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우린 갑이면서 을.
“..생방송 시청자 문자투표까지 합산한 최종 화제가요 1위는...12,762점을 받은 YAM의 ‘줄리엣’입니다! 신인으로 데뷔 6주 만에 1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1위 소감 부탁드릴게요.”
KBC 음악축제의 MC가 건네주는 마이크를 리더인 제일이 형이 받아서 소감을 시작했다.
“정말 데뷔 6주 만에 1위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감사한 모든 분의 이름을 다 부르고 싶지만, 1위를 해서 그런지 지금 머리에서 하나도 떠오르지 않네요. 큰일입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모든 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하는 YAM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 우리 야미들 고마워요!”
사실 제일이 형이 1위 할지 몰랐다고 했지만, 시기가 좋았는지 리패키지의 줄리엣이 주간 차트 1위를 계속하기에 1위도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다.
다음 주에 컴백하는 블랙스완이 나온다면 몰라도 이번 주까지는 운 좋게도 우리와 상대할 적수가 없었다.
“자 다들 어서 줄 서 V Live 시작한다.
방송되고 있지? 여러분~! 우리 야미들~! 우리 공중파 1위 했어요! 이게 다 우리 맛있게 YAM YAM 하는 야미들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내가 인사말을 하고 12명이 일일이 돌아가며 공중파 1위를 시켜줘서 고맙다고 이야길 했다. V Live 채팅창은 제대로 글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글이 막 올라가기 시작했다.
“채팅도 다 읽고 이야길 하고 싶은데,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또 가볼게요~ 다음에 또 봐요! 안녕~!”
방송국을 나오니 또 팬들이 시위대처럼 몰려들었다.
안전요원들의 도움을 받아서 겨우 차에 타서 방송국을 벗어났다.
“와! 형들 사실 공중파 1위하고 트로피 받고서도 공중파 1위 했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되고, 우리가 진짜 인기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오늘 우리한테 몰려드는 팬들 보니깐 실감이 나요. 특히나 ‘규일오빠!’ 하면서 달려드는 팬을 보니 진짜 스타가 된 것 같다는 체감이 됩니다. 슈퍼스타 황규일! 으하하하.
아침 출근길에는 너무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이 없어서 실감을 못 했는데. 퇴근길에 이렇게 실감을 하다니. 진짜 소름이 쫙~!”
“사실, 출근길도 다른 가수들처럼 하려고 했는데, 방송국에서 너무 혼란스러울까 봐 아침 일찍 나와 달라고 한 거야. 안전사고 있을 것 같다고.”
기봉이 형이 일부러 출근길을 빨리했다고 말하자 다들 아쉬워했다.
“진짜 온라인에서만 우리 인기 있는 건 줄 알았는데, 이렇게 팬들이 밀려드니깐 진짜 실감이 나네요. 나도 소름 돋아서 닭살 돋은 거 봐.”
“다음 주부터 팬사인회도 시작될 테니깐 실컷 경험하게 될 거다.
이제야 소원이의 엔오원때 인기와 비슷해진 것 같으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해.”
“그러고 보니 소원이는 우리완 달리 이런 인기가 새롭지 않겠네.
엔오원의 위엄이 오늘따라 느껴지는데.”
“뭐, 제일이 형은 모르겠지만, 이놈의 인기가 하루 이틀이어야죠. 후후.
다들 인기 있다고 목에 깁스해서 다니면 안 된다는 거 알죠? 특히나 이렇게 신인에서 무명생활 없이 바로 스타가 되면 스타병에 걸리니깐 늘 ‘이것도 다 지나갈 것이다’라는 말 명심하면서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미 연습생 때 다 교육받았으니 다들 잘하겠지. 오늘 대학교축제까지 1시간 정도 걸리니깐 다들 잠이나 자둬.
그리고, 소원이랑 희라는 내일 대학교 수시모집 문제로 사무실에서 별도 스케줄 있으니깐 알고 있고.”
그러고 보니, 대학교 수시모집 기간이었다.
사실 대학교에 가더라도, 아이돌의 특성상 학교수업에는 한 달에 일주일도 가지 못하고 제대로 수업을 들을 여건이 되지 않았지만, 남자 아이돌은 군대를 연기하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진학해야 했다.
그러고 보니 기원이 형도 학교를 휴학한 지 2년째라 올해 복학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올 연말에 입대해야 한다고 구시렁거린 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해외공연의 경우에도 대학생이라면 해외로 출국이 좀 더 쉬웠다.
직업이 없다면 공연비자나 출국문제로 막히는 게 있다 보니, 20살 이상이 되는 남자라면 어쩔 수 없이 신분적으로 안정이(?) 되는 대학생이란 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30살까지 군대를 연기했던 민호 형은 대학교 졸업 후 자격증, 국가고시, 질병 치료 등등의 사유를 만들어서 군대를 연기했었는데, 요즘 전화통화를 해보면 나이 들어서 온 게 더러워서 빨리 올 걸 그랬다고 울분을 토해 냈다.
MSM의 남자 선배들도 결국엔 20대 후반에 돌아가며 군대를 갔다 오기에 데뷔 7년 차 이후부터는 계약문제보단 군 문제로 완전체 활동을 하는 게 힘들었다.
“제일이 형은 내년에 대학원 진학 하실 거에요?”
“그래야지.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학 석사과정으로 진학하기로 이미 교수님과 이야길 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할까. 에휴. 넌 그럼 연기과로 가는 거야?”
“네. 수능 안 보고 연기실기만 보면 된다고 해서 경국대로 하기로 했어요.”
“그래, 거긴 오래되었고, 경국대 연영과 라인이 잘되어 있어서 연예인들이 많이 가지. 예능인도 많아서 경국대 라인은 회사가 달라도 당겨주고 한다더라. 잘 선택했네.
그리고, 수시라서 수능 안 본다고 하니 좋네. 안 좋은 건 수능 때 엿이랑 찹쌀떡은 못 받겠구나.”
“그거 안 받고 수능 안 보는 게 좋은 거죠. 저도 눈 좀 붙이렵니다. 형도 자요.”
**
[꺄~! 오빠!]
“저리 비켜! 저리 비키래도!”
공설운동장에서 치러진 향토축제 무대를 마치고 돌아가는데, 광역시에서 주최한 행사라 그런지 주차장과 대기실이 연결되지 못해서 인파를 헤치며 지나가야 했다.
여름의 더위와 더불어 몰려드는 인파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 들 정도였다.
“위험해요! 팬 여러분 진정해 주세요!”
지방이라 그런지 연예인이 왔다고 이때가 아니면 보지 못한다고 더 몰려드는 것 같았다. 다른 가수들도 있으면 인파가 좀 분산이 될건데, 아이돌은 우리 밖에 없다보니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 몰렸다.
“야 비켜! 물러나!”
덩치가 큰 이용민 실장도 맨 앞에서 길을 열며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을 스모선수들처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안전을 책임지는 안전요원들도 처음과 다르게 점점 말이 짧아지기 시작했고, 매니저들 입에서도 점차 큰소리가 나오며 길을 열었다.
“아야! 악! Cㅂ..”
인파에 밀려가는 중에 미준이의 입에서 비명과 욕이 나왔고, 안전요원과 매니저들의 짧아진 말을 몇몇 멤버들도 그대로 따라 하며 사람들을 해치며 차에 오르고 있었다. 물론 팬들과 몰려든 사람들의 입에서도 이리저리 서로 밀리다 보니 욕과 비명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
“아 시파 머리카락 뽑혔어. 짜증나!”
아까 욕을 했던 미준이가 차에 타자마자 욕을 하며 의자에 앉아서는 짜증을 냈다.
“나도 꼬집혔어. 어깨에 달았던 휘장 장식도 없어졌네. 어휴.”
여기저기서 팬들에게 시달렸다는 투정어린 말이 쏟아져 나왔다.
차에 탈 때 행동했던 것들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일단 다들 더운 여름에 용을 쓰며 인파를 헤쳤기에 열이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
“기봉이형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 여유 있죠? 다음 휴게소에서 멤버들뿐만 아니라 매니저들까지 다들 이야기 좀 하죠.”
내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매니저들까지 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니 뭐지 싶어 하면서도 가까운 휴게소에 들렸다.
“이용민 실장님. 실장님도 이쪽 일한 지 10년이 넘으셨잖아요.
그러면 예전에 팬 밀치고 머리 때려서 사고 난 거 기억하시잖아요.
스케줄 시간이 급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오늘 이렇게 팬들 밀치고, 한 게 인터넷에 또 올라가면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그리고, 미준이 넌 연습생 때 교육 안 받았어? 사람들 있는데 욕 쓰면 안된다는 거 몰라?
다른 멤버들이나 매니저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날씨가 덥다고 화가 나는 건 이해가 되지만, 우린 프로입니다. 돈 받고 일하는 거예요. 무료봉사로 행사 뛰는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런 일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프로답게 다들 팬들에게 예의를 차려주시기 바랍니다.”
40대의 이용민 실장은 내가 오히려 가르치듯이 이야길 하자, 욱하는 듯했지만,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몇 년 전 팬의 머리를 때리며 밀친 게 영상으로 떠서 큰일이 있었다 보니 한숨을 한번 쉬고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소원형 머리카락이 다 뽑혔다니깐요.”
“너 탈모 없잖아. 머리카락은 다시 날 거야. 그거 때문에 시파니 뭐니 욕을 하고 그러면 그걸 들은 팬은 너에게 애정이 생기겠냐? 가수가 아니라 양아치로 볼 거 아냐?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런 욕 써도 상관은 없어. 하지만, 숙소를 벗어난 이후로는 예의를 차리라고. 한국, 중국, 일본은 유교문화권이잖아.
미국 같은 서구에서는 실제 가수의 사생활이 더럽고, 마약을 하든 뭘 하든 노래만 좋으면 사생활과 노래를 별개로 보고 아티스트로 좋아해 주지만, 한, 중, 일 같은 유교문화권에서는 달라.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사생활에 문제가 있거나 하면 바로 끝이야.
인터넷에서 ㅅㅂ으로 초성 욕만 남겨도 인성 문제가 불거진다고.”
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도 미준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눈치였다.
먼저 팬이 자신에게 잘못했으니 화를 낸 건데, 그게 잘못되었다고 하니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미준아, 한국의 유교가 잘못된 것인지 인식이 문제인지. 유명인은 늘 ‘을’이야. 한 대 맞더라도 그냥 맞고 있어야 되는 게 연예인이야.
한 대 맞았다고 같이 때리면 그다음 날 신문기사에는 일방적으로 미준이 네가 폭행혐의로 조사받고 있다고 나올 거야.”
“왜요? 내가 먼저 맞았는데.”
“그게 한국의 유명인이야. 아니 전 세계 유명인이 감내해야 하는 일 이야.
인플루언서(influencer·영향력자)라고 미국도 같은 범죄나 사고라도 유명인이 뭐든 잘못한 거로 기사가 나가 그래야 노출이 잘되고 클릭이 높으니깐.
우리 같은 연예인들은 언제나 을이야.
그러니 피해를 보더라도 참아야 되는 거야.”
“모든 걸 자비롭게 봐주는 부처님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부처님이 싫으면 오른쪽 뺨 맞고 왼쪽 뺨을 내미는 예수님 할래?”
“어휴, 부처님이 좀 더 좋겠네요.”
“우린 MSM소속의 아이돌이야. 팬들에게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 말 한마디가 팬들에게는 아주 큰 영향을 주게 되어있어.
너도, EOS의 공연을 중국에서 직접 보고 아이돌의 꿈을 꾸었다고 했지.
그때 EOS 멤버가 네가 듣는 곳에서 욕을 했다면 우상으로서 EOS를 좋아 할수 있었을까?
아이돌은 늘 팬들을 신경 써야 하는 직업이야.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말을 해라.”
“휴...알겠어요. 이제 화가 나도 욕은 안 할게요.”
“매니저 형들도 잘 들으세요. 아이돌은 팬들에게 꿈과 환상을 만들어 주고 그걸 떠 먹여주고 돈을 버는 겁니다.
오늘 무대에 오르기 위해 힘든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 무대의 가치를 더 높이는 장치가 되지만, 그 이외의 무대 아래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룰입니다.
왜냐면 그 아래의 힘들고 더러운 걸 알게 되면 무대를 보고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죠.
팬들이 순수하게 무대를 즐길 수 있게 우린 늘 웃어주고,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생활을 하며 힘들어하는 팬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고 그걸로 팬들은 즐길 수 있는 겁니다.
그게 쇼 비즈니스의 본 모습입니다. 그리고 우린 쇼 비즈니스의 안에서 꿈과 환상을 만들어 가는 아티스트이고요.
아무리 화가 나고 열 받아도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잊지 맙시다. 늘 MSM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