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She is...
“응? 그런데, 은채 너 혼자야? 수나는?”
“수나는 어제 마지막 스케줄 하고선 어지럽다고 해서 병원에서 수액 맞고 병원에서 잤을 거예요.
거기다 매니저 언니도 늦잠을 자 버리는 바람에 데리러 가지를 못해서요.
죄송합니다.”
“뭐 스케줄이 힘들어서 병원에 갔다면 어쩔 수 없지.
은채는 거울 보고 표정 연습하는 거 많이 했어?”
“나름대로 하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뭐, 오늘은 세수만 했는지 노 메이크업이니 잘되었네.
소원이랑 은채 둘이 마주 보고 서봐 50cm 정도 떨어져서 마주 보고 서. 양발은 어깨너비로 벌리고.”
김영민 선생님의 말에 은채랑 마주 섰는데, 너무 가깝게 섰는지 은채의 입에서 나는 상쾌한 치약 냄새가 내 코끝에 와 닿았다.
“거울을 보면서 10초씩 표정을 만드는 건 연기를 할 때 표정 연기에 도움이 되기에 하는 거야.
연기를 한다는 건 대사와 제스처, 그리고 표정으로 등장인물이 나타내고자 하는 행동과 감정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고.
10초씩 60개의 감정 표정을 나타낼 수 있다면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파 배우로 탄생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표정 연습은 자기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서 잘 나오는 얼굴 부위를 정하는 것에도 도움이 될 거야.
그럼, 정해진 60개의 감정 순서대로 서로 표정을 지어봐.
같이 똑같은 표정을 지어도 되고, 한 명씩 돌아가면서 표정 연습을 하고, 서로 품평을 해줘도 되고. 자 시작!”
“일단 기본 표정은 같이 하자. 순서 알지? 웃는 얼굴, 화난 얼굴, 놀란 얼굴, 기쁜 얼굴, 감동한 얼굴, 슬픈 얼굴 순서대로.”
은채와 마주 선 자세에서 웃는 얼굴을 만들어내는데, 서로 마주 서서 웃는 얼굴부터 슬픈 얼굴까지 같이 해보니, 혼자서 거울을 보며 연습할 때와는 달리 재미가 있었다.
은채랑은 학교를 같이 다니기는 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많이 본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이번에 출연했던 ‘여기는 아이돌 캠프’ 방송에서 웃는 얼굴이나 눈을 치켜뜨는 놀란 얼굴 같은 클로즈업을 자주 본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이렇게 마주 보고, 서로를 위해 표정을 지어 주고 있으니, 느낌이 달랐다.
기쁜 얼굴을 할 때는 은채의 기쁜 얼굴을 보자 진짜 내가 더 기뻤고, 감동한 얼굴에는 이런 예쁜 얼굴을 나 혼자서 보고 있다는 것에 감동을 했다.
그리고, 슬픈 얼굴을 지을 때는 내 기분도 우울해 질정도였고, 왜 슬픈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은채야 너 표정 정말 좋다. 연기자 수업도 MSM에서 같이 받고 있는 거 맞지?”
“그럼 당연하지. 이 외모 말곤, 다른 연습생들보다 뛰어난 게 없어. 노래도 어중간하고, 춤도 겨우 따라 추고.
자연스레 MSM 안에서도 포지션은 비주얼과 연기 쪽으로 되어 있더라.
다음 표정부터는 서로 돌아가면서 하자. 너부터 표정 지어.”
은채의 말에 도망자의 표정을 만들고, 10초 후에는 추격자의 표정을 만들었다.
“잠시만, 입꼬리가 똑같냐. 말하지 말고, 여기 이 부분 움직여봐.”
아무렇지 않게 내 왼쪽 입술 옆을 검지로 짚어주며 가까이 다가와서 표정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데, 은채의 입에서 나오는 치약 냄새와 몸에서 풍겨오는 향수 냄새가 섞여서 만들어내는 은채만의 냄새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이런 걸, 만족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긋이 지켜보는 김영민 선생이 있었다.
‘소원이 자식, 앵콜송 직캠을 보니 앵콜 무대에서 은채를 엄청 챙기길래 이 쌤이 알아봤지. 이런 특별한 기회를 너에게 만들어 주는 거야.
왜 배우들이 상대역을 했던 배우와 열애설이 나는지 알게 될 거다.
자기 몸의 30cm 안으로 그 사람이 들어오는 상황을 계속 겪다 보면 자연스레 그 사람의 체취와 몸의 제스처를 기억하게 될 거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거고, 특히나 10대의 너희들이라면 더 하겠지. 후후후’
“둘 다 표정 만드는 게 왜 이렇게 감정 없게 만드는 거야?
부끄러운 표정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은채 양손을 소원이 턱과 목 부위에 꽃받침 만들어 줘봐 봐.
그래, 소원이 진짜 부끄러워하는 표정 나오네. 지금 이 기분, 이 감정을 잘 기억해서 그걸 얼굴표정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해.
자 그럼, 반대로 소원이가 은채 꽃받침 만들어줘 봐봐.
은채도 부끄러운 표정 짓고, 그래 좋아. 거기서 쑥스러운 표정으로 가봐.
부끄러운 것과 쑥스러운 건 다른 거야. 생각하면서 표정 지어봐. 쑥스러운 표정 같은 건 잘 안될 때는 고개를 숙인다는 그런 고정화된 제스처도 같이 써도 좋아. 다시 한 번 해봐.
소원이는 손 떨지 말고, 수전증 오냐?
뭐야? 은채도 부끄러운 거야? 하하하. 좋을 때네. 연기 연습하라니까 둘이 연애하고 소원아, 좋냐? 은채야 좋아? 둘다! 연기 집중하라니까.”
연기 연습을 보통 1시간 반 정도를 받는데, 오늘은 김영민 선생님이 둘 다 피곤해하는 것 같으니 빨리 끝내자고 1시간 만에 수업을 끝내주었다.
연기 수업하는 교실을 빠져나오는데, 짧아진 수업시간이 왠지 너무 아쉬웠다.
“지민 매니저! 오늘 피곤해서 늦잠 잤다며? 영 시스터 잘나가는가 봐. 살 빠진 거 같네. 수나 입원한 병원에도 들려야 한다면서?”
“네, 김기봉 선배님. 그래서 그런데, 소원이도 오늘 학교 가는 거 맞죠? 소원이 등교하는 거면 우리 은채도 좀..”
“그래 그러지. 같은 학교인데 가는 김에 내가 학교로 같이 태워 주지 뭐.”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채와 수나를 담당하는 박지민 매니저가 기봉이 형에게 감사하다고 했지만, 내가 더 고마운 것 같았다.
등교를 위해 스타렉스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는데, 이전까지는 그냥 몸매 좋은 여자 아이돌이었지만, 지금은 연기수업의 영향인지 왠지 여자로 느껴지고, 계속 옆 모습을 곁눈질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아!’
내가 곁눈질하고 있는데, 은채도 곁눈질하며 나를 보는 거 같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오른손을 은채의 왼손 손등에 올려서 살짝 쥐었다.
내가 손등에 손을 올리자 은채가 어깨를 움찔했지만,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거나 하지 않았고, 손을 빼지도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은채의 왼손을 말아 쥐니 은채도 내 손을 마주 움켜쥐었다.
둘 다 티 나지 않게 아무 말 없이 얼굴 표정도 바꾸지 않고, 차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지만,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두 손은 놓지 않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은 더 크게 울렸다.
**
“자, 부산으로 내려가는 영시스터 애들에게 이 베개를 손에 쥐여주면 됩니다. 영시스터 친구들은 선물 받고 막 과장해서 좋아 해주시고요. 네 표정 좋아요.”
영시스터 애들은 부산 벡스코에서 네온걸스와 경쟁 공연을 하기에 부산으로 떠나는데, 공연대관료 등 들어가는 돈이 커서 그런지, PPL 물건이 꽤 많았다. 그래서 공연 전날에 따로 이렇게 PPL용 영상을 촬영할 정도였다.
물론, 난 은채를 볼 수 있어 좋았다. PPL로 나오는 차량용 베개를 건네면서 서로 눈빛도 주고받고, 뭔가 비밀스러운 썸을타고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자 리허설 영상 촬영하러 갑니다. 리허설 전에 음료 PPL도 찍어야 하니깐 빨리 움직여주세요!”
**
“네, 여기는 한국 잠실 실내 체육관 앞입니다.
바로 오늘 전대미문의 경쟁 공연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 있는 팬들이 보이는데요. 이미 두 곳의 공연장 입구는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국 기네스 협회에서는 경쟁 공연이라는 기네스 기록항목은 없지만, 한국 기네스 한정으로 가장 규모가 큰 경쟁 공연으로 등록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헐, 민호형 저기 봐요. 일본 NJK에서도 촬영 나왔는데요.”
“그러네. 경쟁 공연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일본은 이런 라이벌간의 승부나 경쟁에 이상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막 띄어주는 걸 잘하니깐 이렇게 방송국이 따로 찾아올 만도 해요.
일본 사이트에서는 아예 진검 승부로 진 팀이 해체하거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글이 올라와서 저렇게 일본 방송이 온 걸 거에요.
일본에서는 자존심 때문에 다른 기획사와 이렇게 경쟁 공연한다는 자체가 없으니깐요.”
“한국도 토토 사이트에서 승패 올라왔다고 기사가 올라와 있네요. 당연히 우리가 3배 가까이 승률이 높게 되어 있고.”
“3배라지만, 역 베팅 갔다는 사람도 있다는 거잖아. 우와 그 사람 진정한 도박사네. 그런데, 이런 것도 토토에 다 올라갈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만큼 화제라는 거겠지. 기자님들이 리허설 보고 벌써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네요.”
[관중들 입장합니다! 최종 무대 점검해주세요!]
무료공연이다 보니 오픈된 보조경기장 특성상 양 사방에서 관중들이 동시에 입장을 했는데, 대충 봐도 1만 명 이상은 온 것 같았다.
아마 공연이 시작되면 무난하게 2만 명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후 5시다 보니 아직 어두워지지 않아 즐겨 사용하는 암전 이후 등장하는 오프닝을 하지는 못했지만, 진행을 맡은 MC의 호명에 따라 한 명씩 무대에 오를 때마다 관중들의 호응은 점점 커졌다.
“엔오원의 경쟁 공연을 선택해 주신 여러분들이 위너이십니다.
뭔가 좀 특이한 콘서트이지만, 새로운 아이돌 문화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으로 동참해 주신 팬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아 또, 민호 형 너무 재미없는 오프닝이에요!
여기 모이신 분들의 들뜬 마음이 안 느껴지는 거예요?
저는 관객분들의 열정이 생생하게 여기 심장에 전해져 오는데, 안 그래요?
그런 딱딱한 인사 말고, 여기에 모여주신 모든 분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우리의 테마곡으로 시작해 보자고요!”
내가 리허설에서 정한 멘트로 딱딱한 민호 형의 환영 인사말을 타박하며 끊어 버리곤, 바로 음악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흘러 나오는 프로듀스99의 테마곡이자 우리의 첫 싱글이나 마찬가지였던 ‘주인공’의 간주가 나왔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저 무대는 좋은 거지.
지금을 놓치지 마, 너와 내가 연결되는 이 순간을...]
“와아~”
“더 슈트가 실내라서 거기로 가려다가 이쪽으로 왔는데, 확실히 여기가 더 좋네.”
“와,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데. 야외 공연은 확 뚫려있는 이 넓은 느낌이 좋은 거구나.”
노래가 한국, 두 곡 지날수록 날이 어두워졌는데, 화려한 조명과 넓은 야외무대가 달과 별빛이 보이는 밤하늘과 하나둘 불이 켜진 도시의 밝은 불빛들과 어우러지자 그 장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멤버들의 장점으로 그 넓은 무대를 각자가 장식하며 뛰어 다닐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좁은 무대에 갇힌 공연이 아니라 공간이 열린 무대이기에 더 감동이 있었다.
분명, 10월인데도 온몸이 뜨겁고, 눈앞에 가득 들어찬 관중들의 즐거움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는 미소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왜 가수들이 야외콘서트를 한번 해보면 음악방송의 무대가 싱겁게 느껴진다고 한 건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음악과 환호, 그리고 야외이기에 최대 출력으로 울리는 우퍼의 울림에 내 심장도 같이 뛰며 내 몸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처음에 야외무대로 잡았다고 했을 때, 안 좋아했는데, 야외 공연의 이 장점을 알게 되니 잠실 보조경기장으로 잡은 게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았다.
“여러분 들리십니까? 저는 엔오원의 공연에 나왔습니다.
오늘 공연은 우리 같은 BJ들에게 다 오픈되어서 중계를 허용해 주었습니다. 미리 장소가 알려져서 그런지 사람이 엄청 많아요.
사과링고님 풍선 감사하고요. 아, 저 얼굴 말고, 무대 위를 찍으라고요?
그러지 않아도 조정시키고 저도 콘서트 좀 보려고요. 하하하.
완전 무료공연으로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을 오픈해서 하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오, 제가 좋아하는 문라이트 노래가 나오네요.
어? 아, 이런 이건 뭔가요? 큰일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