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전설의 명곡. (2)
원희 누나가 봐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오선지를 들여다보는데, 적힌 내용이 낯이 익었다.
“제목이 ‘Your Dream Is Special’이네요.”
빨간 펀치의 정규 2집에 수록되는 곡으로 전생에서 대박을 친 곡이었다.
실제 앨범에 실렸던 제목은 영어가 아닌 한글로 ‘네 꿈은 특별해!’ 라는 제목이었다.
20대 젊은이들의 애환을 젊은이들의 언어로 잘 대변했다고 해서 폭발적인 인기와 더불어 자양강장제 CF의 배경음악으로도 쓰였었다.
이후에는 젊은이들을 위로해주는 방송 프로그램마다 시도 때도 없이 나왔기에 나도 노래의 가사라든지 리듬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이 노래가 히트를 하게 되면서, 원래부터 고장이 나 있던 빨간 펀치 2명의 목은 회생 불능상태가 되어버렸는지 장기간 활동을 하지 못했다.
결국,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오지만, 목소리 톤 자체가 변해버려서 자기들이 불렀던 원곡을 제대로 부르지 못하게 되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누나 이 부사를 좀 바꿀게요. 여기도 그렇고. 아! 제가 적는 건 빨간색으로 적어둘게요.”
병실이 좁아 제대로 할 때가 없어서 병원 복도 벽에 기대 오선지를 들고는 예전 기억과 좀 다른 부분의 단어나 가사를 수정했고, 리듬도 다르게 되어 있는 걸 예전 기억에 맞게 수정을 해주었다.
“소원아, 너 작곡도 공부했었어?”
“따로 공부는 무슨, 그냥 대충 어깨너머로 아는 거죠. 하하하”
내가 수정한 걸 대현 형이 들고 가선 웅얼웅얼하더니 금방 연습한 것처럼 노래를 나직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근사한 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 바라볼 수 없는 멋진 꿈.
그런 꿈이 싫다는 게 아니야, 다들 좋은 꿈을 꾸고 싶을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알 수 없는 이 순간.
꿈만 보고 가기엔 우리 앞에 놓인 꿈이 너무 가벼울 뿐....
...거짓말 같지만
네가 가진 작은 꿈도 소중해.
네가 가진 작은 꿈도 특별해.
빙글빙글 도는 세상에서 작은 꿈도 괜찮아. 그걸로 충분해!]
노래를 듣고 있던 태평형, 준영형은 물론이고, 이 노래를 만든 빨간 펀치의 원희 누나도 정말 마음에 드는지 박수를 쳤다.
“오~역시 대현이가 싱어송라이터라서 다르네. 바로 보고 이렇게 멋지게 부르다니. 멋진데.”
“노래 좋다. 가사도 좋고, 바로 녹음해도 되겠다. 빨간 펀치의 밝은 여자 목소리라면 톡쏘는 감성도 있을 것 같고. 이거 전설의 명곡이 방금 만들어 진거 아냐?”
“10분 만에 가사 편집하고 리듬 변경한 거로 완전히 새로운 곡이 된 거 같다고 소원이 대단하다고 원희도 글을 적네. 목이 아파서 직접 불러보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는데.”
“하하하. 저의 천재성이 이제 서서히 드러나는 거죠. 노래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누나들은 바로 녹음하면 안 되고, 성대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그때 천천히 녹음하세요. 가수 1~2년 할 거도 아니잖아요.
어떻게든 히트곡 하나로 우리 몇십 년 해먹어야죠. 하하.”
우스갯소리처럼 천재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길 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음악적으로 재능이 없어도 사람들을 속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전생의 히트곡 노래 전곡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유명한 노래의 킬링파트는 입에 붙은 것처럼 다 기억을 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창작은 힘들겠지만, 미래에 히트했던 노래를 대부분 알고 있고, 그 노래가 발표되기 전에 접할 수만 있다면 편곡 부분에서 확실히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 뛰어난 편곡자는 지금의 내 능력으로도 가능해.’
그러다, 눈앞에 있는 대현형과 빨간 펀치 누나들이 보였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요즘 트랜드는 개인 단독 창작보단 집단 창작을 오히려 더 우대해주고 있었다.
팀 단위작업은 창작자의 독창성이 빛을 발해야 하는 분야이면서도, 너무 튀지 않는 적절한 대중성을 가져야 하는 대중가요계에 가장 어울리는 작업 방식이었다.
일례로 요즘 차트 상위의 곡들을 살펴보면 작사가팀, 작곡가팀으로 뭉쳐서 작업을 하는 특이한 이름의 집단 창작팀들의 곡이 대부분이었다.
신당동 호랑이나 이단돌려차기 같은 창작자는 개인이 아니라 2~3명 혹은 6~8명으로 이루어진 팀이었고, 그들이 뭉쳐 만들어 내는 시너지 효과 때문인지 발표하는 곡마다 차트를 호령하고 있었다.
이런, 창작팀을 내가 만들어 곡을 만든다면 히트곡을 대충 기억하고 있는 내 약점을 다른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단편적으로만 미래의 히트곡을 알고 있기에 히트곡 선점에 대해서 생각만 해두고, 제대로 된 시도를 해보지 못했는데, 이 팀 방식이라면 선점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힘만으로도 히트곡을 몇 곡이나 만들어 내는 빨간 펀치라는 2명의 재능있는 아티스트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고, 여기엔 없지만, 미래에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있는 작곡가들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싱어송라이터인 대현형도 있으니 꽤나 괜찮은 팀 구성이 될 것 같았다.
이 창작 집단을 만드는 것도 먼저 준비해둬야 할 게 있다 보니,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연습실 일정 때문에 병문안을 끝내고, 연습실로 오니, 우리의 다음 신곡도 나와 있었다.
“이번 신곡은 더블타이틀로 진행할 예정이야. 일단 들어봐.”
기봉이 형은 다른 일 때문에 없었기에 다른 매니저분이 가이드 보컬의 목소리로 녹음된 노래 2곡을 들려줬다.
“첫 번째 곡은 ‘Pink Heart’라는 곡으로 빛처럼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핑크빛 마음이 되어 다가갈 수밖에 없다는 걸 나타내는 노래야.
어떻게 보면 팬들을 위한 마음이기도 하고, 팬들이 엔오원을 보며 느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기도 해.”
[...우리 만남의 판타지~
내 앞에 네가 나타난 그 순간,
핑크 핑크로 모두 물들어 버려~
널 원해 오예~ 아우우~~...]
“두 번째 곡은 ‘Moon Light’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실어 달빛으로 마음을 전해주는 빛을 비추어 주길 바라는 노래야.
달빛이 비춰 주는 밝은 길을 엔오원과 팬들이 같이 걸어 가자는 걸 나타내는 노래야.”
[...달빛에 떨려오는 이 감정~!
유일한 떨림의 이 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투명하게 빛나는 빛으로 나를 비춰줘~
너와 나의 거리를 넘어 Moon Light로 이어줘~...]
“자칭 천재 소년 소원이는 이번 신곡 듣고 무슨 감이 오거나 하는 건 없냐?”
“전혀 감은 안 오는데요. 하지만, 귀에 잘 들어오는 거 같긴 해요.”
장난처럼 웃으며 대현 형이 놀리듯이 물어왔지만, 이 두 곡 모두 전생에서는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이다 보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데뷔곡인 ‘My Love’ 때는 우리 엔오원이란 존재로 인해 원래 없던 노래가 만들어진 것이라 단순히 생각했는데, 오늘 빨간 펀치의 앞으로 히트할 ‘네 꿈은 특별해!’를 보고 오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우리로 인해 달라진 방송과 노래, 데뷔 인원, 그로 인한 나비효과를 생각해보니 내가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확실한 게 아니었다.
원래는 없는 곡이었던 우리의 신곡이 대박이 날 수가 있고, 그 반대로 원래 대 히트했던, ‘네 꿈은 특별해!’ 가 쪽박을 찰 수도 있었다.
알고 있는 미래라고 해도 100% 확신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이드 노래를 듣고 녹음은 다음 주부터, 안무는 안무가들에게서 안무가 나오는 대로 연습을 하기로 했다.
컴백 날짜는 대략 1달~2달 내로 잡기만 하고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는데, 첫 싱글에서 ‘빨간 펀치’같은 가수로 인해 2위만 3주 넘게 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공중파 1위를 위해 대형 가수들의 컴백 일정을 확인해서 컴백 날짜를 확정하기로 했다.
*
*
“네 두 번째 무대입니다.
오늘 ‘전설의 명곡’ 두 번째 무대는 과연 어떤 분들이 꾸며줄지, 이름 공을 뽑겠습니다.
자~ 과연 두 번째 무대는 누가~ 오~ 정말 대단한 그룹이죠
새로운 개념의 아이돌로 요즘 최고의 상한가 아이돌 그룹의 멤버입니다.
오늘 출연자분들이 대부분 여자분인데, 이분을 보고 대기실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아이돌 그룹의 남자 멤버가 이수애 선생님의 대표곡인 '애희'로 2번째 무대 꾸밉니다!
바로~ 엔오원의 윤소원군입니다!”
“에? 남자가 ‘애희’를 부른단 말이야? 노래를 그렇게 잘했나?”
“노래를 잘 부른다고 해도 남자가 이 노랠 부르기엔 리스크가 너무 클 건데.”
무대에 올라와 서자, 사회자인 김동협이 질문을 해왔다.
“윤소원군 오늘 출연자 대기실 반응은 어때요?”
“어, 그냥 다 좋았습니다. 누나들이 초코렛도 챙겨주시고, 다들 좋아해 주셨어요.”
“아. 제가 잘못 물어봤네요. 첫 무대를 하신 이하연씨 오늘 대기실 어땠어요?
“연습 때 한번 보긴 봤는데, 오늘 대기실에 들어오니 다들 입이 쩍 벌어지고 난리였죠. 왜 이제 왔냐고, 오시는 길 힘들진 않았는지 다들 안부를 물어봤습니다. 호호호.
전설의 명곡에 가끔 나왔지만, 이런 게스트가 많아져야 여자 출연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그냥 대기실에 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줌마인 저는 좋았습니다. 후후후”
“보세요! 남자든 여자든 다 똑같습니다. 저도 여자 MC 한 명 옆에 세워주세요!!
흠..흠. 자, 그럼 엔오원의 윤소원 군이 태어나기도 전에 발표되어 전설의 명곡이 되어버렸던, ‘애희’를 부릅니다. 보시죠~”
전주가 깔 리기 시작하자 무대 전체에 깔려있던 조명이 줄어들고, 모이며 나만을 위한 핀 조명처럼 모든 조명이 나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트로트를 부른다고, 일부러 복고풍 의상으로 입었는데, 구두까지 흰색인 세미 정장 스타일 옷에 왼쪽 가슴에 자수로 된 핑크색 자수 꽃이 포인트였다. 조명이 모여들자 이 흰색의 옷이 빛을 반사하듯이 광택을 양 사방으로 뿌려댔다.
[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 데...]
“어? 박 PD님 그 선 빼면 인 이어(in-ear)가 다 나가버립니다. 어어?..그렇게 뽑으시면..”
“나도 이게 인이어 선이라는 걸 잘 알아.
이번 출연자들의 무게감이 좀 부족해서 양념 좀 치려고 하는 거야.
2번 카메라! 얼굴 클로즈업! 인이어 안 나와서 당황하는 표정을 잡아봐!
10초 후엔 사운드 음향도 멈추게 할 테니깐 다른 카메라도 잘 잡아!”
“헐, 박 PD님 이거 출연자와는 협의가 안 된 거 아닙니까? 윤소원이 나이도 어리기에 노래를 그냥 중단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 프로그램이 녹화방송이기에 이런 양념 치기가 가능한 거야.
방송에는 당연히 정상적인 녹화를 다시 해서 녹화분으로 나가는 거니깐 안심해.
이런, 녹화 중의 화제가 있어야 기사도 나가고 그걸 보고 시청률이 오르지.
내가 따로 연예부 기자들까지 불렀으니깐 사운드 음향이 나오지 않더라도 다들 당황하지 말고 그대로 녹화 진행해.”
‘윤소원이 노래를 부르다가 당황해서 노랠 중지해 버리거나 방송사고를 내면 나에겐 더 좋지.
일부러 기자들을 부른 이유가 이런 작은 실수에도 어버버 거리며 실수를 하는 아마추어의 순발력을 원한 거니깐.
감히 건방지게 PD를 다 넘기고 국장에게 다이렉트로 줄을 걸려고 하는 애는 미리 밟아줘야지 인지상정이지.’
*
*
‘응? 이건 무슨 일이야.’
인이어가 나오지 않을 때는 그래도 1절을 다 부른 상황이라 이미 부른 감각이 있기에 박자를 놓치거나 하는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리던 음향도 나오지 않는 순간이 오자. 이건 방송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힐끔 악기 세션형들이 있는 곳을 보니 그들도 갑자기 음향이 스피커로 나오지 않자 당황하고 있는 게 보였다.
나도 당황했지만, 전설의 명곡 방송이 녹화방송이라는 게 생각나자 마음이 오히려 편해지고, 무대 위에서 혼자서 노랠 완곡해 본 적도 없으니 그냥 질러보자는 생각도 들었다.
촬영을 하고있는 카메라도 ON 불이 계속 들어와 있었기에 노래를 중지하거나 할 수가 없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 지는가아아아~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에~~]
“오~ 인이어 안나오는거나 사운드 음향이 중지되어도 그대로 덴션을 유지하는데요. 제대로 부동심이 있는데요.”
“오히려, 목소리가 소리를 꽉 채우니깐 더 좋은데요.”
“어..어 그래. 음...자! 마지막 부분이니깐 마이크도 한번 내려보자.”
“에? 마이크도요? 네 알겠습니다. 오늘따라 양념을 과하게 치시는데요.”
<딸깍>
마지막 클라이막스에 접어드는데 갑자기 마이크도 나오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는 생각에 마이크를 들고 있는 손은 물론이고, 양손을 날개처럼 펼치며 최대한 가슴을 크게 열고 배에서부터 쏟아 오르는 소리를 위로 밀어 올렸다.
뚫려있는 목구멍과 성대에 공명시키며 공기를 압축해서 팔세토 창법으로 밀어 올리듯이 숨을 쏟아 내었다.
[...사랑 때문에 침묵해야 할 나는 당신의 남자..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여자요오오~~]
“와! 이거 음향이 다 나갔는데, 어떻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거지?”
“그러게. 마이크도 없이 생 목소리가 무대에서 방청객 끝자리인 여기까지 날아온다고?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지? 미쳤다.”
노래를 마무리하며 고갤 숙여 인사를 하고 재녹화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아무도 다시 녹화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짝짝!><짝짝짝!> <와~><대박이다!>
“윤소원이라고? 나 소름 돋았어. 끝에 그 막 가성처럼 올라가는데, 지리는줄 알았다. 왜 이렇게 노래 잘하는 애가 아이돌이야?”
“끝에 팍~ 올라가는 그게 난 영화 파리넬리의 그 목소리 같더라. 핵 소름!”
“향년 33세 쓰디쓴 남자 인생에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니. 노래 실력에 진짜 빠졌다. 나도 모르게 일어서서 박수를 치게 만드는구나.”
재녹화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방청객에서 박수가 쏟아지자, 양 사방으로 인사를 하기 바빴다. 방청객으로 와 있던 엔오원 멤버들도 기립박수를 치고 있는게 보였다.
“저, 박 PD님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뭘 어떻게 해? 재녹화해야지.”
“그냥 날리기엔 너무 대단한 무대였는데요. 저기 보세요. 오늘의 주인공인 ‘이수애’ 선생님도 일어나셔서 박수 치시는데요. 이거 그냥 날리기엔 너무 아까운데요.”
“쓸데없는 소리 닥치고, 재녹화한다고 이야기해, 이번엔 양념 없이 그대로 진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