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경쟁 (5).
“안녕하십니까? ‘이번의 루키’입니다. 엔오원 선배님들 잘 부탁합니다. 이쁘게 봐주세요!”
“팀 이름이 ‘이번의 루키’에요? 특이해서 귀에 쏙쏙 들어와요. 대박 나세요~!”
“저희는 V.I.V ‘비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엔오원 선배님들처럼 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우리도 같이 도와주세요~! 대박 나세요!”
음악방송을 위해 대기실에 있으니 데뷔 1년밖에 되지 않은 엔오원이었음에도, 출연진 중에서는 중간 정도의 데뷔 연차였다.
오늘 인사를 온 완전 신인 2팀과 몇 개월 전에 데뷔한 그룹들까지 해서 음악방송에 나오는 출연진의 절반 정도가 아직 1년이 안 된 신인그룹으로 채워져 있었다.
데뷔곡이 히트곡이 되는 경우와 2번째 싱글에서 히트를 친 그룹들은 어느 정도 팀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대부분의 신인 아이돌들은 2장의 싱글을 끝으로 사라지는 게 현실이었고, 그 빈자리는 또 다른 신인 들이 채우는 것이 이 바닥이었다.
기획사가 대형기획사라면 1, 2집 싱글이 실패하더라도 세 번째의 기회가 있을 수 있지만, 중소 기획사라면 1집, 혹은 2집 싱글이 아이돌 경력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신인 아이돌로 데뷔하기 위해 죽을 노력을 하지만, 데뷔한 아이돌의 대부분은 아니 90% 이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냥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대부분의 아이돌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데뷔를 했으니 행운아였다.
프로듀스99란 프로그램에서 우리의 노력과 성실성을 팬들이 알아주고 팬이란 이름으로 지지를 해주었으니, 다른 신인 아이돌에 비하면 우린 너무나 쉽게 데뷔를 하고 인기를 얻은 거였다.
마치 치트키를 써서 버프를 받은채로 데뷔를 한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팬들로 인해 우리의 마지막 앨범 타이틀 곡은 1위 후보에 오를 수 있었다.
“자 1위 발표 순서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가 주세요!”
음악방송의 마무리인 1위 발표를 위해 무대 위로 올라가는데, KBC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더 슈트’와 ‘더 네온걸스’도 같이 출연을 했고, Nnet의 ‘여기는 아이돌 캠프’에서 뽑힌 우리의 형제 그룹과도 같은 ‘영시스터’도 우리와 같이 출연을 했다.
4팀 모두 합하면 인원이 41명이었고, 다른 출연자와 팀들까지 하니 70명이 넘는 출연자 규모였다.
순위 발표를 위해 무대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정도였다.
“와! 음악방송 무대에 오르는데 이렇게 줄을 서야 할 정도라니.”
“연예계는 인구포화상태야.”
다들 계단을 올라가며 웃으라고 농담을 했지만, 농담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1위 후보인 ‘엔오원’과 ‘루시아’, ‘Get Bozy’ 분들은 맨 앞으로 나와 주세요!”
“더 슈트 동건아, 너희보고 사무실에서 무대 어디에 서라는 그런 지시사항 같은 건 없지?”
뜬금없이 민호형이 같이 ‘아이돌 라이벌전’에 나갔던 최동건에게 말을 걸었다.
“네. 따로 회사에서 어디 서라는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더 슈트의 최동건도 왜 이런 걸 갑자기 물어보는지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그래? 그럼 잘되었네. 소원아, 원섭아! 우리 팀 애들 맨 앞으로 나가서 설 때 얘네들 뒤에 달고 가.
어떻게든 카메라에 조금이라도 노출되어야지.”
루이스 형은 이게 무슨 소리인지 금방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였고, 나도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 그룹을 아니, 오히려 경쟁 전의 상대를 뒤에 데리고 무대 맨 앞으로 움직이라는데, 혹시나 여기에 다른 뜻이 숨어있는지 생각할 정도였다.
“잘못 들었습니다.”
“야, 소원이 너 장난하지 말고, 오늘 무대에 서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뒤에 있으면 얘네들 제대로 보이겠냐? 우리가 앞에 좀 데려다주자.”
“아니 형, 난 우리 반 애들이 둘이나 저 뒤에 있는데 데리고 갈 생각도 안했는데...”
제대로 민호 형의 말에 반발하려고 했는데, 주위에서 보는 눈도 있고, 왜 민호 형이 갑자기 이렇게 ‘더 슈트’ 애들을 챙기려고 하는지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뒤에 태정이라는 친구를 데리고, 무대 맨 앞으로 이동을 했다.
“애들아, 1위 후보 영상 보여주고, 점수 올라갈 때, 우리는 그냥 가만히 서 있어야 하지만, 너네는 뒤에서 움직여도 뭐라고 하지 않아.
최대한 어필할수 있게 움직이고 해봐.
입덕 포인트 만들려고 준비한 거 있으면 그때하고.”
“음악이 필요할 땐 음악축제~!
10월 둘째 주 1위에는 어떤 곡이 올랐는지 너무 궁금해요!
자 그럼, 어떤 곡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음원점수...음반점수...방송점수...네 총합계 점수는요.
3위는 ‘Get Bozy’이구요. 1위는 엔오원의 ‘다시 만나러 올게’입니다.
2위는 ‘루시아’씨입니다.
1위 축하드리고요.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리더이신 이민호님.”
“네, 마지막 앨범활동인데, 이렇게 팬분들의 많은 사랑으로 이렇게 1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늘 팬 여러분들의 사랑에 감사하며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 우리와 경쟁 공연을 하는 더 슈트의 친구들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민호 형은 1위 수상소감은 물론이고, 앵콜 곡을 부를 때도 무대 아래로 가려는 더 슈트 애들을 붙잡아서는 같이 앵콜 곡까지 하자며 어깨동무를 하고 난리였다.
“야, 시타야. 민호 형 약물검사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김상현 실장이 관리하는 애들이라고 안 좋아하더니, 왜 저런다냐?”
“나도 모르지. 설마, 대기실에서 술 먹은 건 아니겠지?”
“군대 가니깐 그냥 우리랑 경쟁하는 신인 애들 챙겨주고 싶은가 보죠.
저는 우리 반 애들 좀 챙길게요. 그래도 같은 Nnet에서 만들어진 형제 같은 그룹인데, 안 챙겨 주는 것도 좀 그래요.”
“그래, 소원이 말처럼 경쟁 공연하는 애들 좀 챙겨주자. 그럼 난 네온걸스 챙길게.”
다른 형들은 민호 형이 더 슈트 애들을 챙기니 자기들도 챙기겠다고 했는데, 역시나 영시스터나 네온걸스 같은 걸 그룹 애들에게 다가가선 무대 앞으로 데리고 와서 앵콜곡을 같이 했다.
“야, 소원아 1등 축하해!”
“어 그래, 은채 너희도 20위 안에 들었더라 축하해! 대박 날 거야.”
방송에는 엔딩곡이 20초도 채 나가지 않았지만, 무대 현장에서는 우리 앵콜곡이 전곡으로 나갔고, 다른 신인들을 챙기면서 같이 앵콜 무대를 했기에, 여러 아이돌 팬들의 직캠이 여러 개 만들어져서 베티, 인티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마다 화제였다.
┗그래, 이런 특별한 앵콜 무대가 좋지. 괜히 힘든 공약 걸어서 물구나무서서 노래 부르고 하는 거보다 100배 더 좋음.
┗ㅇㅈ 아이돌끼리 이렇게 사이좋게 앵콜 하고 하는 거 보니 좋네.
제일 선배인 엔오원 김민호가 애들 챙기네. 인성 좋다.
┗예전 김건모가 1위 했을 때는 진짜 후배들이 다 무대에 올라와서 앵콜송 부르면서 무대 마무리했었음. 그리곤, 김건모가 뒤풀이 한턱낸다고 다 같이 가서 술 먹고 했다고 함.
┗와 완전 아재네. 나 태어나기 전인 듯. 틀딱 급 고인 물이네.
┗아재, 그때 그 시절 썰 더 풀어 주세요. 완전 신기. 같이 뒤풀이했다면 알아서 썸타고 많이 사귀었을 듯. 안 들켰으려나?
┗그땐 인터넷이나 폰카, 디카가 없어서 들켜도 그냥 넘어갔음.
┗헐, 진짜 옛날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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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 형이 갑자기 애들 챙기길래, 인터넷에 안 좋게 올라갈 줄 알았는데, 호평 일색인데요. 민호 형 인성 상 타 치라는데. 여기 보니깐 인성 좋아서 군 면제 시켜준다는데. 헤헤헤 형 온라인에서는 면제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태평아 그만 놀려, 모든 걸 다 이야기하긴 좀 그렇지만, 내일이랑 모레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또 1위 하면 더 슈트 애들이나 다른 신인 애들 좀 챙겨주자.”
민호 형의 이런 무게 잡는 말에 늘 장난스레 받아치며 이야길 하던 태평형도 민호 형의 얼굴에 드러나 심각함을 보자 드립을 치지도 않고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난 군대 가면 2년 후에나 나오지만, 너희들은 막콘 이후에 다시 팀으로 데뷔하잖아.
우리 엔오원은 좀 다르지만, 너희들 회사에서 데뷔하는 건 다시 맨 밑바닥의 신인부터 시작하게 되어 있어.
데뷔 족보가 이상하게 꼬이겠지만, 결국 너희들도 다시 저 애들처럼 바닥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거야.
지금 우리 엔오원은 성공했지만, 새로운 팀으로 데뷔해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어.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듯이, 우리도 고개를 숙이고 살자. 우리 밑을 보면서 고개를 들 준비를 하자. 알겠지?”
“네, 형 초심 안 잊겠습니다.”
군대 간다고 멋진 말 한 번에 다 한다고 놀렸겠지만, 민호 형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고, 실제로 4명이 3~4개월 후 새로운 팀으로 데뷔할 예정이라 신인들의 입장이 남 일 같지 않아 쉽게 장난을 칠 수가 없었다.
차 안에서의 분위기가 좀 안 좋아졌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오히려 이런 분위기가 된 것이 더 좋은 것 같았다.
마지막 싱글을 내면서 다들 임기 말의 대통령들처럼 레임 덕(lame duck) 같은 분위기가 되어 긴장하지도 않고 했는데, 이제 이런 생활도 얼마 가지 않아 끝이 난다는 생각에 레임덕과 같았던 그런 행동들이 다 사라져 버리고, 다시 데뷔 초일 때의 빠릿빠릿한 신인 같은 엔오원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준 팬들의 덕분으로 주말 동안 있는 3개의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를 수 있었고, 1위 앵콜송을 할 때는 같이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출연진 중에서 신인들을 우리 뒤에 세우거나, 앵콜곡을 같이 부르며 카메라에 많이 노출되게끔 챙겨줬다.
당연히 난 ‘더 슈트’보단 MSM 소속의 한 가족부터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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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소원이부터, 연습해 온 거 해봐.”
신곡 활동 때문에 이 주 동안 연기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일정이 나오지 않았는데, 김영민 선생님은 그런 기간 동안 혼자서 할 수 있는 과제를 내줬었다. 바로 거울을 보며 10분 동안 60개의 표정을 만들어 오라는 과제였는데, 제대로 60개를 다 연습해 오진 못 했다.
“연습 제대로 안 했네. 소원이 이제 드라마 안 찍는다고 많이 해이해졌구나.”
“아, 그게 아니라, 스케줄이 힘들기도 했지만, 차에서나 대기실에서 거울 보면서 10초 동안 표정 하나 만들고 다시 10초 동안 다른 표정 짓고 하는 걸 하고 있으면 형들이 너무 놀려서 제대로 연습을 못 했어요.
형들 인스타에 보면 저 표정 연습하는 엽기사진이 다 올라가 있어요.”
“그건 나도 봤다. 그래도, 나름으로 열심히 연습한 결과가 인스타에 박제되었으니 뭐 손해는 아니지.
아직 오지 않은 은채랑 수나도 비슷하게 앨범이 나왔으니 그 둘도 정신이 없었겠지?”
“아마도 그렇겠죠.”
“아, 이제 오네.”
“늦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