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가요 대축제 (1)
“여자 걸그룹과는 처음 해보는 합동 무대이기에 주의할 부분 알려준다.
일단, 연습하는 이틀 동안 생기는 문제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 연습실에 카메라가 고정 설치되게 될 거야.
뭐 표면적으론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영상을 촬영해서 합동 스페셜 무대 전에 자료로 쓰인다고 하는데, 아마도 짧게 10~20초 정도 나갈 거야.
혹시나 하지만, 카메라 설치 이유를 명심하길 바란다.”
“네.”
에너지가 폭발하는 10대 20대 초반의 남녀가 한 공간에서 땀을 흘리며 몸을 부대껴야 하기에 이런 매니저들의 걱정이나 경고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우리 소속인 ‘수나’ 말로는 저번 앨범보다 성적이 안 나와서 그쪽 분위기가 안 좋다고 하니깐 그쪽 매니저들한데 밉보이지 않게 처신 잘하고. 알겠지?”
“네”
“그쪽 음원 성적 나오지 않은 게 우리 탓도 아닌데, 왜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거지?”
매니저에게는 알았다고 대답을 했지만, 몇몇은 왜 우리가 처신을 잘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거기랑 우리가 한주 차이로 컴백했는데, 거긴 30~40위로 죽 쑤고, 우린 ‘네가 알아주길’로 차트 1위를 했잖냐. 당연히 비슷한 시기에 컴백을 했으니 우리와 비교했을 테고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열을 받았겠지.
거기에, 성적이 극명하게 갈리는데 방송국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해라고 했으니 기분이 안 좋을 만하지.
배우나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비슷하게 개봉했거나 편성이 잡혔는데, 저쪽은 대박이 나고 우리는 쪽박이라면 원래 친했던 배우나 연예인들도 서로 서먹한 사이가 되는 거야. 단지 시기가 같다는 이유로.”
제일이 형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설명을 했지만, 그래도 몇몇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게 우리 잘못은 아니잖아요.”
“규일아 세상이 원래 그래. 더구나, 히트했던 전 앨범의 ‘로미오’를 소원이가 있는 레드샵이 만든 곡이었거든. 이번에는 돈이 안 맞아서 신사동 승냥이에게 곡을 받았는데, 돈 좀 아끼려다 결과가 좋지 않으니, 우리 YAM에 있는 소원이를 보면 배가 아플 수도 있지.”
“그럼, 소원이만 조심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오네. 난 영시스터 애들 연락처나 따야지. 헤헤”
정환이의 말에 다들 걸그룹과 만난다는 생각과 그 이후 펼쳐질 핑크빛 미래를 생각했는지 다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라디오 스케줄을 끝내고 연습실로 오니 이미 KBC에서 나와서 카메라 촬영 준비가 끝났고, 영시스터 애들도 이미 도착해 있다고 했다.
이온 음료를 챙겨 먹고 맨 뒤에 연습실로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서로 인사는 했는데, 뭔가 뻘쭘하게 서로 눈치를 보는 듯한 그런 애매한 느낌?
아마도, 카메라도 있고, 우리 매니저처럼 영시스터 애들도 매니저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분위기가 이런 황량한 사막 같은 분위기가 된 것 같았다.
“소원오빠~ 오랜만이에요!”
“오빠 보고 싶었어요. 꺄아~”
“어.어 그래, 오랜만이야!”
예전 ‘선비 김’ 광고 촬영을 하며 은채와 같이 촬영을 했던 연서와 주예가 뛰어와선 안기듯이 나를 반겼다. 우리 매니저와 저쪽 매니저 눈치를 살필 새도 없이 애들이 친한 척을 해왔다.
‘뭐지? 왜 갑자기 친한 척?’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1년 만에 만난 파릇파릇한 둘을 보니 금세 입에서 미소가 만들어졌다.
그때 중3으로 168cm의 큰키 였던 ‘커요미’ 장연서는 키가 더 큰 것 같았고, 커진 키 만큼 애교도 늘었는지 큰 덩치에 맞지 않게 강아지처럼 뛰며 날 반겨 줬다. 마치 애교 많은 시베리안 허스키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무뚝뚝했던 울산 출신 최주예는 데뷔를 하고, 그 사이에 성격이 변했는지 연서처럼 ‘보고 싶었어요’ 하면서 내 옷을 잡고 애교를 피웠다.
연서가 애교있는 허스키 강아지 같다면 주예는 왠지 밀당 잘하게 생긴 페르시안 고양이 같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주예는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네. 그땐 엄청 깍쟁이 같았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
“앗!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그럼, 그때 은채랑 같이 4명이서 밥 먹었잖아. 당연히 다 기억하지.”
“야! 윤소원 너 언제 걸그룹 애들이랑 밥을 따로 먹었냐? 이거 큰일 날 놈일세. 인마 그럴 땐 나도 좀 불러야지. 자식이.”
제일이 형이 웃으면서 투정 부리듯이 이야길 했다.
“아니 그게 CF였어요. CF. 그 선비 김 CF 있잖아요. 밥 먹은 것도 다 촬영이었어요. 개인적인 게 아니었다니깐요.”
내가 핑계를 대며 큰소리로 이야길 하고 하다 보니, 서로 눈치를 보고 처음 한 공간에 있게 된 남자 그룹과 여자 그룹의 묘한 긴장이 금세 누그러졌다.
아마도, 연서나 주예도 방송국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자기들 매니저들에게도 무슨 소릴 들었다 보니 분위기가 안 좋은 것 같아서 먼저 더 밝게 내게 다가와서 이야길 하고 행동을 취한 것 같았다.
그룹 내의 예능을 담당하고, 접대(?)를 담당하는 친근감 있는 행동을 막내급인 둘이 맡은 듯했다.
덕분에 금세 서로 인사를 하고, 우리 안무 선생님이 만들어 준 안무를 바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YAM이 먼저 나와서 줄리엣 안무를 추고, 1절 후에 바로 음악이 로미오로 바뀔 거야. 그때는 무대 양옆으로 물러나서 영시스터 애들이 안무할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해.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처럼 옆에 늘어서서 ‘와~와~’ 거리는 놀라운 환호, 탄성을 자아내듯이 연기를 해.
의상도 YAM은 블랙 진에 가죽점퍼 스타일이고, 영시스터는 미니 드레스 형식 옷이라 아가씨와 건달들 느낌이 날 수 있게 액션을 취해줘. 자, YAM이 먼저 양옆에서 환호하는 액션 해봐! 양쪽 맨 앞사람은 한쪽 무릎 꿇고, 박수도 한두 명이 쳐! 그래 좋아.
그렇게 환호를 보낼 때 영시스터가 중앙에서 로미오 노래에 맞추어서 안무를 추고, 1절이 끝나고 반주 나올 때, 양옆에 서 있는 YAM 애들에게 가서 손을 잡고 무대로 이끌고 나와야 해.
자 일단 여기까지 한번 쭉 해보자. 먼저 YAM 대형 맞춰서 서봐!”
우리가 줄리엣의 노래에 맞추어서 안무를 하다 영시스터 애들이 나오자 양옆으로 나뉘어서 환호를 보내는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로미오의 1절이 끝나고 영시스터 애들이 양옆에 서 있는 우리들의 손을 잡아서 무대 중앙으로 다시 이끌어 내는 부분이었다.
“애들아! 너희 지금 연애질하러 지금 이 새벽에 여기 온 거니? 뭐 하는 거야? 지금 소개팅해?”
MSM의 걸스힙합 안무를 담당하는 권미연 선생님이 짜증 난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도 그럴 것이, 여자애들이 쭈뼛거리며 양옆에 늘어선 YAM 멤버들의 손을 잡지를 못 했다.
“야! 아무런 감정이 없으면 그냥 바로 손 내밀어서 잡을 수 있어. 왜 너희들이 마치 소개팅 나와서 선택하듯이 그렇게 망설이냐? 내가 정해주랴? 엉?”
권미연 선생님이 또 한소리를 하자 그제야 MSM 소속의 은채와 주나가 먼저 나서서 YAM 멤버들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물론, 은채가 손을 잡아 이끈 사람은 나였다.
“제일 처음 손잡고 나왔으니깐 은채랑 소원이가 맨 앞으로 가고, 수나와 토모가 오른쪽.....다들 지금 자기 짝이랑 서 있는 위치 기억했지?”
“네.”
“그럼 여기서 짝끼리 마주 보고 춤을 추듯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이 4초가 있을 거야. 다들 마주 보며 춤추듯이 움직여!
또 여기서 노래가 바뀐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났으니깐 얼마나 달콤하겠어? 바로 백지연의 ‘내 귀에 사탕’으로 노래가 바뀔 거야.
내 귀에 사탕 안무 모르는 사람 손들어봐. 안무 모르면 맨 뒤로 자리 바꿔. 다 아는 거 확실하지? 제일이 매너 손 하지 마. 손가락 구부리지 마!
특히, 맨 앞에 소원이랑 은채는 예의 바른 척 ‘매너 손’ 해서 손가락 오므리지 마, 제대로 손동작해.
앞 라인이고 뒤 라인이고 전부 다 매너 손 하지 마. 병 걸렸냐? 손이 오그라들게. 그냥 손동작 그대로 해. 무대 위에서 하는 퍼포먼스잖아.
이걸로는 문제 안 생기니깐 손동작 그대로 다해. 어깨에 손 그대로 올려!
다들 정면 보고!”
권미연 선생님은 일일이 짝을 이룬 사람의 모양을 잡아 주곤 맨 앞에서 전체적인 그림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을 했다.
“음. 키도 그렇고 소원이랑 은채 둘은 잘 어울리네. 다들 소원이랑 은채처럼 뒤에 바짝 붙어서 자리 잡아. 내 귀에 사탕 안무는 좀 끈적해도 되는 안무야. 자 그러면, 로미오 이후에 다시 손잡고 나오고 내 귀에 사탕까지 한번 해보자.”
선남선녀가 모여서 그런 건지, 다들 같은 안무를 몇 번씩 하며 합을 맞추었지만,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하면 할수록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소원아, 데뷔 후에 했던 안무 연습 중에서 오늘만큼 열심히 했던 안무 연습은 없을 거야. 그런데도 안 피곤해. 신기하네. 후후”
제일이 형의 저 느끼한 멘트처럼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열심히 연습했다.
“그리고, 내 귀에 사탕 무대가 끝났다고 바로 무대 아래로 빠지면 안 돼! 뒤에 나오는 게 ‘오뷰티 걸’과 ‘러블리즈 걸’이 같이 나오면서 커플 즐~ 하면서 ‘난 아직 사랑을 몰라’ 단체 곡을 할 거야.
그 노래 들으면서 이거 멍미? 하는 표정을 지어주면서 양옆으로 밀리듯이 빠져야 해. 알겠지?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가보자.”
아인슈타인이 옆 집사는 가슴 큰 누나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 수학을 열심히 하다가 수학과 물리학의 대가가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진짜 남녀를 떠나서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케이. 완벽하다. 다들 잘하는데, 이 정도면 내일 따로 연습 안 해도 되겠는데. 당일 리허설 전에 한 번 맞춰보면 될 것 같아.
다들 수고했어. 연말 가요 대축제 스페셜 무대 연습은 이걸로 끝이다. 다들 고생했다.”
다들 너무 열심히 집중해서 하다 보니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버렸다. 이틀로 계획했던 연습일정이 오늘 하루로 끝나 버렸다.
나는 물론이고 다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눈빛을 권미연 선생님에게 보냈다.
“괜찮아. 괜찮아! 자신감 가져. 다들 기본기도 좋고, 활동한 지 얼만 안된 안무들이라 고칠 것도 없어, 특별히 다른 문제는 없을 거야. 다들 수고했어.”
우리에게 인사도 받지 않고 연습실을 그대로 나가 버리는 권미연 선생님에게 우리에게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내일도 연습해야 한다고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매니저들이 먼저 치고 나와버려서 기회를 뺏겨 버렸다.
“다들 습득력들이 좋아서 그런지 빠르네. 애들아 빨리 차에 탈 준비해. 가방 챙기고.”
매니저의 닦달에 짐을 챙겨 나가는 애들에게 손을 흔들어 줬는데, 분명 영시스터 애들도 뭔가 아쉬운 눈치였다.
“소원아! 너 혹시 애들 연락처 모르냐? 아 맞다. 은채랑 수민이 수도파인데, 연습생일 때 수도파 없어? 애들 연락처 다들 몰라?”
제일이 형이 본능의 힘으로 에너지가 넘쳐나는지 연락처를 물었지만, 연습생 때 같은 수도파였던 다현이나 영호도 연락처를 모른다고 했다.
“햐, 이렇게 내 청춘사업을 안 도와주네.”
“제일이 형. 일기 잘 적고 있죠? 시간이 많이 남는 거 같은데, 뮤지션으로 가는 길이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해도 되요?”
“어..어. 그건 말이지. 그래 우리도 씻고 빨리 숙소로 가자 벌써 새벽 4시네. 자 다들 빨리 움직이자. 무브무브~!”
**
“어떻게 된 게 우리 본 무대보다 합동 스페셜무대에 더 신경이 쓰이고 더 열정적이 되는거지?”
“규일이 너도 그렇냐? 나도 그래. 우리 본무대 따윈 음하하하”
공중파 방송 3사에서 하는 연말 가요무대 중에서 유일하게 KBC의 가요 대 축제만이 다른 그룹과의 스페셜 무대를 만들었기에 다들 가요 대축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우리 본무대인 ‘네가 알아주길’ 무대 보다도 스페셜 무대에 더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스페셜 무대에 너무 힘을 써서 그런지, ‘네가 알아주길’ 무대 중반에 사비 지르는데 뒷심 부족해서 주저앉을 뻔했다니깐.”
“규일이 하체가 그리 부실해서 어떻게 하냐? 하체 운동 좀 해.”
“본 방송 시작합니다. 출연진분들 레드카펫 행진 준비해주세요!”
사회를 보는 MC의 호명에 대기실 앞쪽으로 줄을 선 순서대로 손을 흔들며 입장을 했고, 1부 중반에 있는 스페셜 무대를 위해 다시 급하게 무대 뒤로 이동해서 대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