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민아이돌 프로듀스99-78화 (78/237)

# 78

그때 그곳에서. (1)

“저 오 감독님. 저도 잡아다 드리고 싶은데, 저 애가 인기 아이돌 엔오원의 멤버입니다.

거기다 MSM 소속이라 쉽게 부르고 할 수가...”

“MSM 소속이야? 그쪽 출신이라면 연기도 제대로 배우니 어느 정도 평균 연기력은 될 것 같은데, 아쉽네.

여주인공역에 지원했지만, 색깔이 안 맞는다고 네가 깠던 김민경 소속사도 MSM 맞지? 같은 회사면 캐스팅 안 되는 거 아냐? 짜증이 확 나네.”

“아 감독님. 김민경은 MSM PLUS소속입니다.”

“플러스랑 안 붙은거랑 무슨 차이야? 같은 회사라는 거야? 다르다는 거야?”

“배우들, 개그맨들은 MSM PLUS 소속이고, 아이돌은 그냥 MSM 소속입니다.”

“그럼. 회사가 다른 거네. 계열사라면 캐스팅에 문제 없겠구만. 일단 한번 드라마 시놉시스들도 네가 한번 들어가 봐. 영화만 만들던 내가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하는 게 TVL에서 만들어진다고 내 이름도 팔 수 있으면 팔고 연기 테스트 한번 해보자고 전해. 최대한 빨리!”

“네, 알겠습니다.”

**

“연기 테스트요? 오현석 감독님이요? 근데, 그분이 엄청 유명하신 분인가요? 감독님 성함을 다 외울 만큼 제가 영화공부를 한 게 아니라서요.”

“JYG소속 미스핑크의 지수를 ‘국민 첫사랑’으로 만들어준 영화 ‘화학개론’은 알지? 그건 봤어? 그 영화 감독님이 오현석 감독님이야.”

“아, 저 그 영화 재미있게 봤어요. 저도 그 영화 보고 지수한테 빠질 뻔했었죠. 진짜 청순 그 자체로 예뻤는데.”

“그래, 그 감독님의 수제자 중에 작가가 TVL에서 입봉을 하는데, 그 드라마를 이번에 직접 연출하기로 했다더라.

그분이 너를 지목해서 연기 테스트를 하자고 연락이 왔단다.

이게 드라마 시놉시스. 한번 읽어보고 연기 테스트받으러 갈지 말지 결정해. 회사에서는 연기 수업을 듣기는 했어도 시간이 없어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걸 아니깐 네 의사에 맡긴단다.”

“오, 이게 시놉시스군요. 그냥 줄거리 개요와 드라마 설명이 나와 있는 거네요. 흠. 혹시, 연기 테스트 안 하겠다고 하면, 건방지다고 욕 들을 수도 있겠지요? 스케줄 때문에 촬영이 힘들 것도 같은데.”

“하기 싫으면, 그냥 신곡 컴백해서 일정이 나오지 않는다고 고사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할 마음은 있고? 경험 삼아 한번 연기 테스트받아 보는 것도 좋아.

네가 할 마음만 있다면 일정이야 조절을 해야지. 캐스팅만 된다면 조절이 가능할 거다.

회사 차원에서는 아이돌들이 연기까지 같이하는걸 대환영하고 있어서 최대한 지원을 해줄 거야.

너에게 들어온 ‘수찬’이란 배역이 비록 조연이지만, 꽤나 비중이 있는 역할이더라고.

연기 초보 신인 아이돌들에게는 절대 안 들어 올 만큼 비중 있는 역이야.

억양 강한 부산 사투리를 할 수 있는 배우를 찾다가 너에게까지 온 배역이야.

양날의 검이라 연기 논란으로 욕을 들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네가 가진 부산 출신의 장점을 최대한으로 살릴 기회일 수도 있으니 한번 살펴보고 이야기해줘.”

기봉이 형에게 건네받은 시놉시스를 다시 제대로 살펴보니 파란 표지의 시놉시스에 검은색으로 드라마의 제목이 작게 적혀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이거 처음 들어보는 드라마인데, 제목이 범죄 드라마나 전설의 고향 같은 그런 느낌의 제목이잖아.

이 드라마가 여러 변화로 인해 이 시대에 새로 만들어진 오리지날 드라마일까? 아니면, 미래에 쫄딱 망해서 제대로 찍어보지도 못하고 엎어져 버린 망한 작품이라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드라마일까?

제목만 가지고는 판단을 할 수가 없구나. 한번 읽어보자.

으흠, 다행히 전설의 고향이나 범죄 드라마는 아니네.

IMF가 오기 전 1996년 부모님을 따라 달동네에 이주해온 고1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로맨스 드라마라. 이런 드라마가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런 제목과 내용의 드라마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왠지, 내가 아는 미래와는 다른, 지금 이 현실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드라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진짜 변화들로 인해 새로 만들어진 드라마인지 확인을 하고 싶었다.

“기봉이 형, 연기 테스트만 받는 거라면 시간 잡아주세요. 뭐 캐스팅되면 좋고, 안되어도 연기 테스트를 받았다는 경험은 남겠죠.”

**

“오 감독님, 윤소원 프로필 영상과 CF 촬영했던 마스터 파일 복사해 왔습니다. CF를 찍으면서 프로필용 영상 촬영을 했더라고요. 마침 아시는 감독님이 찍으셔서 마스터 파일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보시죠.”

“흠. 박 작가. 이 애 키가 꽤 큰데 괜찮겠어? 프로필에 183cm라고 되어 있길래 의례 170 후반인 애를 그냥 올려서 적은 거로 생각했는데. 진짜 183cm이네. 거기다 신발도 신어서 그런지 더 커 보여.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김지섭이 키가 180이 안되지?”

“네, 김지섭은 180이 안될 거에요. 소원이랑 같이 섰을 때 그림이 안 나온다면, 소원이는 다리 좀 굽히라고 하고, 지섭이는 깔창 두둑한 걸 깔게 해야지요. 내일 연기 테스트 때 불러서 같이 한번 세워보죠.”

“CF를 보면 나름 목소리도 미성이고, 얼굴도 작아서 카메라는 잘 받겠네. 나이도 이제 고2라고 하니 배역하고 딱 맞고.

상대역으로 엮이게 되는 ‘슬기’ 역의 ‘최진아’가 23살이지? 5살 차이가 나네. 둘이 잘 어울리겠어?”

“슬기 역이 색기가 있어야 하는 역이니 진짜 고등학생으로 보이면 또 문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이 차이로 인한 건 최대한 메이크업으로 가려보죠. 묘한 색기 있는 애로는 최진아가 딱 이라서 어떻게든 맞추어 보죠.

일단 영상만으로는 좋아 보이네요. 훈훈한 비쥬얼에서 심한 부산 사투리가 나온다면 언발란스한 즐거움도 있을 것 같고요. 캐릭터 설정을 변경할지 말지는 일단 모레 연기 테스트 때 한번 보죠.”

“사실, 이 애 말곤 대안도 없어. 비슷한 사투리에 연기 실력이라면 저 애로 가야 해. 주간일정 알려주면서 ‘수찬’역에 윤소원 캐스팅 할 수도 있다고 하니깐, 메인 광고 붙기로 한 ‘태창건설’, ‘주택공사’에서 꼭 캐스팅하라고 난리를 치더라.

남주, 여주를 우리가 중고신인으로 캐스팅해서 홍보나 매체 노출에 불만이 많았는데, 엔오원의 멤버에 MSM 소속이라고 하니깐 대환영을 하더라.

닝기리, 아직 연기 테스트도 하지 않았는데, 꼭 캐스팅해야 한다고 하는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려서리. 날짜는 촉박하고 대안은 없고, 기분이 별로야.”

**

“안녕하십니까? 윤소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연기 테스트인데, 캐스팅 확정이 되지 않은 단계라 대본을 미리 드릴 수가 없었네요. 준비해온 자유연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창 프로덕션’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크리에이티브 아트센터에 입주해 있었는데, 내가 상상해 왔던 충무로의 영화제작사무실과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그냥 IT회사에 와 있는 것 같았고, 연기 테스트도 그냥 대회의실에서 촬영하는 카메라도 없이 액션캠 같은 작은 카메라로 녹화하며 그냥 진행되었다.

감독과 작가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배우로 보이는 20대 초반의 남자가 심사를 위해 앉아 있었는데, 남자 배우의 얼굴은 안면이 익은데,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껏 상상해 오고, 여러 매체에서 봤던 영화, 드라마의 오디션장면들과는 좀 달랐다.

“네. 드라마 ‘피아노’에서 한억관이 했던 독백연기와 대사연기를 해보겠습니다.”

“한억관? 조재연이 했던 역할이라 선이 강한데..”

준비해온 대사를 하기 위해 눈을 감고 감정을 조율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니, 여자 작가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름대로 부산 사투리와 일반 정극 연기가 아주 잘 버무려진 ‘피아노’란 SBC 드라마를 참고했는데, 그러고 보면 배역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연기였다.

“그런데, 나 약속 했었어...니들 엄마한테 맹세 했었어..

온 몸 뽀사지게! 죽도록 애쓸거라고..

니들 한테 죽도록! 잘할거라구..

니들 엄마가 믿었어..내가 그렇게 할거라구 믿어줬어...

그러니 제발 나랑 같이 있어줘..날 믿으라는게 아니라 니들 엄마..니들 엄마를 믿구!

니들이 어른이 될때까지만이라도 제발..나 싫어 하는거 알아..”

“네, 거기 까지요. 잘 봤습니다. 극 독백연기 말고, 부산 사투리 연기 준비해 온 거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큼큼. 휴..

겡호야 이 아빠는 다 게안타.

내는 겡호 니가 그냥 잘되길 빈다~ 그거믄 된다.

겡호야 이 아빠는 그그믄 된다. 다 게안타. 걱정하지 말그래이~ 건강해래이 싸랑한데이~”

“네. 거기까지. 고등학생이 40대 부산 아저씨의 대사를 자유연기로 준비해오는 게 엄청 미스인건데, 특이하긴 하네.

보통 부산 사투리 자유연기 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은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의 ‘니가하라 하와이나, 고마해라 마이무따 아이가’ 이 대사를 치는데, 피아노의 조재연 대사를 치는 건 또 처음 보네.

아직 보여주면 안 되지만, 이거 읽고 한번 연기 해봐요. 상대역은 오늘 와준 지섭이가 해줄 겁니다. 아, 주연인 찬욱이역에는 김지섭 씨가 캐스팅된 상태입니다.”

작가님에게 A4용지 3장 정도 되는 구문을 받아서 읽어보니, 이게 대사 내용이 예사롭지 않았다.

‘슬기는 내가 보기에도 색기가 있다. 창진이도 이런 애는 처음 봤다고 했다. 찬욱이와 다른 아이들도 있는 곳에서 창진이의 허세에 지기 싫어서 더 도를 지나치게 말을 뱉었다.

“가시나가 빨통이 쥑이주네. 부싼에도 이런 딸내미는 몇 없다이가. 홈빵가네.”

“야 홈빵가네가 무슨 말이야?”

“쥑이준다꼬. 끝내준다꼬. 엄청좋다는 그런 말이다이가. 모리나? 서울 아 들은 이런 말 안쓰나?”

“와~ 우리 고향에서는 허벌나게라고 썼는데,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야.”

“글나? 우린 그냥 쓰는 말인데”

“오케이 여기까지! 더는 안 해도 될 것 같아. 충분해!

배운 게 아닌 진짜 부산 본토 사투리 억양이야. 홈빵가네 말 억양이 진짜 토박이 말투야. 내가 수영 비행장에서 군 생활할 때 어르신들한테 들었던 진짜 부산 사투리 억양이야.

이 맛을 이전에 왔던 부산 출신 애들은 몰랐는데, 소원이는 알고 있네.

MSM 소속인데, MSM에서 연기를 안 배운거 맞지? 그쪽 애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쿠세가 없어서 더 마음에 들어.”

“아네, MSM 엑터 스쿨에서 수업은 받고 있는데, 제가 수업을 자주 못 들어가서요. 사투리는 어릴 때 부모님이 바쁘셔서 할머니가 키워주셨거든요. 그래서 옛날 강한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지섭이는 어때?”

“전 괜찮은데, 그런데, 시나리오상 수찬이는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검은 피부의 차돌 같은 이미지인데, 너무 꽃미남인데요.”

“그렇지? 이미지가 완전히 안 맞지? 하지만, 이렇게 찰지게 부산 사투리를 하는 남자 배우가 없어. 더구나, 엔오원 멤버이니 흥행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되고. 아, 당사자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게 실례네.”

“괜찮습니다. 축구팀에도 유니폼 판매를 위한 선수영입도 있는 판에, 드라마에도 그런 포지션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연기 경험이 없는 아이돌이라면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어..고마워요. 지섭이 같이 좀 서봐. 둘이 어울리는지 한번 보자.

다른 출연진들도 같이 서서 화면에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해 보고 싶지만, 둘만이라도 한번 보자.”

김지섭과 같이 서니 키 차이가 많이 나서 내가 일부러 구부정하게 섰다.

“괜찮네. 수찬이역 확정! 매니저님. 우리 일정조절해봅시다. 돈 문제는 밖에 저분들과 이야길 하시고요. 여기 대본 들고 가세요.

소원이는 따로 출연진들끼리 한번 모이는 자리 만들 테니까 그때 만나서 제대로 이야길 해보자.”

**

대본을 받아들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 대본을 보는데, 이게 과연 드라마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시놉시스에 적혀있는 것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

한창 민감한 시기의 한동네 고등학생들을 그린 청소년 성장드라마 같은 느낌이긴 한데.

뭔가 야했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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