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83화 (83/237)

# 83

그때 그곳에서. (6)

“오현석 감독의 전작이 어중간했다면 아마 투자처에서 주연 변경하라고 하는 압박에 굴복을 했을 겁니다.

한데, 히트작이 있고, 고집도 있는 사람이라 끝까지 버티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할 겁니다.

다만, 오늘 봤을 때 저에게도 잘 부탁한다고 하는 걸 봐서는 또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어 보입니다.”

“압박감이 심하긴 하겠지. 좋아.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딜해보지.

PLUS에 김부장 들어오라고 해. 올 때 드라마 나가야 하는 애들 프로필 다 들고 오라고 전하고.”

**

“박감독! 이야기가 끝났는데도 계속 커피 한잔하자면서 시간 끌던 이유가 이거였어? 실망이야.”

오현석 감독의 실망이라는 말에 음악감독 박필근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저 자리를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오 감독님, 필근이가 제 학교 직속후배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다른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만날 수 있게 된 거 아닙니까?”

“MSM의 본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찾아온 거라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러죠. 무슨 일로 이런 방식으로 만나러 온 겁니까?”

“일단 앉으시죠. 마음이 편해야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 이쪽은 MSM PLUS의 김일규 부장이라고 합니다. 배우들을 총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캐스팅 때문이라면 이야기 그만합시다. 이미 캐스팅은 끝났습니다. 더 듣기 싫네요.”

오현석 감독은 불쾌하다는 듯이 더 이상 듣기 싫다고 말을 하곤 일어나 나가려고 했지만, 이어나온 전상일 본부장의 말을 듣곤 몸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저도 듣기로는 ‘화학개론’에 투자를 해서 재미를 본 창신투자나 태양필름에서 이번 드라마에 투자하는 것에 난색을 보인다고 들었습니다.

외주를 던져준 TVL 방송국에서도 여차하면 발 뺄 거라고 타이밍 재고 있다는 말도 돌고 있습니다.

이미, 이쪽 업계에서는 드라마 엎어질 거라는 소문도 돌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주연배우로 MSM 배우 꽂아줄 테니 투자하겠다고 하는 겁니까?

드라마가 엎어질 거라는 소문은 정식으로 제작 발표회를 하고 언론홍보를 하면 사라질 겁니다.”

“지금 캐스팅된 배우들로 어떻게든 갈 수 있게 TVL을 설득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답을 안 주고 있을 겁니다.”

“아마 내일이면 이런 논란이 끝날 겁니다. 투자처든 TVL에서든 인기 있는 윤소원을 캐스팅했으니, 아..지금 윤소원도 빼버리겠다고 협박하기 위해 온 겁니까?”

“아,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소원이가 캐스팅되어서 그 엔오원 인기로 홍보와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오 감독님이 투자처와 방송국을 설득하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훼방 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마도, 오 감독님의 능력으로 설득당한 투자처와 방송국이 허락은 해줄 겁니다.

한데, 그러기엔 날짜가 너무 촉박하지 않습니까? 시간이 촉박하면 할수록 나오는 결과물은 나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어떻게든 굴러가는 바퀴에 기름 칠 좀 하고, 더 잘 굴러가는 바퀴로 바꾸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날짜가 촉박해도, 제대로 앞으로 가지 못하는 바퀴밖에 없다고 해도, 결국엔 드라마가 시작할 거니깐 기름칠이나 다른 바퀴는 다른 드라마에 제시하길 바랍니다.”

“오 감독님. 영화나 드라마는 감독의 힘이나 운이 크게 작용하지만, 결정적인 건 배우들의 운빨이 대세를 좌우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운빨이라는걸 우리 MSM에서 만들어드리겠다는 겁니다.

지금 주연인 배우들의 경력을 보세요. 이미 실패를 했던 배우들입니다.

확률로 따져서 이미 실패를 했으니 이제 성공을 할 타이밍이라는 말도 있긴 하죠.

하지만, 야구만 봐도 3할만 쳐도 잘 치는 타자라고 합니다. 이 배우들이 이번에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3번의 성공을 위해서 7번의 실패를 기다릴 수 있을까요? 아마, 그전에 제작사들이 다 망할 겁니다.

이 드라마가 오 감독님의 드라마 첫 작품이지 않습니까? 제대로 서포터해줄수 있고, 기획의 힘을 실어 드릴 수 있는 선택이 있는데, 왜 안 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남녀 주연 중에서 한 명만 우리 주십시오.”

“운빨이라... 그렇죠. 이 바닥에서는 무시 못 하죠.

배우들 운빨만 맞으면 200만이 들어올 영화가 천만 명이 들어올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게 이 바닥이긴 하죠.

하지만, 그 운도 쓸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운빨을 받는 겁니다.

김지섭, 윤차희는 그 운빨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가 된 애들입니다.

MSM에서 밀어 넣고 싶어 하는 김민경은 그 운빨이 와도 그 운빨에 못 탈 애예요. 끼가 있지만, 그 끼를 제대로 뿌릴 줄을 모르니, 운이 와도 안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운빨이 와도 안 되게 만든 게 MSM 자신들이라는 걸 알아야 할 겁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운이 와도 막는 게 우리 자신이라니요?”

영화나 방송계에 퍼져있는 운에 대한 미신을 이용해서 배우를 꽂겠다고 압박을 해가던 전 본부장은 역공격을 받게 되자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MSM의 투자를 전제로 캐스팅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케이스 말고, 진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주연배우가 있긴 있습니까?

MSM 초기에는 소녀연대나 동방정기의 인기에 힘입어 캐스팅했고, 이젠 투자력에 힘입어 끼워 넣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혼자 일어설 힘이 없는 배우는 운빨이 와도 그 운빨을 받을 수가 없을 겁니다. 왜 내가 MSM에서 연기 수업을 받지 않는 윤소원을 캐스팅 한 것인지를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저를 찾아오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의 MSM은 무난한 연기만을 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 연기 지도 시스템을 버려야 배우들이 살아나게 될 겁니다.”

자신의 말에 전상일 본부장의 기세가 팍 죽어버리자. 오현석 감독은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다 토해내 버렸다.

“내 드라마의 운빨을 따져가며 배우를 꽂기보단, 그쪽의 배우 성장 프로그램부터 손을 보시죠.

오래되어 고인 물이 쌓여 있을수록 점점 진창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을 겁니다.

5년, 10년 넘게 한자리에서 배우들을 가르치고 있는 연기 선생들을 바꾸세요.

이미 세상은 바뀌었고, 연기에 대한 교습법도 발전했습니다.

옛날 방식의 정극 연습을 통한 연기 지도는 그 한계가 있고, 지도자에 따라 고착되고, 획일화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고정된 MSM만의 연기폼을 바꾸어야 할 겁니다. 왜 요즘의 MSM 출신 아이돌이 크게 뜨지 못하고, 배우들도 오디션에 가긴 하지만, 주연을 꿰차지 못하고, 투자해서 무리하게 꽂고 있는지를 고민하세요.

오늘 투자 건이나 배우 건에 대해서는 잊겠습니다.”

거장이라 부를 만한 감독은 아직 아니었지만, 오현석 감독이 쏟아 내고 떠나버린 말에 전상일 본부장은 머리가 멍했다.

오현석 감독이 자리를 뜨자, 사무실 안에는 두 사람과 정적만이 남았다.

“김 부장. 지금 PLUS 소속 배우 중에서 근래 순수하게 오디션으로만 주연 꿰찬 배우가 한 명이라도 있어?”

“소녀연대의 윤하 이후로는 없을 겁니다. 아마도, 3년 내에는 없을 겁니다. 근래에는 투자 건을 내밀고 나서야 주연을 꿰차 왔습니다.”

“제길, 내가 타고 있는 배가 구멍이 나서 가라앉고 있는데, 옆에서 기우뚱하게 지나가는 배에게 훈수를 둔 꼴이라니. 어쩌다 우리 MSM이 이렇게 되어 버린 거지. 허탈하다 못해 화가 나는군.”

전상일 본부장은 자신이 평생 일해오고 있는 MSM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

“그러니깐 형 단순하게 메이저 코드 진행으로만 나가면 되는 거야.

가사는

[길거리엔 사람들이 흘러 넘치지만,

언제나 나 자신은 혼자라고 생각해.

모두가 웃고있는 행복한 모습이지만,

언제나 나 자신은 외롭다고해.

내 작은 세상에서 내 손위에 모든걸 담고싶어.

이 작은 공간에 함께 있는 너의 손을 잡고 싶어.

내가 네 손을 잡고, 기쁨을 가득 느끼고 싶어.

내일의 내가 웃을수 있게 손을 흔들어 주고 싶어.

내일의 그 누군가에게 웃어줄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말거야.

내일의 소중한 그 사람에게 미소를 줄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말거야.]

이거고, 어때 괜찮지? 누나들이 듣기엔 어때?”

“괜찮은데, 리듬감도 좋고, 가사도 좋다. 네가 적어준 가사와 악보가 미완성이지만, 이 정도만 있으면 바로 내일이라도 곡이 나올 수 있을 거야.”

“귀에 착 감기는 발라드라서 좋구나. 소원이는 이런 감성도 있었네. 부럽다. 노래 제목은 뭐야?”

“중학생 때 사춘기가 오고, 고등학생 때는 오춘기가 온다고 해서 제목을 ‘오춘기’로 했어. 내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고등학생 시절의 추억을 가지고 진행되는 드라마라서 허세가 좀 들어간 게 딱 OST로 맞지?”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이 리듬감이 좋은 발라드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오춘기’ 라는 노래 자체가 미래의 모 드라마에서 OST로 쓰여서 대박이 났던 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곳에서’라는 무거운 제목과는 다르게 드라마의 내용은 고등학생들의 성장 드라마류 였는데, 그와 비슷한 내용으로 미래에서 히트를 쳤던 OST곡이 생각나서 급히 적은 것이었다.

물론, 모든 가사와 리듬을 모르기에 아는 부분만 적었고, 부족한 부분을 내가 1차로 채우고, 다시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이 채워주고 편곡을 해주었다.

“역시, 히트곡 메이커인 빨간 펀치 누나들은 다르네. 벌써 마스터 키보드로 녹음이야? 진짜 누나들을 부르길 정말 잘했어. 잘 부탁해요.”

내가 넘겨준 코드와 가사를 대현 형과 빨간 펀치 2명의 누나가 서로 의견을 내면서 편곡을 한 지 1시간 만에 노래가 만들어졌다.

“네가 준 대본을 읽어보고, 가사와 리듬을 들으니 살짝 손발이 오그라드는 가사인데, 곱씹을수록 좋더라. 고등학생들의 성장 드라마와는 딱 맞아. 일단 한번 들어봐.”

Logic pro X 프로그램에서 PLAY를 누르자 완성된 곡이 흘러나왔다.

“기본 메이저 코드를 바탕으로 한 거니 편안한 느낌의 전주일 거야. OST에는 딱 맞지.”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음악은 분명 마음이 편안해 지고, OST에 잘 어울리는 감성 발라드였다. 거기에, 내가 적어준 가사가 대현 형의 목소리로 입혀지자 귀에 착 달라붙는 좋은 곡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오춘기’ 노래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분명히 내가 들어서 알고 있던 히트 OST의 곡과 가사를 알려줬는데, 3명의 작업 끝에 나온 노래는 몇몇 부분만 비슷한 완전 다른 노래가 되어있었기에 좀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노래는 좋은데, 내가 알려준 코드진행과 가사도 같은데, 왜 다른 노래가 만들어져 나오는 거지.’

뭔가 예감이 이상해서 내가 아는 OST 노래 중에서 가장 유명한 OST인 ‘빛살처럼 너에게 가겠다’의 가사와 리듬을 급하게 적어 나갔다.

“이야 소원이 미쳤네. 어떻게 이런 가사가 그냥 막 나오는 거냐?”

[널 안기 전엔 알지 못했다

내 머물던 이 세상 이토록

찬란한 것을 작은 숨결로 닮은 사람

겁 없이 나를 불러준 사랑....]

오춘기는 가사와 리듬을 60% 정도밖에 몰라서 많은 부분을 내가 창작했지만, 이 노래는 워낙에 히트곡이라 가사는 전부 다 알고 있었고, 리듬도 80% 이상 기억을 해서 금세 적어줄 수 있었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이런 가사와 노래를 적는 나를 보곤 대현 형과 누나들이 놀라워했지만, 그런 반응을 신경 쓰기보다는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다.

대현 형과 누나들에게 어서 편곡 작업을 해라고 내가 눈치를 주자 늦은 시간임에도 즐겁게 곡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여자 솔로가 불렀던 노래는 여자 듀오가 부르는 주고받는 형식의 노래가 되었고, 전체적인 음의 높이가 변경되었다.

“네가 적어준 그대로 하면 혼자서는 도저히 힘들어서 못 불러, 이렇게 둘이 부를 수 있게 바꾸었어.”

빨간 펀치 누나들이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는데, 내 기억 속의 원곡과는 다르지만, 이것도 충분히 노래가 좋았다.

그리고, 두 번의 결과라서 결론을 내리기에는 힘들었지만, 이건 확실했다.

대현 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이 있으면 내가 기억하는 반쪽짜리 히트곡의 기억으로도 충분히 히트 메이커가 될 수 있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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