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
새로운 팀 결성.
[늦은 밤에 소주 한잔에 기대어 본다.
너란 사람에게 한잔
나란 사람에게 두잔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저 달에 또 한잔.
늦은 밤에 기댈 곳 없어 또 너에게 기대어 본다.
언제라도 너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술에 기대어 너를 불러 보네.
I wish you will be mine~
늦은 밤에 너를 보낸 나를 미워해 본다.
좀 더 널 곁에 두지 못한 나를
아무 말도 못 한 채 떠나는 널 두고 본 나를
밤에 기대, 술에 기대 미워해 본다.
늦은 밤에 널 사랑했던 그대로
언제 까지나 내 안에 숨 쉴 너를
이 밤과 함께 기다려 본다.
I wish you will be mine~]
“음. 노래 리듬은 좋은데, 실제 불러보니 너무 가사가 질척이는 내용인데요.
이게 드라마 OST로 들어가는 거라면 괜찮을 텐데. 그게 아니고 그냥 솔로 싱글로 내는 노래라면 너무 감정이 과몰입돼서 대중들의 동감을 얻기 힘들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랑 방식도 바뀌었습니다. 좀 더 쿨하게 돌아 서버려요.
지금 가사에 담긴 사랑과 이별은 연배가...아, 이거 설마 금철 사장님 자전적인 곡 아닙니까? 그러면 딱 연배가 비슷한 사랑 방식일 것 같은데요.”
혹시나 해서 떠봤더니 건달처럼 생긴 금철 사장이 흠칫하는 게 웃겼다.
“그냥 늦은 밤에 술 먹고 술김에 써본 가사야. 흠흠. 그럼, 좀 더 락 발라드로 빠르게 BPM을 올리게 되면 어떨까?
가사는 좀 궁상맞더라도, 리듬이 빨라지면 질척거리는 건 좀 줄어 들것 같은데.”
“이런 말이 있잖아요. 곡에서 리듬이 얼굴이면, 가사는 성격이라고.
마치 처음으로 마주친 이성과의 연애와 같아요.
리듬, 멜로디를 처음 들었을 때 호감이 팍! 하고 와 닿아야 초반 30초를 넘어갈 수 있어요. 남녀가 만났을 때 얼굴이 좀 생겨야 예선전을 넘기고, 본선 연애로 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연애하는 거처럼 멜로디, 리듬이 귀에 익게 되면 그제야 가사가 귀에 들어와요. 연애 초기에는 얼굴, 몸매만 보다가 성격을 보기 시작한다는 거죠.
그 후부턴 그 곡의 가사를 곱씹으며 노래의 전체적인 성격을 듣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성격을 알게 되면 맞는 성격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서 계속 사귈지, 아니면 헤어질지를 정하는 거잖아요.
노래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리듬을 락 발라드로 좀 빨리해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고 해도, 이 옛날식 사랑 가사로는 긴 연애를 하기가 힘이 들어요. 요즘 애들의 사랑 방식을 알고 거기에 맞는 가사를 써야죠.”
“와꾸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성격이 더러우면 감정이 좀 빨리 식긴 하지.
실시간 스트리밍을 듣고, 음원을 다운받고 해서 차트를 밀어 올려줄 사람들이 10~30대이니 요즘의 트렌드를 따르는 게 맞겠구나.
휴우..나도 이제 한물간 건가? 옛날 사랑밖에 모르니.”
“너무 또 자책하시지 마시고요. 한국 가요가 100년 정도 되었다면 그 역사 동안 가장 많은 주제가 사랑과 이별이잖아요.
다양한 세대, 다양한 종교, 다양한 가치관 등등 모든 이들을 아우르는 게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에요.
사장님의 표현법이 지금의 음원을 소비해주는 소비층과 어울리지 않을 뿐이에요.
사장님이 요즘 애들 방식으로 연애를 직접 해보시거나, 그게 아니면 요즘 애들과 사랑에 관해서 이야기를 깊게 해보시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일단, 나온 곡은 제가 수정을 하도록 할게요.”
“넌 그럼 수정을 어떻게 하는데? 아하~ 너 이 자식, 연애 중이구나.”
“음, 그건 노 코멘트와 묵비권을 행사하겠습니다. 하하하.
일단, 곡 수정은 저 혼자 하지 않고,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과 같이할 거에요. 그러고 보니 내일 밤에 다들 모이는 데 오실래요?”
“좋지. 나 말고도 우리 회사 서브인 영찬이라고 있는데, 그 애도 데리고 가도 되겠지?”
“네, 브레브의 서브를 맡으시는 분이라면 대환영입니다.”
**
“야, 너네는 또 왜 온 거야? 작업실 좁아져!”
곡 작업을 위해 금철사장과 브레브의 서브로 불리는 기영찬이란 분이 왔는데, 우리 YAM의 멤버 5명도 부록처럼 따라왔다.
제일이 형은 이미 우리 레드샵에서 음악 만드는 걸 보고 배우겠다고 해서 알고 있었는데, 다현, 영호, 규일, 희라, 토모는 말도 없이 금철사장과 함께 들이닥쳤다.
“오늘 연습실 쉐어 때문에 브레브 엔터에 갔었잖아요. 금철 사장님께 좋은 말씀 듣고 있는데, 여기 가신다기에 따라 왔어요. 하하하.
태국에 간 가빈이나 배우 지망인 정환이 빼곤 다 모인 거네요.
방해 안 하고 제일이 형처럼 견학 좀 할게요.
진짜 요즘 최고로 핫한 프로듀서들의 모임이잖아요. 구경 좀 할게요. 제바알요. 혀어엉~ 부탁해요~”
규일이의 애교 섞인 부탁에 웃으며 구석에 줄을 지어 앉혔다.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배우고 느끼는 모든 게 이들에게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 있길 빌어줬다.
“금철사장님 그러니깐...아 호칭이 좀 그런데, 금철 형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일일이 사장님을 붙이는 게 힘들었는지 대현 형이 호형(呼兄)을 해도 되는지 물었다.
“형님으로 불러. 님 자는 꼭 붙여. 그래도 10살 넘게 차이나잖아.”
“네. 형님 그러면 먼저 이 가사를 적은 화자가 순정파인지 소심한지부터 알려주세요.
그리고, 연애 경험이 많은 남자인지를 알려줘야. 이 가사가 소원이와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헤어진 여자와 연애할 때 최선을 다해서 연애했는지도 말해주세요. 나이대는 대충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남자죠?”
‘늦은 밤에’ 가사를 받아든 대현 형은 물론이고 빨간 펀치의 채연 누나도 이 가사를 적은 사람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런 부분이 왜 필요한 거야?”
금철 사장은 모두에게 이야길 하지 않았지만, 눈치로 판단하기로 이 가사의 사랑과 이별은 금철 사장 본인의 이야기로 들렸다. 그러다 보니 가사의 화자에 대해서 정보를 주는 걸 망설였다.
“당연히 필요하죠. 댄스곡과 발라드는 접근법 자체가 달라요.
사랑놀음, 사랑 타령이라고 발라드를 낮추어 부르는 성향이 있지만, 발라드가 노래 중에서 가장 진심이 어리고, 감정이 묻어나는 장르라고요.
그런 발라드에서는 노래를 부르는 화자의 입장에서 불러줘야 호소력이 생기고, 실제 부르는 가수도 감정을 이입하기 좋은 거죠.
그래서 작사가가 어떤 의미에서 이런 가사를 적었는지를 알아야 곡을 편곡하기 쉽죠.”
“빨간 펀치 원희 말처럼, 발라드 노래의 주인공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감정을 잡기 쉬워요. 그래서 이런 설정을 먼저 잡고 발라드 가사를 작사하는 게 좋습니다.
금철형님의 자전적인 가사라면, 그때의 그 연애에 관해서 이야길 해주셔야 편곡 방향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대현 형의 말을 듣자 그제야 금철사장은 자신의 옛날이야기라고 하며 썰을 풀어냈다.
“흠. 화자가 눈앞에 있으니 캐릭터 성을 만들기는 좋네요.
그럼, 30대 남자가 말하는 아픔 있는 이별과 그리움이 늦은 밤에 드러난다는 것에서 노래를 부를 소원이랑 매치가 되지 않아요.
20대 남자의 피가 끓는 뜨거운 사랑과 어쩔 수 없는 현실문제로 인한 헤어짐으로 곡의 방향을 바꿀게요.
대중이 보는 30대의 이별과 20대의 이별이 다르다 보니, 20대 초반인 소원이가 부를 노래로 가사를 좀 바꾸겠습니다.”
남자의 이별 노래이다 보니 대현 형이 바로 가사의 부분 부분을 변경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철사장님이 만든 가사와 곡은 소원이가 부르게 되면 이미지 괴리가 심해서 와 닿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대현이가 바꾸는 거니 이해해 주세요.”
채연 누나의 말에 금철 사장은 물론 작업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곡 수정에 대해서 공감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현 형이 수정한 곡을 다시 빨간 펀치 누나들이 받아서 키보드로 연주하며 불러보고, 다시 가사와 기본 리듬을 수정했다.
“I wish you will be mine 이 부분은 뺄게요. 영어 후렴은 없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현 형이 15분 빨간 펀치 누나들이 10여 분해서 30분 만에 편곡이 끝이 나버렸다.
[늦은 밤 끝에 걸려있는, 하지 못한 말.
너와 나누고 싶었던 소주 한잔.
너무 아껴두었기에 하지 못한 그 말.
고갤들어 저 달에게 외쳐본다.
모두 잠든 늦은 밤에 혼자 외친다.
늦은 밤에 널 사랑한다 외쳐본다.
너에게 기대어 본다.
언제라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야 외쳐본다.
사랑해. 사랑해 너를 사랑한다!...]
“오~ 노래 가사가 제대로 필이 있는데요. 소원씨가 사랑해 사랑해 하면서 지르는 부분은 3단 고음처럼 처리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가능하다면요.
그리고, 철이 형 저도 영어 부분 빼는 게 좋겠다고 했잖아요. 딱 이 친구들이 느낌 있게 제 마음처럼 편곡을 해주네요.”
“야! 넌 그냥 대안 없이 이 부분 안 좋다. 저 부분 안 좋다고 지적만 하고, 레드샵 애들처럼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잖아!”
브레브의 서브라는 기영찬과 금철 사장이 아웅다웅하며 이야기하는데, 기영찬의 말처럼 사랑해 부분을 3단 고음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음정을 수정하고 발음이 어려운 부분을 수정하자 금철 사장과 기영찬이 변경된 가사에 맞게 다시 멜로디 라인을 짜기 시작했다.
작업을 보고 있으니 괜히 금철사장이 히트메이커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가사 부분에서는 나이가 있다보니 살짝 진부한 느낌이 있지만, 귀에 팍팍 꽂히는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데는 역시 독보적이었다.
“와! 쩌..쩐다.”
“나 방금 이 노래를 만드는 40분을 영상으로 박제했어. 곡을 만드는 게 이런 경험인지 몰랐다. 진짜 신세경이다.”
“왜 제일이 형이 만사를 제쳐두고 레드샵에 오는지 이유를 알겠다.”
작업을 구경하는 YAM 멤버들은 편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방법으로 진행되는지를 보게 되자 더더욱 창작에 대한 재미와 흥미가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곡에 대한 정산 비율을 계산해 보고, 소원이의 레코딩 일정과 출시 일정을 잡아 보자. 그리고, 오늘과 같은 이런 창작 컨퍼런스를 계속했으면 하는데. 물론, 곡에 따른 비용은 확실히 지급하는 거로 하고. 어때?”
“저 그런데, 사장님과 음반은 만들지만, 레코딩은 MSM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브레브에 녹음 스튜디오가 있다지만, 기사님들의 실력이나 장비는 MSM을 따라갈 곳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컨퍼런스 형태의 모임보다는 아예 금철사장님과 기영찬님이 우리 레드샵의 창작 집단에 겸임으로 들어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회사의 운영에는 일절 참여 없이, 순수한 창작모임의 멤버로서의 참여 말입니다.
한 명이 아무리 천재라도 집단 지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나, 음악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리듬에 고착화 되거나 자기 복제가 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 부분에서 서로서로 보완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나온 곡의 퀼리티가 확실히 좋다 보니, 금철사장은 이런 창작모임이 계속되었으면 했을 텐데, 무조건적인 퍼주기 모임보다는 아예 레드샵의 깃발 아래에 모여든 멤버로 만드는 것이 우리에겐 이익이었다.
“순수한 창작을 위한 겸임멤버라...그래, 그게 좋겠어.
오래된 연애의 가사를 고치기 위해 어린 사람과 연애를 하기 보다는 어린 친구들과 이야길 하고 서로 팁을 주고받는 것이 더 빠르겠지.
좋아. 그럼, 레드샵에 겸임 프로듀서로 참여하도록 하지.”
“저도요! 저도! 서브도 당연히 참여해야죠.”
기영찬이 자신도 당연히 참여하는 게 맞다고 작업을 하는 중에 큰소리로 외쳤다.
“이제 사실대로 이야기해야겠네. 영찬이 넌 서브로 부르지만 음악노예잖아. 넌 심부름이나 해 인마!”
“금철 사장님! 심부름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제 배우는 입장이라 도움될게 없으니 심부름과 간식 조달이라도 하겠습니다.
남는 음악노예 자리라도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헤헤헤.”
벽 앞에 일렬로 앉아 있던 YAM 멤버들이 자기들도 레드샵의 프로듀서 모임에 끼고 싶다고 서로 심부름꾼과 음악노예를 자처하며 손을 들었다.
“너넨 음. 노예는 좀 그렇고. 견습생으로 해주마. 대신 일정 수준이 되지 않으면 돈 못 준다.”
“크으 여기서 열정페이, 아니 견습생페이를 겪게 되다니.”
“전 견습생페이도 좋습니다. 음악노예 2호로 삼아주세요!”
“사장님 저도 노예로 삼아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YAM멤버들이 서로 노예가 되겠다고 하니 여자 팬들이 봤다면 흐믓해 할 것 같았다.
음악노예라는 단어가 좀 그렇긴 하지만, 제자처럼 음악노예를 키우기로 유명한 윤종현 프로듀서의 경우, 윤종현의 음악노예 출신이라고 하면 누구든지 고개를 끄덕이며 수준급의 음악가로 인정을 해줄 정도였다.
금철사장이 내가 생각한 대로 우리 멤버들을 이끌어주고 프로듀서로서 가르쳐 준다면 금철의 음악노예 출신이라는 말만으로도 인정받는 시대가 금방 올 터였다.
**
“일단, 소원이는 돈가스 전문가게인 ‘청암’의 주인장 역, 태정이는 퓨전 일식집 ‘가쓰오’를 비싸게 권리금까지 주고 인수 한 호구 사회 초년생 역이야.
은우는 프랜차이즈 파스타 집에서 알바를 하다 처음 차린 ‘쥬벤스타’ 란 파스타 집의 사장 역.
유리는 일품요리 위주의 퓨전 한식집인 ‘갑동찬’ 집의 큰딸이야. 부모님이 아프셔서 가게를 떠맡은 상황이지.
저예산 영화이다 보니, 너희 4명이 자체적으로 요리 연습을 해와야 해.
졸업생들이 찬조 협찬해준 천만 원의 대부분을 4곳 가게 임대비로 써야 하다 보니, 푸드 코디네이터를 따로 고용하거나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야.”
“헉, 교수님 저는 아예 요리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럼, 태정이 너는 딱 맞네. 권리금 눈탱이 맞고 넘겨받은 역이니깐 최적이야.
전체적인 요리 컷은 대본에 적힌 대로 한 개 요리만 연습해와. 요리장면은 각자 그 한 컷이 전부이니깐, 태정이의 처음 해보는 요리의 그 느낌이 들어가게 되면 확실히 권리금 호구 느낌이 더 날거야.
의상은 대본 뒤에 적혀 있는 동문이 하는 유니폼가게에 가면 사이즈 맞는걸 줄 거야. 촬영은 다음 주부터니깐 다들 연습해서 와.”
“소원아 넌 요리 해봤냐? 난 퓨전 일식이라 고기덮밥만 하면 되는데, 넌 돈가스를 해야 하더라, 보통 자취를 해도 집에서 돈가스는 안 해 먹지 않냐?”
“그래 돈가스는 외식 메뉴라서 집에서도 자주 안 해 먹지. 가끔 엄마가 해주셔서 먹기는 했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그럼 넌 어떻게 배우려고? 난 요리학원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러자. 일단, 우리 엄마가 집에서 몇 번 해줬으니깐 한번 엄마찬스 써보고, 안될 것 같으면 같이 요리 학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