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New Team.
나에게 엄습한 부담과는 반대로 나에게 부담을 준 정환이는 오랫동안 참은 큰 볼일을 본 것처럼 시원한지 얼굴 표정이 밝았다.
내가 보이는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정환이는 좋은 신호로 봤는지도 모르겠다.
‘짜식이 스태프나 다른 사람을 배려해 주는 것도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방금 말하더니, 내 입장은 배려도 안 해주고 이렇게 부담을 주고 있구만. 이게 민폐야 인마! 넌 마이너스 포인트다. 체크!’
“이정환 군! 다음 개인 프로필 순서에요. 메이크업 다시 확인하고, 준비해주세요.”
스튜디오의 촬영 순서로 인해 정환이가 자리를 뜨자 23살로 나이가 가장 많은 제일이 형이 바톤터치를 하듯이 내 옆자리에 앉았다.
“미안하다. 부담스럽지?”
“네 형. 아니라고는 말을 못하겠네요. 하하”
“이 프로필 촬영이 잡혔다는 이야길 듣고는 우리끼리 이야길 해서 순서를 정했어. 웃기지? 너랑 이야기하려고 순서까지 정하는 게.”
“아니요. 전혀 웃기지 않아요.
지금 형이나 방금 이야기한 정환이, 저기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애들까지 하나도 우습지 않아요.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걸 다하는 모습은 우스운 게 아니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봐주니 고맙다.”
“하지만, 실력과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서 멤버를 선발해야 하는데, 가정형편이나 자기에게 있는 콤플렉스 같은 것으로 부담을 주는 게 저는 힘이 드네요.”
“휴. 사실, 22명이 사다리 타기를 해서 순서를 정했는데, 내가 운이 좋아서 두 번째로 뽑혔지만, 어떻게 이야길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
사실 객관적으로 너보다 나이도 많고, 팀 내 활동을 하다 보면 네가 불편해할 것 같고, 거기다 너와 같은 연기돌 포지션이라서 아마도 최종 데뷔는 안될 거로 생각하고 있어. 포지션이 겹치니깐 어쩔 수 없는 거지.”
‘무슨 그런 말을. 포지션이 겹쳐도 형은 비주얼이 좋아서 인기 많을걸요. 그걸 알기에 데뷔시켜 줄 테니깐 걱정하지 마세요.’
“내 나름대로 뭔가를 해보려고, 방송사 드라마국에 프로필을 들고 갔는데 인물 조감독 책상에 쌓여있는 프로필들을 보고나니 갑갑하더라.
영화사에 가도 시나리오나 배우들 프로필이 책상 위에 쌓여있고.
캐스팅을 담당하는 인물 조감독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면, 아예 감독에게 프로필이 전해지지도 않는 게 현실이더라.
그 현실을 알고 나니 자신감이 바닥을 쳤어. 진짜 우연히 캐스팅되거나 실력으로 캐스팅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로 보이더라.
그러다 보니, 배우로서 연기하기 위해선 큰 기획사의 아이돌이란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고...
어떻게 보면 데뷔를 해서 배우로 가겠다는 징검다리로 팀을 여긴다고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만큼 절박해서 이렇게 너에게 이야길 한다.
팀 최종 멤버가 안된다면, 나중에 네가 드라마나 영화에 출연할 때 묶어서라도 좀 캐스팅될 수 있게 부탁할게.
최종 멤버는 아예 생각도 못 하기에 이런 구질구질한 섭외 부탁을 한다. 미안하다.”
나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미안하다며 얼굴을 붉히는 제일이 형을 보니, 이 말을 하기 위해 얼마나 고민을 하고, 망설였을지가 전해졌다.
나이 어린 동생에게 부탁하며 느꼈을 비굴한 감정을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잘나가는 어린 뮤지컬 배우들에게 같이 좀 출연하자고, 술도 사고 밥도 사고 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형 이름인 ‘제일’이 우리가 쓰는 제일 좋다에 쓰이는 그 한자 맞죠?
그 이름처럼 형은 제일 뛰어난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달라, 내 이름의 제일이는 짓다 만들 다의 ‘제(製)’에 기뻐할 ‘일(欥)’자 인데.”
휴 이형도 엔오원의 민호 형처럼 센스가 좀 떨어진다.
“제일이 형, 센스가 없네요. 이럴 때는 틀리더라도 맞다고 했어야죠.”
“어..어 그래, 제일 좋다의 그 제일이 맞아. 맞을 거야.”
“늦었어요. 형. 답안지를 보고 답을 적어냈으니 0점입니다.”
내 말에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어찌할지 몰라하는 제일이 형을 보니 순수한 민호 형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지금은 뭔가 어리버리 하는 형이지만, 다행히 배우로 전향하면 몇 년 후에는 대배우는 아니더라도 로맨틱 코미디의 대표 남자배우로 뜰 수 있다고 이야길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어리버리한 잘생긴 형이었다.
그리고, 다음 연습생이 정해진 순서처럼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
“야 야 인상 좀 펴라. 혼자 세상 사는 거처럼 걱정을 다 하네. 군대 가는 나도 이렇게 웃고 있잖아. 하하하 근데, 밥은 언제 먹냐?”
개인 프로필 촬영을 끝내고, 소규모 유닛별로 다시 찍기 전에 시간이 나자 민호 형이 와서는 밥 언제 먹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형도 알고선 자리 피해 준 거죠?”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헤헤. 티가 났냐?
딱 봐도 애들이 너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피해달라는 눈치길래 피해줬지 뭐.
보니깐, 아주, 상담실 교사가 된 줄 알았다. 22명과의 상담 캬!
오늘은 프로필 촬영보다는 멤버들과의 1:1 면담을 위한 자리였네.
소녀연대도 이런 방식으로 멤버들을 솎아낸 거 아니냐?
이런 스케줄 뒤에 녹여져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MSM이 괜히 MSM이 아니야. 뭐든 그냥 하는 게 없어. 다 의미가 있어. 치밀해. 아주 치밀해.”
“오래된 회사다 보니 이런 부분도 진짜 미리 계획된 거겠죠? 흠.
여러 가지 어필을 들었는데, 어떻게 멤버들을 뽑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원래는 이미 다결정을 했는데, 이야길 듣고 보면...휴...
이걸 회사에서 노린 걸까요? 고정으로 8명, 9명을 하기보다는 다른 애들을 다 살리기 위해서 멤버수가 유동적인 구성으로 가라는 압박일까요?”
“고민하지마.
네가 다 짊어지고 갈 필요 없어. 자선사업 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필 사진을 개인 사진뿐만 아니라, 단체로 왜 프로필 사진을 찍는지 아냐?
개인으로 볼 때는 엄청난 포스를 풍기거나, 뭔가 아싸 같은 느낌이 나더라도, 단체 사진을 찍어서 여럿이 뭉쳐있게 하면 그 개성이란 것들 때문에 눈에 띄는 애들이 있기에 그런 애들을 찾으려고 단체 프로필을 찍어 보는 거야.”
“그 스카우트들이 말하는 ‘매력’이라는 그 재능요?”
“그래, 그 매력이라는 게 외모뿐만 아니라, 자신의 표정과 행동에서 사람을 매료시키는 특별한 뭔가가 있는 애들이 있어.
예를 들면..음. 영화배우 최민식을 보면 화면에 나올 때 대단한 장면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우성이나 장동건처럼 넘사벽으로 잘생긴 것도 아닌데, 최민식이 화면에 나오기만 해도 집중을 하게 되고 눈이 그 사람에게 갈 수밖에 없는 그런 힘이 있잖아.
그런 건 키운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진짜 타고난 거지.
오늘 찍는 단체 프로필사진과 촬영 영상을 보고선 첫눈에 바로 들어오는 애들을 뽑아, 그런 애들이 최민식만큼은 아니겠지만 타고난 애들이야.
여기 봐. 네이버에서 ‘신인 남자 아이돌’이라고 검색했을 때, 이미지로 보면 수십 팀이 나와.
이 중에서 살아남으려면 첫눈에 들어오는 애여야 해.
기획사에서 눈에 띄게 하려고 컨셉을 잡고, 의상, 메이크업을 투입하지만, 그런 것 없이도 눈에 띄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런 애를 뽑아 그러면 되는 거야.
연습생들의 사연을 듣고, 사정을 봐준다고 하게 되면, 역대 인간극장 출연자를 다 찾아서 못사는 그 집 애들 아이돌 시켜야지. 안 그래?
소원아 이건 비즈니스야. 예술활동도 아니고, 친구들과 즐겁게 노래 부르며 춤추는 놀이가 아니야.
팀에 걸려있는 사람들의 밥줄도 생각해.”
민호 형의 충고를 듣고 보니, 나 혼자서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맺고 끊어야 할 때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인정에 끌린 것 같았다.
사정이 어려운 연습생을 배려해 주려다, 팀과 관련된 스태프들의 생활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모든 사람이 다 만족하는 결과는 없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도 뭔가를 배운 것 같았다.
“자 유닛 별로 찍습니다. 먼저 4인 팟으로 다 찍고, 8인팟 11인팟, 22인 단체 팟 찍습니다.”
[찰칵! 찰칵.]
“좋아 좋아 좀 더 밝게. 4명이서 V자 손가락 만들어서 중앙에 손 모이게. 오키 그래그래. 좀 더 밝게 웃으면서!!”
촬영기사님의 열정적인 촬영 스킬과 찍혀서 나오는 결과물을 모니터로 보고 있으니, 확실히 다들 준비가 된 연습생이라는 게 보였다.
민호 형 말대로 사진을 처음 딱 봤을 때 눈에 그대로 꽂히듯이 들어오는 애들이 있었다.
서류 파일과 연습 동영상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단체 프로필에서는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아 소원이 진짜 진상이다.
네가 그렇게 고민하면서 사진 모니터링 하니깐 분위기가 죽잖아!
이런 분위기 진짜 안 좋아. 무슨 군대 입대하기 전에 증명사진이라며 영정사진 찍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다들 모여봐.
소원이는 중간에서 앞에 보고, 양옆에서 11명씩 압박하듯이 붙어봐!
그래 표정 살아 있게. 기사님!”
[찰칵, 찰칵!]
“오 좋아요. 표정이 살아 있네. 군대 가는 민호가 껴 있어도 별 표시 안 나네. 한팀이라고 해도 되겠어.
다 같이 기념으로 몇 컷 더 찍읍시다!”
**
“아주머니 오늘은 스튜디오에 관계자 외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아, 코디네이터세요?”
스튜디오의 입구에 배치되어 있던 경호원이 검은 제복 스타일에 회색 명찰로 코디네이터라고 적혀있는 게 보이자 막아서다가 스튜디오의 문을 열어 주었다.
“네 일 때문에 오늘 들어가야 해서요. 수고하세요.”
“어? 웅진 이모! 오늘이 필터 바꾸는 날이었어요? 오늘 스튜디오 촬영 있으니깐 조용히 필터 교체 작업하시면 될 거에요. 여기 사인하면 되죠?”
“아휴 오늘은 사람이 많네. 남자 연예인인가보다 사진 구경 좀 하려고 했더니, 누군지를 모르겠네. 호호호.”
“신인 아이돌이에요. 저도 잘 몰라요. 하하하. 아마 이모님 딸들은 알 거 같기도 한데 우리랑은 좀 그렇죠. 필터 교체 작업 평상시처럼 하시면 될 거에요.”
정수기의 필터를 교체하고 일이 끝나자 집에 가려는데, 이숙자 여사는 본인은 모르지만, 딸들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단체 사진을 몇 장 찍어서 딸들에게 보내주었다.
**
“이나영 팀장님 소원이가 프로필 촬영 후에 3명 더 추가로 뽑았다고요?”
“네 유 이사님. 애들끼리 이야기도 하고, 프로필 사진 나온 거도 보면서 고민을 많이 하더니, 3명을 더 추가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유 이사님 의견이 옳았네요. 3명이 더 추가되었으니. 11명에 소원이까지 12명이라..좀 아쉽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다행입니다.”
“전상일 본부장님은 13명 채우고 싶은 거지요?”
“그렇죠. 13명으로 나왔던 ‘슈퍼키즈’가 여러 가지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아직도 앨범을 낼 때마다 차트인 하고 있고, 동남아에서는 인기가 여전히 있으니, 그 뒤를 이어주길 원하죠.”
“일단 소원이 생각대로 12명으로 한번 잡아 봅시다.
이 팀장님. 유동적인 멤버 운영방식에 대한 소원이의 생각은 바꾸는 게 가능하겠습니까?”
“아마도 힘들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소원이와 같이 데뷔하는 11명과 전속계약을 다시 하면서 유동멤버 일수도 있다는 것을 계약서에 추가하는 것 정도 말고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소원이 모르게요. 팀이 잘되면, 그대로 가는 거고, 잘 안된다면 유동적으로 돌려보는 거로 했으면 합니다.”
“흠.. 일단은 우리가 끌려가야 하는 상황이군요.
일단 그렇게 합시다.
그럼, 팀 이름을 정해야 할 것 같은데, 미리 정해둔 팀 이름 리스트를 봅시다.
전상일 본부장님 연습생 애들에게도 팀이름 리스트를 다 보여 줬나요?”
“네, 애들이 여러 개 중에서 ‘YAM’이 재미있다고 YAM으로 하자고 하더군요. ‘You And Me’의 약자입니다.”
“얌(YAM)? 그거로 하자고요? ‘와이에이엠’으로 다섯 글자인데 괜찮겠어요?”
“네. 글로벌 팀에도 물어보니 남미에 있는 고구마 비슷한 작물 이름이라서 오히려 다른 팀과 연관되는 게 없다고 합니다.
일단 알파벳 세 글자라서 외우기도 쉽고요.”
“흠. 뭐 특별히 나쁜 뜻도 없고 연습생들이 직접 보고 뽑은 거니 임시로 YAM으로 부르도록 하죠. 회장님이 보시고 최종 결정되면 그때 언론에 데뷔팀 보도자료 뿌리는 것으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