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112화 (112/237)

# 112

토템.

“응? 곡 쓰는 거야?”

“어 잠시만.”

옆에서 안 놀아 준다고 구시렁거릴 줄 알았던 은채는 내가 가사를 적고, 그 가사에 맞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곡을 써 내려가자 신기하다는 듯이 지켜봤다.

“됐다. 일단 1차 가안은 다 만든 거 같아. 헉, 시간이 2시간이나 지난 거야?”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웠는데, 그것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더라 대단한 집중력이야.

그런데, 넌 이렇게 노래가 그냥 나오는 거야? 그것도 한 곡이 아니라 두 곡이잖아.”

“이렇게 쉽게 나오지 않지. 오늘은 나의 뮤즈(Muse)가 영감을 주었으니깐 이렇게 노래가 나온 거지.

눈앞에서 천사 날개를 단 이쁜 애가 왔다 갔다 하면서 가사도 불러주고, 악기도 연주해 주면서 노래를 만들어 주더라. 그래서 쉽게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곡이 만들어졌어.”

“그 음악적 영감을 준 뮤즈가 나야?”

내심 기대를 하며 되물어 보는 은채가 귀여워서 놀리고 싶었다.

“아니, 로미오와 줄리엣의 클레어 데인즈지. 너 영화 안 봤냐? 천사 날개 달고 화환 한 클레어 데인즈가 엄청 예쁘잖아. 헤헤헤.”

“우씌! 두시간이나 기다려 줬는데 이러기야?”

“삐지는 것도 귀엽네. 클레어 데인즈는 화면 속에 있지만, 넌 옆에 있으니깐 당연히 나의 뮤즈는 너지. 이리 와봐.”

삐지려는 은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흠..흠..”, “허허.”

자정이 넘어서 기도를 드리러 오신 분이 있는지 주위에서 눈치를 주자 얼른 떨어져선 급히 성당을 나와서 은채가 사는 아파트로 데려다주었다.

혹시나 해서 아파트의 동 앞까지도 못 데려다주고,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서 은채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것을 보곤 형의 집으로 돌아왔다.

“야, 아직 본격 데뷔 준비하는 거 아니라면서 왜 이렇게 늦게 다니냐? 이렇게 늦게 다니는 거면 아예 합숙해야 하는 거 아니야?”

“데뷔 합숙은 다음 주부터인데, 곡 작업 하느라고 늦었어.”

“너 MSM 숙소에 들어가면 나도 이 집 빼려고, 계약이 다 되어서 회사 근처로 옮길 거야.”

“구로 근처로 집 옮길 정도로 형 벌이가 좋아졌구나.”

“이젠 벌 만큼 벌지. 하하 너도 회사에 투자한 임원이니 이름 올려두고 월급은 계속 보내주고 있어. 너 개인 통장 확인해봐라.”

“알았어. 이번에 우리 팀 데뷔하면 형이 마케팅해줘야 해.”

“당연하지. 빨리자자 나도 일찍 나가봐야 해.”

**

“빨간 펀치의 채연이나 원희에게도 같은 곡 편곡을 시키고, 나에게도 같은 곡을 왜 편곡하라고 하는 거냐?

우리 경쟁시키는 거야? 이게 경쟁 편곡이야? 편곡은 경쟁이 아니라고, 컴퍼티션(competition)이 아니야.”

내가 능력을 시험 하겠다는 듯이 성당에서 만든 로미오와 줄리엣 두 곡을 편곡해 달라고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에게 따로 주자 대현 형이 장난처럼 이건 아니라고 제스처를 취하며 나에게 따졌다.

“아, 형 당연히 경쟁이 아니죠. 다만, 확인할 게 있어서요.

제가 드린 곡이 로미오 한 곡과 줄리엣 한 곡 해서 두 곡이잖아요.

같은 가사의 곡이지만, 남자가 만드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여자가 만드는 로미오 줄리엣을 비교해 보고 싶어서요.

그런 입장차이에 따른 편곡의 방향성이 다를 것 같은데, 그 방향성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확인해 보려고요.”

“오호,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마도, 남자는 줄리엣을 부를 것 같고, 여자는 로미오를 부를 것 같지만, 편곡자의 성별에 따른 그 방향성의 처리를 알고 싶다는 거군. 이런 편곡 방향 제시는 또 처음인데. 색달라서 좋아. 오케이! 제대로 한번 해 보지 믿어봐!”

대현 형의 과장된 자신감에 찬 대답에 빨간 펀치 누나들도 다 이해했다는 듯이 여자 입장에서 편곡을 해보겠다고 했다.

편곡을 맡기고 이야길 하다 화장실을 가려는데, 빨간 펀치의 채연 누나가 따라 나왔다.

“소원아. 물어볼 게 있는데, 사람 없는 저쪽으로 좀 가자.”

갑자기, 사람 없는 곳으로 가자는 누나의 말에, 같은 노래의 편곡을 맡긴 것이 기분 나빠서 이야기하려는가 싶어서 일단 따라갔다.

“내가 가사를 보고 느낀 건데...너 연애하지?”

채연누나의 말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로 놀랬지만, 김영민 쌤에게 연기 수업을 들은 게 패시브 스킬처럼 발휘가 되어서, 얼굴 표정에는 그런 놀라움을 숨기고 시치미를 뗄 수 있었다.

“누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에이, 시치미 떼지 말고 노래 가사가 완전히 사랑에 빠진 사람이 적은 거던데, 사실대로 말해 봐봐.

그래야, 나중에 사귀는 사람과 사진이 찍히더라도 그 옆에 우리가 같이 있었다고, 노래 작업 때문에 공적인 모임있었다고 쉴더를 쳐 줄 수 있지.”

“그런데 누나, 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었는데, 가사에 그게 나오던가요?”

“당연하지. 인정하는 거지? 사귀는 사람이 일반인이야? 아님, 같은 계통의 사람? 회사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지?”

“네. 회사에서는 아직 모르고 있어요. 그리고, 같은 계통의 사람이긴 한데, 누나도 어쩌면 아는 사람일 거예요.”

“누구누구? 설마, 트로트 노래 만들어 줬던 연상의 김민경은 아니지?”

“네 민경이 누나는 요즘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영 시스터’의 은채라고 같은 회사에 학교 친구예요.”

“영 시스터의 은채? 그러면 그 ‘여기는 아이돌 캠프’에서 나왔던 그 비주얼 센터 맞지? 그 애도 MSM 소속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얼굴이 기억이 나네. 짜식 이쁜 건 아는구나.”

“하하. 이뻐서 사귀기보다는 연기 수업을 같이 받으면서 서로 상대역을 자주 해주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어요.”

“같은 회사이니 자주 만나긴 할 것 같은데. 조심해야 한다.

연애한다는 걸 드러내는 아이돌은 없어. 거짓말로 숨기는 건 나쁜 일이긴 하지만, 숨길 수 있는데 까지는 숨겨야 해.

하지만, 몰래 만나지 않고, 공개 데이트를 해보곤 싶지?”

“네, 매번 만날 때마다 사람 없는 교회나 성당에서 몰래 만나다 보니 성령이 충만해져서 종교인이 될 지경이에요.

진짜 거기를 걸으며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하고 싶긴 하죠.”

“일단, 대현이나 우리가 사진이 찍히더라도 쉴더로 어떻게든 나서 줄테니깐 우릴 잘 이용해. 대현이랑 원희에게는 네가 직접 이야기를 하고.”

채연이 누나의 말은 완전한 비밀은 없을 테니 최소한의 비밀이 새어 나가더라고 그걸 바꿀 수 있는 알리바이를 만들 장치로 회사 사람들을 쓰라는 말이었다.

**

“어? 소원이 왔다. 내가 먼저야!”

회사 연습실에 들어가니 갑자기 내가 왔다고 멤버들이 우루루 뛰어와서는 줄을 서기 시작했다.

“뭔데? 뭐야? 갑자기 다들 왜 이래?”

“너 운빨 때문에 그러지. 너 스케줄 가고 없을 때 우리끼리 이야길 하다 보니깐 1위를 했던 사람의 그 운빨을 우리도 받아서 대박 나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래서, 토템처럼 아침마다 너랑 악수하기로 했다. 나부터.”

제일이 형이 나와 먼저 악수를 했고, 애들도 다 따라서 나와 악수를 했다.

악수만 하는데도 시끌벅적한 것이 대부분 10대 후반의 아이들이라 확실히 엔오원 때와는 달랐다.

거기다, 다들 연습생 시절부터 본 게 있다 보니 MSM의 신인이 예전처럼 데뷔하자마자 1위를 찍고, 확 뜨는 게 힘들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미 성공한 내 기와 운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엔오원 때는 내가 막내였고, 멤버들 대부분이 20대였는데, 지금 YAM의 멤버 중에선 고3인 내가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그러다 보니, 엔오원의 멤버들은 형들로 내 삶에 들어왔고, YAM의 멤버들은 동생으로 자연스레 내 삶의 구성원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야야 너네 너무 미신 좋아하는 거 아냐? 미신은 미신이다. 그런 거 믿다가 한 방에 훅 간다.”

기봉이 형 외에도 우리 YAM을 담당하는 매니저가 늘었는데, 책임자 격인 이용민 실장이 연습실로 들어오며 은근히 빈정거리는 투로 애들을 진정시켰다.

“다들 이리 와서 빨리 앉아. 회사에서 데뷔를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준비의 일환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기로 했다. SBC MTV에서 찍는 건데, 일단 숙소에 입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될 거야.

그리고, 책임 프로듀서와 데뷔곡을 정해서 연습까지 하는 게 주 콘텐츠 일 거야. 방송 시청률에 따라 12회차가 될 수도 있고, 반응이 없다면 8회에 끝이 날 수도 있을 거야.

일단 다음 주에 숙소로 들어가는 건 다들 알고 있을 테니 미리 준비해. 비방용과 방송용으로 따로 짐과 가방을 준비해야 할 거야.”

“네.”

“그리고, 소원이는 프로듀서 회의 때 이야기 하겠지만, 미리 곡을 준비해야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

“저는 회의적입니다.

이미 레이블의 대표에다, 성공한 유명인입니다.

지금도 애들이 기를 받고 운빨 받으려고 기대고 있는데, 프로듀서까지도 윤소원이 맡게 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단 관리문제입니다. 아직 팀의 리더를 정하진 않았지만, 아마도 이제까지 내려왔던 우리 MSM의 불문율인 ‘연장자가 리더를 맡는다’가 깨질지도 모릅니다.

유영찬 이사님도 아시겠지만, 이제 19살의 애입니다. 같은 팀의 제일이는 4살이나 더 많습니다. 지금은 회사 내에서 이루어낸 게 거의 없고, 자신이 뽑은 멤버이기 때문에 조용하겠지만, 성공을 거둔 후에는 관리가 안 되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주운전에 폭행에 이미 우리는 관리 안 되는 인기 아이돌의 사건·사고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일단, 팀 리더는 이제까지처럼 회사 관례에 따라 제일이에게 시키도록 하세요. 팀 밖에 있는 우리가 관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팀 내에서 제일이가 관리에 도움을 준다면 좀 수월하겠죠.

하지만, 프로듀서는 소원이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팀의 성공이 지금 가장 중요합니다.”

“유이사님!

인기곡이라서 차트 1위를 하는 게 아닙니다. 차트 1위이기에 인기곡인 겁니다. 차트가 인기곡을 만드는 시대입니다.

NTC321은 주 타겟으로 10대 어린 애들을 잡았기에 차트에 줄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곡은 좋았다는 평가를 받아도 제대로 대중적인 인기를 만들어 내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번은 윤소원이라는 인기 있는 멤버가 끼어있습니다.

우리의 마케팅과 기존 엔오원의 팬덤이라면 차트 줄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이용민 실장. 지금 엔오원 출신들이 데뷔했는데, 죽 쑤고 있잖아. 그 애들도 10위권 언저리야.”

“엔오원 출신들의 10위권 인기에 우리 MSM의 역량 있는 마케팅이라면 그 이상이 가능합니다.

팀이든 회사든 한 명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면 분명히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아, 유영찬 이사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해는 마십시오.”

이용민 실장은 관리나 다른 문제로 인해 한 명에게 모든 것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길 했는데, 이게 돌려서 생각해 보면 MSM에서 모든 것을 만들고 힘이 집중된 유영찬 이사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탄탄하다는 MSM의 프로듀싱이 지금 흔들리는 것도 유영찬 이사에게 너무나도 프로듀싱이 집중되어 있기에 생긴 문제이기도 했다.

“이용민 실장 말도 맞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으면 그만큼 한 명의 슬럼프에 회사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실장의 말을 듣고 보니 신인팀의 성공을 위해 우리가 너무 근시안적으로만 생각한 것 같군요.

전상일 본부장님 호주의 ‘잭 크리스’와는 아직 1곡 더 계약한 게 남아 있죠?”

“네, ‘잭 크리스’가 줬던 블루코튼의 ‘블루커피’가 히트한 이후 따로 한 곡을 더 계약한 게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 한 곡 받고 계약을 털도록 합시다.

그리고, 이번에 SBC MTV와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12화까지로 하자고 강하게 이야기하세요.

8화까지는 ‘잭 크리스’의 곡으로 데뷔하는 것으로 하고, 잭 크리스의 곡이 히트한다면 9화부터는 히트 후의 이야길 촬영하는 것으로 합니다.

만약, 8화 이후 데뷔를 했는데, 반응이 미지근하다면 바로 윤소원의 곡으로 갈아타서 재데뷔를 하면서 리패키지 앨범을 내는 걸 9화부터 12화까지 방송으로 만듭시다.

조금 속보이겠지만, 이렇게 진행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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