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61화 (161/237)

# 161

걸그룹은 어렵다 (2)

“자 이거 봐봐.”

PLUS의 김일규 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패드를 꺼내서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김 부장은 40을 넘어서 5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이런 전자기기의 사용에 어려움이 없다는 듯이 아주 능숙했고, 프로필을 보여주기 위한 준비가 잘되어 있었기에 내가 오~ 하면 감탄사를 내뱉을 정도였다.

“이나영 팀장은 그래도 YAM을 데뷔 준비하면서 윤 사장이랑 같이 일을 했지만, 난 그렇지 않으니 이렇게 동영상 프로필까지 보여주면서 매달려야지. 그래야 윤 사장이 우리 애들을 더 기억할 수 있지 않겠어?

이 애들 정말 내가 꼭꼭 숨겨둔 애들이야. 한국말을 좀 더 잘하게 되면 그때 PLUS의 메인으로 만들려고 준비했던 애들이거든. 일단 한번 봐봐.”

“외국인이에요?”

“그래, 이 애는 ‘채희 우드릴’인데 아버지가 영국인이고, 엄마가 한국인이야 16살이고, 이 친구 이름은 ‘우혜’로 중국사람이야 중국에서도 신장 위구루족 출신이다 보니 키가 172cm로 모델급이지.

이거 봐 모델 기럭지처럼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었지?

이 애는 ‘소옥’이고 상해 출신으로 목소리에 애교가 뚝뚝 떨어지는 애야.

둘 다 상해 희극학원 출신으로 19살이야, 내가 PLUS에서 걸그룹 만들어서 중국시장 제패해보려고 정말 애지중지하면서 딸처럼 키우던 애들이야.”

“세 명 다 한국말은 잘해요? 이젠 한국말로 의사소통 이상이 되어야 하는데.”

“당연하지, 채희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쭉 큰 애라서 한국말 잘하고, 우혜와 소옥이는 2년 동안 우리 PLUS에서 생활하면서 가르치고 있어.”

“부장님 그런데, 이 중국 친구들은 아이돌보다는 배우나 모델의 느낌인데요. 둘 다 키도 크고, 얼굴선이 귀염상이 아니라 선이 진한 미인상이에요. 모델 느낌의 얼굴과 체형이라 우리나라 아이돌로서는 좀 안 맞는 거 같은데요.

모델 돌로 나왔던 팀들이나 여성성을 강조한 팀 중에서 잘된 팀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상해 희극원에서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해서 인기 좀 얻으면 바로 중국 드라마나 영화로 진출을 시킬 거야.

일단은 레드샵의 걸그룹으로 데뷔만 좀 시켜줘.

채희는 국내용이고 이 우혜와 소옥이는 중국용이야.

중국 드라마, 영화 시장규모가 이미 한국의 5배 이상이야. 이 둘은 한국에서 인기몰이해서 한국보단 중국시장을 노리자는 생각으로 키우고 있는 거야.

어느 정도 뜨기만 한다면 내가 이 둘을 데리고, 중국에서 엄청 벌어올게.

이 둘이 한국의 인지도를 발판으로 중국에서 데뷔하기만 하면, 한국에서 웬만한 걸그룹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몇 배를 벌게 해줄 거야.”

침까지 튀겨가며 이야길 하는 김일규 부장은 중국뽕을 거하게 맞은 것 같았다. 뭐, 이런 중국뽕을 맞은 듯한 모습이 김일규 부장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대부분의 매니지먼트 사장들은 한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만 있으면 한국출연료의 3~4배 이상의 돈을 받아가며 중국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MSM 출신 슈퍼키즈의 멤버들이나 한국에선 힘이 빠진 중견급의 배우들이 중국에서 몇 년 만에 몇십억을 벌어왔다고 티비 예능에서 이야길 하고 실제 번 돈으로 건물을 매입해버리자, 중국에 진출해서 쉽게 돈을 벌어오자는 열풍이 기획사들을 강타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 진출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언어문제가 드라마와 영화에는 전혀 없었는데, 드라마나 영화의 경우 북경 표준어와 여러 사투리 문제로 인해 동시 녹음이 아닌 후시 녹음이었기에 중국어를 몰라도 드라마, 영화 촬영이 가능했다.

이런, 중국 드라마, 영화의 특이한 구조가 한국 배우들의 중국 진출을 쉽게 만들어 주었고, 어느 정도 알려진 배우를 보유한 기획사 사장들은 눈에 불을 켜고 중국 진출을 타진하고 있었다.

“김 부장님 말은 그 둘을 위해서 다른 애들을 병풍으로 세우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이 두 명을 위해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소속된 YAM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차..윤사장이 YAM 소속인걸 잊었구만. 거기도 중국에서 활동하는 3명 때문에 개점휴업상태이긴 하지.

하지만 말이야 경영자로서 한번 생각해봐, 실제 중국 활동으로 인한 수익은 한국에서 버는 것과는 급이 다르다니깐.”

“일단 한국에서 떠야하는 전제 조건도 필요하고, 중국 멤버들이 한국에서 계약한 조건을 그대로 잘 따라야지 되는 거 아닙니까?”

“허허. 그건 그렇지. 헌데 말이야, 남자와 여자는 또 달라.

중국에서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활동은 완전히 달라. 70년대 한국 연예계에 있었던 모든 악습이 다 남아 있다고 생각하면 될 거야.

한국도 심심찮게 베게 로비니 스폰이니 하는 말이 돌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없어졌잖아?

하지만, 중국은 공공연히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아직도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어. 그런 걸 즐기는 애가 아니라면, 아마 중국 회사로 넘어가는 여자애들은 없을걸.”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안될 것 같습니다. 두 명 때문에 다른 애들을 병풍으로 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보여주신 애들을 우리 소속으로 아예 적을 옮기는 게 아니라면 우리 걸그룹에 포함 시키는 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나영 팀장님이 추천한 2명은 완전히 소속을 옮기는 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김 부장님이 제 입장이라면 PLUS의 세 명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면, 내 회사 소속의 내가 다 먹을 수 있는 2명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이 사람아 비주얼이 다르다니깐 진짜 실제로 한번 봐봐.

그리고, 중국시장 진출 안 할 거야? 노다지라니깐, 중국 출신 애들이 무조건 있어야 한다니깐 그러네.

참, 며칠 있다가 중국 상해로 출국한다고 했지? 나도 상해로 가야 하는데, 같이 좀 가자고. 내 인맥도 윤사장한테 소개해주고 서로 이득이 되는 방향을 한번 만들어 보자고.”

능글맞게 웃으며 일단 같이 중국에 가서 이야길 하자는 듯이 이야기하는 김일규 부장이 짜증이 났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

“혼자 오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상해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나오니, 김일규 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는 김일규 부장 혼자서 공항에 온 게 아니었다.

며칠 전 프로필을 보여준 중국 출신의 2명도 같이 나와 있었고, 메이크업 가방까지 든 메이크업 직원과 단단하게 생긴 남자 직원까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와 있었다.

“아, ‘소옥’이가 상해 출신이고, ‘우혜’도 상해에서 학교를 다녀서 가이드 겸 같이 온 거야. 그리고, 윤 사장도 통역이 없는 거 같은데, 우리 애들이 통역도 해줄 수도 있고. 괜찮잖아. 하하하. 자자 어서 인사들 해.”

김 부장이 시키는 대로 웃으며 인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어서 나도 같이 인사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어? 윤소원이다.” “진짜네. 그런데, 옆에 여자들 뭐지?” “옆에 직원들 있는 거로 봐서는 공식일정인 거 같긴 한데. 중국가는가 보다.” “근데, 저 여자애들은 모델인가? 몸매 장난 아닌데.” “배우 느낌인데? 누구지 궁금하다.”

발권을 위해 대기할 때나 비행기에 타고나서도 확실히 같이 온 소옥과 우혜가 눈에 띄는 용모이긴 했다.

김일규 부장이 정말 심혈을 기울여서 키우고 있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듯했다.

“대표님 어서 오십시오. 그리고 김일규 부장님도 갑자기 같이 오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출국장 출구엔 우리 직원인 최만일 실장이 나와 있었는데, 그도 김일규 부장을 아는지 아는 척을 했고, 중국 화이 엔터 측에서는 나를 많이 기다렸는지 내가 차에 타자마자 급하게 공항을 빠져나왔다.

“소원형 어서 오세요. 형 오기만 기다렸어요. 공항에 나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면 혼잡해질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리고 있었어요.”

멀리 와이탄의 동방명주가 보이는 고층 빌딩에 만들어진 작업실에 들어서니,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준, 소혁, 위안이가 나를 반겼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중국에서 앨범 준비를 하는게 YAM의 멤버인 미준, 소혁, 위안이의 앨범이었고, 이후로는 다른 중국그룹의 앨범 일을 해줘야 했다.

“대표님이 이야기하신 시스템이 다 세팅이 되어 있고, 녹음부스와 간이 침실도 만들어 두었습니다. 바로 작업 가능합니다.”

“화이엔터에서 돈 투자 많이 했네요. 그럼, 너희들 스트레칭하고 목풀어! 바로 시작하자.”

“네, 그런데 소원형. 저 분들은...”

애들이 궁금해하는 사람은 김일규 부장과 소옥과 우혜였는데, 이미 김 부장은 중국 화이엔터 사람들과 이야길 하며 둘을 소개해주고 있었다.

“소원형 진짜, 걸그룹 만드는 거야? 김 부장이란 분의 말로는 저 두 명이 형의 걸그룹 멤버라는데. 형 취향이 저런 모델 스타일이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중국어로 우리 회사에 저 두 명을 그렇게 소개하는데, 형이 이번에 제작하는 걸그룹의 멤버라고, 상해 출신에 희극원 출신이라고 나중에 중국에 진출할 때 잘 부탁한다는데.”

“휴, 아직 멤버 확정 전이야. 여러 복잡한 일이 있었어.”

김일규 부장은 안면 두껍게 작업실까지 따라와선, 같이 온 소옥과 우혜를 화이엔터 사람들에게 벌써부터 영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하는 중에 한껏 웃고 떠들기에 내가 조용히 하라고 하자, 남자들끼리 다들 한잔하러 가는지 나가버렸고, 녹음실엔 소옥, 우혜와 메이크업 담당만 남게 되었다.

미리 한국에서 대현 형과 펀치 누나들과 만든 노래를 애들이 불러보고, 중국어의 성조에 따른 문제와 가사를 수정하며 한참이나 일을 했다.

그러다, 중국 멤버 3명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뭐라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스케줄 때문에 이제 저 3명이 가야 한다고 합니다.”

뒤의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던 위구르 출신의 우혜가 통역을 해주었다.

살짝 어눌한 한국어였지만,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한 말투였다.

그렇지 않아도 매니저가 계속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면서 시간을 가리키길래 느낌은 왔었다.

“네. 그럼 다음에 다시 하자고 전해주세요.

애들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너네 스케줄 있데. 빨리 나와라.”

스케줄 있다는 세 명을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중국을 담당하는 최만일 실장도 화이엔터 사람들과 같이 가버렸기에 뭘 어디로 가거나 할 수도 없어서 난감했다. 그냥 4명이서 앉아서 최만일 실장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꼬르륵>

그냥 앉아서 핸드폰을 보는데, 떨어져 앉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키가 커서 에너지 소비가 더 빠른 건지, 우혜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손으로 배를 가리며 어찌할 줄 몰라했다.

“오면서 보니깐 여기 꼭대기가 레스토랑이던데, 거기서 밥이나 먹읍시다.

일단, 식당에서 식사하고 차를 마시고 있으면 다들 오겠죠. 자 갑시다.”

작업실이 있는 빌딩이 나름 크고 유명한 빌딩인지 맨 꼭대기 층의 레스토랑은 제대로 격식을 차린 프랑스식 레스토랑이었다.

쉐프추천코스로 티본 스테이크와 송아지 볼살 구이를 시키고 추천해주는 와인까지 주문하자, 4명의 밥값이 80만 원대였다.

뭐가 이리 비싼건지 중국의 가성비는 이제 없어진 것이냐고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었는데, 제대로 된 전채요리가 나오고 영어로 와인에 대해 설명을 해주며 시중을 드는 사람이 우리 테이블에 고정 배치되자 비싼 돈값을 하긴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와이탄의 고층 빌딩들이 만들어내는 야경까지 더해지자 꽤나 좋은 레스토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프랑스 디너 코스를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다 보니, 조심스레 직원에게 일일이 물어보면서 제대로 먹는지 물어보고 먹었는데, 이렇게 일일이 물어보고 먹는 내 모습에 여자 3명은 의아해했다.

“이게 연어 테린(smoked salmon terrine)인데, 프랑스에서는 일반적인 서민들의 전채요리라는데.

연어고기로 쌓인 치즈와 게살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일이 잘 없잖아. 그러니 당연히 이렇게 물어보면서 먹는 거지.”

“저..인터넷에 이런 요리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른다고 글이 올라오면 어떡하려고요?”

소옥이 마치 이런 건 유명인의 위신을 깎아 먹을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며 물어왔다. 하긴 옆에 앉은 메이크업 직원도 20살 정도의 어린 친구였고, 앞의 소옥과 우혜도 어리다 보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했다.

“이제 배웠으니깐 앞으론 잘 먹겠지. 뭐. 그런 것까지 걱정하면서 살면 오래 못 살아.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건 부끄러울 것 없어.

조심스레 눈치 보면서 밥 먹다간 소화불량 걸리겠다.

뭐, 배고픈 우혜는 소화가 빨리 되겠지만.”

내가 일부러 보란 듯이 우걱우걱 먹으며 웃어주자 그제야, 3명 모두 유명 연예인과 밥을 먹는다고 조심스레 움직이던 포크와 나이프를 열정적으로 움직여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긴, 비행기에서 간단히 나온 샌드위치 외엔 먹은 게 없다 보니 배가 고프긴 고플 터였다.

같이 밥을 먹으며 이야길 해서 그런지 어색했던 관계가 조금은 풀어질 수 있었고, 식사 후 커피를 마실 때가 되어선 그냥 서로가 아는 사이들처럼 이야길 주고받았다.

사실, 잘생긴 이성과 얼굴을 마주하며 밥을 먹다 보면 불편한 사이라도 어느 정도는 마음이 풀어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본성이었다. 더구나 여자 세 명과 먹는 고급식사였으니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이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건 어설픈 진로상담밖에 없었다.

“아까 화이엔터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잖아? 중국에서도 충분히 먹힐 수 있는 외모에 희극원 출신이면 연기도 나쁘지 않을 거잖아. 아니 오히려 거기 출신이면 더 대우를 해줄 건데, 왜 굳이 한국에서 데뷔를 하려는 거야? 난 그게 이해가 할 수가 없어. 아이돌이란 목적이 있다면 모르겠는데, 둘 다 지망하는 건 배우라면서?”

“그게 앞뒤가 안 맞겠지만, 배우를 하고 싶기에 한국에서 데뷔해야 해요.”

우혜의 알 수 없는 말에 옆에 앉아 있는 소옥도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우혜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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