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걸그룹은 어렵다 (4).
“자 이 과일도 먹어. 아침에 먹는 과일이 참 좋다잖아.
중국 연예계는 지금 호황기인데, 같은 중화권인 홍콩, 대만 연예계는 지금 빈사 상태라서 심각해.”
김일규 부장은 일찍 조식을 먹는 나를 따라와서는 아침부터 침을 튀기며 중국 관련 이야길 했다.
“그래요? 홍콩은 영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많은 스타들이 미국으로 가거나 해서 질이 낮아졌다는 건 알겠는데, 대만 연예계는 왜 빈사 상태인가요? 오히려 중국이란 새로운 시장이 있으니 같이 호황기가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호황을 같이 받기에는 차이가 너무 커서 그래. 홍콩 인구는 740만 명이고, 대만은 인구가 2300만명이야. 두 곳을 합쳐도 3천만 명으로 한국보다 작지, 중국 본토의 인구는 14억명이야. 거의 40배 차이가 나는 거지.”
“크흑, 인구 차이를 들으니깐 확 와닿네요. 시장규모 자체가 다른거군요.”
“그렇지. 그만큼 급이 다른 거야. 급이 다른 중국 본토의 경제가 발달하면서 방송, 연예계가 커진 만큼 인력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홍콩이나 대만의 방송인력들이 중국 본토로 다 몰리게 된 거야.
핵심인력의 절반 이상이 중국 본토로 다 빠져버리니 홍콩이나 대만의 연예계는 빈사 상태가 되어 버린 거고.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언어가 달랐다면, 인력유출이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테지만, 북경어를 이제는 대만이나 홍콩사람들도 다 하고 있으니 중국으로 가는 게 더 쉬운 거지.”
“거기에, 시장규모 차이가 있으니, 홍콩과 대만의 방송인력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이동해도 중국의 방송계는 인력수급이 되어서 좋았다. 정도였겠지만, 홍콩과 대만의 방송 쪽은 인력이 부족해서 질적 저하가 어쩔 수 없었을 테고.”
“그래서, 요즘 대만의 드라마나 홍콩의 영화들이 죽을 쑤고 있는 거야.”
“제가 엄청 어렸을 때 대만은 우리나라에 ‘판관 포청천’이란 드라마도 수출하고 했었잖아요.
어릴 때 봤을 때, 아주 재미있게 봤었는데. 추억 돋네요.”
“그때가 1990년대 초반인데, 그때부터 2000년까지가 대만 드라마의 전성기였어. 그리고, 느와르 장르와 강시, 무협 영화를 앞세워서 홍콩 영화가 전 세계를 주름잡았었지.
하지만, 그런 문화적인 성과들은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전환되고 홍콩과 대만의 인력들을 데리고 가 버리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어.”
“이상하네요. 그런 고급인력들이 중국으로 간지 벌써 15년 이상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옮겨간 사람들이 적응하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시간이 흘렀는데, 왜 그 당시의 문화적인 힘이 중국에선 나오지 않는 거죠?”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역시 윤 사장은 우리와 다른 교육과정인 게 표가 나는 세대구먼.”
“부장님과 나이 차이가 있으니 배운 게 다른 거죠.
아, 설마 그 3:7의 법칙 같은 건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100명 중에서 늘 30명 정도밖에 안 되고, 그 열심히 일하는 30명을 따로 모아도, 다시 30명만 열심히 일한다는 그런 건가요?”
“뭐, 그런 것도 있을 수 있겠지. 홍콩, 대만의 인력의 절반 이상이 중국 본토로 갔다고 해도, 기존의 본토 인력 숫자와 비교해보면 채 2할도 안 될 테니깐.”
“구성원의 숫자가 그렇게 차이가 나버리면, 아마도 잘하는 사람들도 못 하는 사람들에게 파묻혔겠네요.”
“그렇지. 굴러온 돌이 아무리 잘해도 박혀있는 모든 돌을 다 뽑아낼 순 없는 법이니깐. 윤 사장의 말도 어느 정도 맞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검열문제야.
강시 영화나 영환도사, 천녀유혼같은 귀신들이 나오는 영화는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이후로는 공산당의 사상에 귀신이란 존재는 없는 거라고, 혹세무민한다고 아예 영화산업에서 금지를 해버렸어.
실존하지 않는 것을 숭배하는 것 자체가 공산당의 당규에 어긋나거든.”
“헐. 그래서 어느 시기부터 강시영화가 나오지 않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다면, 능력 있는 사람이 새로운 걸 제시해도 결국 공산당에서 허락을 해주지 않았으니, 홍콩이나 대만의 인력들이 갔어도 뭘 바꿔볼 수가 없었겠네요.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들의 손발을 묶어버려서 새로운 게 나오지 못하는 거군요.”
“그래서, 지금 중국에서는 한류가 뜨는 거야.
중화권에선 공산당의 검열로 인해 새로운 게 나올 수 없고, 미국 문화는 공산당에서 선별 수입을 하고 있고, 일본 문화는 중국인들의 내면에 깔린 반일 정신으로 제대로 문화적인 흐름을 만들기 힘들거든.
하지만, 중국 안엔 조선족이란 존재도 있고,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몇백 년 이상 제후국으로 거느렸던(?) 한국의 문화이니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다는 거지. 지금 북한도 중국이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국인들도 많거든.”
“말 그대로 몇백 년 동안 거느렸던 변방 제후국의 문화이니 한류란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 들였다는 거네요.”
“맞아. MSM이 중국시장 한류 개척의 선봉장으로 15년 넘게 공략한 것도 있지만, 중국 정부 자체에서도 한류가 쉽게 뿌리 내릴 수 있게 중화(中華)인 으로서 제후국의 문화를 방치해준 것도 컸어. 대만과의 수교를 단절하고 공산당이 있는 중국과 수교를 해준 보상과 같은 거였지.”
김일규 부장의 말을 듣고 보니, 한중수교 이후 한국에 대해서는 중국이 개방의 물결을 활짝 열어두고 있는 것이 확실히 맞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열려있는 중국의 문이 닫히게 된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하긴, 그 누가 사드(THAAD) 문제로 일주일 만에 중국에 한한령이 내릴 줄 알았겠는가.
“지금 MSM의 매출 중 30% 이상이 중국에서 나오고 있잖아? 난 우리 PLUS도 본사인 MSM을 따라 매출구조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해.
지금 PLUS의 매출은 한국이 80, 일본이 20인 상황이거든.
눈에 보이는 중국 진출과 매출구조의 다양화를 증명해야 나도 좀 더 높은 곳을 올려다볼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깐 윤 사장. 내 부탁 좀 들어줘. 으응~”
나름 맛있다는 호텔 조식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할 만큼 한 시간 가까이 김일규 부장과 중국시장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우혜와 소옥이를 레드샵 걸그룹에 꽂아달라는 결론이었다.
**
“소원형. 이게 이번 우리 CD 재킷이야. 뒷면 하단에 YAM 사진도 들어가지만, 형은 프로듀서까지 했으니깐 따로 개인사진도 넣도록 할게. 출시 포스터에도 들어 갈 거야.”
소혁이가 내민 CD 재킷을 보니, 뒷면에 내가 솔로 가수로 활동하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아니, CD 재킷이나 포스터에 그냥 글씨로 내가 참여했다고 이름만 넣으면 되지, 내 개인 사진을 따로 넣을 필요가 있냐?”
“형은 아직 잘 체험 못 해봐서 그런 거야, 중국에서 형 솔로곡도 나름대로 반응이 좋았어. 형이 바쁘지만 않았다면 개인 콘서트도 하면서 스케줄 잡았을걸.”
“그래? 내가 그 정도야? 중국을 자주 오지 않다 보니, 전혀 체감을 못했네.”
“저기 봐! 어제, 오늘 작업실과 호텔만 왔다 갔다만 했는데 벌써 소문이 나서 YAM 팬들이 오기 시작했잖아.”
“오 진짜다. 홍보하지도 않았고, 공식 스케줄도 아닌데, 중국 팬들이 오고 그러면, 나 좀 거만해도 되는 거냐?”
“형, 당연하죠. 여긴 중국이에요 우상이라면 당연히 팬들의 위에서 잘 보이게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있어야죠.
그런 거만함이 멋이 되고, 자신감으로 보이는 곳이 바로 여기에요.
루이뷔통이나 구찌 매장에 가서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 하면서 과소비를 하고 과시를 해도,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아마, 한국에서 그렇게 했다면 여러 신문기사가 나와서 초심을 잃었네, 머네 하면서 난리가 났을 테지만, 중국은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예요. 그게 여기선 당연한 거니깐.”
“미준이의 말을 들으니 더 중국이란 나라를 모르겠다. 한국과 일본의 아이돌 문화가 다르듯이 중국과 한국의 아이돌 문화도 정말 많이 다르구나.”
“형도, 나중을 생각해서 중국어를 배워두세요. 그래야, 이런 중국과 한국의 아이돌 문화 차이점을 알게 되실 거고, 좀 더 재미있을 거예요. 그리고,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고요.”
“그렇겠네. 나도, 중국어를 배워야겠다.”
YAM의 멤버인 미준이와 소혁, 위안은 내가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하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얼굴에 보이며, 좋아했다.
중국에서의 생활은 호텔에서 먹고 자고,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프로듀싱일을 하는 게 전부였다. YAM의 세 멤버와 중국 ‘힙합 오브 차이나’에 나왔다는 애들의 앨범 작업을 해주는 게 전부인 단순한 생활이었다.
다만, 김일규 부장의 침 튀기는 영업과 우혜와 소옥이의 뽑아 달라는 부탁이 가득 담긴 부담스러운 눈빛이 불편할 뿐이었다.
“알았어요. 알았어요. 김 부장님 제가 졌습니다. 휴우~
우혜와 소옥이를 멤버로 받을게요.”
중국에 온 5일째 아침인 오늘도 호텔 조식 테이블에 마주 앉아서 대만, 홍콩, 중국의 연예계 일을 떠들어 대기 시작했는데, 이런 김 부장의 끈기에 내가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채희는? 혼혈도 이제는 있어야 한다니깐. 영어 되는 애도 있어야지.”
“채희는 일단 봐야지 뭐라고 할 수 있죠. 보지도 않고 어떻게 결정을 해요?”
“그럼 한국에 가면 바로 보자고. 하하하. 이제야 우리 우혜와 소옥이의 가치를 알아보는구만.”
“대신에 조건이 있습니다. 계약의 주체는 우리 레드샵이어야 합니다. 둘의 소속을 우리 회사로 바꿔야 한다는 게 제 조건입니다.
둘이 벌어들이는 수익의 20%는 우리가 가지고, 나머지 80%에서 PLUS와 아티스트가 알아서 하십시오. 스케줄은 물론, 활동 전반에 대해서 우리 레드샵의 컨트롤 아래에 있어야 합니다.
PLUS에서는 나중에 팀 휴식기일 때 YAM의 세 친구들처럼 별도로 활동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권리가 있는 겁니다.
계약조건을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둘을 안 받겠습니다.”
“흠. 하루만 시간을 줘. PLUS 쪽 내부에서도 이야길 해봐야 하니깐. 추가 협의는 되겠지?”
“추가 협의 절대 없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조건이 최종 조건입니다.
다른 멤버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있기에 추가 협의로 조건변경을 해드릴 수 없습니다.”
“끄응, 알았어.”
김일규 부장은 추가조건 협의가 없다는 내 말에 마음이 급한 것인지, 조식을 먹다 말고 호텔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덕분에, 중국에서 조용히 조식을 먹는 첫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의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몇 시간 후 PLUS 내부의 이견조율이 끝났는지 작업실로 찾아와서 계약조건에 동의를 했다.
**
“김 부장님. 이 애 진짜 16살 맞아요?”
“그럼, 16살 맞아. 많이 성숙해 보이지?”
중국에서 일이 끝나고 한국에 오자마자, 김일규 부장은 영국 혼혈이라는 ‘채희’를 데리고 왔는데, 16살로 보이지 않는 성숙한 외모였다.
키가 170을 넘을 것 같았고, 백인의 골격이라 어깨도 직각 어깨에 골반도 발달되어서 20대 중반으로 보였다.
“얼굴에는 아이 느낌이 좀 나지만, 몸은 좀 많이 성숙한대요. 백인 혼혈이라 빨리 성장하는 건가.”
새로운 걸그룹을 뽑는 일이라, 대현 형은 물론이고 숙소에 있던 미영, 루시아, 수나, 찬희까지 와서는 보고 있었는데, 서로 귓속말로 소곤소곤했다.
“와 16살인데 가슴 봐.”
“옷도 도발적으로 핫팬츠에 탱크톱을 입고 왔네. 요즘 애들 장난 아니다.”
“난 이런 오디션때 늘 편한 옷을 입고 왔었는데. 혼혈이라 확실히 다르다.”
채희가 나오기 전에 우혜와 소옥이가 나왔을 때와는 애들의 반응 자체가 달랐다.
그리고, 중국 위구르인인 우혜의 모델 같은 비주얼이 루시아와 같이 서 있을 때 비슷한 느낌이라 나름 어울렸고, 키가 작은 찬희와 소옥도 같이 서니 거슬리는 부분 없이 잘 섞였었다.
하지만, 금발 갈색과 검은 머리가 반쯤 섞인 머리카락 때문인지 채희 옆으로 멤버들을 돌아가며 세워 보았지만, 좀처럼 쉽게 섞이지 않았다.
옷차림도 튀었지만, 뭔가 전체적으로 건들거리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지, 애들과 전혀 섞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키이나 나이들리’ 느낌이 좀 나는 거 같지 않아?”
“그렇네, 살이 좀 찐 키이나 나이들리 느낌이야. 완전 백인이 아닌 갈색백인이라고 해야 하나.”
뒷자리에 앉은 애들의 이야기에 자세히 뜯어가며 보니 진짜 헐리웃 배우 키이나 나이들리의 느낌이 나긴 했다.
완전 백인이 아니기에 갈색이 들어간 건강해 보이는 피부와 동양인의 이목 구미가 같이 섞여 있다 보니 동서양이 잘 섞여 들어간 얼굴이라 몇 년 후에는 얼굴만으로도 넘사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16살로 이미 역변의 시기도 넘어섰고, 이렇게 예쁘고, 기획사도 잘 만난 아이가 왜 전생의 기억에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그럼 이만 가도 될까요?”
“아니, 채희야. 방금 왔잖냐. 아직 노래도 안 했는데, 벌써 가려고 하면 안 되지.”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채희를 김일규 부장이 급히 일어나 채희를 다시 제자리로 데리고 왔다.
“아니 기분 나쁘잖아. 동물원 원숭이처럼 나를 새워두고는 뒷다마만 까고 있고. 짜증 나.”
뭔가 밖으로 나가려고 한 것에서 감이 오긴 했지만, 왜 이런 애가 전생에 스타가 될 수 없었는지 바로 알 것 같았다.
채희는 컨트롤이 안되는 애였다.
처음에 미소를 띠고 있던 대현 형이나 펀치 누나들의 얼굴도 바로 굳어 버렸다.
우혜랑 소옥이를 곁눈질로 보니, 전혀 당황하지 않았는데, 채희의 이런 성격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저거 봐. 다들 나를 이상하게 보잖아. 결국, 눈요기로 보는 혼혈아 말곤 없잖아.”
김부장이 붙잡아 두었기에 제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불만을 대 놓고 토로했는데, 저런 강한 성격을 받아 줄 수 있는 걸 그룹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연습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과 말투였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이 예쁘다고 무조건 웃으며 받아 주다 보니, 성격이 삐뚤어진 것 같았다.
“좋네. 재는 언프리티 머니스타에 내보내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