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변화의 진통 (2).
“이제까지 MSM의 글로벌화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는 수박 겉핥기로 밖에 모르지만, 이런 방식의 글로벌화는 잘못되었습니다. 앞, 뒤가 맞지 않습니다.”
“어떤 부분이 앞뒤가 안 맞고 잘못되었다는 거지? 상세하게 설명을 해봐.”
“네. 먼저, 시장을 구분하겠다는 것과 현지화를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번안곡을 낸다는 자체가 다시 현지화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MSM FRIEND PARTY’를 없애고, 한국에서 만들어진 앨범을 단순히 영어로 번안해서 앨범을 내겠다는 말은 그냥 어쩔수 없이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글로벌화를 따라하겠다는걸로 밖에 안들립니다.
시장이 가까우며 좁은데도 세계 2위의 음반 시장인 일본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현지화를 하는게 좋은 판단같습니다.
하지만, 글로벌화를 이유로 영어로 번안해서 출시하는 앨범은 결국 북미권 한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미는 스페인어, 중국은 중국어, 동남아와 유럽은 여러 가지 언어를 쓰기에 영어번안곡으로는 커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모든 언어로 음반을 내자는 거야? 번역은 둘째치고 발음은? 부정확하고 훈련되지 않은 발음은 오히려, 노래 자체를 우습게 만들 뿐이야.
일본어는 그래도 어순이 같고, 발음도 성조가 없기에 쉽게 따라할 수 있어서 일본에서는 인기가 있지만, 그 이외 언어의 완벽한 발음은 1, 2년으로는 무리야.”
“네. 일본 지사장님 말이 맞습니다.
발음, 딕션(diction)이 노래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현지인이 부르는 것 같이 완벽한 발음이 아니라면 사실 팬들만을 위한 장식품 앨범이 될 뿐이죠.
1990년대 말에 홍콩스타 ‘여명’이 영화의 인기를 믿고, 한국에서 발라드 노래를 내었을 때 발라드 노래임에도 어설픈 발음으로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한국어를 10년 가까이 배우며 한국어를 연습했던 일본의 ‘초난강’도 한국어 앨범을 내면서 결국 발음 문제로 인해 개그 캐릭터로 인식이 되었을 정도로 이 발음의 문제는 큽니다.”
“그렇다니깐 언어는 쉽게 배워도 그 현지인이 말하는 발음을 완벽히 내는건 어렵다니깐 한류가 뜬다는 베트남어는 성조가 5개인가 있어서 더 어려워. 영어, 일본어로만 앨범을 내는게 맞다니깐. 다른 언어 앨범은 그냥 돈 낭비 시간 낭비야.”
“일본 지사장님 말이 맞지만, 그렇게 되면 ‘MSM FRIEND PARTY’가 있었을 때랑 없었을때랑 별 차이 없는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내수 시장과 같은 일본시장은 캐시카우로서 그 입맛을 맞춰주기 위해 일본어 앨범을 내는건 맞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다들 동의 하실겁니다.
하지만, 영어번안곡을 내어서 북미를 공략하면서, 발음 문제로 다른 언어 앨범은 생각도 하지않는 글로벌화는 잘될 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다지만, 현지에서 살았던 현지인의 발음은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럼, 영어 앨범도 내지 말자는 말인가?”
“네 맞습니다. 글로벌화라면서 출시하고 있는 영어 앨범을 아예 출시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사실, 영어 앨범을 내도 북미의 일반 사람들은 구매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냥 팬들을 위한 장식앨범이죠.
아예 한글, 한국어로 된 한국에서 출시되는 앨범과 똑같은 앨범으로 글로벌화를 가야 합니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외국인중에서 한국어를 아는 사람이 몇 명있다고.
결국, 교포들 말고는 앨범을 사줄 사람이 없을거야.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로 들으면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어떻게 알겠어? 욕만 적은 가사로 리듬만 따라 불러도 아마 대부분의 외국인은 모를걸.”
“네 맞습니다. 비(非)영어권 음악이란 언어적 장벽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1992년도에 발매되었고, 1996년도에 빌보드에서 14주간 1위를 하며 미국은 물론이고 아시아 등 전 세계를 강타한 ‘마카레나(Macarena)’란 노래를 기억하실 겁니다.
스페인의 남성 듀오 ‘로스 델 리오(Los Del Rio)’란 배나온 동네 아저씨 같은 두 남자가 슈퍼 빅히트를 쳤었습니다.
이렇게 다들 줄을 서서 ‘앙나꼬 모나떼코 루라테라시타 에~마카레나 하아잇~’ 하는 말도 안되는 스페인어를 우리가 따라 부르면서 춤을 추었었습니다. 가사를 모르고 그냥 다들 외웠기에 그 가사내용을 아는 사람은 아마 여기에 없을겁니다.
우리가 스페인어를 알고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했을까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마카레나’의 뜻을 알고 계신 분은 계십니까?”
“그렇군. 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어.
싼이의 ‘강남 쫄바지’란 노래가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히트친 사례도 있으니 한국어로 된 앨범을 그대로 외국에 출시하자는 거군.”
“네, 처음에 싼이의 강남 쫄바지는 뮤직비디오의 아스트랄한 영상미에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보았지만, 결국엔 어떻게 되었습니까?
한국어를 영어식으로 따라 부르며 말춤을 추면서 뜻도 모르고 발음도 틀린 가사를 따라 불렀습니다.
한국어는 ‘안녕하세요. 맛있어요’ 같은 인사말 밖에 모르는 사람들도 나중에는 강남 쫄바지 라는 단어를 알게 될 정도였습니다.
임원 여러분들은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 기억하실 겁니다. 70~90년대에는 최신 팝송이 AFKN이란 라디오나 티비 채널을 통해 팝송이 전해졌다고 하더군요. 그때, 테이프로 녹음을 해서 몇 번이고 돌려 들으며, 영어 가사를 받아 쓰고, 그 받아쓴 가사를 영한 사전을 찾아가며 번역을 하고 따라 불렀을겁니다.”
“그래, 기억나는군. LP도 정식 수입이 안되어서 ‘백판’이라는걸 사서 들었지. 가사를 다들 모르다 보니 가사집을 따로 만들어서 판매 할 정도였어.
내가 노래를 듣고 딴 영어가사를 사전을 보고 번역했는데, 그 가사나 내용이 영어전공자인 사람들의 번역과 다르다는걸 알곤 좌절도 많이 했었어.
그때가 기억이 나네. 허허허.”
어느 사업부인지 모르겠지만, 50대의 임원은 그때 그런 기억이 있었다는 듯이 추억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네, 그때 일일이 사전을 뒤적거려 가며, 영어단어를 배우고 번역해서 불렀던 팝송은 아마 지금도 불러 보라고 하면 부르실 수 있을 겁니다.
노래 가사를 알기 위해 일일이 사전을 찾아보고, 단어와 문장을 외웠기에 기억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겁니다.
만약, 미국의 팝 가수들이 그때 한국어로 번안곡을 만들어서 한국에 들어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지금처럼 추억 속의 명 팝송으로 기억에 남아 있지 못할겁니다.
외국의 K-POP팬들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K-POP가수들이 영어나 자국의 언어로 번안곡을 불러 어설픈 발음으로 감동을 깨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한국에서 발매되는것과 똑같은게 유통된다면, 왠지 인터넷에서 핫한 한국어를 나만이 알고 있다는 그런 특별함까지 팬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외국 팬들이 우리나라의 70~90년 초반처럼 일일이 사전, 구글을 찾아보며 노래 가사를 번역해서 노래를 듣는다면 노래에 대한 애착이 더 커질겁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 사람은 몇 년이 지나도 노래를 기억하고, 평생의 추억이 될수 있겠군.”
“네, 맞습니다.
글로벌 화는 단순히 영어로 불러서 그들이 쉽게 알아 듣게 하는거 보다는 한국어라는 장점을 최대한 발휘해서 K-POP을 듣는 사람은 쿨하고 트랜디한 사람이라는 선민사상까지도 은연중에 줄수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어느 문화든 혼자만의 특권의식으로 문화가 고급화가 진행되면 자연스레 그 아래로도 그 문화가 내려가게 됩니다.
우리 MSM은 그걸 만들어 내야 합니다.
이미, K-POP은 그런 긍정적인 포지셔닝을 전 세계에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산업화되어 발전된 도시, 깨끗하고 깔끔한 사람들, 작은 나라지만 삼성, 현대로 대표되는 글로벌 기업, 총기가 없어 밤에도 술취해 돌아 다닐수 있는 치안, 유학생들의 뛰어난 머리, 2002년 월드컵 이후 FIFA까지 길거리 응원을 하게 만들었던 국민의 단합성까지 부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한국은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꿈과 환상의 나라입니다.
특히나 남미처럼 치안이 불안한 곳에서는 이런 환상이 더 크게 다가 올겁니다.
그런, 환상을 남미 브라질의 집 침대에 누워서나 중국 쓰촨성 산골짜기에서도 SNS와 유튜브로 아이돌을 접할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환상을 우리가 계속 만들고 보여준다면, 한국어 앨범만으로도 충분히 글로벌 화가 가능합니다. 그것이 더 멀리 보다 넓게 MSM을 알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흠. 더 멀리, 보다 넓게 보여주고 알려주는 방법이라....
그럼, 앨범은 이제 한국과 동일한 앨범이 외국에서도 출시되는 것으로 결정을 하지.
한국 적인게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을 한번 믿어보지.
다만, 그 나라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비공식적으로 그 나라 언어로 된 영상이나 노래를 온라인으로만 공개를 해.
정식은 아니지만, 자국 언어로 불러줬다는 것만 해도 충분할거야.”
“그리고, 회사에서 또 추진해 주셔야할게 있습니다.”
“일단 말해봐. 지금 임원들의 얼굴을 보면 네가 트로트 회사로 바꾸자고 해도 바꾸자고 할 것 같으니깐.”
“한국어 앨범이 글로벌 화가 되려면 일단 한국어와 그 나라 언어로 번역이 가능한 어플이나 사전책이있어야 합니다.
어플은 구글 번역이면 사실 충분합니다만, 인터넷 사용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종이책 사전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영, 한일, 한중, 한불, 한독 사전을 빼면 제대로 된 사전도 없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가격도 비싸지요.
그래서 회사에서 정부 쪽과 손을 잡고, K-POP번역사전같은 기본형의 종이 사전을 추진해서 그 나라에 보급을 했으면 합니다.
정부에서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면 우리와 Big4기획사가 돈을 모아서 K-POP 가사 번역을 위한 종이 사전 보급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게 좀더 외국인들이 K-POP을 쉽게 접할수 있고, 번역해 가며 애착을 가질수 있을겁니다.”
“좋아. 진짜 미래를 보자는 거시적인 시선이군. 파이를 크게 만들기 위한 밑 작업으로 번역사전의 보급이라...몇십년이나 문화사업을 했다는 우리가 생각도 못한 아이디어야. YAM이 내가 있는 일본에 진출할때가 기대가 되는데.”
“이 건은 글로벌팀에서 한번 외교부나 코이카(koica)쪽으로 한번 알아보고, 혼자서 안된다고 하면 다른 기획사까지도 같이 연합할수 있게 추진해봐.
사전에 각 회사 대표가수의 가사들이 소개되고 번역이 될수 있게 된다고 하면 다들 좋다고 뛰어 들거야.
일단, 글로벌화는 이렇게 처리하도록 결정을 하고.
그럼, 소통방법과 방향에 대한 수정에 대해서 이야길 해보지. 일단 우리 MSM에서 이때까지 유지했던 아티스트 신비주의를 다 버리는 것으로 결정을 했어.
지금 YAM이 하고 있는 관리운영 2.0 방식으로 전면적으로 매니지먼트 방향을 수정해.
이 회의 다 녹화되고 있지? 회의 끝나면 회장님께도 바로 보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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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회의는 오늘 오전에 다 봤어. 내가 미국에 있으면서 느꼈던 것보다 어쩌면 한국에 있는 너희들이 더 글로벌화에 대해서 잘 알수도 있을 것 같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가 조급해 진것인지 너무 근시안적으로 생각을 했어. 소원이 말처럼 길고 넓게 보고 추진을 했어야 하는건데.
이젠 급할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바로 눈앞만 보고 있었던 걸까.”
“회장님 아닙니다. 이런 부분을 제가 먼저 챙겼어야 했는데,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제 감이 떨어진거겠죠. 50이 다 되다 보니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자책한다고 48살에 벌써 뒷방 늙은이라고 하면, 난 이미 관 안에서 썩고 있어야지. 하여튼, 윤소원이 모아서 회사를 같이 만들었다는 성대현이나 빨간 펀치 애들 같은 그런 감각있는 애들을 더 모아.
우리 감이 떨어졌다면, 감 있는 애들을 데리고 오면 되는 거지.
나이가 들수록 잘해지는 건 관리 운영 말곤 없으니깐. 어쩔수 없는거지.
너무 자책하지 말고, MSM을 만든지 30년이 다 되어가. 이제 우리의 시대가 가버린건 어쩔수 없는거야.
그걸 인정하는 게 힘들겠지만,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갈수 있어.
내일은 같이 뮤지컬이나 보러 가자고. 투자에 대한 감은 아직 살아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