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연습생 키우기. (1)
“미영언니는 학교 다닐 때도 그렇고 너무 척척척을 해서 좀 그런 게 있긴 있었어.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약간은 자부심 같은 그런 것도 있었지만, 너무 연예인 될 거라고 주위에 자랑하고, 기획사 오디션에 간다고 자랑을 한 게 가장 큰 문제야. 알아서 자진해서 적을 만드니깐 일이 안 되는 거야.”
“척척척? 그건 뭐냐? 그리고, 무슨 말투가 점쟁이 말투야?”
“척척척 몰라? 잘난 척, 있는 척, 예쁜 척 이게 척척척 이잖아. 오빠 벌써 이런 감이 떨어지면 안 되는데. 그리고, 미영언니 일은 점쟁이처럼 안 봐도 뻔히 보여서 그런 거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척척척 하는 사람을 싫어했어.
특히나 방송국에서는 그런 척하는 사람보다는 늘 고개 숙이고 예의 바르고 매너좋은 사람이 성공했어.
적이 없어야 성공하는 거야. 그걸 미영언니가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몰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같은 거라도 읽었냐?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사회생활도 안 해본 게.”
“그런 어려운 책 안 읽어도 아는 거야. 친구들끼리도 잘난 척하는 애들은 은따야. 그런데, 미영언니는 그런 게 너무 많아.
그래서, 동성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는 거야. 이성 친구들에게 인기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어.
한국의 아이돌이나 연예계는 외국과 좀 달라서 여덕이 붙어야 성공하는데, 지금의 미영언니라면 절대 여덕이 붙지 않아.
프듀에 나가더라도 여덕이 붙어서 문자에 투표를 열정적으로 해줘야 올라갈 수 있어. 남덕의 표 만으로는 50위 안으로는 불가능해.
남덕들을 빼고 일반 남자들은 대체제가 많으니 여자 아이돌에게 돈을 많이 쓰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투표도 하지 않아.
한마디로 팬몰이가 힘들어서 데뷔가 힘든 케이스이고, 데뷔해도 안 되는 케이스이니깐 오빠 회사에서 연습생으로 데리고 가거나 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마.”
미영이는 절대 연예인 감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지혜의 이야길 들으니 생각이 복잡했다.
남자 아이돌이나 연예계와는 달리 여자들만의 그런 사고방식이 있는듯했다.
“그럼, 다른 방법 없을까? 내가 프로듀스99 원서를 낼 수 있게 만들어 준 계기를 만들어 준 게 미영이라서 보답은 하고 싶은데.”
“흠. 오빠가 심리적인 부채의식이 있다면 좀 그렇긴 하지.
그러면, 미영언니를 회사로 데려가서 보조 매니저라든지 그런 일을 시켜봐.
예쁜 척하는 애들은 자기보다 더 예쁜 애들에게 둘러싸이면 그제야 현실을 인정해서 기가 좀 죽거든.
미영언니는 고개를 좀 숙이고 잘난 척하는 연예인 병을 좀 버려야 해.
그게 좀 달라지면 다른 방법이 보이든지 하겠지. 일단, 미영언니 연예인 병부터 어떻게 해봐. 그래야 프로듀스108이나 연예계에서 데뷔라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연예인처럼 화려하게 살고 싶다는 그 콤플렉스를 다르게 쓸 방안을 찾아봐. 그 콤플렉스를 잘 이용할 수만 있다면 기를 죽이지 않고도 살 방법이 있을 거야.”
“콤플렉스라...흠...”
지혜의 이야길 듣고 고민 끝에 대현 형이나 레드 펀치 누나들에게 연락했고, 운영방안을 이야기한다고 이재원 사장과도 통화를 했다.
**
“미영아, 너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냐?”
“야, 무슨 소리야? 오히려 네가 너무 무방비하게 나온 거 아냐?”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나에게 오히려 연예인 같지 않다고 이야길 하는 미영이의 복장이 장난 아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아이다스 레깅스에 검은 가죽점퍼, 검은색 마스크에, 은색 징이 박힌 검은 야구모자와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왔는데, 이건 뭐, 얼굴을 가리겠다는 의도보다는 더 눈에 띄고 싶어 하는 패션이었다.
어딜 가나 눈에 띌 복장이었지만, 아파트 단지 내 상가에 있는 카페라서 오전에는 손님이 우리밖에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청바지에 그냥 패딩점퍼면 너무한 거 아니야? 일반인 옷이잖아? 더구나 얼굴 가릴 건? 그런 건 기본이야. 너 나랑 이렇게 만나는 거 사진 찍히면 큰일 난다 너. 그런데, 왜 보자고 한 거야?”
미영이의 말을 듣고 있으니, 확실히 지혜의 말이 와 닿았다.
남자인 나도 살짝 부담이 가는 이런 패션과 연예인 병을 가진 이미지로는 힘들 것 같았다.
“미영아, 일단 너 지금도 계속 기획사 오디션은 보고 있지?”
“어, 지금도 보고 있어. 왜?”
“그럼, 계약하자는 곳이 하나도 없었어?”
“있긴 있지. 문제는 다들 내가 아이돌 이미지와 안 맞다고 모델이나 다른 방향을 보자고 해서 조건이 안 맞는 거지. 아이돌로 계약하자고 연락이 오는 곳은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신생업체라서 믿음이 안 가서 계약하지 않는 거고.
나처럼 예쁜 애가 어떻게 사기당하고 소비되는지는 나도 잘 알아.”
다행히 그냥 예쁜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은 있는 것 같아서 안심은 되었다.
“그러면, 우선 우리 레드 샵이랑 계약을 하자. 전속은 아니고, 임시계약으로. 일단, 프로듀스 108에 소속사가 없는 것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우리 회사 소속으로 나가도록 해.”
“응? 이거 간 보는 거야? 전속도 아니고, 임시계약? 친구라고 너무 막 계약하자는 거 아니야? 프로듀스에서 데뷔 멤버로 뽑힐 걸 예상해서 지금 미리 도장 찍자는 거야?
오호호. 내가 최종 선발 멤버로 뽑힐 것 같으니까 미리 이렇게 작업하는 거야? 어제 이야길 안 했어야 했네. 이거 참.”
뭔가 얼굴 표정에서 어이없어하면서도 ‘그래, 네가 나를 알아보는구나!’ 하는 그런 미소를 지으며 예쁜 척을 하는데, 이건 뭐 있던 호감도 떨어질 정도였다. 경태나 진욱이가 왜 미영이에게 강한 디스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영아, 네 자존심을 좀 건드리는 말이긴 한데, 너랑 비슷한 조건의 지망생들은 많아.
임시계약 하자는 건, 우리가 아니라 널 위해서야.
나와 대현 형이 데뷔했던 프로듀스에 나가는 거라면 대현 형과 둘이 만든 회사 출신으로 나가는 게 너에게는 이득이야.
Big4라고 불리는 기획사는 아마도 이번에는 눈치를 보다가 한두 명을 내보낼 거야.
그러면 당연히 그런 소속배경을 가진 애들을 카메라에 우선적으로 노출 시킬 수밖에 없어.
그럼 넌? 네가 예쁘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속사 없는 흙수저 연습생은 카메라 촬영은 물론이고 촬영 분량이 된다고 해도, 다른 연습생들을 압도할 만큼의 재능이 없으면 다 편집이 될 거야.
너 솔직하게,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봐 다른 연습생들을 압도할 만큼의 실력이 있어? 비쥬얼 센터로 자신만만하다고 할 정도가 된다고 생각해?”
“뭐야? 갑자기?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거든.”
늘 디스를 하던 경태와 진욱이와는 달리 미영이에게 좋은 말만 했던 내가 현실을 직시하라고 이야길 하자 당황하는 눈치였다.
“더구나, 등급 무대에서 어떤 걸 할지 혼자서 준비 할 수 있겠어? 소속사에서 준비해주는 것 없이 혼자서 그런 걸 다 준비할 수 있겠어? 내가 지금 하자는 임시계약은 너에게 유리한 거야. 그런 준비를 회사에서 다 해주겠다는 거야.
그리고, 진짜 데뷔 멤버가 된다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다른 회사로 이적하는 것에도 아무런 방해 없이 그냥 보내준다는 계약이야.
친구로서, 어떻게 보면 너로 인해 데뷔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얻었던, 사람이라 너에게 혜택을 베푸는 거야. 자 이거 6개월 임시 계약서니깐 한번 잘 생각해보고, 내일까지 연락 줘.”
“바로 서울 가는 거야?”
“응. 내일부터 또 스케줄이라. 오늘 올라가야 해. 그리고 네가 내일 계약서를 줘야 Nnet 방송국에 한번 가서 너를 잘 봐달라고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
“그럼, 이거 가져가. 바로 사인할게.”
깊게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그냥 사인해선 계약서를 나에게 넘겨줬다.
“야, 그래도 계약서는 제대로 읽어봐야지.”
“6개월짜리 계약인데. 날짜만 확인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럼, 숙소랑 차량 지원해주는 거지? 난 원룸은 갑갑해서 싫은데. 차는 카니발이지?”
연습생으로 임시계약을 방금 했는데, 벌써 숙소와 차량 지원 이야기가 나오니, 왜 이제까지 미영이가 소속사 없이 떠돌았는지 알 것 같았다.
“미영아 쫌~ 고마해라.”
**
“우리 보조 매니저로 미영이란 친구를 데리고 다니라고?”
“네, 여자이다 보니 레드 펀치 누나들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네요.
좀 공주병에 연예인 병이 있는 애라서 누나들 보조 매니저로 일을 좀 시키면서 그런 강한 성격이 좀 사그라들길 원해서요.”
“뭐, 알았어. 그냥 일 시키면 되는 거지?”
“네, 그리고 이번에 여자 버전의 프로듀스108에 나갈 예정이라 누나들이 좋은 조언을 해줘도 좋고요.”
“오~ 그럼 이 친구가 우리 레드샵의 첫 연습생이야? 그런 첫 연습생을 우리에게 맡기는 거야? 이야~ 귀여워 해줘야겠네.”
“음. 제 친구인데, 연예인 병에 공주병이라, 누나들이 좀 갈구든지 해야 할거에요. 나중에는 왜 맡겼냐고 저 욕하면 안 됩니다.”
“뭐, 우리 레드샵이 다 둥글둥글한 성격의 사람들이라면 그런 특별한 성격도 필요하지 뭐. 일단 서울로 올라오면 남 실장님 통해서 보내줘.”
“그러면, 우리 이왕 연습생 받기로 한 거라면 한 명 더 안 될까?”
“대현 형도 추천해 줄 만한 사람이 있어요?”
“음. 중고신인이라고 하면 되려나. 이미 데뷔를 한번 했던 친구인데, 그냥 묻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친구가 한 명 있어.
‘루시아’라고 ‘인러브(In Luv)’ 라는 팀에 있었어.”
“인러브요? 그 팀 어디서 많이 들어 봤는데.”
“소원아 그거 있잖아. 약...”
내가 긴가민가하자, 원희 누나가 대현 형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약’이라고 이야길 했다.
“아~ 그 멤버 중의 한 명이 약해서 해체한 그 팀이죠?”
“그래, 봉변을 당한 거지. 그 애도 5년 넘게 데뷔준비하고 데뷔했는데, 같은 팀의 멤버가 약을 하면서 인러브라는 팀은 사라지고, 소속사도 작은 회사라서 그냥 망해버렸거든.
지금은 가이드 보컬로 일을 하고 있는데, 음색이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너무 아까워서 우리 연습생으로 해서 그 친구도 프듀에 내보내면 좋지 않을까?”
“사연이 있으니 좋긴 한데, 일단, 그 루시아란 친구도 한번 보죠. 대현 형이 추천할 정도라면 뭔가 재능이 확실히 있겠죠. 애인은 아니죠?”
“아니야 인마!”
아니라고 강력히 부인하긴 하지만, 대현 형은 눈을 나와 못 마주쳤다.
“그러면, 이렇게 연습생을 다 받는 거로 결정이 났다면 나도 연습생을 추천하고 싶은데.”
“이재원 사장님도 추천할 사람이 있습니까?”
“한 4명 정도 되는데. MSM에서 방출된 애들이야. 연습생으로 몇 년 있다가 데뷔를 못 하고 나온 애들이지. 내가 MSM에 있을 때 가르쳤던 애들인데, 지금 소속사가 있는 애들도 있고, 그냥 학교 다니는 애도 있고.
한번 연락을 해보고, 우리회사로 오겠다고 하면 그때 한 번에 다 보지.”
“네, 그때 보죠. MSM에서 몇 년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수준은 되었을 테고, 루시아란 친구는 이미 데뷔를 했던 사람이니 다 모아 보면 금방 데뷔도 가능하겠는데요.
생각지도 못하게 레드샵의 첫 소속 연예인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어요.
일단, 남인철 실장님이 Nnet으로 한번 들어가셔서 프로듀스108 지원서 좀 받아 오면서 분위기 좀 봐주세요.
우리 소속으로 연습생들을 내보내고, 데뷔 멤버로 선정된다면 데뷔 멤버를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 만약 다 떨어진다면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었을 때 그때 데뷔를 바로 할 수 있게 준비를 해봅시다.”
“그러면 우리 연습실부터 구해야 할 것 같은데.”
대현 형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도 MSM 건물에서 연습실 더부살이를 하는 중이라 연습실과 사무실을 얻는 게 시급했다.
그리고, 데뷔준비를 하게 된다면 미영이의 말처럼 숙소도 준비해야 했다.
매니저가 아닌, 이런 회사 운영 실무를 맡아서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