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
승부는?
“앗! 이거 뭐지?”
“응?” “아 차거! 이거 비 오는 거야?”
<후두두둑 쏴아아아~>
한두 방울씩 떨어지다가 오는 비가 아니라, 갑자기 장마철 집중호우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비가..비가 왜?”
루이스 형은 노래를 부르는 중간에 가사 대신에 왜 비가 오냐고 말을 할 정도였다.
“까악 이거 뭐야? 쏟아진다. 엄마야!”
“악 내 핸드폰!”
“뭐야? 왜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거야? 아까 별빛 보이고 했잖아.”
“비 피할 곳은 없는 거야?”
부르던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무대 앞 잔디밭을 가득 메우고 있던 관중의 절반 이상이 비를 피하려고 잔디밭을 벗어나고 있었다.
여기에다 갑자기 번쩍하는 섬광과 그 뒤를 이어서 ‘콰과콰쾅’ 거리며 천둥 번개도 막 치기 시작하자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변해 버렸다.
“꺄! 천둥 싫어. 나 집에 갈래.”
“비에 젖으니깐 춥다. 나도 집에 가야겠다. 으 추워.”
“감기 걸릴라, 어서 가자.”
공연을 즐기며 달아올랐던 몸이었지만, 10월 중순의 차가운 가을 날씨에 폭우와 같은 비를 맞게 되자 관중들의 달아올랐던 몸은 금세 차갑게 식어 버렸고, 노래의 감정에 흔들리던 차가운 이성들이 돌아와 현실적인 판단을 해 버렸다.
아마도 7, 8월의 더운 여름이었다면 오히려 시원하다고 더 흠뻑 젖어서 공연을 즐겼겠지만, 10월 달은 아무리 공연이 재미가 있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무대 앞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엔오원의 팬클럽이나 지방에서 꼭 한번 보기 위해 올라와서 지금 아니면 언제 볼지 몰라 버티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여러분! 잠시만요! 조금만 지나면 비도 그칠 거에요.
우리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 하늘에서 비를 내려주는가 봐요. 하하하”
무대에서는 나와 멤버들이 무대를 떠나려는 관객들을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해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지만, 무대 뒤에서는 난리였다.
“어쩌지. 낙뢰가 바로 옆에서 쳤어. 안 위험할까?”
“아니, 오늘 강수확률 25%였는데, 왜 이렇게 비가 오는 거야? 기상청은 뭐 하는 쌍놈들이야!”
“잔디밭이 진흙탕이 되어서 힐 신은 사람은 발이 푹푹 빠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몇 명이 넘어져서 응급의료 천막으로 옮기고 있는데, 이거 보험관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야! 전기 장비에 어서 비닐 덮어! 빨리!”
“전기 콘덴서에 종이컵 씌우고 비닐로 빨리 감아. 누전되거나 감전되면 큰일 난다. 다들 절연 장갑 빨리 꺼내 껴!”
기획사 관계자들은 하늘을 욕하고, 예보가 틀린 기상청을 욕하기 바빴고, 기술팀과 진행팀은 비로 인해 전기 사고가 날지도 몰라 난리가 났다.
“여러분! 아직 공연은 끝이 나지 않았어요. 이 내리는 비를 이겨낼 용기 있는 사람이 이렇게 없는 건가요?”
관객들이 계속 무대 앞에 있을 수 있게, 노래를 부르고, 멘트를 계속며 호응을 유도했지만, 내리는 폭우에 점점 무대 앞을 떠나가는 관객들이 늘어 갔다.
잔디밭이 비로 인해 진흙탕이 되자 비 맞는 걸 참아낸 관객들도 더 이상의 관람은 포기하고 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질서 안전을 위해 파견 나온 강남기동단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서울 잠실, 강남 일대로 낙뢰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공연을 중지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공연책임자분 어디 계십니까?”
“야, 우리 책임자가 누구지? KBC 이 PD가 책임자 맞겠지?”
“이 PD님! 경찰이 왔어요.”
무대 옆에서 이 PD를 찾는 소리가 들리고 경찰들이 온 것이 우리에게도 보였다. 그리고, 그 경찰들이 무대 앞으로 오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서 빨리 내려오세요. 카메라 잡고 계시는 기사님들 낙뢰가 치고 있으니깐 쇠로 된 물건은 바닥에 놔두시고 무대 밑으로 내려와 주세요.
거기 가수분들도 마이크 들고 있으면 위험합니다. 스탠드 마이크는 다 눕혀 주세요! 피뢰침 역할 하게 됩니다.”
“이러면 이거 콘서트 취소되는 거 아니냐? 왜 이렇게 꼬인 거야?”
“잠시만요. 우리 인원수 체크는? 그거만 확인할게요.”
“빨리 내려오세요. 관객분들도 최대한 빨리 잠실경기장 밑의 공간으로 대피하세요. 호우와 낙뢰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인원수 세고 할 시간 없어요. 그러다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겁니까? 다들 빨리 해산하세요!”
<번쩍> [콰콰광!]
낙뢰주의보가 거짓이 아닌지 다시 낙뢰가 치자 어쩔 수 없이 우리도 무대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고, 안전 문제로 경찰들에 의해 무대 앞을 끝까지 지키던 팬클럽들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야, 체육관으로 가자. ‘더 슈트’인가 하는 가수는 잘 모르지만, 거긴 비가 안 올 거 아냐? 거기서 비 좀 피하고 가자.”
“그래, 잠실 운동장엔 비 피할 곳이 더 없으니 거기 들어가서 비 피하자.”
“야, 실내 체육관에는 비도 피할 수 있고, 거기에 신인그룹이 공연한데. 거기로 가자.”
무대 아래에서 그렇게 사라져 가는 관중들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경쟁 공연이었지만, 패배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 원래 비 오는 거 꽤 좋아했거든. 그런데, 이제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을 것 같다. 에이씨.”
시타 형이 손에 들고 있던 마이크를 집어 던지곤 대기실로 들어가 버렸고 다들 공연을 포기하고 그냥 대기실이나 차로 가 버렸다.
“뭐, 나름 오늘의 일이 전설로 남겠네. 새로운 아이돌 문화를 위해 경쟁 공연을 했는데, 0 대 11,000명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니.
오늘 공연 기록이 한국 기네스북에도 오른다던데, 역대 가장 많은 관중 차이가 난 경쟁 공연으로 박제되어 오르겠네. 참 인생 알 수 없다.”
“민호 형, 오늘 술 한잔합시다.”
“저도 오늘은 당기네요.”
태평이 형이 술 한잔하자는 말에 내가 먼저 동의를 표했다.
“술은 마시고 싶은데, 미성년자는 좀 빠져줄래. 태평아! 오늘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자. 다이어트 포기다. 고기에 술 양껏 먹을 거야!”
**
“네, 생방송 아침의 화제입니다!
어제도 전해드렸듯이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의 경쟁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쟁 공연의 결과는 아마도 대중문화 역사의 한편에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이기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던 엔오원의 공연이 우천과 낙뢰로 인한 공연 취소로 관객 수가 0명으로 집계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11,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더 슈트가 경쟁 공연의 승자가 되었습니다.”
“오! 그러면 지는 팀은 연예계를 은퇴하거나 군입대하게 되는 건가요?”
“하하, 그런 것은 없구요. 두 방송국에서 두 그룹의 상호상승 작용을 노리고 만든 것이라 그런 불이익은 없습니다. 승리는 공중파인 KBC가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경쟁 승부에 대한 부작용으로 SNS상에서 불법 토토에서 역배팅으로 3배 이상의 이익을 봤다는 인증 글들이 올라와서 문제가 되긴 했습니다.
그리고, 엔오원의 리더인 김민호 군은 연령제한으로 인해 내년 1월에 입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여자팀도 경쟁 공연이 부산에 있었군요. 거긴 어떻게 되었는가요?”
“걸그룹 들은 부산에서 경쟁 공연을 했는데, 3,290명 대 3,471명으로 걸 그룹은 Nnet 방송국이 승리했습니다.”
“그러면 1:1로 비긴 거군요. 연장전 승부를 겨루게 되는가요?”
“그건, 아마도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천으로 취소된 공연에 예산이 다 들어가는 바람에 다시 개최할 예산이 없다고 합니다.
아마도, 경쟁 공연을 주제로 만들어지는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다면 다시 광고가 붙어서 다시 또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현재로써는 계획이 없다고 합니다.
그럼, 다음 소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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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우리가 진 게 아니라고, 입장했을 때 카운트를 했을 거 아냐? 그 숫자가 2만 명에 가까웠는데, 왜 0명이냐고?”
“대현아 TV 보면서 이야기한다고 달라질 거 없어. 원래부터 판이 우리게 불리한 거였어. 거기에 기상청이 제대로 뒤통수를 때린 거고. 강수확률 25%가 폭우와 낙뢰로 바뀔지 누가 알았냐?”
“그래도 우리가 졌다고 떠들어 대는 저놈들이 짜증 나잖아요. 비 때문에 취소가 된 거지 마치 우리에게 팬이 없어서 0명으로 패배했다고, 떠드는 기레기들 때문에 더 열 받는 거라고요.”
“그럼, 대현 형이 공연 비용 내고 다시 한 번 할까요? 통장에 돈 좀 쌓였죠? 방송국에서 예산이 없어서 1:1로 비겼음에도 더 이상 공연을 추진 못한다고 하는데. 형이 한번 시원하게 쏘십시오.”
“아니, 내 말은,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내 돈으로 하겠냐. 그리고 돈은 소원이 네가 더 많잖아.”
“전 포지션이 막내잖아요. 이런 일엔 큰형님들이 나서 줘야죠.”
“난 군대 가면 월급 30만 원일 거야. 돈 없어. 너희가 밥 사줘야 할 판이야.”
“그럼 뭐, 우리 비긴 거로 끝내죠. 뭐.”
흥분하며 이야기를 했던 모습과는 반대로 돈 이야기가 나오자 대현 형은 물론이고 다들 그냥 비긴 것으로 하자고 했다.
승부 욕도 결국 판을 깔아줄 사람이 없으면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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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국장님, 어쩔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아니, 야! 너라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아이돌 공연을 보기 위해서 금요일 프라임 타임에 티비 앞에 있겠어?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도 금요일 프라임 타임에 편성을 잡은 건 엔오원과의 경쟁 공연이기 때문에 그 시간에 편성을 잡아 준 거였어.
그런데, 망할 놈들이 나에게 이야기도 안 하고, 예산 배정을 깎아서 돔구장에서 공연 못 하게 만들어?
처음 정했던 대로 돔구장에서 공연했다면 이런 사태가 안 일어났을 거 아냐? 응? 내 말이 틀려?”
‘국장님과 김상현 실장이 그렇게 해라고 시켰잖아요!’
이기철 PD는 그렇게 작업을 하라고 했던 권기호 국장이 이렇게 딴소리를 하자 미칠 것 같았지만, 신입 PD와 예능국 국장이 가지는 자리의 힘이 다르다 보니 진실을 이야기하고 변명을 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터였다. 그냥 꾸욱 눌러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그만, 나가 봐. 방송은 심야에 편성될 거니깐, 큰 기대 하지 말고.”
기대하지 말라는 말처럼. 이기철 PD가 메인 PD를 맡는 첫 입봉작이라 야심 차게 준비한 ‘아이돌 라이벌전’은 심야에 편성이 되었고, 엔오원의 공연이 취소되는 부분 이후로는 신인 아이돌 3팀에 관한 내용이라 평균 시청률1.8%로 파일럿 프로그램 답게 2주 방송을 하곤 소리소문없이 흘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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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고척 돔이네. 여기서 그때 경쟁 공연을 해야 했는데.
밖은 영하인데, 돔구장이라 안은 15도에 맞추어져 있잖아. 얼마나 좋아.”
“그러게요. 민호 형 이제 진짜 마지막이네요.”
“뭐, 프로듀스99란 시작이 있었으니, 이제 해체라는 끝도 있어야지. 팬들 덕에 꽃길만 잘 걸어 왔으니. 이제 가시밭길도 가야지. 파이팅하고 마지막 콘서트 올라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