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80화 (80/237)

# 80

그때 그곳에서. (3)

“소원이가 가진 이런 언어적인 재능은 아주 다양한 배역을 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어. 그리고, 고정화된 이미지를 타파할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도 알게 모르게 말투와 억양이 정해져 있어, 주로 하는 연기와 배역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보니 그런 게 이미지화가 되어 거의 패턴화가 된 배우도 있지.

예를 들면 딱 보기만 해도 동네 양아치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 유숭범을 볼까?

배우 유숭범이란 사람을 대중들이 처음 본다면 딱 보이는 첫인상이 정해져 있어. ‘양아치’ 그 첫인상 이미지가 그가 가질 수 있는 배역의 90%야.

그가 가진 이미지로 인해 배우로서 해볼 수 있는 배역의 90% 이상은 동네 양아치, 사기꾼이야.

실제로도 그의 배우 이력의 90%는 그런 역할이고.

덩치가 큰 대머리, 눈 작고 인상이 안 좋으면서 덩치가 크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99% 조폭 관련 배역을 맡을 수밖에 없는 이미지야.

반면에 미남 배우 이청재는 어떨까?

거기 이쁜 여학생. 배우 이청재를 딱 봤을 때 무슨 배역이 어울릴 것 같아?”

“제 남편요.으헤헤헤”

“이 애는 나머지 10%의 배역을 이야기 한거야. 너 예능 전공이지?”

“네. 헤헤헤”

“90%의 사람들은 이청재를 봤을 때 그가 가지는 이미지는 정장, 잘생김, 모델, 멋진 샐러리 맨일거야. 간혹, 제비, 기생오라비, 사기꾼 같은 이미지도 있을 수 있지.

이 고정된 외적인 생김새와 말투 등으로 이미지화된 연기를 하는게 보통의 배우야.

자신의 타고난 강점인 이미지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것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지.

하지만, 자신이 타고난 이미지만으로 연기하면 그게 좋은 배우일까?

배우는 모든 사람을 다 연기할 수 있어야 좋은 배우인 거야.

그래서 장동근, 정운성 같은 잘 생긴 미남 배우들은 늘 잘생긴 역할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다른 말투와 생김새를 가지는 자신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배역을 맡고 싶어 해.

정운성만 해도 영화 똥개에서 못생긴 촌놈을 연기하면서 모든 배역을 다 할 수 있는 실력파 배우로 거듭나고 싶어서 노력을 했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운성의 이미지는 비트에서의 꽃미남과 반항적인 눈빛으로 내 머릿속의 지우개 같은 로맨스 남자 주인공과 스릴러 영화의 반항기 있는 남자 주인공으로 기억에 남게 돼버렸지, 똥개 이후로는 이런 잘생긴 역할만 하고 있어.

자 그러면 여기서 정운성은 자신이 원한 모든 배역을 다 할 수 있는 실력파 배우가 되지 못 한 이유가 뭘까?

그 반대로 황창민, 송강효는 그들이 가진 이미지를 언제든지 바꾸어 가면서 연기 변신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얼굴 차이요.”

“그래, 어느 정도는 인정. 황창민은 몰라도, 송강효는 미남이 아니지.

하지만, 그 둘의 연기 변신을 가능하게 해준 건 바로 대사야.

말투, 억양, 높낮이, 호흡 등에 따라서 똑같은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이라도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여유있는 억대 연봉자로 보이게 할 수 있고, 그 반대로 백과사전 책을 다급하게 팔러 다니는 영업직 사원으로도 바뀔 수가 있는 거야.

그래서, 내 수업에서 연기를 가르칠 때 강조하는 것이 대사에 의도를 제대로 실어서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거야.

그 대사가 의도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으면 로봇연기, 발연기는 없어지는 거야.”

“그런데, 선생님 궁금한 게 있는데, 황창민, 송강효 같이 언제든지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배우도 있지만, 007 같은 첩보원 영화나 사극의 허준역, 드라마의 인텔리 실장님 같은 누구나가 인정하는 그 배우만을 위해 배역이 만들어지는 그런 배우도 좋은 배우가 아닌가요?”

“좋은 질문이야. 배우의 첫인상을 보기만 해도 맡는 배역이 연상될 정도의 필모그라피(filmography)를 쌓았다면 그 자체로서 뛰어난 배우라는 것을 나타내기도 해.

하지만, 한국의 정운성, 장동근은 물론이고, 미국의 짐 캐리,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자신에게 씌어 있는 고정 이미지를 깨기 위해 엄청 노력해.

맡는 역할이 고정된 그 이미지의 배역만 하게 될까 봐 배우들은 겁을 내는 거지.

배우의 이미지가 고립되고, 굳어지면 결국 그런 이미지의 배우가 필요 없어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배우가 등장하게 되면 사라져야 한다는 걸 아니깐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이지.

그래서 유명하고 본인만의 뚜렷한 족적을 가진 배우들도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거야.

그리고, 방금 이야기한 양아치역에 딱 맞게 이미지가 만들어진 유숭범은 계속 양아치 역할만을 하고 싶을까?

그도 사람이라면 인텔리 역할, 종교인 역할, 착한 사람 역할도 하고 싶을 거야.

그렇다면 자신의 외모로 인해 고정화된 이미지는 어떻게 바꾸면서 연기 변신을 해야 할까? 그 연기 변신은 고정화된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기에 참 힘이 들어.

어이쿠, 정신없이 수업을 하다 보니 수업시간이 끝날 때가 되었구나. 어쩔 수가 없네.

자 그러면 다음 시간에는 본인의 생김새, 말투 등에 따라 고정화 되어있는 연기를 벗어던지고 다른 이미지로 갈아타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수고하셨습니다~”

정해진 수업이 끝이 나고 교실을 나서는 김영민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니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따라나섰다.

회사의 엑터 스쿨에서 류인해 선생님을 비롯해 몇몇 선생님들에게 연기 수업을 받아 봤지만, 오늘 김영민 선생님처럼 수업을 해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저런 수업을 계속 받아 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저 선생님.”

“오, 그래 유명 아이돌 윤소원, 무슨 일이야? 사인 CD를 주겠다면 기꺼이 받아 주마.”

“아, 미쳐 사인 CD를 준비 못 했습니다. 다음에 드리겠습니다.

저 오늘 선생님 수업이 정말 좋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데, 선생님의 연기 수업에 저도 들어가고 싶은데, 그냥 수업에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오늘 한 특성화 연기 수업 말고, 연기자 반 애들이 받는 전문 수업을 말하는 거야?”

“네. 연기지반 애들이랑 같이 선생님 연기 수업을 들을 방법이 없을까요?”

“왜? 너 MSM 소속이잖아? 내가 MSM 소속인 연기자 반 애들을 가르쳐 보면 나름 MSM의 엑터 스쿨 퀼리티는 좋아. 그런데, 왜 회사에서 안 배우고 나에게 배우려고 하는 거지? MSM에는 강사도 많을 텐데.”

“사실..그게....”

김영민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싶어서 그간의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야 대단한데. 난 15년 배우 인생에서 제일 좋았던 배역이 공중파 베스트 극장의 단막극 조연밖에 없었는데, 넌 바로 케이블 미니시리즈 조연을 꿰찼구나.

그것도 오현석 감독에게 사투리 연기를 인정받았다면 확실히 재능이 있는 거야.”

“제가 부산 사람이니깐 재능보단 고향으로 인한 혜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사투리와 지금 말하고 있는 표준어, 서울말을 별 차이 없이 자유자재로 쓰는 게 재능이라니까. 아무나 못 해.

네가 준비했던 자유연기에 피아노의 ‘한억관’이 있었잖아.

그때 한억관의 아들로 나왔던 미남배우 조임성은 사투리 연기 못한다고 욕 엄청 들었잖아.

그런데, 그게 6개월가량 연습한 결과야. 그런데, 넌 사투리와 표준어를 이리 자유자재로 쓰니깐 그게 재능인 거지.

일단, 학교 규칙상 공연전공인 너를 연기전공의 수업에 들일 수는 없어.

대학교였다면 청강생으로 들이면 되는데, 여긴 특성화 고등학교니깐 그렇게 될 수가 없거든.

대신에 이렇게 하자, 내가 학교에서 수업이 없을 때는 홍대 앞에 있는 ‘베스트 엑터학원’에서 강사로 수업을 하니깐 그때 학원으로 와서 수업을 듣도록 해.

물론, 수강료는 있다. 나도 좀 벌어야지. 하하하.

이게 내 명함이니깐 매니저에게도 주고, 학원에 연락해서 일정을 맞춰 보면 될 거야. 수업 시작했네. 어서 돌아가 봐.”

“네 감사합니다.”

**

“야 소원아! 너 드라마 캐스팅되었다는 게 진짜야?”

“네. 민호형. 아직 계약조건 때문에 회사랑 이야길 하고 있어서 도장은 안 찍었는데, 거의 확정되었다고 해요. 아직 캐스팅 안 된 주연급 조연 1명만 확정되면 언론에 바로 기사를 낸다고 했어요.

그때 형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했는데···. 어떻게 아신 거예요?”

“우리 매니저가 이야길 해주더라. 아이돌 캠프 여자애들이랑 같이 치킨 CF를 찍을 예정이라고 이야길 하면서 너 이야기가 나와서 안 거야.

2번째 싱글의 더블 타이틀 곡 활동도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이기도 하고, 행사 말고는 약간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다들 생각이 많아.”

“생각이 많다고요? 아! 혹시 치킨 CF 때문에요? 손익분기점은 다들 넘어 섰데요?”

“아니 그런 생각 말고, 치킨 CF가 대세 아이돌이면 찍는 돈이 좀 되는 CF라고 하지만, 아직 다들 손익분기점을 못 넘어서 정산받을 게 없어. 그러다 보니 그런 정산 고민이나 생각들이 아니야.

다들 요즘 생각이 많아진 건 엔오원 이후의 일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진 거야.”

그러고 보니, 이제 엔오원의 공식 활동은 6개월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대현 형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아티스트 지향이라 혼자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한다고 했었기에 걱정이 없다고 했지만, 다른 형들은 서 있는 위치가 좀 달랐다.

엔오원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소위 성공한 아이돌팀의 일원이지만, 엔오원의 활동이 끝이 나게 되면 다시 회사의 연습생일 뿐이었다.

다들 연습생으로 몇 년이나 있었기에 회사와의 손익계산도 아직 다 되지 않았고, 솔로로 나오기에는 지금의 가요계 상황에서 살아남기가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팀으로 나오기에는 준비를 해야 하는 기간이 또 들어가니 생각이 많아질 만했다.

“그럼 형은 내년에 어떻게 하실 거에요?”

“나? 난 군대 가야지. 공익이나 상근이 되면 좋을 것 같은데, 아마도 현역입대일 거야.

병무청이 이제는 늦게 통지서 보내지 않을 거라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지, 이젠 매달 오고 있어.

매니저 형이 매달 연기 신청하러 간다고 고생하고 있지.”

나이가 있다 보니 더는 군 연기를 하지 못한다고, 이젠 진짜 끌려가야 한다고, 쓴웃음을 지으며 민호 형이 이야길 하는데, 뭔가 서글펐다.

3년 동안의 연습생 생활과 10년에 가까운 무명생활, 그 끝에 드디어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제야 손익분기점을 넘어 내년부터는 진짜 정산을 받을 거라고 좋아했지만, 이젠 다시 군대에 2년 동안 가 있어야 한다며 웃으며 한탄을 했다.

나에게는 웃으면서 이야길 하고 있지만, 속은 뭉그러졌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매니저 형 말로는 루이스네 회사에서는 루이스를 중심으로 해서 4인조 보컬 그룹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고, 시타는 8인조 댄스 그룹이 나올 예정이라더라.

아마, 엔오원의 활동이 끝이 나게 되면 그 둘 다 바로 재데뷔를 하게 될 거야.

그런데, 그런 재데뷔 준비 활동보다 생각지도 않은 너의 드라마 데뷔가 더 충격이야.

언제 그렇게 연기 준비를 한 거냐? 데뷔전에는 학원도 안 다녔다면서?”

“저의 천재성이 이렇게 또 세상에 드러나는 거죠. 후훗.

감독님 앞에서 그냥 어버버 했는데도 ‘그래 너 같은 연기 천재를 기다렸다. 윤소원! 이제야 너를 찾을 수 있었구나!! 너의 재능이 흘러넘치고 있으니 널 바로 캐스팅하겠닷!’ 하고 그냥 딱~! 캐스팅이 끝나 버렸어요.

뭐, 연기도 별거 없더라고요. 하하하핫”

“미친 닥치고, 연습이나 해. 오늘 간만에 스트레칭 찐하게 해주마.”

“저 오늘 연기 수업 들으러 가야 하니 살살해주세요. 저는 소중하답니다. 후후”

**

“류 선생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현석 감독님이 TVL에서 연출하는 드라마에 우리 회사 신인 아이돌이 캐스팅되었다고요?”

“민경 씨 입장 난처하게 그렇게 되었더라고요.

엔오원이라고 알죠? 거기에 있는 애가 MSM 소속인데, 그 애가 조연으로 캐스팅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부산에서 올라온 ‘수찬’이 역이라던가 그래요.”

“꽤 비중 있는 배역이에요. 나는 안 되다고 해 놓고는, 연기 경험도 없는 신인을 비중 있는 조연으로 캐스팅했다고 하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네요.

그 신인 아이돌은 연기 수업이 언제에요? 얼마나 연기를 잘하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

“그..그게, 회사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학원에 다니면서 배운다고 하더라고요.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겠네요.”

“그래요? 더 궁금하게 만드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