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연습생과 소속사의 미래.
“콜!”
김영일 PD가 물어보자마자 내가 대답을 했다.
“당연히 콜이죠. 아 물론 제가 아니라 요즘 일이 없는 대현 형이 멘토로 나갈 거예요 하하하. 맞죠? 형?”
대현 형의 의사도 묻지 않고 내가 떠밀 듯이 받아들이라고 눈치를 줬다. 대현 형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알았다는 듯이 김PD가 내미는 원서를 받아 들었다.
“뭐, 1시즌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선배가 멘토로 나온다면 애들도 마음이 좀 편할 수 있겠죠. 소원이는 시간 상 안될 것 같으니 제가 하죠. 그럼 애들 원서를 같이 보면서 이야기해볼까요?”
“어머나, 좋아라. 그럼 이제 대현씨를 자주 볼 수 있겠네. 호호호”
대현 형이 멘토로 참여를 결정하자 그에 따른 이득을 볼 우리보다도 작가 누나들이 더 좋아했다.
매니저가 멘토 출연료와 일정 등을 협의하기 시작했고, 난 우리 레드샵 소속인 3명의 원서를 직원에게 제출했다.
“응? 흠..잠시만요. 음. 저 김영일 PD님 이건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내가 낸 애들 원서를 보더니 직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기 혼자 판단을 내리지 못했는지 김 PD를 불렀다.
“아 왜? 내일 원서 마감 전에 대현이랑 미리 좀 원서 보려고 했더니, 무슨 일인데?”
“저기..이거..”
“음? 전 소속그룹이 있는 애야? 뭐 중고신인이 한 두명도 아닌데, 응? 인 러브(In Luv)? 인 러브면, 그 약했던 그 그룹 맞지?”
“네. 그래서 PD님을 부른 거예요. 약은 다른 사람이 했지만, 사회인식은 또 안 그렇잖아요. 방금 PD님처럼 그냥 다들 약했던 그 그룹으로 이야길 해버리니깐.
분명 여기서 스토리 뽑아내고 감성팔이 할 수도 있는 소스가 나오겠지만. 문제는 인 러브 사고가 아직 6개월도 안 된 일이고, 지금도 계속 수사, 재판 중인 거로 알고 있어서요.”
“그렇네. 체크 좋았어.
흠. 분명 초반 어그로는 확실히 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소속사 사장인 대현이랑 소원이를 앞에 두고 이런 이야길 해서 미안하긴 한데, 이거 문제 있는 거야.
너희가 선택해. 약을 했던 팀 동료 때문에 팀이 해체가 되고, 회사가 공중분해 된 건 확실히 감성팔이와 예고 편 화제 몰이가 가능해.
본방송에 내보내면 초반 어그로 몰이도 확실히 될거고.
하지만, 이후 그 어그로가 화제가 되고 인기로 차곡차곡 적립되듯이 쌓이면 되는데. 이게 약 문제이다 보니...그리고 그 큰 후 폭풍을 이 애 혼자서 감당해야해 이 애가 감당할 수 있겠어?
더구나 약을 한 상태로 다른 일도 했다고 하는 후속 보도도 있었고.
어그로가 인기로 전환이 안 된다면 그렇게 어그로 몰이만 하고, 루시아란 이 애는 영영 끝이야.
시기가 좀 1년이 넘고 했던 사건이라면 괜찮을 것 같은데, 시기가 너무 가까워. 쿨 타임이 차기엔 너무 짧아.
더구나 아직 사건이 진행형이라 떠안아야 하는 리스크도 너무 커. 어떻게 할래?
우리 입장에서는 어그로 몰이해서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 좋아. 하지만, 너네나 이 애 입장에서는 안 좋아.”
김영일 PD는 ‘어떻게 할래?’라고 묻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 애를 빨리 포기하라는 말로 들렸다.
우리가 출연을 강제로라도 해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출연은 될 수도 있겠지만, 방송국에서 약 사건 때문에 부담스러워 한다면, 결국 초반 어그로의 제물이 되곤 그냥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잘못 만난 팀 동료로 인해 인생 망치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이야기는 참 좋은데...쿨 타임이 문제네. 컴백을 노리기엔 시간이 너무 빨라.”
메인 작가 누나도 화제성 때문에 써먹을 건 많은데, 사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는 것에서 걸리는지 고민을 했고,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그럼, 루시아란 친구는 빼죠.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어쩔 수 없죠. 뭐.”
고민하던 나와는 달리 지원원서를 보던 대현 형은 판단이 쉽다는 듯이 루시아를 빼겠다고 이야길 했다.
“그럴까? 그럼 이 건은 해결. 지원서는 돌려주고, 어디 보자 레드샵의 지원자 이미영과 이찬희라. 찬희 이 친구는 MSM출신이네. 어휴 레드샵에서 프로듀스 108 때문에 준비를 많이 했어. 좋아.”
쉽게 우리 쪽에서 루시아를 포기하자 부담감을 없애줘서 그런지 김영일 PD는 미영이와 찬희의 지원서를 별도로 챙겼 갔다.
**
“소원아, 내가 시아한테 직접 이야기를 못 할 것 같으니까, 네가 좀 이야길 해줘라.
약 사건 때문에 안된다고 이야길 하지 말고 좀 잘 둘러서 애 상처 안 받게 이야길 해줘. 부탁한다.”
난 스케줄 때문에 돌아가야 했기에 Nnet건물을 나서는데, 멘토 참여로 인해 남는 대현 형이 직접 이야길 못하겠다고 나에게 부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루시아와는 프로듀스 출연을 위한 임시 계약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프로듀스에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면 계약해지와 더불어, 그냥 남이 될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하지만, 아이돌만 바라보며 몇 년을 연습해서 데뷔했으나, 채 1년도 되지 않아 약 문제로 인해 강제 은퇴를 당해야 하는 심정과 겨우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잡았는데, 그 역시도 팀 멤버가 남긴 어마어마한 똥으로 출연할 수 없다고 이야길 해주는 게 난감하긴 했다.
상처 안 받게 잘 이야길 해달라고 했지만, 상처를 안주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햐, 골치아프네.”
그냥 단순히 소속사에서 정해준 스케줄을 소화하며, 알려준 음악과 안무만 웃으며 하면 되는 보통의 아이돌이 갑자기 부러워졌다.
괜히 회사를 차려서는 이런 골치 아픈 문제를 떠안아 버린 것 같았다.
한숨이 계속 나와서 행사장 대기실에서도 고민하며 앉아 있으니, 같은 엔오원 출신의 시타 형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소원아 이거 받아. 자주 사용하는 거처럼 좀 부탁해. 지인 추천 PPL 좀 부탁한다.”
“이거 뭐에요? 보습제? 그냥 사용하는 거 보여주면 되는 거죠?”
“그래 팬 사인회랑 다른 행사장에서 좀 사용하는 거 부탁할게. 어머니와 누나가 차린 회사인데, 이제 막 런칭해서 홍보가 좀 부족해 부탁한다.”
“와, 그런데 형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일단 인기 최정상일 때 출시를 해야 잘 먹히죠. 우리 같은 신인일 때는 이렇게 출시해도 힘들어요.”
“엔오원때부터 준비한 거야. 에혀. 나도 한숨 좀 옆에서 같이 쉬자. 다른 사람들한테 이거 사용 부탁하면서 보니 너도 고민 있는 거 같더라. 잘나가는 회사의 잘나가는 아이돌이 무슨 고민이야?”
“그러는 형은 무슨 한숨인데요? 먼저 이야기하면 저도 이야기할게요.”
“나야, 뭐 너와는 다르게 인기의 문제가 가장 크지. 나름대로 엔오원 해체 이후에 NFC에서 ‘스피릿’으로 데뷔 할 때만 해도 진짜 엔오원 때처럼 나오자마자 1위 찍고, 차트를 씹어 먹을 줄 알았어. 하지만, 현실은 알지?”
그러고 보니, 시타 형은 물론이고 루이스 형도 그렇고, 태평이나 진율이도 따로 팀을 이루어 데뷔했지만, 그 결과가 그리 좋지 못했다.
엔오원의 인기로 팀의 이름은 알려졌지만, 차트 1위를 한 적이 없다 보니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히트곡이 없었다.
“우리 소속사가 같은 Big4에 드는 기획사라곤 하지만, 아직은 나머지 세 곳과 비교했을 때 많이 부족해.
그런데, 웃기게도 나머지 세 곳에 버금갈 만큼 프라이드가 있다 보니, 어깨에 힘만 들어가 있고. 결과는 그만큼 나오지 않고. 쩝.
리더인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아마 안될 거라는 불안감도 들어. 그냥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 휴.
그래서, 엔오원 때는 그냥 나중에 해볼까 하고 생각만 하던 걸 누나랑 어머니가 바로 차린 거고.”
시타형의 이야길 듣고 있으니 또 생각이 많아졌다.
소속사에서 시키는 음악과 안무, 스케줄만 소화하면 되는 단순한 아이돌의 삶이 조금 전만 해도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들으니 또 그것도 쉬운게 아닌 것 같았다.
뭐든 다 혼자 해야 하는 프로듀서 같은 아이돌의 생활이든, 회사에서 시키는 데로 그냥 따라 하는 아이돌의 생활이든 일장일단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그때 생각이 달라지는 귀 얇은 내가 웃겼다.
“아쭈 인기 때문에 고민하는 나를 비웃냐? 짜식, 인기란 건 없다가도 있는 거고, 한번 인기가 정점을 찍으면 결국 내려올 수밖에 없어.
다만, 어떻게 천천히 내려올지를 정점에 있을 때부터 생각해야 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선배님들이나 후배들에게 보습제 좀 잘 부탁하고 다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 누나랑 어머니가 시작한 일이고, 불확실한 연예인 활동이다 보니 그냥 마음 먹고 알리고 있어.
이런 미래에 대한 고민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그러니 너도 나중에 몇 년 후를 생각해서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
“네, 안 그래도 그런 일 때문에 저도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보습제 몇 개 더 주세요. 우리 YAM 멤버들에도 다 쓰라고 할게요.”
내가 홍보해주겠다는 말에 좋아하는 시타형의 모습을 보니 과거 MSM 출신으로 일본에서 한국가수 최초로 돔 공연장 투어를 했던 선배들이 생각났다.
배우로 전향을 했던 멤버들은 지금도 간간이 TV에 얼굴을 보이며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티스트로 음악만 했던 사람들은 두문불출하며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신인 아이돌이 은퇴 이후의 미래를 생각하는 게 웃기지만, 7년 이상의 계약 기간을 채우고도 계속 잘나가는 아이돌 그룹은 몇 없었고, 7년 이후 대부분의 아이돌 팀들은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해체를 했었다.
10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다들 해체와 잠정은퇴를 하는 아이돌팀들을 보면, 계약이 끝나는 7년이 먼 미래의 일도 아니었다.
물론, 10년 20년 오래된 팀들도 있지만, 그런 팀들은 전 아이돌 세대를 통틀어도 다섯팀도 되지 않았다.
“자 여기 보습제, 대현이랑 너네 빨간 펀치 애들에게도 홍보 좀 부탁해.”
나에게도 보습제를 주고 다른 신인 아이돌들에게도 보습제를 홍보하는 시타 형을 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입장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니 금세 답이 나왔다.
그리고, 대현 형이 떠맡긴 루시아에 대한 문제도 해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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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대로 이야길 할게요.
Nnet 방송국에서는 인 러브와 루시아란 사람에 대해서는 방송 소재로 쓰기 좋다고 했어요.
다만, 아직 그 일(?)이 완결된 게 아니고 진행 중 이다 보니, 그냥 방송 초반에 화제 몰이만 하고 버려질 것 같아서 대현 형과 상의 끝에 루시아씨의 원서를 뺐어요. 프로듀스108에 출연은 없을 겁니다.”
회사로 돌아와서 루시아와 책상에 맞주 앉아서 프로듀스 108의 출연이 무산된 것을 이야기하자. 금세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름대로 루시아가 상처받지 않게 양념을 좀 쳤음에도 자기 인생이 걸린 이야길 듣는 입장에서는 큰 실망인 것 같았다.
“그런데, Nnet에서 느낀게 있습니다. 루시아씨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앞으로 우리 레드샵의 미래와도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원래, 연습생을 아예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 루시아씨로 인해 회사의 운영방안이 바뀌었습니다.
올 연말 데뷔를 목표로 우리 회사 연습생이 되어 주십시오.
지금 프로듀스 108에 나간 두 사람이 데뷔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두 사람이 최종 멤버가 되지 못하고 중간에 방출된다면 그 두 사람과 루시아씨까지 해서 별도의 걸그룹을 만들 생각입니다.
물론, 요즘 트렌드에 따라 몇 명의 추가 멤버가 영입될 예정이고요.”
“그렇게 말을 안 돌리셔도 돼요. 저도 약을 했던 팀의 멤버라는 꼬리표가 있으면 뭐든 안된다는 건 알고 있어요.
대현 오빠가 추천을 했지만, 이미 다른 기획사에서도 많이 들은 말이에요.
이미 만들어져서 씌어진 이미지로는 절대 재데뷔가 불가능하다는 거 잘 알고 있어요. 이만 가겠습니다.”
그런 번지르르한 위로의 말은 많이 들었다는 듯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실망한 표정으로 일어나 나가려고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일단 앉아보세요.”
울면서 일어나는 루시아를 억지로 다시 의자에 앉히고는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 냈다.
“프로듀스108 제작진도 인정을 했지만, 큰 좌절을 겪었고, 다시 일어서는 인간극장 급의 사연은 정말 좋은 방송 소재라고 인정했습니다.
속칭 말하는 사연팔이로는 최고 일겁니다. 다만, 쿨 타임이 문제였어요.
그리고, 쿨 타임이 돌아와서 화제를 뿌리며 데뷔를 한다고 해도 인기를 끌 수 있냐는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런 어그로를 인기로 바꾸기 위해 프로듀스에서 이름을 알린 두 사람과 레드샵에서 처음으로 데뷔시키는 걸그룹이란 타이틀로 그 어그로를 인기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정식으로 우리 계약합시다. 올 연말에 무조건 데뷔시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