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색 옷을 입어라! -6권 시작
“김민호면 너네 엔오원의 그 김민호 맞지?”
“어 맞아. 왜 1위지? 음주운전이라도 한 거가? 이형 운전면허도 없는데.”
“음주운전은 아니고, 이적 관련해서 기사가 올라왔더라. 이 기사 봐.
너희 MSM이랑 계약하고 너랑 같이 새로운 그룹으로 데뷔할 예정이라는 기사인데.”
“헐. 이거 프로필사진 찍을 때 분위기가 안 좋다고, 민호형이 분위기 띄운다고 같이 찍은 사진인데, 이게 유출되어서 기사화된 거네.”
<...현재 군 입대 문제로 인해 스케줄이 없는 김민호(30)는 지난달부터 MSM으로 출근을 하고 있으며, 유출된 사진의 상황으로 봐서는 MSM 소속의 윤소원과 같은 팀으로 재데뷔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계약관계를 확인코자 김민호의 현 소속사로 알려진 타이탄 엔터에 수차례 문의를 하였으나 담당자가 현재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지난달 공식 해체된 엔오원의 멤버중 윤소원, 성대현에 이어 리더였던 김민호까지 MSM의 품으로 안기게 됨으로써 엔오원 해체 이후 갈라졌던 팬심들이 다시 모이고 있다...>
[야 시바 군대 간다는 김민호도 MSM으로 이적한 거 같은데.]
[MSM이 돈으로 엔오원 멤버들 전속계약 위약금 주고 다 모으는 거 아님? 난 그랬으면 좋겠는데.]
[진짜 헐이다. MSM에서 새 보이그룹 나온다는 소문은 돌았는데, 거기에 김민호가 있다니 대박. 그런데 성대현은 왜 없음?]
[그럼 군대는? 군대 탈영 각이야?]
[유출 사진 보면 팀 멤버가 20명? 25명? 몇 명이지? 정확하게 아는 애들 있어?]
[루키즈 멤버 얼굴 아는 애들이랑 외국인 연습생 얼굴 아는 애들이 교차 검증했다. 집단 지성의 힘으로 23명인 거 확인했다.]
[이렇게 데뷔하면 김민호가 리더일 듯.]
[와 23명이면 국내 최다인원인 거 아니야? 하루 밥값만 해도 작살나겠네.]
[근데 이거 진짜 오피셜임? 다음 주에 김민호 입대하는 거 아니었음?]
[김민호 소속사에서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적이 확실시되는 거 같다고 후속 기사들 올라옴. 군문제는 거의 언급이 없음. 뭐지?]
[후속 기사 보면 익명의 MSM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김민호가 이미 엔오원 해체 이후 MSM 본사 건물로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고 나옴. 그것도 매니저가 출퇴근시켜주고 있다는데. 그러면 빼박 아니냐?]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다들 매일 보고 있다는데.]
[MSM 구내식당이 맛있긴 한데, 시바 급식으로 오피셜 인증이냐? 개 웃기네.]
어라라? 이건 또 뭐지? 유출된 사진 한 장으로 온라인에서는 이미 오피셜 인정을 받으며, 네이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다음 주가 군 입대일인데, 그런 부분을 확인도 하지 않고, 유출된 사진으로 기자가 소설을 쓴 것 같은데, 이런 소설이 여론에 먹힌 것인지 화제가 되고 있었다.
뭐, 이렇게 된 것이 어쩌면 우리 ‘YAM’에는 긍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야 매니저 형 왔네. 빨리 회사 가봐.”
**
기봉이 형의 차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홍보팀에서 했는지, 보도자료가 뿌려지고 잘못된 정보들이 바로 잡히고 있었다.
MSM에서 조만간에 데뷔할 그룹의 이름은 ‘YAM’이고, 유출된 사진은 최종 데뷔 조가 아니라는 보도자료였다.
이후 유출된 사진의 23명 중에서 과연 몇 명이 YAM으로 데뷔를 하는지 궁예질을 하는 뻘글들이 온라인에 가득했다.
“뭐긴. 나보고 죽은 듯이 있다가 군대나 가라는 거지.”
민호형의 소속사인 타이탄 엔터에서는 진짜 민호형을 담당했던 담당자가 없었는지 언론 보도자료 자체를 뿌리지 않았고, 오후 늦게서야 민호형에게 전화 와서는 사고치지 말고 군대에 조용히 가라고 경고를 했다.
그리고, 민호형을 케어하던 담당 매니저는 이미 다른 회사로 이직을 했다고 했다.
작은 기획사이다 보니 후속 관리라는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은 일주일 동안은 진짜 조용히 있겠다고,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다 훈련소로 바로 출발을 했다.
강원도 화천의 신병교육대였는데, 이미 그 전날부터 팬클럽과 여러 언론사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해체 이후 얼굴 보기 힘들었던 엔오원의 멤버들도 다 모였고, 언론사와의 인터뷰에 이어 팬클럽에게 인사까지 다 하자 겨우 멤버들과 가족들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군입대 하는 사람을 보는 일반 시민들의 시선은 참 냉정해.
남들이 군대에 가면 ‘어? 이 애 언제 군대 갔지?’ 하고, 제대를 하게 되면 ‘햐~ 남들 군대 기간은 참 빨리 지나가네. 허허허’ 하면서 핀잔을 듣게 되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이 사람이 군대에 갔는지 뭘 하는지 아무 신경도 안 써.
그러다, 자주 보이던 애가 안 보이면 그제야 그 애 요즘 왜 TV에 나오지 않지? 하면서 궁금해 해. 뭐 물론 이런 궁금해 해줄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연예인이야.
연예계도 마찬가지야.
너무 자주 봐서 이미지 소모가 심해서 식상하다 싶으면 금세 아무렇지 않게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지 않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아무리 인기가 좋더라도 한철이야. 기획사나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고정프로그램이 어어 하는 사이에 하나둘 사라지는 거지.
다중 인격처럼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아 이 사람에게 저런 모습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늘 줘야 대중들은 좋아해.
그게 가능하다면 1류 연예인이 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늘 새로운 모습으로 신선하게 보이려면 당연히 노력밖에 없어.
노력만 하면 되니깐 쉽겠지?
뭐, 노력하는 게 귀찮고, 마음대로 안 될 것 같으면 그땐 다들 군대로 와라.
이왕 와야 하는 군대라면 자원입대를 해. 물론 다들 나처럼 억지로 끌려오겠지만. 하하하.
난 이만 들어간다. 여자 사람 데리고 꼭 면회오고. 다들 행복해라!”
10년이 넘는 연습생과 무명의 시절을 이겨내고 데뷔 후 처음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군대에 가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민호형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우리에게 마지막 잔소리를 했다.
민호형 보다 어려 보이는 조교와 간부가 양옆에 서서 훈련소 입구에서 같이 경례를 해주곤 같이 신병 훈련소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전생엔 고등학교 중퇴를 해서 학력 부족으로 공익으로 근무를 했었다. 물론, 공익이라도 훈련소는 다녀온다.
하지만, 이렇게 현역으로 들어가서 휴가를 빼곤 사회로 나오지 못하게 된 민호 형의 뒷모습을 보니, 나머지 우리 멤버들도 차례대로 다 군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갑갑했다.
하지만 피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30살까지 버티며 군 기간이 줄어들거나 정말 극적으로 통일이 되는 것을 빌어야 했다.
**
“오디션 프로그램을 중계해준 아메리카 TV를 나도 봤어.
왜 그때 좀 더 연기에 몰입하지 않은 거냐?
김태정이 다친 상처가 피부가 째져서 생긴 상처라서 피가 많이 나기는 했지만, 크게 위중한 상처가 아니었잖아.
그냥 그대로 리얼로 밀고 나갔으면 더 좋았을 거야.
아마 그때 연기를 할 때 제대로 몰입이 안 된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연기해야 하는 윤소원이란 인간의 마음이 그런 사고가 난 상황에서 먼저 발휘가 되었기 때문이야.
너는 배역이 아닌 인간 윤소원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촬영을 중지시켜 버린 것이고.”
원래 연기 수업시간이 아니었는데, 급히 나를 찾은 김영민 선생님은 일단 오디션 연기에서 왜 더 몰입하지 못했는지의 원인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았다.
“인간의 마음을 내려놔야 하는 연기도 있는거에요?
사이코패스 역할이나 그런 거요?”
“그런 인정사정없는 살인마 역할과는 좀 다르지.
예를 들면 춤과 노래, 승마, 무술 같은 경우에는 연습하고 노하우를 쌓아가야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오는 습득형 연기 분야라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고, 자제하고 억압을 해야 하는 연기 분야가 있어.
바로 사람의 본성과 삶의 냄새지.
오늘은 부잣집 철없는 아들 역할을 하고, 내일은 택시기사의 역할, 모레는 변호사의 역할을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의 본성과 자기가 겪어온 삶의 냄새를 버리지 못한 연기자는 이 3가지 역할이 다 비슷하게 연기가 나와.
분명 다른 영화, 다른 대본인데 다 비슷한 그런 느낌.
그러면 연기 톤이 하나밖에 없는 미래 발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배우가 되는 거야.
배우는 언제든 자신의 역에 맞는 연기를 위해 무미 무취한 담백한 사람이 되어야 해.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으면서 쓰지도 않는 맹탕 같은 그런 사람.
자신의 개성을 죽여서 배역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억압과 자제의 연기 분야지.
선명한 본인의 색을 지워야 맡는 배역의 색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는 거야. 자기 자신의 색 위에 배역의 색을 칠하는 거지.
미술에서도 보면 강력한 원색 위에는 다른 색이 잘 안 칠해지지.
흰색이나 연한 색 위에 덧칠이 잘되잖아.
배우도 마찬가지야. 평상시의 모습과 연기하는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는 배우들이 진짜 배우들이지. 덧칠로 인해 색이 막 변할수 있는 그런 배우들.
그런 색을 잘 받는 무미 무취를 가진 배우가 색이 잘 입혀지는 천상배우야.
배역에 맞는 색을 제대로 칠하지 못하고 어느 한 배역만 할 수 있는 배우를 개성파 배우라고 띄어 주지만, 개성파 배우는 그 개성이 끝이야.
물론, 색을 쉽게 칠할 수 있는 배우는 무미 무취가 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절제하기에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대표적인 게 배트맨 다크나이트에서 조커(Joker) 역을 했다가 우울증에 걸려 죽은 ‘히스 레저’가 그런 안타까운 케이스지.
그래서 헐리우드의 배우들은 그 색을 제대로 빼내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고.
내가 심리학과 연기학 석사 공부를 하며 미국의 연기학 관련 지도자들을 만나서 이야길 하고 고민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
지금 박사학위를 준비하면서 적고 있는 논문에 들어갈 내용이야.
뭐, 이미 헐리우드 쪽에서는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연기학 방법론이야.
연기의 색을 배우에게 칠하기보단, 옷을 입듯이 색이 칠해진 옷을 배우가 입었다 벗었다 하게 되면 정신적인 문제가 좀 더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내용이야.
배우에게 색을 입히는 기존의 방법이 피부에 문신 새기는 것과 같다면, 이 방법은 문신 대신에 피부를 덮는 색이 칠해진 옷을 입는 거야.
평상시 구두와 정장을 입었을 때는 정장의 격식에 맞는 행동과 매너를 갖춘 신사가 되는 거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었을 때는 마음가짐까지도 발랄해지는 학생이 되는 거지.
반대로 예비군복을 입으면 힘이 빠지고, 배가 고프며 어디든 주저앉으려는 그런 기 빨림도 느낄 수 있지.
연기를 위해 몸에 칠해진 문신이나 색칠이 더 배우의 색을 강하게 할 수는 있어. 하지만, 옷처럼 연기를 위해 배우가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다면 정신적인 문제를 최대한 해결할 수 있어.
거기다 연기의 옷만 잘 입으면 되기에 자신의 개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는 장점도 있고.
자, 그러면 소원이에게 입혀진 옷을 벗기고, 새로운 연기의 옷을 한번 입어 볼까?
아..아니, 소원아 옷은 왜 벗는 거야? 진짜 옷은 입고 있어.
상상의 옷을 입고 벗는 거야. 이 답답아! 옷이라니까 진짜 옷을 벗냐?”
“아니, 그게 나름대로 몰입을 위해서 벗은 거예요. 절대 못 알아들은 게 아닙니다. 하하하”
**
“미행은? 이상한 차량이나 옆으로 매는 큰 가방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 없었어. 그래서 일부러 성당에서 보기로 한 거잖아.”
“히히 이리와 옆에 앉아.”
신성하다는 성당이지만, 24시간 개방이 되는 큰 성당이었기에 밤 10시가 넘어서 은채를 만나서 데이트하기에 좋았다.
더구나 성당에서는 ‘미사보’라고 해서 머리에 쓰는 스카프 같은 게 있다 보니 멀리서 사진이 찍히더라도 은채의 얼굴은 가릴 수가 있었다.
비밀연애이다 보니 밖에서 데이트하지도 못하고, 화요일 밤마다 성당에서 만나서 한 두시간 꽁냥거리는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바로 옆에 앉아 귀에 대고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만 해도 좋았다.
그리고 가끔 성당 청년회 건물 담벼락에 숨어서 끌어안고 뽀뽀를 하는 그런 연애가 이어졌다.
매일 만나지 못했기에 어쩌면 더 이런 만남이 좋은 건지도 몰랐다.
“어? 천사 날개옷이다. 청년회에서 연극 같은 거 하는가 본데.
나도 어릴 때 저 흰색 날개옷 입고 천사 역할 했었는데.”
아련하게 날개옷을 보는 은채가 이뻐서 청년회 담벼락에 줄줄이 놓인 천사 날개를 하나 들어서 입혀주었다. 가방처럼 양쪽 어깨에 메는 건데, 오늘따라 검은색 옷이라 뭔가 천사와 악마의 그런 양면적인 이미지가 다 드러나는 것 같았다.
헤헤거리며 둘이 노는데, 나이 드신 수사님이 지나가시다 눈치를 주자 날개옷을 다시 돌려놓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네가 날개옷 입고 있는거 보니깐, 예전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의 클레어 데인즈가 생각나더라.”
“진짜? 기분 좋은데. 헤헤”
은채가 옆에서 기분 좋다고 하는데, 로미오와 줄리엣 영화가 생각나며, 거기에 사용되었던 OST가 떠올랐다.
‘이거 뭔가 좋은 노래가 나올 것도 같은데...그래, 김영민 샘의 연기학처럼 내가 재능있는 음악가의 옷을 입은 거라고 생각하자.
난 재능이 있다. 악기만 봐도 음표가 나온다. 그 음표가 노래가 된다. 악상아 떠올라라!’
김영민 샘에게 배운 것을 바탕으로 마인드 콘트롤을 하자, 진짜 연단 뒤에 놓여 있는 성당밴드들이 사용하는 드럼의 스틱이 움직이고, 기타와 건반이 움직이며 멜로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