 소원이는 이미 저작권료에 중국에서 프로듀싱해주고 받은 돈이 있으니 좀 다르겠네. 하지만, 제일이 너는 같냐? 정환이 너는? 규일이 너는?
돈 필요 없다고 할 수 있어? 아니잖아. 다 돈 벌어야 하잖아.
팬?, 열정?, 아니면 단순히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이 일 하는 거야?
그런 거 찾으려면 길거리 공연만 해도 느낄 수 있고 찾을 수 있어.
그런데 왜 너희가 아이돌을 하고 우리는 왜 회사를 운영하겠어? 우리 좀 더 현실적으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진솔한 사람들이 되자.
돈 벌려고 하잖아. 그냥 돈을 위해서, 이런게 더러워도 참아.
중국 애들이 짜증 나더라도 어떻게든 웃어줘. 너희가 웃어줄수록 중국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거야. 너희가 조금만 참아주면 정산금에 ‘0’ 이 하나 더 붙을 수 있다고.”
전상일 부장의 냉혹하면서 욕심을 자극하는 말에 그 누구도 반박을 하지 못했다. 맞았다.
우리는 전상일 본부장의 말처럼 돈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제일이 형도 그렇고, 규일이도 그렇고 다들 돈을 벌어야 했다.
아니, MSM은 물론이고 다른 Big3 기획사의 아이돌들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전상일 본부장 말처럼 무대 위에서의 열정? 노래 부르는 게 좋아서? 그런 건 아이돌이 아니라도 가질 수 있는 거였다.
하지만, 왜 아이돌이 되고자 어릴 때부터 연습을 하고 오디션을 보고했냐고 마음속에 물어본다면 거의 백이면 백, 화려한 연예인으로 살고 싶어서, 돈 많이 벌고 싶어서 일 것이다.
유명하게 되어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비싼 몸값에 맞는 멋진 무대에서 공연하는 부유하고 화려한 연예인의 삶.
사실 그게 아이돌이든 배우든 연예계 종사자들이 모두 꾸는 꿈이었다.
“전 부장님이 너무 노골적으로 이야길 해서 너희가 불쾌할 수도 있겠네.
우린 프로잖아. 감정, 기분에 따라 무대에서 찡그린 표정을 지으면 안되는 직업이야. 웃어야 하는 서비스직이지.
서비스직은 그 직업에 맞는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게 기본이야. 옷차림을 신경 쓰고, 메이크업과 춤, 노래를 준비해서 무대에 올라가야지.
그런 꾸밈 작업 속에는 팀 멤버끼리 불화가 있어도 화목하게 팬들에게 보이게 하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어.”
“그래, 유이사님 말처럼 기분 나쁘다고, 싫은 멤버가 있다고 무대에서 대충할 거야? 얼굴에 싫은 티 낼 거야? 그건 또 아니잖아.
무대에서 팬들에게 환상을 팔아야 하고 그 환상으로 관중을 팬으로 꼬셔야 하는게 우리 직업이야.
꼬셔야 하는 여자에게 거짓 웃음을 보이며 최선을 다해서 작업하는 거처럼, 팬들에게도 우리는 멤버들간에도 팀워크가 좋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지. 그게 아이돌이지.”
이 바닥에서 구르다 못해 혀까지 둥글둥글해졌는지, 연륜에서 나오는 전 부장의 말을 들으니 우리 YAM 멤버들은 속 좁고 프로답지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진짜 프로답고 제대로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거짓 웃음으로 멤버들끼리 친한 척하고, 팬들에게 보여주라는 전상일 본부장의 말이 진짜 프로의 정답처럼 들렸다.
내가 이럴 정도이니, 제일이 형이나 다른 멤버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휴..알겠습니다. 중국에서 애들이 올 때까지 팬 사인회를 하며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진짜 우리가 만든 곡을 NTC321 선배들에게 주는 겁니까?”
“그래, 너희들이 금철 사장에게 제대로 배운 건지 곡 퀼리티가 좋더라고. 처음 들어보고는 깜짝 놀랐어.”
유영찬 이사가 멤버들이 만든 곡을 칭찬하자 금세 다들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지 으쓱했다.
하긴, 천하의 유영찬이 자신들의 곡을 칭찬하니 기분이 좋을 만했다.
“물론, 처음으로 너희들이 만든 곡이니만큼 YAM의 앨범에 다 수록하고 싶겠지.
하지만, 진정한 뮤지션, 아티스트로 가고 싶다면 자신들이 만든 곡을 다른 가수들에게 줄 수도 있어야 해.
이제 뮤지션으로 첫발을 내디딘 너희들의 경험을 위해서 가수에게 맞는 편곡작업과 프로듀싱 작업을 한번 해봐. 그런 경험들이 너희를 위로 올려줄 거고 거기서 깨닫는 게 더 좋은 곡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거야.”
원래 우리들의 컴백 앨범에 쓰기 위해 만든 곡들이었지만, 유영찬 이사의 칭찬과 곡을 직접 프로듀싱하며 많은 것을 배우라는 말에 더 이상의 반론은 없었다.
“나만 ‘빛으로 이어’란 곡이 좋다고 느낀게 아니야. NTC321 친구들도 한번 들어보고는 더블 타이틀로 하고 싶다고 바로 이야길 할 정도였어.
단순한 아이돌이 아닌 프로듀싱이 가능한 만능 아이돌의 시작이니깐 한번 프로듀싱에도 힘을 써봐.”
그렇게 NTC321의 앨범 녹음 일정이 결정 났고, 멤버들이 직접 선배인 NTC321의 프로듀싱도 하게 된다는 소리에 기약 없는 컴백에 대한 불만은 그냥 묻혀 버렸다.
**
“소원 오빠 저 고스트 뮤지컬도 갔었고, 돈가스 가게에도 갔었어요.
막막 너무 좋아요! 오빠 사랑해요!”
“나도 이렇게 와줘서 너무 좋아요! To. 는 뭐로 적어줄까? 하트 그려줄까?”
솔직히 오늘만 해도 몇 번이고 들은 말이었고 나도 몇 번이나 내뱉은 말이다 보니, 처음 팬을 만나서 들었을 때 만큼의 기쁨과 감동이 없었다.
하지만, 나와 YAM의 팬사인회에 참석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CD를 구매해서 응모권을 모았는지, 뮤지컬 티켓을 샀는지, 돈가스 가게에 가기 위해 시간을 얼마나 소비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감사한 팬들이었다.
아무리 듣고 또 듣는 말이라도 미소가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나와 팀을 위해 열정을 가진 팬들이라 고마웠다.
그리고, 나에게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의 눈빛과 마음이 전해지는 행동이 싫지가 않았다. 최대한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기도 했다.
컴백 준비를 위한 다이어트로 늘 공복인 배고픔과 뮤지컬 공연을 병행하며 잠을 자지 못한 수면 부족도, 이런 호의를 보이는 팬들의 미소를 보면 잊을 수 있었다.
문제는 팬 사인회마다 한두 명씩 꼭 있는 빌런(villain)들이 문제였다.
“와 미친 그 애 또 왔어요. 돌겠네요. 진짜.”
사인회 이후 즉석 무대를 위해 메이크업을 무대 뒤에서 정리하는데, 토모가 짜증이 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누구?”
“제일이 형도 알 걸요? 그 사인회 할 때 손에 물인지 액체 묻히고 오는 애 있잖아요.”
“아! 나도 누군지 알겠다. 근데, 그거 그냥 손에 땀 차는 거 아니었어? 다한증인가 있잖아.”
“소원형 저도 그 다한증인지 알았는데, 아니더라니까요. 땀과는 달랐어요. 뭔가 체액 같았다니깐요. 어우으으.”
토모는 역겹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떨며 학을 뗐다.
“체액이면 업계 포상 아니냐? 너 좋다는 거잖냐? 즐겨 크흐흐”
“아 미친 정환형!!”
정환이의 인터넷 드립에 기겁하는 토모를 빼곤 다들 웃을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다한증하고 구분이 안 되는데, 그냥 최대한 손 소독제 쓰면서 손 씻고 해야지. 답이 없다.
팬 사인회에 오는 팬들을 골라서 팬미팅을 할 수 없잖냐.
결국, 누가 더 팬 사인회 앨범을 많이 사느냐에 따라 사인회에 오는 사람이 정해지잖아. 그 사람도 앨범을 구매했으니, 팬 사인회에 대한 권리가 있어 그러니 어쩔 수 없는 거야.
팬의 당연한 권리니깐. 그냥 네가 참는 수밖에 없어.”
“제일형 그렇지만, 진짜 멘탈이 부서질 것 같다니깐요. 내 손에 다 묻히고 다현이에게 가는 게 바로 보인다니깐요.”
“악! 그럼 내 손에도?”
급하게 다현이도 손 소독제를 찾아서 손에 뿌리고 마구 비벼댔다.
“그래도 참아. 사생이든 뭐든. 결국 우리에게 돈을 준다고, 팬들을 소중히 여겨야 하겠지만, 그 한계를 넘어선 사람에겐 상업적인 미소라도 억지로 보여줘.
우린, 정상적인 사람에겐 같은 사람으로 다가가지만, 그 한계를 벗어난 사람은 그냥 돈으로 보고 웃어주면 되는 거야.
그게 유료나 다름없는 팬 사인회를 하는 아이돌의 자세야.”
“제일이 형의 말이 왠지 위로가 되면서도 더 우울해지네요.
우리가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이 되어가는거 같아서리... 영 찝찝하네요...찝찝해요...”
토모의 찝찝하다는 혼잣말을 들으니 진짜 아이돌이란 생활에 현타가 올것 같았다.
아마, 전상일 본부장의 말을 듣고, 돈 때문에 중국 멤버들을 기다리기로 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가짜 웃음을 지어주는 아이돌이 되었는지도 몰랐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기분이 좀 그런지 씁쓸하게 무대에 올라 ‘줄리엣’을 부르기 시작했다.
[전화 벨 소리에도 가슴이 두근대는 이 마음 사랑인가요?
왜이리 두근거리나 몰라 oh.....]
100여 명이 들어찬 팬 사인회장의 팬들이 모두 다 같이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면 무대 뒤에서의 그런 우울한 이야기도 금세 잊혀졌다.
“야, ‘줄리엣’ 이 노래 나온 지가 벌써 1년 넘은 거 같은데, 신곡은 언제 나온 데?”
“그러고 보니 줄리엣 노래 나온 지가 1년 6개월이나 지났네.
팬싸 한다고 사인회 오기 위해서 1년 넘은 앨범 20장을 또 사니깐 좀 그렇네. 이미 집에 쌓일 만큼 쌓였는데. 새로운 앨범을 내야 그래도 새로 사는 맛이라도 있지.”
“그러게. 하다못해 리패키지라도 내서 신곡이라도 한 곡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건 뭐 앨범 1장으로 2년 가까이 우려먹고 있냐? 진짜 MSM 일 안 하네.”
“진짜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왜 새 앨범이 안 나오는 거지? 새 노래 듣고 싶은데.”
“이번에 NTC321 앨범에 YAM 오빠들의 자작곡이 들어가 있다고 하던데. 진짜야?”
“어, 맞아. ‘빛으로 이어’라는 곡인데, 작사 작곡에 YAM voice라고 되어있어. 노래 좋던데, 왜 직접 안 나오고 곡을 NTC321에게 준거지? 곡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곡을 뺏긴 거 아냐? NTC321이 선배잖아. 회사에서 YAM보다 NTC321이 급하니깐 자작곡을 그쪽으로 주자고 했을 수도 있겠다. 더블 타이틀곡으로 나올 만큼 노래 괜찮던데, 차트에서도 10위 안에 있고.”
“음. 그럴 수 있겠다. 후배이다 보니, 오빠들은 회사에 새 앨범 내달라고 말을 강하게 못 할 수도 있겠어. 계약도 있고, 선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겠네.”
“그럼 우리가 하지 뭐. 오빠들이 세게 말 못 한다면, 우리 팬클럽 차원에서 새 앨범 빨리 내달라고 항의하자. 어때?”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