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아싸와 인싸.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네요.”
홍콩 공연 이후 한국에 오니 남인철 실장이 MSM에서 마련해준 연습실과 사무실이라고 행당동으로 안내를 했다.
작은 4층 건물의 3층과 4층을 우리가 쓰게 되어 있었는데, 나름대로 인테리어까지 된 연습실 2개와 사무실 공간이 잘 꾸며져 있었다.
문제는 영시스터의 멤버였던 이수나가 연습실에서 루시아와 같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엇? 대현 씨에게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MSM의 정은채 연습생 추천으로 대현 씨가 오디션 보고 우리 연습생이 되었다고 했는데.”
남인철 실장의 말을 들으니 은채가 한국에 오면 할 말이 있다고 바로 보자고 했던 게 생각이 났다.
부탁할 게 있다고 해서 뭔가 싶었는데, 같은 영시스터였던 이수나를 부탁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제가 새벽에 한국에 왔고 바로 온다고 대현 형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듣질 못했네요.
일단 연락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남 실장님도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은채에게 텔레그램을 보내고, 일단 대현 형이 허락했다고 했으니 대현 형에게 연락을 했다.
“야, 실력이 기본 이상이니깐 연습생으로 받아들였지. 시청률은 안 높았지만, 나름대로 투표로 뽑힌 인재잖아. 영시스터로 인지도도 나름대로 있고.
준비된 연습생이잖아.”
“대현 형 그건 맞는데, 수나는 소속기획사가 있는 애예요. MSM과 연관된 기획사도 아니고, 이거 계약문제로 트러블이 날지도 모릅니다.”
“야, 그건 이미 다 해결했다니깐 수나나 은채에게 직접 물어봐. 그 둘에게 직접 물어보면 될 걸 나한테 전화하고 있어. 만만한 게 나야? 우씌! 바쁘니깐 전화 끊어!”
수나가 아이돌 캠프에서 투표로 뽑히고, 영시스터로 데뷔를 했으니 당연히 소속사와의 활동 계약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1년 만에 해결이 되었는지, 말이 되지 않았다.
당사자인 수나에게 직접 물어보기는 좀 그래서 은채에게 어쩔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아! 그거? 그냥 해결됐어. 원래부터 소속사 사장과 수나 아버지가 잘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영시스터 활동 할 때도 새로 재계약 안 하고 영시스터 활동을 했어. 그러다 보니 계약이 끝이 난 거고.”
“아니, 무슨 아무리 아는 사이라고 해도 삼촌이나 친척도 아닌데, 제대로 계약도 없이 영시스터 활동을 했데? 말이 안 되잖아? 뭐 숨기는 거 있어?”
“숨기는 거 없어. 진짜인데.
아, 수나 아버지가 서울 지법 검사장으로 계셔. 그래서, 그런 계약 없이 쉽게 활동했다고 하던데.
원래는 수나도 소원이 너처럼 영시스터 끝나고 MSM에 들어오고 싶었는데, 연습생으로 이미 다른 소속사에 들어간 경력이 있다 보니 MSM에서는 안 받아 주더라.
그래서, PLUS 쪽을 알아보고 들어갈까 했는데, 레드샵에서도 연습생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수나를 추천해준 거야.
수나가 어디 빠지는 애가 아니잖아? 안 그래?
그런 좋은 연습생을 소개 해준 건데, 막 따지듯이 전화를 하니깐 나 기분이 나빠지려고 하네.
그리고, 수업 중이야. 넌 학교 안 오는 거야?”
“학교 가야지. 내가 부산 사람이라 말투가 따지는 것처럼 들렸는가 보네.
절대 그런 거 아니다!
수나 정도면 연습생으로 충분하지. 아니 오히려 넘치지. 아버님도 훌륭하신 분이셨구나.
역시 은채 너는 사람 볼 줄 아는구나. 수나 같은 좋은 멤버를 우리에게 추천해주고 고마워~! 싸랑해~! 알랴뷰~!”
“재섭서 끈어. 나중에 밤에 전화할게.”
다른 회사와 계약이 있는 연습생을 받아들일 때 생기는 계약문제 때문에 은채와 대현 형에게 좀 알아보고 영입하라고 한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수나 아버지의 직업을 듣고 나니 ‘이거 제가 경솔하게 그런 걸 생각 못 하고, 따지듯이 이야길 했습니다. 하하 좀 봐주십시오.’ 하며 대현 형이나 은채에게 사과해야 할 판이였다.
특히나, 루시아의 전 팀이 약으로 인해 해체한 전적이 있기에 검사장의 딸이 같이 있으니 기사 알아서 쓰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연예부 기자들이 최대한 둥글게 둥글게 아프지 않은 기사를 써 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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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수나와 루시아는 물론이고 나머지 애들도 벌써 숙소 생활을 한다는 거예요?”
“MSM이 구해준 빌라가 넓어서 좋기도 하고, 미영이도 프로듀스108 녹화가 없을 때 생활할 공간이 없다 보니, 그냥 자연스레 숙소에 다 들어가 있는 거지, 찬희도 같이 생활하는 게 팀워크에 좋을 것 같다고 같이 사는 거고.”
저녁에 만나게 된 대현 형에게 이야길 듣다 보니, 다음 달에 데뷔할 것 같이 준비되는 속도가 빨랐다.
너무 데뷔에 대한 기대를 빨리하게 되면 중간에 지쳐버릴 수도 있기에 속도 완급을 필요할 거 같았다.
“아직 팀 이름도 안정했는데, 합숙 생활부터 하다니 너무 빨라요. 애들 안 지치게 프로듀스108이 끝나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한다고 이야길 해주세요. 그리고 프로듀스 108은 어때요?”
“뭐, 처음 우리 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힘들다고 난리야.
‘더 콜업’부터 ‘믹스뮤즈’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다 시청률 2%대에서 망했잖아.
아무리 전작이 성공했다지만,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은 한물갔다는 시선들이 있어서 모든 기획사가 참여하지를 않았어.
네가 처음 했던 그 전략대로 미영이와 찬희 둘에게 첫 무대의 임팩트를 제대로 줄 수 있게 준비도 시켰고. 일단 지켜봐야지.”
프로듀스108의 촬영이 시작되지만, 이미 몇 개의 오디션 방송이 망했기에 기획사들도 긴가민가하다 보니, 진짜 에이스들을 내보내지 않아서 치열하진 않은 것 같았다.
프로듀스 참여자 중에서 눈에 띄는 연습생이 있는지 대현 형에게 물어보고 했는데, 대현 형은 눈에 띄는 몇몇 애들만 기억한다고 이야길 해주었는데, 난 전혀 모르는 연습생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원래 프로듀스 1기였던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게 뭔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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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늘은 못 보던 사람도 있네. 자네 이름이 뭐지?”
“네. 교수님 윤소원입니다.”
“아, 중국에 공연갔다는 그 친구구만, 알았어.”
입학은 했지만, 신입생 OT도 안가고 개강 후 보름 만에 수업에 들어오다 보니 교수는 물론이고 같은 동기로 보이는 사람들의 눈빛도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철저한 아싸구만. 그런데, 나 말고도 태정이나 다른 연예인들도 없는데, 나랑 완전히 시간표가 다른 건가?’
교재도 없어서 그냥 교수의 말을 필기만하다 수업이 끝났다.
책이라도 사야겠다고 싶어서 학과 사무실에 가서 물어보고 할 때 태정이가 학교로 왔다.
“야 다행이다. 나도 아싸였거든.”
“넌 조교 누나 말로는 수업 제대로 들어갔다고 하던데, 무슨 아싸야?”
“수업만 제대로 들어간다고 인싸되냐? 조금 미묘하더라, 보이지 않는 그런 벽이 있어. 뭐 어쩔 수 없는 거긴 하지만.”
“벽? 그게 무슨 말이야?”
“수시로 들어온 연예인 전형과 일반 전형으로 필기, 실기 다 보고 들어온 사람들 간의 묘한 벽이 있어. 더구나, 우린 다들 신입생 OT도 안 갔고 스케줄 있다고 심심하면 수업에 안 들어오니, 뭐 정이 들수가 있겠냐?
다들 데뷔를 목표로 연영과에 왔는데, 우린 이미 데뷔를 했고, 남자인 우리 입장에서는 학교 수업을 군대 연기목적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니, 뭐 동기간의 정이 생기겠냐?
데뷔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동기들의 질시만 안 받아도 다행일거다.”
“그럼, 중, 고등학교 때처럼 햄버거라도 돌려야 되냐?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나테리아 데리버거 세트 반에 돌리면 바로 인싸 되었었는데.”
“미친. 그럼, 버거킹 돌리면 무수한 악수 요청받겠다.
편하게 학교 다니면서 캠퍼스의 낭만까지 느끼겠다는 욕심을 버려.
그게 속 편해. 사실 연예인으로 수업 출석률이 안 좋다는 것만으로 이미 민폐니깐.”
“그렇겠네. 교양수업은 오늘 들어가니깐 다들 조가 짜여서 조별 수업을 하는데, 그런 수업에 어중간하게 끼게 되면 다른 조원들에게 민폐 끼치겠더라. 대충 출석하고 시험 치면서 그냥 조용히 다니는 거 말고는 답이 없겠네.”
“뭐, 몇몇 연예인들은 수업 80% 이상 다 들어가고 시험도 촬영 중간에 와서 보고 가고 했다는데, 그렇게까지 우리가 향학열에 불타는 것도 아니고.
동문 인맥으로 나중에 영화나 드라마 캐스팅되는 것에 조금 이득 보는 거에 만족하자.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 좋아. 나도 진짜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 먹어 보고 싶었어.”
태정이와 야심차게(?) 밥을 먹으러 갔는데, 연영과에선 천덕꾸러기였던 우리가 금세 시선을 받으며 주위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냥 둘이 학생회관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가는 길의 양옆으로 여학생들이 늘어서선 사진을 찍고 꺅꺅 거렸다.
“와 오지네. 이 학교에 오게 되면 연예인 많이 볼 수 있을 거로 생각하긴 했지만, 구내식당 가는 길에서도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다.”
“근데, 태정인가 하는 배우랑 윤소원이 친했나?”
“그 공포영화에 같이 나왔잖아. 아니면 연습생 때 같이 연습했나 보지.”
“둘 다 키가 크고 하니깐 눈에 두 명 밖에 안 보이네. 장난 없다. 연영과 전공수업 들으면 저런 꽃돌이들을 수업시간에 볼 수 있는 거지? 청강 안 되려나?”
비빔밥을 골라서 밥을 받아먹는 데도 주위의 시선은 그대로였고, 밥을 먹는 게 불편했다.
“야, 우리 밥 먹는 거 사진 올라왔는데. 캬, 이게 유명인의 삶이구나.
나 혼자 왔을 때는 알아보는 사람이 몇 명 없었는데, 너랑 있으니 바로 이렇게 언급이 되네.”
“한 일주일 정도 이렇게 먹어 보고 그래도 계속 이러면 다음에는 밖으로 가자. 소화불량 걸리겠다.”
“그래 그러자, 나도 지금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다음 수업이 뮤지컬의 이해지?”
“응 맞아. 그 수업 어떠냐?”
“여! 둘이 밥 먹고 있다길래 바로 왔다.”
30대 중반의 범생처럼 둥근 안경을 쓴 남자가 갑자기 우리 옆에 앉으면서 아는 척을 했다.
“어? 교수님?”
태정이가 교수님이라고 하니, 잘 모르지만, 밥 먹다 말고 인사를 했다.
“둘이 밥 먹어. 밥 먹어. 소원이는 아직 내 수업에 안 들어와서 나 모르지? 단편영화의 이해 수업을 맡은 정기석이라고 해.”
“네, 교수님. 최대한 수업 자주 들어가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고, 태정이에게는 이야기했는데, 넌 스케줄이 어떻게 되냐?”
교수가 다짜고짜 스케줄을 물어보는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어떤 스케줄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어 대답하질 못했다.
“태정이도 그렇고 너도 아마 수업 들어가면 다들 소 닭 보듯이 하고 있지?
이미 데뷔한 사람과 아닌 사람의 묘한 경계감이 있을 거야. 맞지?”
“네. 교수님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뭘 어떻게 알아? 나도 겪어봤으니깐 아는 거지. 15여 년 전에도 있던 문제였으니깐.
그전부터 있었던 문제였고, 그런데 이런 문제는 보통 1학기가 지나면 없어지니깐 걱정하지 마. 나중에는 다들 동기간에 허물없이 지내게 될 거야.”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고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동기간에 허물없이 잘 지내게 되는 계기 같은 게 있어. 그런 계기에 참여를 하지 못하게 되면 뭐 4년 내내 지금처럼 소 닭 보듯이 학교생활 하게 되는 거고.”
“그 계기가 뭔가요? 체육대회 같은 건가요?”
“뭐, 고등학교 때라면 반 대항 체육대회 같은 거로 반 애들끼리 친해지긴 하지.
하지만, 우린 연영과잖아. 방법이 달라야지. 필름카메라 시절부터 내려오던 학과의 전통이 있어.
신입생들끼리 뭉쳐서 영화를 찍는 거야. 영화를 찍으며 동기들끼리 같이 작업하다 보면 서로 친해지는 거지.
여기에 참여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계속 이냥 저냥 볼 것 없는 학창 생활 하는 거고, 동기들과 영화를 만들면서 부대끼게 되면 재미있는 학창 생활이 되는 거고, 어때? 신입생 영화에 참여해볼래?”
태정이와 둘이서 주변인들의 시선을 받으며 밥을 먹는데, 주위에서 친구들끼리 5~6명이 수다를 떨며 밥을 먹는 게 좋아 보였다.
이런 타이밍에 갑자기 훅하고, 저런 재미있어 보이는 학창 생활을 하기 위해 영화에 참여해보라는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분명, 이건 정기석 교수의 낚시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대로 된 고등학교 생활을 못 해봤고, 그로 인한 대학교 학창 생활에 대한 환상도 너무 컸다.
낚시인 줄 알면서도 교수의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네 교수님. 스케줄 조정해서라도 참여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