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가요 대축제 (2).
무대 뒤 대기장소에는 이미 많은 아이돌들이 대기하며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앞 무대로 신인 아이돌들의 단체 무대가 있었는데, 여기에 나오는 아이돌들은 차트 1위를 찍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신인들이었다.
어쩌면 올해 데뷔를 하며 연말 무대에 꼭 서자는 목표를 세웠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큰 무대에 대한 부담감으로 긴장해 있다는게 한눈에 보였다.
분위기가 사람을 잡는다고, 먼저 와 있던 애들의 긴장감이 우리 YAM에게까지 엄습해 왔다.
“자 다들 앞사람 어깨 주물러줘. 긴장하면 몸이 굳어서 타이밍 놓치게 되는 실수도 할 수 있어. 맨 앞에 토모는 앞에 있는 ‘플라이스’ 팀 친구 어깨도 주물러 주고. 혈액순환 겸 어깨 마사지 해주면 다들 긴장이 풀릴거야.”
내 말에 우리 YAM은 물론이고, 다른 팀 애들도 내말을 옳게 여겼는지 긴장을 풀기 위해 서로 어깨 안마를 한다고 분주했다. 특히나 어깨가 뭉쳐있던 애들이 가끔씩 토해내는 장난 같은 비명 소리에 금세 긴장이 풀리고 대기장소가 시끌벅쩍 해졌다.
“이야 역시 두 번째라서 그런지 소원이는 여유가 있네. 다들 굳어 있던 긴장된 분위기를 금방 바꾸는데, 역시 인싸야.”
“저도 긴장되거든요. 작년에 엔오원 때는 이런 스페셜 무대가 없었는데, 이렇게 따로 무대를 급하게 준비해서 하다보니 다들 긴장하는걸거에요. 스페셜 무대라곤 하더라도 방송국에서 만들어준 무대이다 보니 다들 연습시간도 부족했을테고.
긴장할 수밖에 없을거에요. 엇? 오뷰티걸이네요. 친구가 있어서 인사좀 하고 올게요.”
우리 무대 뒤 순서인 오뷰티 걸이 들어오기에 아는 척을 하며 다가 갔다.
“야 애린아! 너 인스타 DM(Direct Message) 보내도 왜 답이 없어? 몇 번이나 보냈는데, 폰번호 줘.”
난 그냥 중학교 동창이기에 무심코 한말인데, 순식간에 번잡하던 주위가 싸하게 얼어붙어 버렸고, 애린이도 이게 무슨 밀인가 싶어서 어버버 거렸다.
“경태랑 진욱이가 동창회 모이는 거 때문에 너한테 인스타 DM 보내고, 카톡 단톡방에 링크 초대해도 답이 없다고 난리더라. 시호누나도 오랜만이에요. 누나 더 이뻐지셨어요.”
“어, 어 소원아 우리 아직 인스타나 카톡을 마음대로 못 써.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전해줘.”
“아~ 아직도 그렇구나. 알았어. 애들한테 인스타로 연락하지 마라고 할게. 경태랑 진욱이는 인스타 계정 네가 직접하는지 알고 DM보내서 동창회 오라고 엄청 보냈을거야.”
“이야 소원이는 모르는 걸 그룹이 없네. 무슨 걸그룹은 다 알고 있는 거 같냐? 우리 순서 다와 가니깐 빨리와.”
갑자기 제일이 형이 나를 끌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 했기에 애린이와 시호누나와는 손인사를 건네는게 끝이었다.
“얌마, 오뷰티걸 매니저들이 뒤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그렇게 대 놓고 연락이야길 하면 되는거냐? 주위에 있던 다른 팀 애들은 물론이고 오뷰티걸 애들도 갑분싸 하더라. 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인마.”
“형 애린이는 중학교 동창이에요. 중학교 동창들끼리 동창회 한번 하자고 애들이 인스타 DM 보냈는데, 답이 없어서 내가 그냥 물어 본거에요.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네.
인스타에 자주 사진하고 올라오기에 직접하는지 알고 DM을 보냈는데, 그게 회사계정이었나 보네요.”
“알았다 알았어. 빨리 이리와.
소원아, 영시스터 애들 봐라. 특히 네가 애린이에게 말을 할때 같이 춤출 은채 눈빛이 장난아니더라니깐. 눈치 좀 보고 아는척을 해. 애린이는 아직도 매니저 눈치본다고 안절부절하고 있구만.”
“예이 영양가 없는 동창회 이야기인데요 뭐. 은채나 수나도 고등학교 동창이고, 다들 애린이랑 중학교 동창인걸 알아요.
그리고, 다들 알게 모르게 연락합니다. 연예계는 정글인거 아시잖아요.”
“그래도, 대 놓고 매니저랑 다른 팀들 있는데, 연락처 달라고 하는 놈은 네가 처음일거다. 그리고, 인마, 그럼 나도 연락할수 있게 좀 해줘야지 짜식이 좋은건 혼자 다 하고 말이야.”
“에이, 형 연애는 각자도생해야죠. 엇 스탠바이 떨어졌어요. 올라갑시다.”
**
“올 한해 여름을 강타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었다는 건 다들 아시고 있죠?”
“그럼요, 줄리엣을 애타게 부르는 남자 아이돌이 나와서 인기몰이를 하자, 그 부르는 소릴 듣고 로미오에게 답가를 한 걸그룹도 있었잖아요.
아하~ 그럼 오늘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애타게 부른 결실이 무대에서 이루어 지는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애타게 부르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만남이 그려질 예정입니다. 그 만남이 얼마나 달콤한 사탕처럼 무대에 펼쳐질지 기대 됩니다.”
“그럼 함께 외쳐보죠. 달콤한 사탕을 집어삼킬 얌얌! ‘YAM’과 프로젝트 그룹인 예쁜 여동생들인 ‘영시스터’의 스페셜 무대입니다.”
진행을 맡은 MC들의 짜여진 대본이 나오자 대형 전광판으로 우리가 연습실에서 함께 연습을 했던 영상들이 나왔다.
<꺄아~ 소원 오빠! 안돼여!>
<스페셜 무대가 커플 무대였어? 헐 누가 시킨거야?>
무대 위에서 음악을 기다리고 있는데, 연습 영상을 본 팬들의 비명에 가까운 말들이 들려왔다.
[전화 벨 소리에도 가슴이 두근대는 이 마음 사랑인가요?
왜이리 두근거리나 몰라 oh.....]
1분 30초로 편곡된 ‘줄리엣’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처음 서보는 연말 무대이다보니 필요이상으로 긴장을 했지만, 특별한 문제 없이 노래가 흘러갔다.
그리고, 노래가 로미오로 바뀌었고, 금세 무대에서 은채의 손길이 이끄는데로 무대의 중앙으로 함께 걸어갔다.
마주 보며 몸을 흔들다 노래가 ‘내 귀에 사탕’으로 바뀌자, 이때다 싶어 은채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너무 붙었어!><안돼!><왜 이런 스페셜 무대를 하는 거야?>
<누굴 위한 스페셜이야?>
무대에 있는 우리도 긴장을 했지만, 무대 아래 팬들도 더 수위가 올라갈까봐 긴장과 걱정을 하는 묘한 무대였다.
그리고, ‘커플 즐~’ 하면서 우리 뒤를 이어 오뷰티걸과 러블리즈걸들이 나오자 그들에게 밀리듯이 무대 밑으로 내려갔다.
이미 둘이 사귀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늘 성당 구석에서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몰래 손을 잡거나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대 놓고 공개적인 무대에서 손을 마주잡고, 연인처럼 껴안 듯이 얼굴을 마주하는 안무를 같이 하자, 둘의 관계가 공인받은 것 같은 기쁨에 너무 좋았다.
나뿐만 아니라 은채도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무대가 끝이나고 마주 잡은 손을 놓기 싫었는지 무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끝까지 서로 손을 꼭 잡았다.
**
[야, 오빠들 무대 끝에 봤음? 다들 손 잡은거 무대 끝나면서 놔버리는데, 소원오빠랑 정은채는 끝까지 손잡고 내려가던데. 둘이 썸타는거 아님? 연습영상에서도 둘이 계속 붙어 있던데. 이거 빡치네.]
[진짜? 난 못 봤는데, 움짤 없어?]
[나도 못 봤는데, 릴 뜨면 내가 한번 찾아볼게]
[무대 계단 어두워서 넘어 질까 봐 손잡아 준거 아님? 둘이 학교도 같고 같은 반이라던데 남사친, 여사친 아님?]
[녀남사이에 무슨 남사친 여사친임? 그냥 엉겨 붙는거지. 저쪽이 정글에 약육강식인거 몰라?]
└[네 상상이 더럽다]
[싸우지 말고, 나중에 움짤확인되면 그때 까자. 지금 오빠들 본무대 시작한다. 고고]
**
스페셜 무대에 이어서 바로 대기실에서 원래 의상으로 급하게 갈아입고 무대에 다시 올랐다.
[나의 이런 마음 너는 알고 있니.
정말로 너만을 위해 지냈던 날 들....]
스페셜 무대 뒤에 바로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올라와서 그런지 정환이는 물론이고 규일이도 힘에 부쳐 하는게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와 안무에서 보였다.
립싱크로 하자고 하는 방송국 말에 처음으로 서보는 연말 가요무대이니 라이브로 하자고 했던게 독이 된 것 같았다.
나와 규일이가 앞으로 나서서 같이 지르는 부분이 되자 음 이탈이 날것 같은 규일이가 걱정되어서 규일이에게 맞춰주고자 자연스레 몸이 규일이 쪽으로 방향이 움직였다.
규일이도 내가 자기를 보는걸 알아 채자 마치 나와 마주 보듯이 같이 서서 사비를 질렀다.
[불안에 떨어야만 했고, 도망치려 한 나 자신이
나도 너무 싫었어~]
‘어..어?’
스페셜 무대에서 힘을 다 써서 그런지 음 이탈이 나려는걸 혼자서 막아보겠다고 규일이가 쥐어짜듯이 부르다 인형처럼 몸이 무너지며 무릎을 꿇어 버렸다.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풀리자 당황한 듯한 규일이가 나를 쳐다봤다.
규일이의 눈을 보니 당황한 듯했다. 둘이 마주보다 혼자서 무릎을 꿇어 버리는게 먼가 안맞을 것 같아서 나도 머리를 굴렸다.
무릎 꿇고 부르는 퍼포먼스라고 느껴지게 나도 마주 무릎을 꿇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생각해서 나도 무릎을 꿇으려 했다.
하지만, 무릎을 꿇으려고 하기엔 공간이 어중간했고, 사비 부분도 끝이 나고 다음 파트로 넘어갈 타이밍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하체만 앞으로 내미는 어중간한 포즈가 되어 버리며 둘의 파트가 끝이 났다.
다리가 풀린 규일이를 부축하듯이 일으켜 세워 다시 대열로 움직이는대, 머릿속으로는 큰일 났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아씨! 이거 굴욕 짤 되겠는데.’
**
[야 이거 그거 아냐? 입으로 그 해주는 그거 있잖아...흡흡]
[이거 포즈가 묘한데, 규일이가 무릎 꿇고, 소원이가 주니어를 앞으로..아 아닙니다. 발그레.]
[소원이가 같이 무릎 꿇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개판되었네 캬하하하]
[규일이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은 거지? 뭔가 소원이한테 잘못한게 있는거야?]
[소원이도 따라서 하려다 못 한거 같네 상황 개 웃김. 이거 이불킥 각이다]
[팬을 위한 흑화버전 서비스임?]
[영시스터 은채랑 묘한 눈빛을 주고받기에 긴가민가 했는데, 이걸 보니 걱정안해도 되겠네. 규일이와 그런 사이인줄 몰랐어. ㅋㅎㅎ.]
[두분 사랑 영원하세요! 꺄아~]
[무대는 무대일 뿐 무대로 봅시다. ㅎㅎㅎ]
[규일이가 무릎 꿇어 버리니깐 소원 오빠가 당황해 하는 표정이 그대로 보이는데. ㅋㅋ]
[시바 그래 이렇게 다들 게이가 되는 거지. ㅋㅋㅋ 소원이가 S고 규일이가 M인거 맞지? 소원이가 공격조야?]
[이러면, 석천이 형이 좋아해야 하는 거 맞지? 대참사가 대축제가 되겠네.]
우리 무대가 끝나서 대기실로 가자마자 핸드폰을 보니, 역시나 난리였다.
네이버 검색어에는 다행히 없었지만, 팬카페에는 이미 게이커플이 되어서 대참사 수준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아! 규일이 이 자식! 왜 무릎을 꿇고 그랬어! 이거 봐 인마! 이거 어쩔거야!”
“형, 저도 치욕적이에요. 햐 진짜 하체운동하던지 해야지. 그래도 형은 공격이네요. 공격 받는 제가 더 치욕이에요. 확 여자랑 열애설이라도 터트릴까 보다.”
숙소로 돌아가면서 급하게 실시간 방송을 하며, 규일이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렇게 되었다고 급하게 변명을 했지만, 결국 규일이는 하체부실로, 나는 공격적인 소원이로 팬카페에서만 불리는 별명이 만들어져 버렸고, 이후 방송 예능에서는 늘 이사진이 굴욕사진으로 올라왔다.
**
새해가 밝아서 신년 프로그램에는 우리가 나오고 있었지만, 다 녹화방송이라 오랜만에 부산으로 내려올수가 있었다.
늘 잠이 부족했고, 형의 빈자리가 있기에 집에서 잠을 계속 자는데,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제대로 이름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로 비몽사몽간에 누워서 전화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윤소원 핸드폰 맞나요?”
뭔가 야성미 넘치는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금철 사장님 윤소원입니다. 번호 저장해 두고 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제가 먼저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새해 복은 많이 받으셨죠?”
프로듀스99를 진행하며 알게 되었던 브레브의 금철사장이 직접 전화를 한것이라 누워있다가 급히 일어나 앉았다.
“하하 날 기억하고 있구나. 다행인데, 그러면 우리 같이 앨범내기로 한것도 기억하고 있지?”
“네, 당연히 그 약속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정말 사장님께 죄송했습니다.”
“그래? 그렇게 기억해주니 고맙다. 네가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어.
그때 약속한 솔로 앨범 하나 내자. 담당 매니저 연락처를 찍어주면 일정 조율이나 법적 문제는 우리 브레브에서 할 테니 문자로 찍어다오.”
새해가 밝아서 이제는 대학생이 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온 금철 사장을 생각하니 뭔가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담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