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
이렇게 연기할 사람이 없는 거야?
“햐, 기봉형 다들 공중파 SBC 화제가요 1위 기념 고기파티 가는데 저 혼자서 이 트레이닝복 입고 선비 김 행사 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 그 옷 꼭 입어야지. 눈물, 콧물 분장 안 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야. 선비 김에서 매출 상승이 꽤 되었다고, 계약도 단발성에서 내년까지 연장계약을 원하고 있으니깐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해야지. 본사 지원팀에서 계약조건 마무리하고 있으니깐 열심히 해.”
“형, 제가 너무 성급했네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깟 고기, 먹어봤자 단백질이죠. 김이 최고 아닙니까! 사랑해요. 선비김~! 감사합니다. 열심히 찍어야죠!
그런데, 이 길은 파주 영어마을로 가는 길 아니에요? 거기 지금은 여자애들이 하는 ‘여기는 아이돌 캠프’ 찍고 있을 텐데.”
“그래, 지금 파주 영어마을로 가는 거 맞아.
선비 김이 애들에게 어필이 되어야 부모님들이 사준다는 걸 알게 되어서 ‘여기는 아이돌 캠프’에 PPL 광고랑 협찬하기로 했거든.
그래서 그 트레이닝복을 네가 입고 가는 거야.
애들 식사 시간에 김에 밥을 싸서 먹여주는 그런 촬영컨셉이라더라.
그리고, 아마 다음 주 중으로 다른 멤버들이랑 치킨 CF 촬영으로 다시 여기로 올 거야. 또 Nnet에서 중계해줘서 화장품 CF도 계약조건 조율하고 있는데, 그것도 결정이 나면, 아마 아이돌 캠프랑 같이하는 광고일 거야.”
“헐. 진짜요? 화장품까지 하게 되면 멤버 형들도 이젠 진짜 정산받을 수 있겠네요. CF 한 개 더하면 이제 다들 손익분기점 넘길 수 있겠죠?”
“그건 나도 알 수가 없지. 이번 화장품 CF를 한다고 해도 이걸 물어온 게 Nnet 제작진이라 중간 수수료 정산을 한 번 더 거치게 될 거야.
몇억짜리 광고라고 해도 이리저리 수수료 떼가고, 9명 멤버끼리 나누고, 또 계약조건이 대부분다 7:3일거라 3으로는 손익분기점 넘기기 힘들 거야. 아무리 우리가 행사 많이 뛰고 있다고 해도 멤버가 9명이다 보니 1년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기 힘들 거야.
운이 좋으면 다음 싱글과 베스트앨범내고 행사에 CF 또 물어오면 그제야 다들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을걸.
일단 여기서 너에게 강조하고 싶은 건, 네가 MSM과 한 계약은 진짜 좋은 계약이라는 거야. 중견 배우급의 계약으로 6:4인데, 네가 6이니 신인 아이돌에게는 불가능한 계약이야. 그러니 될 수 있으면 다른 멤버들에게는 네 계약조건을 이야길 하면 안 돼. 기분 나빠할수 있어.
아마 너 다음으로는 아티스트 위주의 기획사라서 표준계약서를 잘 지키고 있는 게놈프로젝트의 대현이가 좋은 계약일 거고.
다른 애들은 실제 정산에서 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가 없어.”
“전 그래서 원래부터 MSM에 오고 싶었어요.
SM맨이라 불러주십시오. 하하하
그나저나 형들은 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정산을 받는 길이 참 멀고도 험하네요.”
“그래서 다들 God MSM이라고 하는 거야.
1년에 2번 정산해주고, 정산에 대해서 왜 이 금액인지 브리핑해주고 어떤 곳에 비용이 사용되었는지 일일이 영수증 증빙해서 다 알려주는 곳은 진짜 몇 없어.
더구나 넌 계약조건 자체가 6:4이니, 아마 엔오원 활동 끝나고 나면 너는 영 앤 리치(young and rich)가 되어 있을 거다.”
**
“자 아~” “후후~ 아~” “마시쩌요?”
“컷! 오케이! 소원이는 혀짧은 애교 연기도 잘하네. 애교 많은 성격이었구나.
이제는 밥을 싸는 거 클로즈업하고, 젓가락으로 싼 김밥을 앞에 앉아 있는 연서랑 주예의 밥 위에 올려주면서 찡긋거리는 윙크 해주면 돼요. 처음은 왼쪽 눈 윙크로. 그리고 윙크는 최대한 느끼하게 천천히 하는 거로. 자! 가봅시다. 테이크 원!”
선비 김의 CF라고 해서 당연히 예전처럼 맛있다고 김에 밥을 싸먹는 먹방 스타일로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 반대로 내가 밥을 싸서 애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먹여주는 컨셉이었다. 지금도 내가 싸준 김밥을 애들이 맛있게 먹는 내용이었다.
아이돌 캠프에서는 프로그램 내에서 CF 출연권을 두고 경쟁미션을 통해 3명이 뽑혔다고 했다.
다행히 그 뽑힌 3명 중에 우리 회사인 은채가 끼어 있었다.
CF 촬영을 위해 메이크업을 제대로 한 은채는 확실히 고급스러운 배우의 이미지가 컸다. 키도 크고 골반이 크다 보니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은채에 반해서 같이 뽑힌 장연서는 ‘커요미’라 불렸는데, 중3인데도 키가 168이다 보니 붙은 별명이라고 했다.
‘키 큰 귀요미’라 불릴 정도로 애교가 많아서 장연서라는 이 아이가 아이돌 캠프의 마스코트라고 했다.
“윤소원 선배님. 밥을 조금만 싸서 주시면 안 될까요? 밥양이 너무 많아서 입에 넣고 멘트를 하기가 힘이 들어요.”
“어어 그래, 조금만 싸줄게. 연서 너도 밥양을 줄일까?”
“네, 선배님 저도 밥양을 좀 줄여주세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연서와 나란히 내 앞에 앉아 있는 최주예는 흰 피부에 포니테일 머리스타일을 했는데, 고1이고 울산에서 프로그램 때문에 올라왔다고 했다.
뭔가 샤프하고 차가운 느낌의 서울 깍쟁이 같은 느낌이었는데, 울산에서 왔다고 해서 특이했다.
다시 내가 애들에게 김에 밥을 싸서 밥그릇에 한 개씩 올려주곤 내가 먹으려고 할 때 내 뒤에서 은채가 튀어나와서 김밥을 뺏어 먹었다.
“오케이 좋네. 은채랑은 같은 회사에 같은 반이라 그런지 친구 같은 느낌이라 더 좋은데.
뺏어 먹는 부분 클로즈 촬영 한 번만 더 할게요.
연서랑, 주예는 먹는걸 안 찍으니깐 밥 위에 올려지는 거 안 먹어도 돼.
자 테이크 쓰리!”
다시 밥을 잘 싸서 올려주고 먹으려는데 내 밥을 뺏어서 먹으며 헤헤 거리는 은채의 모습이 진짜 친구들끼리 뺏어 먹는 느낌이 들어서 자연스러웠다.
“오케이 촬영 끝! 다들 수고했어요. 은채는 배우 지망하는 연습생이다 보니 확실히 배우라는 느낌이 나서 좋네. NG 없이 너무 빨리 촬영이 끝났어.
저번 소원이 단독 촬영했을 때는 몰랐는데, MSM은 확실히 비쥬얼 중시한다는 게 느껴지네.
4명 모두 오늘 정말 잘해줬어. 덕분에 우리들이 일찍들 집에 가겠네. 다들 발걸음이 가벼워 하하.”
“헉, 감독님 너무 빨리 끝난 거 아니에요? 저 선비 김 촬영이라고 해서 밥도 안 먹고 왔는데, 제가 먹는 것도 없이 전부다 싸주기만 하고. 이 밥이랑 해서 먹고 가면 안 될까요?”
“하하하. 먹고 싶으면 먹고 가. 촬영이 일찍 끝나서 준비한 밥이랑 김, 반찬들도 그대로 있어.
아니다, 잠시만!!! 모두 스톱! 다시 촬영가자.
야외 테라스로 식탁 옮기고, 반찬이랑 먹을 수 있는 거 풀 세팅해.
번외편 하나 가자.
그냥, 너희 4명이 테라스 식탁에 앉아서 진짜 식사를 한번 해봐.
도촬 스타일의 먹방 한번 가자.
1번은 소원이 잡고, 2번은 은채, 3번은 연서, 4번은 주예 클로즈 잡고 진짜 애들끼리 식사하는걸 롱테이크로 한 번 가자.”
원래 정해진 콘티대로 촬영은 다 끝났지만, 감독님의 변덕에 모든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테라스에 있어 보이는 식탁이 세팅 되었다.
“일단 소원이 빠지고, 은채랑 애들 3명이 한 명씩 식탁으로 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밥을 먹고 있어. 될 수 있으면 굳은 표정으로 무표정하게 먹어.
그리고 소원이가 쭈뼛거리면서 선비 김을 들고 식탁에 가서 같이 김봉지 뜯어서 애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그냥 밥을 같이 먹는 거야.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먹다가, 선비 김이 오니 그제야 웃으면서 즐겁게 대화하고 밥 먹는 거로, 무슨 말이지 알겠지? 대화는 녹음되지 않으니깐 아무 말이나 하면서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그런 액션을 한번 취해봐.
컷 없이 그대로 풀 테이크로 간다. 레디! 액션!”
급하게 정해진 컨셉촬영이었지만, 어려운 게 아니다 보니, 감독의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촬영이 이루어졌다.
“감독님은 김 하나에 이렇게 식탁 분위기가 즐겁게 바뀔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으신가 보다. 너희 아까처럼 김 싸줄까?”
“그래, 한 번씩만 싸줘 봐.”
“은채 너한테 한 이야기 아니거든요. 우리 귀엽고 이쁜 연서랑 주예한테 한 이야기거든요. 넌 친구라면 이번엔 네가 김에 밥 싸서 좀 줘봐라. 나도 좀 남이 싸준 거 받아 먹어보자.”
“선배님 그럼, 제가 싸드릴까요? 전 언니밖에 없어서 소원이 오빠 같은 친오빠가 있었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거든요. 헤헤.”
“이야 연서는 이름 가지고 하는 펀치 라인을 이렇게 자연스레 치는구나.
연서가 싸준다면 땡큐지. 어 그래, 잘 먹을게. 캬! 연서가 싸준 건 더 맛있는 거 같다.
그리고, 선배라고 부르면 거리감 느껴지잖아. 그냥 오빠라고 불러.
주예도 마찬가지로 선배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울산이면 우리가 남이 아이다아이가~”
“아, 중학생 때 아버지 회사 때문에 서울에서 울산으로 간 거라 사투리를 잘 몰라요. 죄송해요.”
“그래? 아깝다. 오빠야~ 하는 거 시켜보려고 했는데.”
“내가 해줄까? 오빠야~ 밥 마이 묵었나? 어때 부산 억양 같지? 연기 스쿨에서 사투리도 가르쳐 주길래 거기서 배운 건데.”
“달라 달라, 부산 사투리가 아니라, 그냥 방송에 쓰이는 경남 사투리 느낌이 너무 난다. 은채 너는 부산 사투리 쓰려면 부산 유학 다녀와야 할 듯. 연기스쿨이 만능이 아니네.
아, 그리고 다음에 또 CF를 아이돌 캠프랑 같이 찍는 게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는 둘 다 오빠로 불러줘 알았지? 그래야 형들을 놀리고 해서 재미있는 분량을 뽑을 수 있을 거야.”
“네 오빠.”
“이야 여자 3명이랑 같이 밥 먹으니깐 진짜 밥맛이 꿀맛이네.
선비 김 레알 밥 도둑!”
**
“박 작가 이번 애도 영 아니지?”
“네, 뭔가 팍 와 닿는 게 없네요. 다음 오디션 참가자 들여보내 주세요.”
“저 감독님, 작가님 방금 그 배우가 마지막 오디션 참가자였습니다.”
“그래요? 흠. 이러면 오디션을 다시 봐야 할 것 같은데..오늘 본 14명 중에서 제대로 하는 배우가 한 명도 없던데. 차선으로 꼽을만한 사람도 없어요.”
“아놔, 20대 초반 남자 배우 중에 고향이 부산인 애들은 많은데, 왜 진짜 부산 사투리를 하는 배우는 없는 거냐?
부산 출신이라는 애들도 왜 이렇게 제대로 사투리를 못해?
사투리 자신 있다는 배우들 보면 다 비슷한 사투리 어투에, 액터스쿨에서 가르치는 굳은 사투리밖에 못 하고. 진짜 생동감 있는 사투리 하는 배우가 이리 없냐.”
“서울에 올라오면서 교정을 한다고 다 잃어 버린 거겠죠.
더구나, 우린 20대 초반 배우를 원하는데, 연륜이라도 있으면 어떻게든 사투리를 들은 게 많아서 커버가 되는데, 아직 그게 없는 20대 배우들이라 그게 안 되네요. 이러면 다음 주에 부산에 직접 가서 극단 애들을 한번 오디션 볼까요?”
“이번 주 내로 안 구해지면 다음 주에 부산 직접 가야지 뭐 별수 있나.
그런데, 사투리를 서울에 와서 교정을 한 것도 있지만, 이젠 부산 진구, 동래구 본토 사투리를 쓰는 사람들 자체가 줄어든 것도 있겠지.
진짜 할머니나 할아버지 밑에서 커서 일본말 같은 부산 사투리를 하는 배우가 필요한데. 에휴. 너희도 다들 알아봐봐.”
“아 피디님 연기 안 해본 아이돌도 됩니까?”
“아이돌? 사투리 잘해? 진짜 부산 사투리야?”
“사투리 쓰는 영상이 있는데 제가 보기엔 이제껏 부산 사투리 잘한다고 오디션 온 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제일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였습니다.
잠시만요...아 여기 영상 있네요. 한번 보시죠.”
[“어무이~ 제가 부산의 아들입니데이~! 아들 한번 보러와 주이소~! 해운대 벡스코에서 8시입니데이.”
“아이고, 내 저런 잘생긴 아들 없는데, 자들 누고? 연예인이가?”
“어무이~ 해운대에서 잃아버린 큰아들 꼭 찾으러 오이소! 해운대 벡스코 저녁 8시입니데이~ 꼭 찾으러 오이소이~ 어무이 알라뷰~
잘생긴 삼촌~! 아재요~ 윽시로 잘생긴 삼촌~! 해운대에 조카 보러 오이소~ 저녁 8시에 벡스코 입니데이~ 잘생긴 삼촌은 꼭 와야 합니데이~”]
조연출 중 한 명이 태블릿으로 보여주는 영상은 게릴라 콘서트 홍보를 위해 용달차에 올라 부산시민들에게 사투리로 이야길 하는 영상이었다.
길거리에서 보이는 엄마 또래에는 무조건 어무이로 드립을 치고, 아빠 또래에는 또 무조건 삼촌, 아재로 웃으며 사투리를 하는 윤소원이 보였다.
“얘가 아이돌이야?”
“네.”
“이 애 잡아와.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