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그래? 그렇단 말이지?
실기 시험을 끝내고 나오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힘이 빠져서 학교 1층 현관에 있는 의자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아무리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그 스토리 라인에 따라 연기를 했다곤 하지만, 극과 극의 연기를 한 번에 했더니 정신적으로 피곤했다.
태정이랑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스케줄 때문에 이동을 했다.
“이야, 역시 경국대다. 방금 지나쳐간 저 남자 엔오원, 아니 이제는 얌의 윤소원 맞지? 저런 인기 아이돌도 실기 시험을 다 보러오고. 대단해. 역시 경국!”
“뭐, 제가 여기 출신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아이돌은 경국에 많아요. 심하게 말하면 발에 채일 정도로 연영과에 아이돌이 많아요.
하지만, 제대로 연기하는 아이돌은 거의 없다는 거. 작년에도 몇 명 있었는데, 작년 신입생 영화 찍을 때 봤더니 진짜 영 아니었어요.
아마, 오늘 실기면접 보신 교수님들께 물어보면 내년 신입생 단편영화에 캐스팅할 만한 아이돌은 없다고 하실거에요.
2000년 이후 매년 연영과 신입 중에서 캐스팅해서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실제 주연을 했던 배우는 다 배우지망이었고, 아이돌 출신들은 대부분 조연이나 단역이 전부였어요.”
“그래도 올해는 좀 다를 것 같은데, 방금 윤소원이도 나름 오현석 감독과‘그때 그곳에서’ 찍으면서 괜찮은 연기를 했고, 청소년 드라마 올림 자리에서 주연했던 정운우도 나름 아이돌 중에서는 연기가 괜찮았던 것 같아.
“그럼 디렉터님 저랑 내기 한번 할까요?
교수님들 만나서 내년 신입생 단편영화에 주연으로 쓸만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정극으로 배워온 배우지망 쪽 이름이 나오면 제가 이기는 거고, 아이돌 이름이 나온다면 디렉터님이 이기는 거로 어때요?”
“좋지. 내기라면 뭐가 걸려야지. 정 감독이 이기면 다음 영화 캐스팅할 때 정 감독이 지명하는 애 2명 노터치해줄게. 정 감독은 뭘 걸거야?”
“내년 신입생 영화 감독할 때 무료로 해드리죠.”
“야, 그거 원래 100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거마비 조로 주는 거잖아. 내가 손해인데.”
“100만 원이면 엄청나게 크죠. 저도 올해 찍은 게 성과가 있으니 먹고살 만하지, 작년 같았으면 100만 원으로 3개월 살았어야 했어요.”
“알았어. 그럼, 그걸로 내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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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실기 본 애들 중에서 내년 신입생 영화에 주연할 만한 애가 있냐고?”
“네. 박 교수님. 어제, 오늘 남자애들을 다 보셨으니 눈에 걸리고, 머리에 남는 애 한두 명 없었습니까?”
“흠. 정기석 감독이 신입생일 때는 신입생 영화에 누가 주연했지? 박하늘이었나?”
“네, 그때 박하늘이 여주였고, 남우는 권찬우라는 친구였는데, 권찬우는 조연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버렸습니다. 얼굴도 괜찮았고 연기도 그럭저럭했는데, 운이 좀 안 좋은 친구였어요.”
“아 권찬우 기억이 나긴 나는데,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개성이 좀 없는 친구였나. 기억에 남는 임팩트가 없네.
흠. 올해는 남자애 중에서는 의외로 정극연기를 어릴 때부터 해온 애들보단, 연기 하는 아이돌 애들이 더 괜찮았어. 의외일 정도랄까.”
“네에? 아이돌 출신들이요?”
“그래. 아이돌 출신들. 그런데 정 감독 왜 그렇게 놀래?
뭐 작년, 재작년 모두다 정극 연기를 했고, 준비했던 애들이 신입생 단편영화 주연을 차지했지만, 올해는 김태정이라는 애도 좋았고, 정운우도 괜찮았고, 아 윤소원이도 괜찮았네.
세 명 다 아이돌 출신이긴 한데, 이미 연기 경험이 좀 있어서 그런지 연기가 안정되어 있고, 연기에 꽤 공을 들인 게 보이더라고.”
“아자! 박 교수님 감사합니다. 정 감독이랑 내기를 했는데, 교수님이 주연으로 쓸만한 애로 아이돌 이름이 나온다면 제가 이기는 거였는데, 제가 이겼습니다. 하하하”
“그래? 내기 상품은? 정 감독이 밥이나 술사기로 한 거야?”
“정 감독이 내년 신입생 영화 노 개런티로 연출해 주겠다고 합니다.”
“오~ 그래? 그러면 학교 쪽도 좋지. 정 감독 개런티를 신입생들에게 주지 뭐. 아, 여기 김켈리 교수 알지? 올해부터 겸임교수로 뮤지컬 쪽을 가르치기로 했는데, 김 교수는 어때? 뮤지컬 쪽 측면에서 보는 올해 신입생들 수준은?”
“뭐 노래와 춤을 보지 못했지만, 연기만으로는 박 교수님의 생각과 비슷해요. 아마, 언급한 3명은 아이돌 출신이기도 하니 무대에 선 경험도 있을 테고, 연기도 괜찮아서 뮤지컬 쪽에서도 나름 주목을 할 것 같네요.”
“김켈리 교수님도 그렇게 이야기하시니 신입생들 영화 찍을 때 3명 다 눈여겨 봐야겠네요. 그럼 교수님들 같이 저녁이나 하러 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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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과장아!”
“네, 대표님. 무슨 일이 습니까?”
“YAM이라고 알아? 엔오원은?”
“네 두 팀 다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인기 있는 그룹들입니다.”
“그래? YAM에 윤소원이라고 있는데 알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MSM 소속이고 작사, 작곡도 하는 만능 돌이라고 불리는 애인데, 오늘 경국대에서 보신 겁니까?”
“MSM 소속이었어? 그럼, 잘되었네. 나름 얼굴도 괜찮고, 연기도 되더라고, 이야길 해보니 아이돌이라고 하길래 한번 캐스팅해볼까 했는데, MSM 소속이면 이야기가 쉽네.
이번에 준비하는 ‘위대한 쇼 비즈니스’ 뮤지컬에 캐스팅하고 싶다고 MSM에 오퍼 좀 넣어봐.
얘랑 MSM 몇몇 더 꽂아주는 조건으로 제작투자나 협찬까지 엮을 수 있으면 엮어보고.”
“네. 요즘 뜨는 아이돌이라서 아마 화제성이나 홍보 쪽에는 좋을 겁니다. MSM에 한 번 연락해 보겠습니다.”
“이번은 우리 ‘강뮤지컬’에서 직접 제작하고, 내가 직접 연출한다고 이야길 하고.”
“네. 천하의 김 켈리 감독이 총감독하는 첫 작품이라고 강하게 홍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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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 강뮤지컬에서 YAM 윤소원을 콕 집어서 오디션 요청이 들어왔는데요.”
“응? 슈퍼키즈 멤버들이 아니고? 그쪽에서 먼저 YAM 윤소원을?”
“네. 그래서 팀장님께 물어보는 거죠.”
“아직 YAM 관련해서 뮤지컬 쪽에 뿌린 거도 없지?”
“네, 지금 이제 앨범 2장 내고 한참 활동하는 시기라, 뮤지컬 쪽 고정공연은 안 될 것 같아서 프로필을 뿌리지도 않았는데, 먼저 연락이 오네요.
그것도 김 켈리 감독이 이번에 총연출하는 ‘위대한 쇼 비즈니스’인데요.”
“흠. 인지도 있는 김 켈리 감독이 처음으로 총연출하는 거라면 좋은 기회인데...”
“하지만, 리스크도 크죠. 이때까지 김 켈리 감독은 음악이랑 무대감독만 했고, 총연출을 안 해봤으니 조금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는 좀 그렇죠. 더구나 제작투자나 협찬도 은근히 원하는 눈치입니다.”
“흠. 한국에서 초연하는 뮤지컬이고. 더구나 윤소원도 이제 19살에 뮤지컬 경험이 없고, 투자 건까지 생각한다면, 너무 리스크가 크겠지?”
“네, 더구나 지금 YAM이 한창 활동할 시기인데, 개인 스케줄로 뮤지컬 공연이 떠버리면 문제가 될 여지도 있고요.”
“음. 어쩔 수 없다. 정중하게 스케줄 문제와 경험이 없어서 안 되겠다고 거절을 해. 까는 게 아니다! 진짜 정중하게 거절해!
담당자가 화를 내면 내가 김 켈리 감독에게 직접 전화 할 테니깐 일단 네 선에서 거절해봐.”
“네. 알겠습니다. 대신에 다른 아티스트들을 한번 추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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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과장아, 배우들 오디션 일정은 다 나왔어?”
“네, 여기 있습니다. 한데...”
“한데? 뭐?”
“그게 며칠 전 찍어주셨던 YAM 윤소원은 오디션 일정 전에 스케줄문제와 경험 부족이라고 아예 오디션도 못 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나름 정중하게 어려서 경험 없고, 스케줄 때문이라고 이야길 하는데 느낌은 그냥 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피해? 나를? 미친 거 아냐?
라이징 스타로 한번 키워주려고 했더니 이딴 식이네. MSM 미쳤네. 이제 나랑 일하기 싫다는 거야?”
“MSM에서 다른 애들 추천해 준다고 프로필은 왔습니다만, 슈퍼키즈 멤버들은 이제 거의 의례적으로 다 프로필을 보내는 거라서.”
“투자나 협찬은?”
“일단 슈퍼키즈 멤버나 다른 MSM 소속 캐스팅 조건으로 협의 중이긴 합니다.”
“그럼, 윤소원이 안 주는 거로 약점 잡아서 받을 수 있는걸 최대한 받아봐.
뭐, 다 받아 낸다고 해도 키워주려고 호의를 베풀었는데, 직접 오지도 않고 깠어? 흥 참 내. 웃기고 있어. MSM 좀 컸다 이거지.”
“경국대에서 학생으로 대표님 수업을 듣게 된다면 그때 가르침을 좀 내려주면 되겠죠.”
“호호호. 그렇네. 그래 아주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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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채는 녹음 오케이. 다음으로 이수나 들어가 주세요.”
스튜디오 밖에서 ‘빨간 펀치’의 멤버이자 프로듀싱 해주기로 한 한원희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한고비를 넘겼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정은채가 녹음 부스 밖으로 나왔다.
“은채야, 너 빨간 펀치 언니들한테 뭐 잘못 보인 거 있어? 녹음하고 하는데, 너무 엄격하더라.
그래도, 기운 차려. 갑자기 너 분량이 늘어났잖아. 중간 파트 부분이 거의 메인보컬처럼 네가 하게 변경되었어.”
“그건..그런데..”
은채는 혹시나 소원이와 사귀는 거 때문에 구박을 받는 거 같다는 생각도 들어서 개운하지가 않았다.
“뭘 그건 그런데야. 파트 늘어나게 되어서 안무도 전체적으로 다 수정하게 될 거라는데. 그러면 너 메인에 서는 시간도 더 늘어날 거야. 오히려 좋아해야지.”
“좋은 일이긴 한데 너무 힘들었어. 전에 다른 프로듀서분들은 쉽게 녹음한 거 같은데.”
“야야. 그건 너희가 여자니깐 그런 거지. 수나도 지금 엄청 닦이고 있잖아.
이때까지 냈던 첫 번째 두 번째 앨범은 남자 프로듀서들이라 좀 쉽게 녹음한 경향이 있어.
하지만, 같은 여자가 프로듀서를 봐주니깐 부족한 부분을 더 디테일하게 잡아 주는 거지. 녹음 스튜디오에서 조금 전의 그런 고함은 기본이야.
같은 회사의 메인 프로듀서였다면 바로 욕 나올 때도 있어.
오히려, 이렇게 행사나 공연에서 얼굴을 마주칠 사이임에도 화를 내면서 너희 프로듀싱해주는걸 고맙다고 생각해야 해.
웃으면서 녹음하고 끝내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저렇게 한 파트마다 찔러주면서 해주는 프로듀서는 잘 없어.”
은채는 물론이고, 영시스터 멤버들은 매니저의 말을 듣고선 그제야 첫 번째와 두 번째 앨범이 너무 쉽게 녹음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 앨범들의 반응이 별로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매니저 오빠 그러면, 힘들게 녹음 한 만큼 이번에는 진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번이 진짜 마지막인데.”
“이번에 히트 치기만 하면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을 텐데. 시장 반응은 일단 봐야 알 수가 있지. 누군들 알겠냐. 그저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참. 은채야 너 경국대 수시에 합격하였다는 문자 왔더라.”
“정말요? 앗싸! 참, 수나는 한예종 연락 없던가요?”
“그래, 수나는 아직 연락이 없는데, 일단 다른 애들 결과 나오기 전까진 이야기하지 말아. 알았지?”
“네.”
“어? 엔오원 성대현도 프로듀싱 해준다고 온 거 같다. 너희 녹음 끝나면 성대현, 빨간 펀치랑 사진 찍어서 인스타 올릴 준비 미리 해. 정식으로 보도자료 올리면 다 같이 올리면서 몰이해야 한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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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녹음은 잘되었어요?”
“야, 이 힘들어 보이는 형은 눈에 안 보이냐?”
“대현 형은 늦게 녹음실 갔다면서요? 빨간 펀치 누나들이 녹음 다 한 거 알고 있습니다요.”
“그래도 세부작업은 내가 다 했어. 내가 진짜 밖에 나가면 어떤 대우를 받는데, 소원이한테는 이런 취급이나 당하고. 흑흑흑”
“우는 척 하는 거 봐라. 넌 영시스터 애들이랑 사진 찍으면서 좋아 죽겠다는 표정 지어 놓고는 무슨 힘들었다고 하냐?”
“아닌데, 우씌...”
“일단, 소원이가 보는 눈은 있던데. 은채가 너랑 사귄다는 걸 알고 나서 봐서 그런지, 영시스타 멤버 12명 중에서는 제일 예뻐 보이긴 하더라.
MSM에서 보컬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았는지, 기교도 제법 잘 부리고.
다만, 목소리 톤에 개성이 좀 없다는 게 약점이라고 할까.
그거 말곤 애가 예쁘더라.”
“녹음 다한 거 한번 들어 보면 안 돼요?”
“따로 녹음본은 없고, 핸드폰으로 찍은 거 일단 들어봐.”
빨간 펀치의 이채연 누나가 최종 녹음본을 핸드폰으로 들려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