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언더 데뷔? (2)
“그런데, 소원아 너희 회사 지금 수익구조가 진짜 많이 안 좋은데, 한 달에 나가는 돈이 수익의 몇 배야. 걸그룹 빨리 데뷔시켜야 할 것 같다.”
기원이 형이 경영학과를 다닌 것도 있고, 직원까지 두며 회사를 운영해본 것이 있다 보니, 제대 후 남는 시간 동안 레드샵의 경영 전반에 대한 것을 훑어봐 주었다. 그리고, 형이 조목조목 설명해주는 걸 들으니 심각하긴 했다.
“이게 어쩔 수가 없어요. 빨간 펀치 누나들의 가수 활동 수익은 원소속사에서 가져가고 있고, 대현 형은 현재 활동을 안 하고 있고, 들어오는 수입이 없을 수밖에 없어요.
저작권료가 대부분의 수입인데, 만든 곡도 1년이 넘다 보니 저작권료가 팍팍 줄어들고 있고.
연습실과 사무실 쓰는 이 월세와 직원 월급에서 적자 폭이 장난이 아니네. MSM에서 최대한 기생하며 붙어 있었어야 했는데.”
“이거 보니깐 왜, 가수든 배우든 돈을 벌면 건물 사는지 알겠지?”
“인정. 진짜 인정. 월세는 진짜 자고 나면 또 내는 날이네. 어휴.
그래도, 이재원 사장님과 김영민 샘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에서 겨우 수익은 나고 있는 게 다행이긴 한데, 갈 길이 머네.”
“연습생 애들에게 월급으로 1인당 80만 원 주는 것도 크다. 다른 기획사들은 연습생 월급 안 준다는데, 너희도 안 주면 안 되냐?”
“그게, 작은 기획사는 대부분 안 주는걸 아는데, Big3라는 회사들은 또 다 챙겨주고 있거든. 작게는 교통비로 30만 원 정도 주는 곳도 있지만, Big3은 대부분 50~90까지 주고 있어.
우리 레드샵도 MSM의 하위 레이블이다 보니, 연습생에게 돈을 주는 게 바르다고 보고.
또, 미영이나 한두 명을 빼고는 다들 집안이 여유 있는 집안도 아니다 보니 주는 게 맞는 거 같아.”
“연습생도 월급 주는 게 맞긴 맞는데···. 에잇 나중에 다 벌어 주겠지.
그럼, 이왕 월급 주는 거 옛날 회사들처럼 현금으로 돈을 줘. 은행으로 이체해 주니깐 애들이 진짜 누구에게 돈을 받는지를 몰라요. 일부러 만 원짜리로 해서 봉투에 빵빵하게 담아서 월급날마다 직접 줘.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이 기억과 몸에 남아 있어야 돈의 소중함도 알고, 고마움을 느낀다니깐.”
“오. 하긴, 요즘은 월급을 줘도 다 통장에 들어왔다가 금방 이체로 사라져 버리니 월급 받는 느낌이 없긴 없겠네. 누가 월급을 주고 있는지도 각인시키는 효과일 것 같고.
역시, 경영에는 이런 심리가 들어가는 거네.”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럼 이번 달부터는 아예 전 직원 월급 줄 때 현금으로 다 지급하지 뭐. 구닥다리 느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 이체보다는 현금으로 받을 때 기분은 확실히 더 좋을 거야. 물론, 온라인 이체든 직접 받든 금방 없어지는 건 같지만.”
**
“제이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모르겠다. 갑자기 네 외삼촌이 연락 와서는 병원 식당 조리원을 그만두고 같이 장사를 하자고 하지 뭐니.
돈가스 가게를 창업하는 장사 방송에 같이 나가자고 하던데, 그 방송에 나가는 게 네가 연예인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도 하고.
일단 병원 조리원 그만두라고 하는데, 넌 외삼촌한테 뭐 들은 거 없어?”
오랜만에 인천 본가로 온 제이에게 엄마인 김일숙이 따로 들은 게 없는지 물어왔다.
“외삼촌이 다니는 회사도 그만뒀다고 하고, 지금은 일이 없잖아. 그래서 엄마랑 같이 장사를 하려는 건가 보지.
나에게는 따로 이야기가 없었어. 그런데 그 장사하는 게 TV에 나오는 거래? 장사의 신이나 서민 갑부 같은 그런 방송인가 보네.
아마도, 외삼촌이 주방일 하기 싫으니까 솜씨 좋은 엄마를 불러서 일 시키려는 거 같은데, 외삼촌에게 알았다고 했어?”
“그럼 알았다고 해야지, 어쩌겠니. 오빠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그리고 네가 데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하니 어쩌겠니? 일단 네가 잘돼야지.”
“그건 외삼촌 자기 생각이고, 그런 방송에는 안 나가도 괜찮아. 아이돌이랑 아무 연관이 없는 프로그램이야.
그런 거 안 해도 회사에서 데뷔시켜 준다고 했으니깐, 괜히 외삼촌이랑 장사한다고 고생하지마.”
“그런 걸 엄마가 안 해도 데뷔할 수 있다는 건 너 생각이고, 이제 외삼촌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까칠한 성격 때문에 안된다는 걸 너희 외삼촌이 겨우겨우 사정해서 들어가게 해준 회사인데, 이런 거 안 했다가 너 밉보이면 어쩌려고?
지금 있는 팀에도 최종데뷔 직전에 떨어져서 온 언니들이 있다며?
그렇게 데뷔 직전에 떨어지지 않으려면 뭐든 도움이 되는 걸 부모가 해주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지, 그래야 안전하지.
지금 팀에 네 마음 알아주는 언니도 있고 해서 좋다며? 그 언니랑 같이 데뷔하려면 내가 어떻게든 해줘야지. 그러면 오빠가 알아서 어필해 줄 거 아니겠니?”
“됐어! 그런 거 안 해도 된다고. 그냥 편한 병원 식당에 그대로 있어.”
“얘 봐라. 야 병원 식당이 편하다고 누가 그러든? 하루 세끼 몇백 명 먹을 음식 조리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너. 진짜 힘들어.
아마, 병원 식당 조리원보다 너희 외삼촌이랑 돈가스 가게 하는 게 더 편할 거야.”
제이는 병원 식당 조리원 일보다 외삼촌과 가게 차리는 게 더 편할 거라고 하는 엄마의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서 미안했다. 내일 직접 윤소원 사장을 만나 이야길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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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결국 그 방송에서 우리 집 가정사를 팔아먹겠다는 거잖아요.”
“그래 맞아. 화제성을 위해서 제이 너희 집 가정사를 소재로 삼아서 활용하려고, 그런데 아버지 없이 자란 불우한 환경을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 거야?”
“네. 보여주기 싫어요. 학교에선 일부러 잘사는 척하고 했는데, 실제 사는 게 나오면 ‘쪽’ 팔리잖아요. 그리고 이혼해서 따로 사는지도 모르는데...”
제이는 아마도, 남들과 다른 혼혈 외모로 인한 스트레스를 부유한 백인혼혈이라는 꾸며낸 자존심으로 학교생활을 했던 것 같았다.
“이혼한 집안이라 가난하게 산다는 게 알려지면 누가 죽어? 그냥 조금 자존심이 구겨질 뿐이잖아. 왜 그런 거짓 자존심으로 꾸며서 불안하게 사는 거야? 그런 가정환경이 제이 너에겐 최고의 자산이라니까 진짜 이걸 모르네. 휴...
그래서, 어머니도 하기 싫다고 하셨어?”
“그건 아니지만, 지금 엄마가 괜히 일 잘하고 계시는데, 그만두고 외삼촌이랑 장사하다가 망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요.”
“제이야! 왜 망할 거로 생각해? 오히려, 지금 다니시는 병원 식당 조리원보다 더 잘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냥, 제가 성공해서 엄마가 일하는 걸 그만두게 하고 싶지. 외삼촌에 이끌려서 돈가스 주방에서 일하게 하는 건 싫어요.
아무리, 외삼촌이 우리 어려울 때 도와줬다지만, 엄마가 고생하는 게 싫어요. 아마, 그냥 놔두면 엄마는 외삼촌의 말에 이끌려서 저 때문에 돈가스집을 하려고 하실 건데, 그런 게 싫어요.”
제이의 말을 들으면 자기가 아이돌로 성공해서 엄마가 일 안 해도 되는 그런 효도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마음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딱 16살의 사고방식이었다. 현실을 좀 알게 해 줘야 제이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성공? 그래, 아이돌로서 제이 네가 성공해서 효도하는 게 가장 좋지.
제일 아름다울 거야. 헌데, 방금 네가 이야기했잖아. 장사하다가 망하면 안 될 것 같기에 엄마가 장사 시작을 안 했으면 한다는 말.
나도, 마찬가지야. 처음으로 레드샵에서 걸그룹을 만들고 있어. 나도 처음이고 너희도 루시아를 빼곤 처음일 거야. 나도 장사처럼 하늘소녀가 망하는 게 겁이 나.”
내 입에서 하늘소녀가 망한다는 말이 나오자 제이의 얼굴도 굳었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돈이 이렇게 들어가는지 나도 생각도 못 했다.
매당 너희들이 있는 빌라 숙소 월세에 매니저 월급에 너희들이 먹는 식대만 해도 매달 천만 원이 넘어가.
거기에 다른 중소 규모의 기획사에서는 안주는 월급도 Big3 만큼 챙겨주려고 하고 있어. 일 인당 80만 원씩만 해도 720만 원이야.
데뷔하는 곡의 가격과 뮤직비디오 제작비, 의상비, 헤어샵 비용까지 계산하면 너희들의 데뷔에만 3~4억이 들어가게 될 거야.”
돈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기원이 형에게 들은 지금 회사 지출 내역이 쏟아져 나왔고, 금액 단위가 억이 넘어가자 16살인 제이는 원래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하늘소녀가 실패하게 된다면 고스란히 내가 그 빚을 떠안게 될 거야. 뭐, 데뷔 후에 대박을 터트리면 그 돈 다 벌 수 있으니깐 괜찮을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도 한 달에 10팀 가까이 걸그룹이 데뷔하고 있어.
공중파 데뷔든, 행사장 데뷔든 매달 10팀의 걸그룹이 데뷔하고 있다고.
아, 공중파 데뷔에 들어가는 교섭비도 몇백에서 몇천만 원이 또 들어가게 될 거야.
그럴 돈이 기획사에 있으면 공중파 데뷔를 하는 거고, 그런 교섭비가 없으면, 결국 행사장에서 데뷔하게 되는 거야. 뭐, 운이 좋으면 케이블 방송에서 데뷔를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데뷔한 매달 10팀의 걸 그룹 중에서 살아남는 걸그룹은 몇 개나 될 것 같아? 말해봐 봐.”
“한..한 팀요.”
돈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는 나에게 겁을 먹은 것인지 제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니, 한 달에 데뷔하는 10팀의 걸 그룹 중에선 한팀도 살아남지 못해.
이젠 한 달에 한팀의 걸그룹도 못 살아남아.
3~4달 동안 데뷔하는 30~40개의 걸그룹 중에서 1개에서 2개만 겨우 이름을 알리고, 싱글 2집을 내고 있어. 왜 그런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이미 걸그룹은 포화 상태야. 아니 포화상태를 넘었어.
2007년에 데뷔한 소녀연대부터 계산을 해봐.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지고, 공중파에서 1위를 한 번이라도 한 걸그룹만 20팀이야.
1위를 해본 그룹 20팀이면, 1위를 못해본 나머지 걸그룹은 몇 개일까?”
“계산이 안 돼요.”
“괜찮아, 나도 몇 개인지 알 수가 없으니깐. 그만큼 걸그룹이 많은데 팬이나 음악을 소비해줄 사람들은 거의 그대로야.
한정된 팬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거야. 그런 힘든 시장을 보고 아직도 매달 10팀이 데뷔를 하고 있고.
자 여기서 우리 하늘소녀는 과연 1년에 데뷔하는 120여 개의 걸그룹 중에서 살아남아서 싱글 2집을 낼 수 있을까? 다시 3~4억 원을 들여서 그렇게 제작을 할 수 있을까?”
“...”
“자, 그럼 다르게 생각해보자, 살아남는 걸 넘어서, 어머니가 편하게 사실 수 있게 효도해줄 만큼 하늘소녀가 성공할 수 있을까?
제이야, 이게 현실이야.
데뷔를 하고, 1위를 찍고, 연말 신인상을 타고, 손익분기점을 넘어야 그때부터 금전적인 성공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성공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120여 개의 걸그룹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그리고, 제이 네가 예능이나 그런 곳에 혼자 나가서 이름을 알릴 수 있겠어?”
“저...자..잘 모르겠어요. 흑...”
냉정하게 하늘소녀와 제이 개인으로 성공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그런 경쟁에서 이기는 게 수치상 얼마나 어려운지 팩트를 알려주자, 아이돌로 성공하는 것에 대한 압박감 때문인지 결국엔 제이가 울어 버렸다.
티슈를 뽑아주며 말을 계속했다.
“자, 그럼 다시 생각해보자, 제이 네가 하늘소녀로 데뷔해서 성공하는 확률이 높을까? 아니면, 돈가스 가게가 성공하는 게 더 확률이 높을까?
아마도, 야미 돈가스로 창업해서 성공하는 게 더 쉬울 거야. 물론, 그 성공의 크기가 좀 다르긴 하겠지만.
공중파인 KBC1에서 프랜차이즈 방송으로 도와줄 거고, 요식업계의 미다스 손이라는 백장원 쉐프가 레시피나 가게운영을 도와준다고 하잖아.”
<크흥~>
코를 풀면서도, 백장원 쉐프와 KBC1 방송국 이야기가 나오자 제이가 고개를 들었다.
“난, 그 공중파 방송에 제이 너희 집의 가정사를 방송 소재로 써도 좋다고 이야길 할 거야. 아마도, 방송국 놈들 특징상 신파와 사연팔이가 될 게 뻔하겠지.
그리고, 넌 백인 혼혈의 예쁘지만, 힘들게 성장했고, 아이돌 준비하고 있다는 거로, 네 이름과 하늘소녀의 이름이 조금이라도 알려질 거야.
그게 하늘소녀가 성공하는데 1%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난 그 방송을 추진할 거야. 학교에서의 그 자존심 때문에 하지 말자고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야.”
제이가 내 말에 설득이 된 것인지, 고개가 살짝 끄덕인 것 같았다.
“제이 너와 외삼촌인 김일규 부장, 그리고 어머니가 창업 방송에서 실제 창업을 해서 성공하고, 하늘소녀는 그로 인해 인지도를 얻어서 성공했으면 해. 이런 작은 거라도 붙잡아서 팀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게 제작자인 내 입장이야.”
“사장님.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화제가 될 수 있다면 저 출연할게요.
제 개인의 성공으로 효도를 하려면 오히려 더 저를 더 보여줘야 한다는 걸 방금 사장님의 말에서 깨달았어요.”
“그렇게 좋았어. 잘 생각했어. 사람의 마음을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혼혈에 한부모 가정, 데뷔해서 엄마에게 효도하겠다는 그런 사연이 방송에 나오게 되면, 너에겐 다 플러스가 될 거야.
본인에 대한 대중들의 가치 자체가 올 가게 되는 거야. ‘효녀아이돌’ 같은 타이틀이 생긴다면 더 좋을 것이고.”
“네, 저 열심히 할게요. 저 꼭 성공할게요.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려서 아직도 눈이 붉게 충혈된 제이가 꾸벅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는데, 과연 저런 각오가 성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의 그 껄렁한 모습도, 미영이의 말처럼 자기방어를 위해 그렇게 행동하고 말을 했을 거라는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았다.
혼혈의 미모에, 적당한 가창력, 제대로 만난 팀도 있으니 내가 보기엔 오늘 각오한 만큼 성공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1년에 저작권 협회에 등록되는 곡이 1,800만 곡이 될 정도로, 한국 가요계는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쟁이 심해서 레드오션을 넘어 앞이 보이지 않는 블랙오션 되어 가고 있었다.
뭐 물론, 아무리 레드오션이니 블랙오션이니 해도 상위 1% 안에 든다면 그 사람들에겐 블루오션일 터였다.
어떻게든 이런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