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시청률.
“실장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요.”
“나도 이게 맞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일단 이렇게 다 너에게 보여주라고 하니깐 보여주는 거야.”
“저 내일 아침부터 스케줄있고, 밤에 고정으로 들어가는 라디오 스케줄도 있어요. 최소한 쉬는 시간은 있어야 사람이 살죠.
그리고, 제가 저 영상들 보면서 영상만으로 어떻게 끼와 재능을 알아보겠어요? 제가 신도 아니고.”
“내가 봐도 아닌 거 같지만, 뭐 어쩌겠냐? 일단 그래도 위에서 까라고 했으니깐, 며칠 동안 보는 척이라도 좀 해주라. 그리고, 끼가 보인다는 애들 남자, 여자 10명씩 이름이랑 이유만 좀 적어주라. 저녁으로 특 초밥 사 올게.”
“휴. 알겠어요.”
기봉이 형이 물어온 소식에 따르면, 전상일 본부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해서는 민경누나의 트로트가수 데뷔를 위한 별도의 팀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것도 외부의 트로트제작자를 비싸게 데리고 와서는 팀을 만들었다고 했다.
더불어, 그 회의의 결과로 나에겐 MSM과 그 자회사에 소속된 배우와 연습생들의 노래 부르는 영상을 보고 민경 누나처럼 끼나 재능이 있는 애들을 뽑으라는 주문이 내려왔다.
민경 누나의 경우에도 녹음실에서 천방지축으로 놀면서 트로트와 테크노 노래를 연속해서 들었기에 생각이 난 거였지, 이런 방식으로 영상을 본다고 뭔가가 느껴질 리 만무했다.
하기 싫다고 해도, 위에서 해라고 하니 중간에 있는 실장과 매니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근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스케줄이 없는 시간마다 영상을 보고 명단을 적어냈다.
“오~ 이 애가 MSM에 있었어? 특유의 눈웃음이 최고였는데. 어릴 때도 그대로 눈웃음이 좋네.”
물론, 미래에 배우나 가수로 성공해서 내가 알고 있는 케이스도 있었기에 완전 시간 낭비는 또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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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장. 이게 윤소원이 적어낸 남자 연습생 중에서 좋아 보인다는 애들이야?
전에 내년 데뷔를 목표로 윤소원 보이그룹 멤버 뽑은 명단 있지? 3배수로 24명 뽑은 거. 그 명단 가지고 와봐.”
“네 본부장님. 이미 그 명단과 비교해 봤습니다. 두 곳 모두에 있는 연습생이 3명밖에 없었습니다.”
“골치 아프네. 그럼 윤소원이 맞는다는 가정을 두면, 우리가 뽑은 3배수의 연습생 24명 중에서 진짜 재능있는 게 3명밖에 없다는 말이잖아.”
“본부장님 그런데, 소원이가 100% 맞지는 않을 거 아니겠습니까?”
“지금, 100% 맞는 게 문제가 아니야. 소원이 같은 10대가 보는 눈하고, 우리 프로듀서나 데뷔지원팀에서 연습생들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다르다는 그게 문제야.”
“아! 그..그렇군요. 우리가 지금의 트랜드를 못 쫓아가거나, 고인물 화가 되었다는게 더 큰 문제군요.”
“그래. 그게 문제야. 우리가 뽑은 애들이 소수에게만 먹히고 있는 현실에서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 알게 된 게 다행이야. 이게 문제였어.
일단, 다음 주 민경이 음반 반응보고, 진짜 소원이가 맞았다는 게 증명되면 이제 매달 하는 품평회, 데뷔조 뽑는 일에 소원이를 모두 다 위원으로 참석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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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속보! 더 콜업 시청률 떴다. 다들 궁금하지?”
“태평 형 안물안궁인데요.”
“에? 다들 관심이 없는 거냐? 그래도 우리 라이벌이라고 나오는 건데. 안 궁금해?”
“뭐 거기가 잘되든 안되든, 결국 우리와 대결하고 나면 이기든 지든 우리는 해체되는 거잖아요. 이미 결론은 나와 있는데, 왜 궁금하겠어요.
더구나, 더 콜업에서 심심할 때마다 불러서 가서는 대단하다고 입에 발린 소리하고 오는데, 별로예요. 출연료도 8만 원 준다고 하던데.”
“그거도 그러네. ‘더 콜업’ 첫 시청률은 2.8%란다. 금요일 밤 11시 공중파인 KBC2 채널에서 했는데도 애국가 시청률이더라.”
“멘토와 MC로 나온 사람들이 어중간해서 그래요. 뭔가 눈에 확 띄는 독보적인 멘토도 없고, 한물간 가수를 MC로 쓰다 보니 흥미가 떨어지는 거죠.
오히려 여자애들만 나오는 Nnet의 ‘여기는 아이돌 캠프’ 시청률이 3% 넘게 나왔어요. 학교에 캠프 온 듯한 설정으로 해서 그런지 주 타겟인 학생들을 잘 잡아가고 있는거 같아요.”
“난 그래도 우리 프로듀스99와 라이벌이라고 데뷔팀과 서로 경쟁시키겠다고 패기 있게 이야기하길래, 좀 졸았었는데. 시청률이랑 너네 반응 보니 안심이 되네.
시타랑 루이스, 진율이는 자기 회사에 데뷔 준비하러 갔고, 소원이는 드라마 찍으러 갔고, 대현이는 레드넘버로 트로트 가수 프로듀싱한다고 갔고.
캬, 이 넓은 연습실에 9명 멤버가 꽉 찼었는데, 이제는 반도 없네.
이런 작은 거에서 엔오원의 해체가 체감되네. 에휴.”
“다음 달에 마지막 싱글 들어가니깐 태평형도 그때까지 마지막 여유를 좀 즐겨요. 내일부터 축제 행사 또 이어지니깐 일단 오늘을 즐기세요.
아니며, 오늘 소원이 드라마 촬영장에 팬클럽에서 밥차. 커피차 보낸다고 하는데, 거기나 가실래요? 민호 형도 가보실래요?”
“오 좋아 좋아! 나도 드라마나 영화 찍으면 밥차 오고 하는 거 로망이었어. 밥차 밥이 그렇게 맛있다고 하던데, 한번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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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한아, 누나는 아직 학교에서 안 왔지? 엄마 미용실에는 손님 있고?”
“네 누나는 6학년 올라간다고 아직 집에 안 왔어요. 엄마 가게는 여기 구경 오기 전에는 손님 없었어요.”
“큰일이네, 어머니 미용실에 손님이 많아야 지현이랑 지한이 공부하는 거에 신경도 써주실 건데. 이건 지한이 선물. 누나랑 엄마 말 잘 듣고. 알았지?”
“헉. 이 핸드폰을 선물로 주는 거예요? 엄마 것과 누나 꺼도 주시는 거예요?”
“그래, 이건 누나 것과 엄마 거. 공기계니깐 대리점 가서 변경해 달라고 하면 해줄 거야.”
쌍문동에 촬영을 올 때마다 이 근처에 사는 지현이가 계속 생각이 났고, 뭔가를 해주고 싶었는데, 기억을 더듬어 보니 초등학생 때 핸드폰 문제로 엄마와 많이 싸웠다고 이야기 한 게 기억이 나서 선물로 핸드폰을 사주기로 했다.
지현이는 매일 동생 지한이와 촬영구경을 오는 걸 알기에 매일 보는 지한이를 따로 불러서 세트장 뒤에서 과자도 주고 과일 같은 것도 챙겨와서 주곤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현이가 클 때까지 등록금이나 장학금도 주고 싶었는데, 그냥 돈을 주기보다 정상적인 장학회 같은 걸 통해 지원을 해주려고 알아보고 있었다.
“꺄! 오빠!” “태평 오빠!”
“아니, 오늘 오빠들이 갑자기 오면 어떻게 해요? 저기 밖에 사람들 봐요.”
세트장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더니 민호형, 태평형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미안, 우린, 오늘 팬클럽에서 소원이 드라마 밥차 쏜다고 해서 그거 구경도 하고 겸사겸사 드라마 찍는 거나 보려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몰랐어. 소원아 미안해.”
“오빠들 때문에 지금 밖에서 촬영을 못 해요. 빨리 가요.”
“코디가 제일 무섭네. 우린 어쩔 수 없이 그냥 가야겠다. 밥차 밥 꼭 한번 먹고 싶었는데.”
주눅이 들어서 돌아가려는 형들을 보니 좋은 생각이 났다.
“형들도 밥차 밥 한 번도 안 먹어 봤으니 한번은 먹어 봐야죠.
이 꼬마 친구 집이 골목 2개 지나서 미용실을 하거든요. 전에 가보니깐 앉을 곳도 있던데, 밥차 밥을 타서는 거기 가서 밥차 밥 한번 먹어 봐요.
밥 먹고 거기서 머리 한번 손봐 달라고 하면 서로 좋을 것 같은데.
코디 누나도 식사 전이죠? 미용실에 같이 가서 형들이랑 먹고 오세요. 골목 2개 떨어져 있으니깐 촬영장하곤 거리도 있어서 될 것 같은데.”
“오! 그러자 그러자. 우리 꼬마 친구도 밥 안 먹었으면 식판 들고 한번 가보자. 식판 들고 움직이는 거 기사 나면 너희 드라마에 좋은 건 확실하지?”
“네, 형 그렇게라도 노출되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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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어머나, 지한이 따라서 이렇게 갑자기 잘생긴 총각들이 밥을 들고 오면 어쩌나. 어머머 밖에 따라온 애들도 엄청 많네. 어쩌지.
일단 테이블에 앉아요. 밖에는 미안하지만, 커튼 칠게요. 미안해요.”
흔한 동네 미용실인 ‘정 미용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정미란은 갑자기 아들 지한이를 따라 식판을 들고 와서 밥을 먹는 엔오원 멤버들에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엄마! 이거 엄마랑 누나 선물이래. 대기실이 없어서 고민할 때 공간 빌려줘서 고맙다고 소원형이 주는 거래.”
“어머 이 비싼걸? 이런 거 받아도 되려나.”
“어머니 받으셔도 돼요. 소원이가 아마 우리 중에서는 돈 제일 많이 벌 거에요. 갑자기 이렇게 와서 반찬 냄새 풍기고 해서 죄송해요. 소원이 사인 옆으로 해서 사인이랑 사진 찍어드릴게요.”
“어머나, 고마워요. 그렇지 않아도 소원이가 다녀가고나서 매상이 늘었는데, 정말 고마워요.”
멀리서 형들이 밥을 먹고 떠나는 걸 보고 있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형들의 사인과 사진까지 있으니 장사가 잘돼서 홀로 지현이와 지한이를 키우는 사정이 좋아지길 빌었다. 이게 지금의 내가 해줄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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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는 거냐? 외부에서 모셔온 제작자분들이 트로트는 아이돌과는 다르다잖아, 예능으로 트로트 가수가 데뷔하는 게 어디에 있냐?
지금 아이돌들은 예능을 통해서 뜨고, 노래를 지탱시켜 대박치게 만든다지만, 트로트는 다르다잖아. 타겟이 다르다고! 트로트는 40대부터야. 안동역에서처럼 가요 무대에서 먼저 인사를 하고 하나하나 공략해 나가는 게 트로트의 방식이야. 트로트제작자들이 다 같은 소릴 하는데, 왜 반대를 하는 거야?
애정의 밧데리가 20~30대에서 대박을 치긴 했지만, 그건 정말 특별한 케이스라고.”
“그 특별한 케이스에 맞는 곡이니깐요.
트로트가 아무리 40대부터라지만, 이건 EDM 트로트입니다. 일반 트로트로 보면 절대 안 됩니다. 데뷔일정이 밀리더라도, 무조건 예능에서 노래가 나와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목요일 밤에 하는 ‘퍼니 투게더’ 꼭 섭외해 주세요. 거기서 배우에서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썰을 풀고, 노래가 반쪽 밖에 안 나가더라도 거기서 ‘아모르 미오’가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3주나 더 딜레이가 돼버려, 그러면 ‘투아이즈’가 컴백을 한다고, 장르가 다르더라도 투아이즈가 전곡 줄 세우기를 하면 신인가수들은 다 박살이 나버린다고. 투아이즈랑 붙어서 차트 20위안이라도 들 수라도 있을 것 같아?
민경이 이번 앨범에 회사에서 돈 아끼지 않고 뮤비와 곡 준비에 5억 넘게 들어갔어. 이거 실패하면 그거 어떻게 감당할 건데?”
“부장님. 제 말대로 해주세요. 제가 다 책임질게요.”
“미성년자가 무슨 책임이야! 똥베짱도 각이 보여야 부리는 거야.
이건 미친 짓이라고, 민경이 너라도 좀 말려봐.”
“저렇게 확신하고 말하는데,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이 사건의 시작도 소원이가 시작을 한 거고, 결론도 자기가 내겠다고 하니 들어주죠. 실패하면 책임도 진다니 3주 후에 ‘퍼니 투게더’에서 데뷔하죠. 저 들어가 볼게요.”
“다들 미쳤네. 미쳤어. 미쳐 돌아가.”
Plus의 김일규 부장은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일정변경을 위해 실장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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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광고 끝났네. 드디어 시작한다.”
턱수염이 덥수룩하게 돋아있는 촬영감독이 먹던 고기도 던져가며 벽걸이 티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 남짓이 지나자 현장의 스태프들은 점점 노숙자처럼 변해서, 배우들은 카메라 마사지라는 신기한 마사지 덕분인지 점점 외모가 좋아지고 있었다.
쌍문동 촬영지 인근에서 가장 큰 고깃집을 빌려 모두가 모여 첫 방송을 기다리는데, 스태프나 배우뿐만 아니라 이 근방에 사는 주민들도 혹시 자기 집이 TV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TV 앞으로 다들 모였다.
“소원이는 이 드라마가 완전 처음이지? 나도 첫 드라마를 찍고 처음으로 TV를 봤던 때가 기억나네. 그땐 참 어렸는데.”
내 역할인 수찬이 역과 엮이게 되는 슬기 역을 맡은 최진아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최진아의 경우 아역배우 출신으로 아역 이미지 변신을 위해 색기 있는 성인 배우 연기를 하다 이미지가 굳어버린 케이스였다.
그러다 보니 이런 고정된 야한 여자 컨셉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색기를 크게 부풀려서 섹시의 아이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기획사의 푸쉬를 받았다면 오히려 좋았을 테지만, 아쉬웠다.
“너희 또래에서 우리 드라마 반응은 어때?”
“멤버형들은 지금 드라마 볼 준비하고 있다고 인증사진 올라오는데,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보니 다들 오늘 드라마 하는지도 모르는 거 같아요.
공중파가 아니다 보니 홍보, 마케팅도 좀 부족했고. 일단 다음 주까지 한번 봐야죠. 뭐.”
첫 방송이 시작된 드라마는 일단 잔잔했다.
요즘 시청률이 높은 일일 드라마의 막장 장면은 아예 없었고, 성실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20대 후반의 모습들이 잔잔하게 나왔다.
그런 잔잔함에 고등학교 동창이자 한때는 연인이었던(?) 슬기에게서 청첩장이 오고 오랜만에 동창들이 모여서 과거를 회상하며 서로 웃고 떠드는 것이 1화의 전부였다.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흔한 설정인데. 변화된 이후의 오리지날 드라마라서 혹시나 했는데..요즘 드라마처럼 자극적이지 않아서 반응이 좋을지 모르겠다.’
이게 나만의 생각만은 아니었는지 고기를 먹으며 드라마를 보던 배우나 스태프들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는 게 보였다.
“우리 드리마는 8화부터야. 다들 걱정하지 말라고, 8화부터 첫사랑의 아련함이 터지기 시작하면 시청률도 오를 거야 걱정들마. 오늘 마음껏 먹고 마셔! 내일부터 다시 강행군 시작이니깐, 단단히들 각오해!”
오현석 감독의 8화부터 재미가 붙고 시청률이 오른다는 저런 호언장담이 더 걱정을 부채질하는 느낌도 들긴 했다.
과연 8화까지 이런 잔잔한 드라마가 요즘 방식인 빠른 막장과 불륜으로 점철된 같은 시간대 드라마들을 이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