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38화 (138/237)

# 138

규모는 이길 수 없는가?

중국쪽 파트를 담당하는 최만일 실장이 전화를 받아 중국어로 한참을 이야기하더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일단, 지금 호텔로 애들을 데리고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데? 뒷말이 뭐야? 빨리 말해.”

최만일 실장이 말끝을 흐리자 선배인 이용민 실장이 채근하듯이 물었다.

“그게...좀 이상한 말을 하는데요. 우리가 교육을 잘 시켰다고 이야길 합니다.”

“교육?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애들을 데리고 오는 중이라고 하니 다들 로비로 내려가죠.”

“그런데, 최실장님 왜 중국 멤버들에게서는 이런 문제가 계속 생기는 건가요?

일본 멤버가 이렇게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고, 태국이나 미국 출신도 이런 일은 없잖아요? 이게 중국 특유의 문화인가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중국 파트를 맡고있는 최만일 실장에게 물어봤다.

사실, 중국 파트 담당인 최만일 실장에게 답을 반드시 원해서 물어봤다기보다는 그냥 이런 일이 왜 계속 일어나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회사 차원의 대책이 없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 중국 파트 담당인 그에게 물어본 말이었다.

“뭐, 목적 달성을 위해선 거기에 이르는 수단은 별로 상관없다는 그런 의식 문화가 있긴 있습니다.”

내가 YAM의 멤버이면서 레드샵 레이블의 사장이라는 걸 알기에 최만일 실장은 내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전국시대 한나라의 한신(韓信)이 나중의 목적을 위해 비굴하게 다리 사이를 기었다는 고사가 전해지고, 그런 안 좋은 과정을 겪었지만, 결국은 때를 기다려 대장군이 되어 천하를 호령했다는 이야기가 고전으로 내려오는 나라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고난을 겪으며 성공한 이후 중국으로 돌아왔다는 결과를 보여주면 중국인들은 다들 환호를 합니다.

중국인이 전 세계에서 성공해서 인정을 받았다는 그 결과만을 보는 거죠.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대단하다고 좋다고 엄지를 치켜드는 나라가 이곳 중국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이다 보니, 다른 나라의 팀을 버리거나 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도 별로 없습니다.”

최만일 실장의 이야길 들으니 ‘진짜로 중국인의 의식이 그런가?’ 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거기에 타인이 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외면문화’가 있다 보니, 누군가가 탈퇴를 하든 뭘 하든 타인이 하는 일에는 참견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그래서, 팀을 버리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비난하거나 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러니, 팀을 이탈하는데 그리 큰 미안함을 가지지 않습니다.

뭐, 한국에서 연습생일 때 당했던 그런 마음고생 때문에 팀에 애착이 없다고까지 이야기했던 사람도 있으니 답이 없습니다.

법의 허점, 맹점을 찾아 어떻게든 계약을 깨고 중국에서 활동해서 돈을 많이 벌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중국이 사회주의라고 하지만, 자유주의 보다 더 돈을 우선시하는 곳이 중국입니다.”

중국에서 있으면서 쌓인 게 많았는지 최만일 실장이 내게 말을 쏟아냈다.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일부러 최만일 실장의 옆에 앉아서 계속 의견을 들었다.

“더구나 태어나면서 부모, 조부, 외조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소황제 세대에는 그게 더 크게 나타납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강조하는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인다는 유교적인 예의, 관례 같은 건 오히려 공자와 맹자의 나라라는 중국에서 더 없습니다.

한번 뜬 연예계 중국인은 그 행동이나 생활방식이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들보다 더 건방지고, 난잡합니다.

한국 엔터 업체에서는 인구 14억의 중국시장 공략을 위해 팀마다 중국인 멤버들을 선발해서 넣고는 있지만, 인기가 생기고 난 이후엔 반드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 팀 이탈 문제가 생깁니다. 이미 몇 번이나 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중국에서 일하곤 있지만, 계속 중국인 멤버들을 영입하지 말라고 본사에 계속 건의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사에서 받아들여 지진 않았지요. 그만큼 중국이란 시장이 크니깐요.

그래서, 중국인이더라도 생각이나 사고방식이 다른 홍콩계나 대만계, 아니면 서구에서 자란, 중국계 미국인, 캐나다인을 멤버로 영입해야 한다고 이야길 하고 있지만, 본사에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최만일 실장은 레이블 사장인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중국인 멤버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열변을 토해냈다.

아마도, 10년 가까이 중국을 담당하며 크게 데인 것이 많은 것 같았다.

“중국은 자신들의 체면 때문에 세계에서 인정받는 중국인이란 상징성 있는 모델에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대변할 멋진 모델을 앞세우는 거죠.

왜 그렇냐면, 실제 중국인들도 자신들이 해외로 나갔을 때 시끄러운 자신들을 외국 사람들이 비웃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진짜 시끄러워서 비웃는 건지 아니면, 공산국가에서 중국인이 최고라는 그 마인드를 비웃던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다만, 자신들을 비웃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문화적으로도 인정을 받는 세계 속의 중국인이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도 그걸 이용하려고 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외국에서 성공한 중국인을 더더욱 떠받들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알고 있기에 아이돌들도 더 쉽게 팀을 떠나버리고, 그렇게 돌아온 중국인에 더 환호를 보내줍니다.

한국의 엔터 업체들은 이런 문화적, 정서적으로 내면에 깔린 사고방식은 고려하지 않은 채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무분별하게 중국인 멤버를 지금도 영입하고 있지만, 사고방식에 깔린 문제이다 보니 뚜렷한 대책이나 대응 방안도 없습니다. 그저 활동 기간에 별도로 중국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정을 빼주면서 중국에서 떨어지는 수익에 만족하며 눈치를 볼 뿐이죠.”

최만일 실장의 말을 들으니 우리 MSM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엔터업계에서는 이런 중국인의 팀 이탈 문제에 대한 대책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미래에도 마찬가지 였던 것 같았다.

“애들이 도착했습니다!”

좀 더 최만일 실장의 이야길 듣고 싶었지만, 다들 일어나서 호텔 입구로 뛰어갔다.

벤츠 마이바흐 차량에서 세 명이 내렸는데, 갑자기 우리가 다 뛰어나오자 당황해했다.

이용민 실장은 조수석에서 내린 40대 후반의 안경 쓴 양씨란 브로커의 멱살을 잡고 밀치며 금방이라도 싸움이 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었다.

그래도, 호텔의 경호원들과 사람들이 몰리자 싸움이 벌어지진 않았고, 안경 쓴 남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뭐라고 말하곤 차를 타고 가버렸다.

일단 애들을 데리고, 이용민 실장의 방으로 이동했다.

**

“아까 식당에서 사인해주고 했던 당간부 애들이 호텔 로비에서 기다린다고 프런트에서 연락이 왔었어요.

우리에게 선물을 전달해주고 싶어서 호텔 로비까지 와서 기다린다기에 어쩔 수 없이 잠옷 바람으로 내려갔는데, 그대로 준비된 차를 타고 화려한 사무실로 이동을 했어요.

그리고 팀 탈퇴 및 중국에서의 활동 이야기를 했는데, 계약 문제가 있다 보니 우리들보단 부모님들과 통화를 많이 했어요.

소혁이 부모님과도 통화했는데, 소혁이 어머님이 5천만 위안을 안 주면 계약 안 한다고 했고 그걸로 이야기가 끝이 났어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5천만 위안을 이야기하는 미준이를 보니, 브로커들이 교육을 잘 시켰다고 이야기했다는 게 이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쪽에선 우리가 계약 조건으로 밀고 당기기를 한다고 생각했겠죠.

근데, 우리 어머니는 진짜 5천만 위안을 받아야지 된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 ‘한청’ 선배가 1년에 버는 돈이 5천만 위안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그 방송을 보셔서, 중국에서 홀로서기를 하려면 그 정도 돈은 받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이야길 듣곤 일단 연락처를 알았으니 다음에 부모님들과 다시 보자고 하면서 바로 보내주던데요. 뭐 별다른 건 없었어요.”

소혁이도 그냥 5천만 위안을 쉽게 이야기했는데, 5천만 위안이면 한국 돈으로 80억이었다.

부모는 되든 안 되든 욕심에 일단 상징적인 금액으로 5천만 위안을 이야기한 것 같았다.

슈퍼키즈 출신의 ‘한청’이 1년에 그 정도 번다고 방송을 해서 그런지, 중국인 멤버의 부모님들에겐 5천만 위안이 기준이 되는 상징적인 금액 같았다.

80억을 계약금으로 부르는 대륙 스타일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이거 잘된 것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네. 허허허.”

이용민 실장도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다들 뭔가 얼척이 없는 일이라며 웃으며, 소혁의 부모님 대응이 좋아서 아무 일 없이 끝났다고 안심을 했다.

다들 안심하고 아무 일 없이 끝났다고 웃는데, 뒤따라 떠오르는 생각에 웃지를 못했다.

상징적인 금액인 5천만 위안을 부모가 제시했고, 그 금액을 들은 브로커는 터무니없다며 말도 안 되는 조건이라고 애들을 쫓아낸 게 아니었다.

교육을 잘 받았다고 다음엔 부모님과 다시 보자고 했다는 말은 End가 아니라 ~ing로 진행형이었다.

80억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금액에 중국 애들 영입이 깨졌다고 이용민 실장들은 생각하고 있지만, 계속 진행되고 있는 거래라는 걸 깨닫자 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5천만 위안 정도 되는 돈은 교섭과 흥정을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금액조건이라고 생각하자 웃을 수 없었고, 5천만 위안으로 아이돌을 영입하려고 하는 이런 중국 자본의 규모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최만일 실장 말로는 중국인의 국민성이니 문화니 하며 그런 배신과 팀 탈퇴의 과정을 용인해 주는 문화가 있어서 팀을 배신한다고 했지만, 돈 금액을 들으니 그런 문화가 없더라도 배신할 수 있을 만큼의 큰 금액이었다.

아마도, 한국이나 일본 등 타국의 멤버들에게도 이 정도의 금액으로 팀 탈퇴 후 활동 계약을 하자고 하면 과연 누가 팀과 회사와의 의리를 지키겠다고 남을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지금 YAM의 다른 멤버들에게 같은 조건을 제시하면 대부분은 탈퇴하려고 할 것 같았다. 그만큼 5천만 위안, 80억은 큰돈이었다.

다들 걱정했던 일이 잘 풀린 것처럼 보이자 방으로 돌아가는데, 최만일 실장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좀 더 최만일 실장과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제일이 형이 빨리 방으로 올라가자고 나를 불러서 그러지 못했다.

**

“다들 급하게 일어나서 잠이 부족하겠지만, 중요한 일이 있어서 다들 깨운 거야.”

해가 이제 떠오르기 시작한 이른 시간이라 멤버들이 모두 피곤해 했지만, 제일이 형의 굳은 표정을 보곤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는지 서로 눈빛을 주고받기 바빴다.

방으로 돌아오며 제일이 형에게 이용민 실장은 팀 이탈과 관련해서 금액적인 문제로 판이 깨진 거로 생각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길 해주자 제일이 형도 그제야 깨달았는지 자는 애들을 모두 깨워서 불러 모아서 새벽에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줬다.

“아마도 내가 지금 이렇게 이야길 하지 않더라도 이용민 실장이나 회사 차원에서 대응하면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회사에선 실제 당사자인 우리들에겐 계약조건이 어떻고, 금전적인 부분이 어떻고 하면서 최대한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할 거야.

팀워크를 해치는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래서, 미준이 소혁이 위안이가 있는 지금 이렇게 우리끼리 이야기를 먼저 하자. 그래야 나중에 일이 어긋나더라도 우리 멤버끼리는 의(義)가 상하지 않을 테니깐.

우리 이전의 선배들처럼 멤버들간의 의(義)가 상해서 분장실, 대기실도 따로 쓰면서 무대에서 가식적으로 웃으며 노래를 부르긴 싫다.”

제일이 형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회사에서는 규모가 다르니 중국시장을 버릴 수가 없기에 우리가 중국에서 활동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필연적일 거야.

그러다 보면 아마도, 너희 3명이나 부모님들에게 계속 브로커들이 접근해서 중국 활동에 대한 환상을 계속 이야기할 거야.

그리고, 제시하는 금액도 우리가 인기가 올라갈수록 지금 웃고 넘긴 5천만 위안이 실제 다가올 거고.

너희 셋은 생각이 어떤데?”

제일이 형의 말에 대답만이라도 팀에 남을 거라는 그런 립서비스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말도 없이 세 명 모두 눈치를 보며 입을 쉽게 열지 않았다.

“제일이형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때 생각하죠. 지금 이렇게 물어 보는 게 애들에게는 스트레스에요.

사실 80억이 적은 돈이 아니잖아요.

지금 우리에게 80억 준다고 하면 사실 팀에 남을 사람 몇 없을 거예요.

깨 놓고 이야기해서 다들 그렇잖아요. 강남에서 빌딩을 살 수 있는 돈인데. 그걸 포기하고, 팀에 남겠다는 게 사실 더 이상할 수도 있어요.”

내가 그냥 돈이 아니라 강남 빌딩이라고 이야길 하자, 피부에 와 닿는지 멤버들 모두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이번 분기 정산에서 3천만 원 정도 받았는데, 저 같아도 쉽지 않을 거 같네요. 마냥 중국 멤버들에게 탈퇴를 못 하게 하거나 비난하기는 좀 그럴 것 같네요. 만약, 나중에 그런 일이 생기면 먼저 이야기라도 해주라.”

정환이가 이번 분기 정산 금액을 이야기하자 더 돈이 크게 느껴졌고, 다들 의리보다는 현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야, 나도! 나도, 같이 다 해서 가면 안 되냐? 난 반만 줘도 되는데. 헤헤.”

규일이의 드립에 심각해 질뻔한 자리가 금세 밝아졌다.

“그래, 시파, 다 먹고 살자고, 멋지게 무대에서 살자고 하는 짓인데, 더 좋은 조건으로 대우해 준다면 가야지. 어쩔 수 있냐.”

“그래, 어쩔 수 없지, 뭐라고 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다. 대신에 너희가 가게 되면 우리에게 미리 이야기라도 좀 해라. 그래야 우리가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알겠지?”

“중국 오면 이제 너희가 밥 다 사야 한다 약속!”

이른 아침부터 모여서 심각해질 뻔한 이야기가 팀 유지를 위해서 옥신각신하기보다는 그냥 더 좋은 조건으로 갈 수 있다면 서로 보내주는 그런 이해해 주는 자리가 되어 버렸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면 좋게 보내주자는 그런 공감대가 생겨버렸다.

어쩌면, 그렇게 중국 멤버들이 빠지고 나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는 선배들의 전례가 있기에 쉽게 생각하게 되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형 의(義)가 뭐에요?”

그러고 보니, 가빈이가 태국인이었다. 다국적 멤버도 장점이 있는 만큼 단점도 만만치 않구나. 에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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