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이유 없는 미움.
점심을 먹고 다음 수업까지 30분 정도 시간이 되었기에 정기석 교수와 카페테리아 앉아서 대략적으로 신입생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신입생 영화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신입생들간의 협동심이나 동기들간의 단합을 위해 찍는 게 아니야.
80년대 처음 신입생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는 영화현장을 전혀 모르고 영화에 대한 경험이 전무 한 신입생들에게 영화 촬영에 대한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시작되었어.
하지만, 90년 중반부터 10대 하이틴 스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하이틴 스타들이 우리 연영과에 들어오면서부터 신입생 영화의 성격이 좀 바뀌게 되었어.”
“이미 데뷔해서 경험이 있는 하이틴 스타들과 경험 없는 다른 신입생들의 단합을 위한 영화로 목적이 변경돼버린 거군요.”
“그래, 거기에 더해서, 연영과라고 모든 학생들이 배우를 지망하는 게 아니거든.
예능 쪽으로 가려는 사람도 있고, 방송계나 나처럼 연출 쪽을 지망하는 사람도 있다 보니 서로 간의 접점이 잘 맞아 떨어지는 거지.
서로의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달까.
그래서, 이번 영화에는 선배들을 다 빼고, 연출이나 촬영, 무대예술 등 모든 분야를 신입생들이 다 맡아서 할 예정이야. 될 수 있으면 선배들의 도움 없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신입생들만으로 한번 해보자는 거지.”
“그럼 영화의 내용은 뭔가요? 그리고 촬영 기간이나 그런 건 또 어떻게 되는가요?”
태정이가 새로운 영화에 들어가기로 되어 있는지 촬영기 간부터 정기석 교수에게 확인했다.
“45분 내외의 단막극 형태라 촬영은 길어도 일주일이면 끝날 거야. 편집이나 후반 작업은 너희가 들어가는 부분이 아니니 아마도 일주일 정도? 길어도 보름 정도 되겠네.
상업영화도 아니고 선배들의 기부금으로 찍는 저예산 영화라 오래 찍을 수가 없지.
영화 내용은 요즘 방송가의 트렌드가 요리와 식음료 분야인 건 알지?”
“네, 진짜 어느 채널을 어디로 돌리던지 다 먹는 거만 나와요.
여행을 가서 먹거나, 가족들끼리 먹거나, 노래하면서 먹거나 다 먹는 이야기더라고요.”
정기석 감독의 말에 우리 둘 다 맞장구를 치며 요즘 트렌드가 요리 쪽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영화계를 보면 의외로 요리 관련 영화가 없어.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 허정만 화백의 ‘식도락객’이후로는 음식이나 요리와 관련된 영화 자체가 없는게 현실이야.
‘식도락객’이 300만 명을 넘지 못할 정도로 흥행실패를 했으니, 요리 관련 영화에 투자하겠다는 곳이 없는 게 현실이야.
그래서, 신입생 영화에서 실험적으로 요리영화를 해보려고.
영화의 제목은 ‘요리전쟁’이야. 메일주소 불러봐 대본 보내줄 테니까.”
제목만 듣고 보면, 요리하면서 판타지스러운 이 능력이 발휘되어 서로 싸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캐스팅이 지금 다 확정이 된 건지, 벌써 대본을 이렇게 주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메일로 대본을 다 보냈다. 확인해. 요리 분야가 다른 4명의 젊은이가 요리로 경쟁하는 내용이야. 그리고, 너희 둘은 당연히 주연이고.”
“저 교수님, 그런데 캐스팅이나 그런 부분이 다결정이 난 건가요? 대본을 읽어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내정이 다 되어도 되는가요?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할 거 같은데.”
“아, 그 이야길 안 해줬구나. 캐스팅은 이미 다결정이 났어. 너희가 실기시험으로 연기를 했을 때, 그때 이미 교수님들과 우리가 논의해서 다결정을 했어. 그 실기시험이 일종의 오디션이었던 거야.
신입생들 영화제인데, 학기 중에 다시 오디션을 보고 촬영을 하고 하면서 시간 일정을 빼기가 다들 힘들잖아.
그래서 아예 실기시험에서 본 연기를 오디션으로 처리를 하는 거지.
이번 신입생 중에는 연기 잘하는 남자애들이 많아서 교수님들이 아주 완벽히 기대가 많으시더라.
벌써 시간이 이리되었네. 더 상세한 내용은 내 수업시간에 이야길 하고, 너희 둘 그때까진 대본 다 보고 캐릭터 파악해서 와야 한다. 알았지?”
수업시간이 되어 급히 사라지는 정기석 교수처럼 우리도 뮤지컬 수업시간이라 급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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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은 쉽게 말해서 연기, 노래, 춤의 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섞이는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오페라도 뮤지컬과 비슷한 게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단 말이지.
오페라도 연기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거 든.
이 비슷해 보이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점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
그래, 빨간 셔츠 그래 너. 네가 생각하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점을 이야기해봐.”
뮤지컬의 이해 수업에서 태정이와 앞에 앉아 있는데, 김켈리 교수가 태정이를 지목했다.
“오페라에도 연기, 노래, 춤이 다 들어가지만, 주로 노래 위주로 공연이 되는 것이고, 뮤지컬은 음악 위주로 진행되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태정이가 자신 없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 잘했다. 사전적으로 뮤지컬의 정의를 이야기했어. 노래 위주의 오페라와는 달리 희곡이 중심이 되는 것이 뮤지컬이야.
너희들이 좀 더 쉽게 이해되게 설명을 해주면, 오페라는 드레스 코드가 있는 사교 무대로 생각하면 되고, 뮤지컬은 캐주얼하게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가서 놀 수 있는 파티라고 생각하면 쉬울 거야.”
김켈리 교수의 쉬운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초기 뮤지컬 시대에는 디너쇼에서 자유롭게 식사를 하며 관람을 할 수 있는 쇼가 뮤지컬이었지.
그때 1940~1960년대의 뮤지컬 황금기에서 지금의 쇼 비즈니스가 태동하고 정립이 된 것이지.
지금 현대에 이르러서는 모든 공연 예술의 중심이자 꽃이 이 뮤지컬이야.
그럼, 영국에서 시작된 뮤지컬이 194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뉴욕에서 어떻게 황금기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알아보자.....”
김켈리 교수의 뮤지컬 이해 수업은 전생에 뮤지컬 배우로 생활을 했었지만, 이런 유래와 관련된 것을 아예 모르고 있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전생에서 최고의 뮤지컬 감독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켈리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당시에는 목이 고장 나기 전에도 감히 캐스팅을 꿈꿔 볼 수 없었던 거물 중의 거물 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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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켈리 교수님 수업은 원래 이렇게 출석을 부르는 거야? 내 이름은 아예 안 부르는데.”
“보통은 처음 수업 들어오면 출석 불러주시는데, 아예 너를 빼고 부르시네. 일 때문에 수업 안 들어온 사람이 몇몇 더 있는데 너만 그러네.
아예 첫 수업부터 빠져서 찍힌 거 아냐? 수업 끝나면 따라 나가서 오늘부터 학교 나온다고 이야길 해.”
“그래야겠다. 음료수 같은 거라도 사올 걸 그랬나.”
수업이 끝나고 나가는 김켈리 교수를 뒤따라 나가 일 때문에 결석을 해서 죄송하다고 웃으면서 이야길 했다.
“그래서? 어쩌라구? 인기 있는 아이돌이라고 특별 대우해 달라는 거야 뭐야?
그런 썩어빠진 사고방식 버려라. 너.
넌 그냥 남은 출석 잘해도 D니깐 재수강을 하든 뭘 하든 알아서 해.”
웃으면서 이야길 했는데도, 화를 내듯이 쏘아붙이곤 가버리는데, 어이가 없었다.
“야, 너 김켈리 교수님한테 벌써 찍힌 거 아냐? 찬바람을 넘어서 겨울 강풍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추운데.”
“이야기 없이 첫 수업부터 결석한 거 때문에 그냥 D 준다고 하니 성적에 신경 안 쓰지만, 좀 그렇네. 학교생활 참 힘들다.”
“전에 티비 예능에서 뮤지컬배우들과 하는 프로그램 봤었지? 거기서도 성격이 장난 아니었잖아. 여배우들 몇 명이나 울리고 했잖아. 그래도 뒤끝은 없는 것 같던데.”
“모르겠다. 그냥 찍힌 채로 살아야지. 난 수업 끝나서 이제 회사 갈 건데 넌?”
“나도 학교 수업은 끝났어. 따로 회사에서 액션스쿨 등록해줘서 거기 가야 해.”
“그럼, 내일 보자. 먼저 갈게.”
김켈리 교수 건으로 복잡한 머리로 회사에 오니 YAM 멤버 애들이 연습실에서 연습은 하지 않고 놀고 있었다.
“토모야 제일이 형이랑 가빈, 희라는 오늘 안 나온 거야?”
“제일이 형은 이용민 실장님이랑 이야기한다고 올라갔고요. 가빈이는 태국 집에 갔어요. 이제 비행기 탔겠네요. 희라는 오전에 왔다가 학교 간다고 갔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일 단체 일정이 있는데, 가빈이가 왜 태국으로 돌아간 거야?”
“어? 소원이 형 몰랐어요? 우리 5개월 동안 휴식기에요.
미준이랑 소혁, 위안이가 중국에 5개월 동안 활동하러 간다고 우리들 일정이 다 취소되거나 밀렸어요.
새 앨범 준비는 아예 날짜 미정이 되었고요. 개인 스케줄도 다 변경되었으니깐 형도 확인하세요.
공통 스케줄은 아마 9명이서 행사 뛰는 일정만 남아있을 거예요.
그리고, 휴식기라고 해도 악기 배우고 프로듀싱 배운다고 나머지 애들은 회사에 계속 나올 거니깐 큰 상관은 없을 거예요.”
토모의 말을 듣고는 급히 사무실로 가니, 토모가 알려준 말이 사실이었다. 이제 중국인 멤버들이 없는 5개월간은 앨범 발매나 준비 없이 공연행사만 하게 된다고 스케줄 표에 적혀 있었다.
“소원아. 내일 일정이 바뀌었어.
소혁이가 내일 오후 비행기로 중국으로 가기로 해서, 내일 아침 일찍 너랑 같이하는 스케줄이 잡혔어.
소혁이랑 중국 배우 장이위랑 같이 촬영하는 ‘믹스 툰 제로 프로젝트’ 알지?”
“네 기억하고 있어요. 내일만 좀 바쁘면 몇 개월간 시간이 확실히 남게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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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혁이랑 소원이가 리콘 카메라를 들고, 양 사방으로 움직이며 사진 찍는 포즈를 잡아 주세요.
음향팀! 강풍으로 옷 날리게 할 때 바람 소리 안 들어가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새벽부터 스튜디오에 나와서 ‘믹스 툰 제로’ 촬영을 하는데, 스크린에서만 보다 처음으로 실물을 보게 된 중국 배우 ‘장이위’의 모습은 엄청났다.
세 명이 따로 불러서 믹싱한 노래 ‘리콘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캐치프레이즈 (catchphrase) 송에 맞추어 부드러운 율동을 하는데, 그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는 물론이고 스튜디오의 모든 사람들이 넋을 잃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야, 진짜 여신이다. 낼모레 40살에 10살 딸도 있다고 했는데, 시간을 거꾸로 먹었네.
위구르족 혼혈이라고 하더니 백인 특유의 입체적인 느낌도 있고, 동양미가 있다 보니 어느 각도로 봐도 미인이다. 완벽한 피사체다.”
내가 리콘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으면서 와 닿은 피사체의 느낌을 이야기하니, 한국 스태프들도 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리콘 카메라의 관계자인 일본 사람들도 대단한 미인이라며 개인 핸드폰을 꺼내서 사진을 따로 찍을 정도였다.
“근데, 여자 키가 182이니깐 부담이 좀 되긴 된다. 힐 신으니깐, 190이 넘네. 2m가 되겠다. 소원이 너도 옆에 서기 부담스럽지?”
“그렇죠, 늘 160~170대의 여자들만 보다가 힐 신어서 저보다 커 보이는 여 잘 보니깐 부담이 되긴 되네요.
진짜 아래에서 여신님 쳐다보듯이 봐야 할 것 같아요.
아, 맞다. 기봉이 형 신발에 깔창 깔고 있죠? 그거 빨리 빼서 주세요.”
“야, 184인 네가 깔창 깔면 170이 안되는 나 같은 사람은 죽으라는 거냐?”
“장이위가 이렇게 큰 줄 저도 몰랐어요. 깔창 깔고 촬영하고 나중에 돌려줄게요. 그렇다고 저렇게 소혁이처럼 발 받침대 밟고 올라가는 건 좀 아니잖아요.”
“내 궁극의 아이템인 깔창까지 달라고 하는 놈은 또 처음이네.”
기봉이 형은 구시렁거리면서 신발을 벗어서 주는데, 깔창이 2중 깔창이었다.
“형, 밑 장을 두 개나 깔았어요? 두 개다 주세요.”
“햐, 이렇게 남자의 자존심이 바닥나네. 10cm 밑의 공기는 코가 시릴 정도로 차갑구나. 차가워. 깔창 다 가져가 이쒸.”
기봉이 형이 내준 깔창을 깔고 구두를 신으니 좀 불편하긴 했지만, 확실히 10cm 가까이 커지자 장이위에 대한 자신감도 커졌다.
“자, 소원씨가 왼쪽에 한 번에서 볼게요. 보조! 발판 준비해...아..아니다 발판 필요 없다. 그래도 슛 간다!”
촬영감독의 발판 필요 없다는 소리에 한국인 스태프들이 다 쳐다봤다.
“와, YAM의 윤소원이 저렇게 컸어? 모델급이었네.”
“옆에 서니 장이위와 거의 비슷한 키네. 이야 장이위가 보고 웃는다. 오늘 처음으로 저렇게 환하게 웃는 거 같은데 맞지?”
장이위의 옆에 서니 장이위가 중국어로 뭐라고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한국티비에서 소원씨를 자주 봤었답니다. 딸애가 좋아한다고 하네요. 이렇게 키가 큰 줄 몰랐답니다.”
‘네 기봉이 형의 매직 깔창이 만들어준 키 에요’라고 이야기는 못 하고 그냥 웃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리콘 관계자들도 소혁이와 나 사이에 장이위를 모델처럼 세워두고 찍는 거보다 나와 장이위가 모델이 되고 소혁이가 포토그래퍼로 사진을 찍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지 원래의 촬영컨셉과 다르게 수정을 해서 촬영을 했다.
촬영하며 장이위와는 말은 안 통하지만, 어느 정도 친하게 되었고, 휴식 시간에는 장이위의 10살 딸과 영상통화도 하며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비하인드 영상 찍습니다. 리콘 홈페이지에만 공개되는 영상입니다.
힘들어하는 표정과 이야기 말고, 즐거운 촬영이었다는 그런 재미있는 에피소드 부탁드립니다.”
촬영감독의 말에 소혁이는 카메라를 들고, 정말 좋은 카메라라고 사진 찍을 일이 있으면 이 카메라로 찍겠다며 이야길 했고, 장이위도 카메라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며 그 화질의 깨끗함이 좋다고 이야길 했다.
사실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너무 눈에 보이는 비하인드 영상이라 재미가 없어 보였다. 포인트가 필요했다.
장이위의 10살 딸과 다시 영상통화를 하며, 셀픽을 찍는 모습으로 양손을 귀 위로 올렸다.
“리코리코니~ 카메라는 리코리코니지~”
다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일본 리콘 업체의 관계자는 아는지 이 뭐 병신 같은 놈이 있냐는 눈빛을 보내기에 싱긋이 웃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