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경쟁 (1).
“여러분은 프로듀서99의 엔오원과 맞대결을 펼칠 아이돌을 뽑는 KBC의 야심 찬 아이돌 데뷔 프로그램 ‘더 콜업’의 생방송 라이브를 지금 함께하시고 계십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아이돌을 선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니만큼 국민 여러분이 행사해 주시는 한표 한표의 ARS와 문자로 데뷔 멤버가 결정이 나게 됩니다.
오늘 탄생하게 될 더 콜업의 멤버들과 경쟁을 펼칠 ‘전’ 국민 아이돌 프로듀서 99의 멤버들도 저곳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 그럼, 4개월간 우리 준비생들의 열정이 녹아 들어간 활동 모습을 특별히 압축해서 담은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방송 진행을 맡은 KBC의 아나운서는 ‘전’이라는 말을 거의 들릴락 말락 하게 발음을 했지만, 나에겐 분명히 들렸다. 일부러 우리가 ‘전(前)’이고 이제는 새로운 국민 아이돌이 나올 거라는 걸 노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간, 단순히 기획사와 방송국, 케이블과 공중파의 수직적이면서 계급론적인 상대관계가 있어서 이런 경쟁프로그램이 만들어 진 것인지 알았는데, 김상현 실장이 보이고, 그가 관계된 GSH 엔터라는 회사가 뒤에서 매니지를 맡게 되었다는걸 알게 되니 왜 이런 이상한 기획이 만들어지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연예계 판이 상도덕 없는 약육강식의 개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우리의 의지 없이 이런 일에 ‘엔오원’이 소모품처럼 쓰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자 기분이 나쁘다 못해 짜증이 났다.
아무리, 인기가 있어도 자기소유의 기획사에 저작권을 직접 다 관리할 수 있는 서태지급이 되지 않는 이상은 결국 가수라는 상품은 방송사와 여러 기획사의 장기판의 말과 같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서태지가 그렇게 방송국과 저작권 협회와 싸워가며 자신만의 회사를 구축하고, 했는지가 이제야 이해가 갔다.
대형 전광판에서 나오는 영상을 앉아서 보고 있으니, 어디선가 한번은 본듯한 아이돌들이 영상에 나오고 있었다.
“어, 저 애 예전 ‘블루핍’에 있던 민기 아니야? 아, 블루핍 멤버들이 여기에 다 나왔었구나.”
“민호형, 저 빨간 티 입은 사람이 형이랑 같이 팀했던 사람 맞죠?”
“그래, 춤 선은 좀 더 좋아진 것 같네.”
“NFC에서 같이 연습생 생활했던 수한이도 여기에 있었네요. 형도 알죠? 수한이도 어디 가서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긴 안들을 정도는 되는데 아직 데뷔도 못하고..”
연습생 생활이 길었던 시타형이나 민호형은 그 기간 동안 알게 되었던 사람들도 많았기에 영상에 나오는 사람 중에서 아는 얼굴이 많은 것 같았다.
문제는 지금 내가 미래에서 보았던 결과와는 좀 다르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더 콜업’ 프로그램은 남자들보다 여자들 그룹이 더 흥행이 되었고, 몇 명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얻어서 나름 인기 있는 걸그룹으로 재데뷔해서 롱런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콜업의 프로그램 녹화 시기가 달라짐으로 해서 출연진도 달라졌고, 그로 인해 여자 그룹보다 남자 그룹이 더 인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경쟁프로그램 자체가 아닌, 순수한 아이돌을 선발하는 오디션이었다.
하지만, 영상에서 우리를 라이벌로 보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대화들과 타도 엔오원 같은 문구를 계속 듣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다른 형들도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초대해서 앉혀 놓고는 이렇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손팻말을 들고 생방송 장에 우릴 보러 나온 우리 팬들의 얼굴도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MC를 보는 KBC 아나운서의 은근하게 도발적인 멘트가 또 들리자 다들 한계가 왔다.
“민호형, 살짝 열 받는데, 오늘 우리 무대에서, 확 사고하나 칠까요?”
“그럴까? 계속 우릴 자극하네.”
민호 형도 열이 받는지 생방송 무대에 올라가서 뭔가를 저지르자고 하는 말도 나왔다.
마지막 앨범을 준비하며, 서로의 기획사 이권 챙기기로 멤버들간에도 팀워크가 좀 갈라졌었는데, 이런 방송으로 인해 왠지 다시 멤버들이 단합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역시, 내부적인 분쟁은 외부의 침략에는 뭉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리 축하공연 차례가 되어 무대 뒤로 이동을 하게 되자 내가 나섰다.
“형들, 마이크 전원 OFF 확인해주세요. 다 껐죠?
그리고, 막내인 제가 한마디만 할게요. 제가 보니깐 이런 판이 오늘 급하게 만들어진 거 같지 않아요. 축하공연이라고 하지만, 전혀 축하할 분위기도 아니고, 생방송 무대에서 우리가 도발하길 원해서 MC멘트와 영상에서 살살 화를 돋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그러네. 가능성이 있겠어.”
“그렇다면 우리가 무대에서 도발하면 오히려 그게 화제가 되어서 ‘더 콜업’ 애들에게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러니 다들 릴렉스하세요.
그리고, 우리가 잘 보여야 할 상대는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무대 위에 있는 다른 아이돌이 아니에요.
바로 관객분들이에요. 오늘이 더 콜업의 생방송이라고 하지만, 오늘 온 관객분들 중에서 우리 팬이 1명이라도 있으면 그 팬을 위해 공연을 해야죠.
지금 무대 올라가서 도발하고 사고 치는 거보다는 가장 뛰어난 무대를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그..그래 소원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무대에서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었어. 화가 나서 그걸 잊고 있었다.
우리 소원이가 회사 차리더니, 우리보다 철이 더 들었네. 자 카메라 온다. 다들 파이팅 한 번 하고 올라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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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디어, 오늘의 ‘더 콜업’이 있을 수 있는 계기가 된 프로듀서99의 엔오원의 무대를 보겠습니다.
이번 앨범의 신곡 ‘다시 만나러 올게’입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해? 우린 서로 처음이었지.
난 너희들의 시선을 잊지 못해. 쏟아지던 조명과 그날의 함성....]
새 앨범의 홍보를 겸해서 왔기에 신곡을 불렀는데, 오히려 팝 발라드풍의 노래였기에 더 좋았다. 라이브로 빠른 리듬의 곡을 하게 되면 MR이라도 어느 정도는 후렴 부분이 녹음된 버전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느린 곡이라면 모든 파트를 다 라이브로 부를 수가 있었다.
더구나, 무대에 올라오기 전에 멤버들간의 단합도 잘되었기에 최상의 무대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여윽시, 엔오원은 다르네, 멤버들간에 아이컨텍하면서 노래 부르는 거 보니깐 역시 다르다.”
“팀원들 간 서로 배려하고 하는 게 확실히 있네. 눈에 보여.”
“탑 아이돌은 다르구나.”
“아, 무대를 내려가기 전에 응원 한마디만 해도 될까요?”
원래는 노래만 부르고, 무대를 내려가야 하지만, 생방송 중이기에 돌발적으로 MC에게 양해를 구했다. MC가 해도 된다고 해도 우리가 이득이고, 안된다고 해도 이득이었기에 질렀다.
“아..아 네네 시간 문제가 있으니 짧게 부탁드립니다.”
이런 돌방상황에 당황하는 MC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엔오원의 윤소원입니다.
‘더 콜업’의 데뷔 팀과 우리 엔오원, 영시스터의 경쟁 승부는 이때까지 방송사에 없던 기획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미 데뷔를 한 저희에게도 큰 부담이 있으니, 이제 만들어지는 데뷔 팀이라면 더 부담이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 엔오원과 영시스터는 물론 더 콜업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이 가장 마음에 두고 위해야 할 분은 바로 팬분들입니다.
서로의 경쟁으로 팬들 간의 상처를 주고받기보다는 이 경쟁이 하나의 축제로 모든 팬분이 즐겨주실 수 있는 그런 팬들을 생각하는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과 팬분들의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윤소원 군 응원 감사합니다. 네 다음 차례는...”
“야! 이런 말은 제일 형인 내가 해야지. 혼자만 멋있게 멋 부리고, 우리가 다들 소원이한테 한 방 먹었다.”
“그러게요. 경쟁이나 서로간의 질투, 시기나 결국 팬분들이 먼저가 되면 그런 것도 없을 거라는 멋진 연설 급의 멘트였어요. 드라마에서 누나랑 뽀뽀도 하고 하더니 소원이 다 컸네. 남자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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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아 팬을 생각하라는 말 멋지더라!”
“어 은채야! 너네도 왔구나. 영 시스터로 데뷔 축하한다. 수나도 축하해~!”
같은 반인 은채와 수나 외에도 같이 김 CF를 찍은 ‘커요미’라 불리는 ‘장연서’도 있었고, 울산 출신 ‘최주예’도 데뷔멤버에 있었다. 모두 다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데뷔를 축하해 주었다.
엔오원의 형들도 일면식도 없었지만, 나를 따라 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한팀인 것 같이 인사를 했다.
우리가 무대에 서는 일정은 끝이 났기에 우리 앞 열에 앉은 영시스터의 은채와 수나와 이야기를 하면서 더 콜업의 방송을 여유 있게 보며 즐겼다.
“자 그럼, 실시간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 5, 4, 3, 2, 1. 투표종료~!
오늘 ‘더 콜업’으로 만들어지는 두 팀은 두 달 후 엔오원과 영 시스터와의 경쟁공연을 하게 됩니다. 그 경쟁을 할 데뷔의 멤버는 과연 누가 될까요?
자, 그럼 국민 여러분이 뽑아주신 더 콜업의 데뷔 멤버들을 발표하겠습니다...”
그렇게 더 콜업 방송을 통해 남자 12명, 여자 12명의 두 데뷔팀이 만들어졌다.
두 팀 모두, 한번 데뷔를 했던 중고신인 아이돌이 절반 이상 차지하며, 국민 아이돌을 지향하기보다는 망한 아이돌 재생 프로그램이라는 혹평 아닌 혹평을 들어야 했다.
남자팀은 ‘더 슈트’ 라는 이름이 되었고, 여자팀은 ‘더 네온걸스’로 데뷔가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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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김실장! 이게 뭐야? 이 결과 보고서를 지금 나보고 들고 가라는 거야? 시청률 3.6%? 미친 거 아냐? 나한테 뭐라고 호언장담했어? 어? 생방송은 5% 책임지고 만들어 준다며? 대박 잘나가는 마케팅 업체를 찾았다며?
그 업체가 엔오원과 더 콜업의 팬덤간에 경쟁을 붙여서 온라인에서 전쟁 나게 만들 거라며? 지금 온라인 봐봐. 잠잠하다 못해 조용해.
이혼한다는 배우 이야기 말고 실시간 검색어 어디에 우리 이야기가 있어? 매주 진행되는 방송에서 화젯거리 만들 거라고 해 놓고는 그것도 안 되고, 생방송에서도 팬덤간에 분쟁 조장해서 온라인 전쟁 나게 한다고 해 놓고는 건덕지가 하나도 없잖아! 말을 뱉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그게..분명 엔오원 팬들과 분란이 일어나게 작업을 했는데, 그런 걸 다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그 윤소원이 생방송 중에 싸우지 말라고 갑자기 멘트를 치는 바람에 그게 다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지금 이 핑계가 말이야? 어? 책임진다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나 옷 벗으면 너네 GSH 엔터사장자리 준다고 했지? 내가 지금 그 사장자리 가면 바로 관속에 들어가라는 거나 마찬가지야.
어떻게든, 두 달 뒤 경쟁공연에서 무조건 이기게 네가 책임지고 만들어!”
**
“최사장! 아니 왜, 분란을 못 만드는 거야? 웹 쪽은 자신이 있다며? 왜 이러는 거야?”
“김 실장님도 한번 보십시오.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야 이번에 더 슈트 VS 엔오원 어디가 낳냐? 누가 더 잘생긴 것임? 난 태정이가 진짜 넘사벽으로 잘생겼던데.]
┗야, 윤소원이도 이야기했잖아, 팬덤끼리 치고받고 싸우지 말라고, 결국 팬들끼리 ‘우리 오빠 이겨라’ 하다 보면 결국 상처받는 건 팬들이라고.
이런 누가 더 좋냐는 싸움시키는 게시물은 우리 올리지 말자. 다들 팬질 적당히들 하자.
┗그리고 뭘 낳긴 낳아? 국어나 제대로 배워라.
┗그럼 낫냐. 냐?
┗시발 낮냐다. 웃대가서 대학물 좀 먹어라.
┗이거레알.
[기획사, 방송국 놈들의 갈라치기에 넘어가서 싸우지 말자, 결국 현질해서 앨범 사라는 소리니깐 필요한 것만 사자. 그런데, 랜덤포토카드는 5장 깠는데, 다 태평이냐. 수원 사는 사람 중에. 교환할 사람 없냐?]
┗나라가 태평성대니깐 태평이만 나오나?
┗소원을 빌면서 앨범 까면 소원이가 나온다고 하긴 하더라.
“우리가 두 팀끼리 싸우라는 분란 글을 올려도 방송에서 소원인가 하는 놈이 싸우지 말라고 해서 그런지 불꽃이 튀지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