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제 입맛에 맞춰 주시죠.
“왜? 프로필에 마음에 드는 애들이 없어? 나름대로 고르고 고른 건데.”
권기호 본부장은 내가 건네받은 연습생 프로필을 보며 아무 말이 없자, 마음에 드는 연습생이 없는 거냐며 물어왔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 보단 프로필이 22장인데, 16장이 외국인 연습생 프로필이네요. 전에 영상 평가해달라고 했을 때는 그래도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는데, 이건 너무 외국인 연습생으로 치우친 것 같은데요.
데뷔시킨 다음에 외국으로만 계속 돌리려는 생각인 겁니까?”
“그게 아냐, 해외 뺑뺑이도 한국에 인기가 있어야 돌릴 수 있지.
이건 어쩔 수 없는 쏠림현상이야. 영상 평가해 달라고 했을 때는 데뷔와는 거리가 먼 1년 차 연습생들도 다 들어가 있어서 한국인 애들이 많았던 거야.
한국 연습생들은 자기 자신이 보기에 이미 데뷔 준비가 다 되었는데, 계속 데뷔가 다른 연습생에게 밀리게 되면 다른 기획사로 가거나 하는 다른 선택지가 있어, 하지만, 중국이나 외국에서 온 애들은 우리만 바라보고 있고 기획사를 옮길 생각을 하지 않아.
그러다 보니 데뷔 조에 포함해도 될 정도의 실력 있는 애들은 압도적으로 외국 연습생들이 많은 거지.”
“다르게 보면 얼마 전 데뷔했던 ‘NTC321’에 포함되지 못한 실력 있는 애들은 다른 기획사로 갔다는 말이네요.
여기 6명의 한국인 연습생은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는 거고요.”
“그렇지 ‘NTC321’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새로 데뷔 팀을 꾸리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거든. 그래서 데뷔 조에 속할 만큼 실력 있는 애들 10여 명이 다른 회사로 갔어.
뭐, 자기 살 방도를 찾아간 것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지.
그 애들도 우리에게 너란 존재가 굴러들어와서 새로 남자 아이돌 팀이 꾸려질지 알았다면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하지 않았겠지.”
“그럼, 전상일 본부장님과 이나영 팀장님이 이 친구는 꼭 데뷔했으면 좋겠다는 친구를 5명씩 추천해 주세요.”
“사실 난 연습생 중에 누가 잘하는지 잘 모르니 이나영 팀장이 10명 다 추천해보세요.
그럼 소원이 너까지 11명으로 데뷔하고 싶은 거야? 활동하는 국가별이나 버전마다 팀원 변경되는 것에 거부감은 따로 없지?”
“멤버가 바뀌는 것에 큰 거부감은 없는데, 그렇게 되면 NTC방식 그대로 적용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NTC처럼 큰 원안에 멤버들이 있고, 그 큰 원과 교집합으로 여러 가지 원이 만들어져서 조합이 되는 팀으로 각자 활동을 했으면 하는데.”
“흠. 이게 예전 중국멤버들 사건 이후로 이 방식이 나온 거죠?
인기 있는 멤버를 위주로 하는 팀이 아닌, 팀 이름을 중심으로 해서 멤버들을 교체하거나 활동을 순환시키는 방식인 거지요?”
“뭐, 중국인 멤버 이후에 우리도 이 방식을 도입하긴 했지만, 이 방식은 원래 옛날부터 있었던 방식이야.
멤버가 계속 바뀌니 행사를 많이 돌리기 위해 멤버들을 이리저리 꽂았다가 뺏다가 한다고 욕을 듣고 있지만, 전혀 그런 게 아니야. 지극히 정상적인 팀 운영 방식의 하나야.
대표적인 예가 1970년대 인기그룹인 보니 엠(Boney M)이 있지.
독일에서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뭉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프로듀서였던 프랑크 파리안(Frank Farian)이 ‘보니 엠’을 만들고 멤버들을 한명 한명 추가해서 만들었어.
이후 지금까지도 멤버들을 교체해 가며 보니엠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
“원래 있어 왔던 방식이지만, MSM에선 처음으로 도입하다 보니 말이 많은 거였군요.
그리고, 일반적인 그룹이 아닌, 아이돌이란 특성상 덕질을 하는 멤버가 계속 바뀌니 여기저기서 말이 많은 거고요?”
“그래. 그래서 ‘NTC321’이 기존의 MSM 그룹들에 비해서 인기가 없다고 실패한 그룹이라고 말을 하는 거지.”
전상일 본부장의 말을 듣고 생각을 해보니, 멤버들을 바꾸어 가면서 계속 팀은 살아 있다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우리의 추억이 된 ‘엔오원’이란 팀 이름이 멤버들을 바꾸어 가면서 원년 멤버는 하나도 없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된다면 그게 과연 내가 아는 엔오원 팀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엔오원’은 이름만 엔오원이지 엔오원이 아닌 다른 그룹이었다.
전상일 본부장이 예로 든 ‘보니 엠’의 경우에도 다들 초창기 원년 멤버를 기억하지 지금의 멤버들을 보니엠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마로니에’라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낸 3집에 수록되어 있던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쳐버리자, 서로 ‘마로니에’의 진짜 멤버라고 나오며 행사를 뛰고, 언론플레이를 해서 논란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결국에는 ‘마로니에’라는 그룹 자체가 날아가 버렸었다.
일본에서도 이미 성공한 이름인 ‘AKB48’이나 ‘모닝구 무스메’란 이름을 유지하며, 멤버들을 졸업과 입학을 시키며 운영했지만, 그 팀이름과 원년 멤버를 연결해서 좋아했던 팬들이 떠나가자 그 한계를 깨닫고는 따로 HKT48같은 팀을 만들거나 모닝구 무스메 17, 18 같은 방식으로 년도 별로 팀의 구분을 만들어 가고 있는 추세였다.
학교 안의 서클이나 동아리로 애써 포장하며, 학생들의 순수함으로 꾸며서 활동하고 있긴 했지만, MSM에서 ‘NTC321’에 적용하고 있는 방식은 결국 수익을 위한 방식이었다.
성공한 팀의 이름으로 성공에 대한 환상과 그 환상의 결과물을 회사에서 독점하려는 욕심이 만들어낸 자본주의에 입각한 방식인지도 몰랐다.
MSM에서 어떤 이름으로 내가 다시 데뷔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엔오원의 윤소원이었듯이, 새로운 팀의 윤소원으로 남고 싶었다.
XXX팀의 원년 멤버 윤소원으로 수십 명의 멤버들중 한 명으로 남기는 싫었다.
“전상일 본부장님! NTC321 의 방식으로는 하지 않겠습니다. 고정된 멤버로 하고 싶습니다.”
“소원아, 생각 잘 해봐, 확률적으로 다가가야 해. 지금처럼 아이돌이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고정된 멤버보다는 유동적으로 많은 멤버가 들어가야, 뜰 수 있는 확률이 더 올라가는 거야.
나나, 여기 이나영 팀장이 아무리 이 바닥 10년 20년 차 베테랑이라고 해도 멤버들 중에 누가 확 뜰지 알 수가 없어.
우리가 무조건 뜬다고 했던 멤버는 듣보잡이 되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멤버가 빵 터져서 그 팀까지 먹여 살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어떤 애가 뜰지 알 수 없으니 뜰 수 있는 확률을 올리기 위해 멤버들을 더 많이 집어넣는 거야.
그리고, 소원이 너는 에이스니깐 새로운 팀이 몇 개로 나누어지더라도 모든 팀에 소속되게 되어 있으니깐 안심을 하고.”
“그래서 더 ‘NTC321’ 방식은 안될 것 같습니다.
일단 이나영 팀장님이 뽑아준 이 10명 프로필과 전체 22명 프로필을 제가 다 들고 갈게요.
영상은 이 외장 하드에 다 들어가 있죠?”
“그래, 일단 바로 데뷔를 하는 건 아니지만, 늦어도 3개월 안에 데뷔해야 하기에 다음 주까진 멤버들을 선택해 주길 바래. 거기에 우리가 추가하든 할 테니깐. 프로필 보면서 한번 잘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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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전상일 본부장의 말이 확률로 따지자면 맞을지도 몰랐다.
‘대중이 원하는 취향은 이거다!’ 하고 생각해서 야심차게 데뷔를 시켰지만, 완전히 외면을 받아, 없어진 그룹도 많았고, 오랫동안 연습생으로 있었던 연습생들을 위해 큰 비용 투자 없이 데뷔시켰던 팀이 대박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대중의 취향은 확고하면서도 그 확고한 취향의 변화는 워낙에 다양해서 100% 정확한 성공공식은 없었다.
다만, 이제껏 쌓인 데이터와 전문가의 눈으로 본, 대충 이럴 것이라는 80~90%대의 확률을 바탕으로 멤버들을 뽑고 데뷔를 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멤버가 뜰지 모르니 더 많은 멤버들을 넣어서 돌리며 뜨는 멤버를 찾는 것도 확률상으로는 맞는데, 마음으로는 너무나도 불편했다.
어쩌면, 이미 한번 정상을 밟아본 입장이기에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연습생의 처지에서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데뷔해서 대형기획사의 힘과 인기 있는 팀원의 후광이라도 좋으니 데뷔해서 성공한 그룹의 일원이 되고 싶을 것 같았다.
프로필을 다시 보고 영상을 하루 종일 봤고, 놀고 있는 민호 형에게 춤과 관련된 부분을 조언받으며 한명 한명 멤버들을 추렸다.
무조건 내가 추린다고 다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게 조건을 걸 정도는 내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틀 만에 인원을 추려서 바로 MSM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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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팀장님 이 사람은 꼭 넣어야 합니다.”
“제일 이는 너보다 3살이나 더 많은데, 괜찮겠어? 프로필 준 22명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아.
한국인 멤버들은 최대한 너와 동갑이나 1살까지 괜찮을 거지만, 제일 이처럼 3살 차이가 나면 팀의 주도권을 제일이가 가져갈 수도 있어 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팀 주도권으로 싸울 생각도 없고요.
제일이 형이 리더를 하면 더 좋죠. 신경 안 써도 되니.”
사실 어제 받았던 프로필 중에서 나중에 미래에서도 어느 정도 떠서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이 ‘이제일’ 밖에 없었다.
미래에서는 잔 근육 몸매와 시원스런 웃음으로 드라마와 패션계에서 활약하는 스타가 되어 있었는데, MSM 소속이 아닌 다른 소속사였고, 거의 30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때 배우가 되어서 이름을 알렸었다.
미래와는 다르게 23살에 MSM에서 데뷔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도 궁금했다.
“흠..너 생각 잘해야 한다.
한국에서 데뷔하는 외국인 애들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거니 나이가 더 많든 뭘 하든 주도권에 대해서 신경은 거의 쓰지 않아. 파트 분배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같은 한국인끼리는 팀 내에서도 주도권 싸움이 심해. 누가 센터에 서느냐, 누가 파트를 더 많이 가져가느냐로 많이 싸워.
그래서, 그걸 조율할 수 있게 우리 MSM은 리더로 나이 많은 연습생을 세우는 게 일반적이고.
제일이가 리더가 되면 당연히 그런 조율이나 파트를 나눌 때 너에게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
그리고, 네가 뽑은 한국 연습생 4명은 다들 3년 차 이상 연습생 생활을 했어. 한마디로 다들 알고 지내는 사이야.
너도 연습생이긴 하지만 특이 케이스로 연습생이 된 케이스라, 이 애들과는 아마 얼굴밖에 본 적이 없잖아.
그러면 너에게 100% 불리하게 될 수 있다.”
“전상일 본부장님이나 이나영 팀장님이 이름이 알려진 저에게 주도권을 잡게 해서 저를 중심으로 팀을 띄우려는 의도나 배려는 알고 있지만, 이미 엔오원에서 파트 분배나 그런 신경적인 부분은 다 겪어 봤어요.
그러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나이 차이가 있는 제일이 형을 멤버로 포함시켜 주셔도 됩니다.”
사실, 이미 개인 팬클럽도 있고, 따로 차린 레이블도 있는 나를 왕따시킬 미친 인성을 가진 연습생은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럼, 너 포함해서 한국인 5명, 중국인 2명, 일본인 1명, 태국인 1명으로 총 9명으로 구성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소녀연대 선배님들도 9명이었잖아요. MSM에서는 소녀연대 선배님들 외에는 9명으로 데뷔한 적이 없으니 그 기(氣)도 좀 받고 하려고요.
TV도 16:9 비율이니깐, 9명 하죠. 뭐.”
“아마 이 명단 그대로 올리면 부장급에서 1~2명 추가되고, 다시 임원분들이 또 몇 명을 빼거나 더 추가할 거야. 그렇게 되면 네가 뽑아온 이 명단 그대로 안될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NTC321’ 방식으로 가자고 고정 멤버가 아닌 유동 멤버로 정해 질 수도 있어.
이런 부분 너도 알고 있어야 해.”
“그런 부분은 당연히 알고 있죠. 사실, 그렇게 되면 저는 면피(免避)하기가 더 좋죠.”
“면피하기 좋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과 만든 레드샵을 인수할 때 연습생 윤소원이 아닌 히트를 시킬 수 있는 ‘레드 넘버’라는 창작 팀 겸 프로듀서를 원했잖아요.
그런, ‘레드 넘버’에서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시 MSM에서 쓰고 있는 방식을 답습시키겠다는 것이니, 만약에 이 팀이 실패해도 책임을 우리가 안 질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 위에서 원하는 데뷔 멤버를 넣고, 고정 멤버가 아닌 유동 멤버로 데뷔하게 된다면, 실패했을 때 ‘레드넘버’가 독박은 안 쓰게 되겠죠.”
“부정 타게끔, 왜 벌써 안되었을 때 이야길 하니!”
“그냥 강조한 거예요. 이 팀장님도 신인지원팀장님이시니 안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위에 눈치 보시잖아요.
위에서 자기들 눈으로 봤을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원래 정했던 멤버 구성과는 다르게 정해 놓곤 나중에 타박하잖아요.
이 팀장님은 봉급쟁이이니 뭐라고 항변 못 하겠지만, 전 다른 레이블의 대표이기도 하니 대 놓고, 위에서 손을 대서 안 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미리 그렇게 엄포를 놓으려고요.”
“이야, 소원이. 아니 윤 대표, 윤 사장님 멋지십니다. 나도 그냥 회사나 차려서 그렇게 배짱 튕기고 싶네.
알았어. 일단, 방금 한 이야기까지 해서 위에 보고를 할게.
하지만, 네가 원하는 멤버로 딱 데뷔를 했을 때 잘못되면 더 큰 책임도 져야 하는 건 알고 있겠지?”
“네, 물론이죠. 그리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연습생 끼워 넣으려는 분들에게 이 말도 전해 주세요.
아이돌 매니지먼트는 스타를 만드는 게 아니라, 연습생에게 그 스타가 될 계기와 기회를 만들어 주는 거라고요.
스타로 만들어 주는 건 매니지먼트가 아니라, 대중이 만들어 주는 거라고 꼭 이야기해주십시오. 판단은 우리가 아니라 대중이 하는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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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원이 간이 배밖에 나왔네. 잘한다. 잘한다. 해줬더니, 자기 입맛에 맞는 애들 아니면 안 된다고 연예인 갑질이나 하고 말이야.
이놈 이거 안 되겠네.
이거 유영찬 이사도 봤을 거 아냐? 유 이사는 뭐라고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