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전설의 명곡. (1) - 4권 시작.
‘오호라,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런데, 윤소원이란 애가 노래를 잘 불렀었나?
빨간 펀치 애들이 추천하는 걸 보면 노래를 꽤 할 것 같기는 한데.
하지만, ‘애희’ 라는 노래 자체가 여자음성으로 불러야지 제대로 그 감정이 전달되는 노래인데, 고등학교 남자애가 그런 감정을 알고는 있을까?
아니지 아니야, 지금 빨간 펀치 애들이 목 때문에 출연이 안 된다면, 시청률을 위해서 엔오원의 윤소원이 꽤 괜찮은 선택일 수도 있겠어.
남자 아이돌인 윤소원이 ‘애희’를 부른다고 홍보를 하면 오히려 흥행은 빨간 펀치보다 더 좋을 것 같은데.
거기다 출연을 시키고 약간의 양념만 내가 칠해주면 우리에겐 더 좋은 결과가 나올수도 있겠네.’
"그런데, 윤소원은 시간일정이 맞는다고 합니까? 세션들과 연습해야 하는 시간과 녹화를 위해서는 며칠을 빼야 할 텐데. 거기도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라서 일정 조절이 힘들 것 같은데.
더구나, 지금 남인철 매니저를 보니 서로 이야길 해서 확정이 난 것도 아닌 것 같고. 애들끼리만 연락하는거 같은데, 이거 픽스 난거 확실해요?"
"카톡으로 채연이와 이야길 했는데, 녹화가 목요일 오후라서 시간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내일까지 제가 MSM쪽하고 이야길 해서 박 PD님께 확정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귀찮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럼 픽스나면 그쪽 담당 매니저와 내일 중으로 한번 들어오라고 하세요. 녹화가 보름도 안 남아서 일 진행 빨리해야 하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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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네가 대표야? 왜 네 마음대로 스케줄을 취소하고 지랄이야.
위약금은? 네가 다 책임질 거야? 이게 잘한다고 하니깐 이젠 똥을 싸고 자빠져있네. 의사가 약만 먹으면 된다고 했는데, 왜 네가 나서서 애들 입원시키고, 스케줄을 다 취소하냐고? 어?”
“사장님. 다른 병원 가보니깐 안정을 위해 입원해서 매일 성대를 관찰해야 할 정도랍니다.
빨간 펀치로 1년 동안 굴려서 빨리 벌고 끝낼 거 아니지 않습니까?
애들 목 관리해서 길게 보면 안 되겠습니까?”
“이 새끼 이거 진짜 안 되겠네. 네가 사장이야? 네가 신이야? 다음 곡이 무조건 뜬다고 너 장담할 수 있어? 어?
이번 노래를 끝으로 히트곡 못 나오면 미래가 어디 있어?
데뷔곡에서 히트하고 나서 그 이후 빌빌거리다 끝나는 가수가 한둘이야?
벌 수 있을 때, 히트곡이 있을 때, 불러줄 때 가서 돈 벌어야 하는 게 이 바닥이야. 내일이 어디 있어?
이박사 봐. 그렇게 대박을 치고 나서 지금은 뭐 하는지 너도 알잖아?
밤무대도 안 불러줘서 이제 끼니 걱정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런 돈 되는 행사 스케줄을 마음대로 취소해? 더구나, 나 몰래 성대 문제로 입원한다고 기사까지 다 뿌리고?
너같이 사장 잡아먹는 새끼는 이제 필요 없으니깐 다른데 알아봐. 내일부터 나오지 마. 인마! 꺼져!”
“예 예. 알겠습니다. 저도 이제 한계입니다. 전설의 명곡 출연하는 거 토스해주곤 일 끝내겠습니다. 저도 이제 이 바닥 신물이 나서 더는 못 있겠습니다.
서로를 위해서 우리, 다시는 보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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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펀치의 채연누나가 카톡으로 알려준 ‘전설의 명곡’ 일을 기봉이 형에게 이야기하자, 더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OK를 했다.
“다른 스케줄이 있어도 빼야지. ‘전설의 명곡’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10%가 안 되지만, 프로그램이 방영하는 시간이 토요일 저녁 6시야. 프라임 타임중에서도 최고의 시간이지.
가족들이 다 같이 보는 프로그램이라 화제성이나 이름을 알리기에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야.
거기다, 가창력 자체가 없으면 출연도 힘들고, 아이돌의 경우에는 아이돌 특집을 하지 않는 이상 섭외연락도 오지 않는 프로그램이야.
매번 음악 방송에서 빨간 펀치 앵콜송까지 다 듣고 무대 내려오고 하더니 그렇게 친분을 만든 거야? 따로 몰래 둘이서 만나고 하는 건 없지? 혹시라도 그렇게 될 것 같으면, 미리 이야길 해야 한다. 알았지?
그런데, 너 ‘이수애’ 선생님의 ‘애희’를 불러야 한다는데, 너 그 노래는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죠. 제 개인기 아시잖아요. 트로트를 성악처럼 부르기. 그거 연습하면서 애희도 많이 불러봤어요. 옛날 노래지만 잘 알고 있어요.”
“개인기용으로 쓰는 트로트랑은 다르지. 1990년에 나온 노래에, 이수애 선생님 인생에서 ‘동행열차’와 더불어서 최고의 히트곡이야.
‘애희’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꺾으면서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고 그해 가요대상까지 탄 진짜 전설의 명곡이야.
개인기로 웃음을 주기 위한 트로트처럼 부르게 되면 엄청나게 욕 들을 거야.”
“그 정도는 저도 잘 알죠. 걱정하지 마세요. 빨간 펀치 채연누나한테 이야길 들었을 때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머리에 이미 다 떠올랐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한번 믿어보세요!
아, 저기에 빨간 펀치 남인철 매니저님 계시네요.”
사실 전생에서 빨간 펀치는 목을 혹사해가면서 무대에 올라 ‘애희’를 불렀었다. 하지만, 곡 자체가 가지는 원래의 색깔과 빨간 펀치 특유의 색이 잘 어울리지 못했기에 아무런 화제도 없이 그냥 사라졌었다.
그러다 ‘전설의 명곡’ 이후 시간이 흘러 다른 프로그램에서 이수애의 ‘애희’를 불러 화제가 되었던 가수와 그때 불렀던 곡의 느낌을 다행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계획은 머릿속에서 차곡차곡 만들어지고 있었다.
남인철 매니저는 차에 오르자마자 어떻게 내가 빨간 펀치를 대신해 출연하게 되었는지와, 지금의 상황을 설명해 줬다.
“네? 그럼 남인철 매니저님은 이제 일 그만두시는 겁니까?”
“네, 지금 박 PD님과 연결해 주곤 이쪽 완전히 뜨려고요. 이젠 이쪽 계통 특유의 더러운 곤조와 잘못된 관습들에 진절머리가 나서 못 있겠습니다.
저도 큰 회사에서 처음 일을 배웠어야 했는데, 진짜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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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연습시간과 세션들 시간은 대충 다잡은 것 같고, 맞춰야 할 문제들은 다 해결이 된 것 같네요.
그런데, 진짜 윤소원군이 고등학생인데 자기 나이보다 더 오래된 25년이 넘은 노래를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섭외에 응한 것 맞아요?”
“네 박 PD님 지금 여기서 노래를 들려드리기엔 좀 그렇고, 이틀 후 첫 연습 때 한번 들어보시면 알 겁니다.
원래부터 트로트 쪽으로도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옆에서 보고 있으니 기봉이 형은 내가 부르는 ‘애희’를 들어본 적도 없으면서 호언장담을 하고 있었다.
“그럼 다행이고, 이 바닥 뜬다는 남 매니저도 고생했어요.
뭐 다음에 좋은 이유로 다시 방송국에서 만나길 기대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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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오늘은 울고 싶어라...
세월의 강 넘어 우리 사랑은
눈물 속에 흔들리는 데...]
“오, 이렇게 미성이었어? 변성기 다 지난 것 같은데도 스윗하네.”
“의외인데요. 예전에 나왔던 아이돌 정도 수준이겠다 싶었는데, 목소리 결이 솜털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열리다가, 부드러운 느낌 위에 울림이 묻어나네요.
발성이 성악 발성 같기도 하고, 트로트 발성 같기도 하고, 크로스 오버 스타일인데 과하지도 않고, 좋네요.”
“그렇지? 이러면 세션 설 맛이 나지. 오랜만에 제대로 된 남자 보컬 뒤에서 연주해보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 지는가아아아~
그대 등 뒤에 서면~ 내 눈은 젖어드는데에~~
...
그리고 추억이 있는 한 당신은 나의 여자요오오~~]
“이 부분은 전성기 때 김경환이나 조건우 느낌이야.
우오~ 부드럽게 쫙~ 올라가서 계단 내려오듯이 흘러서 내려오는 기교도 좋다. 난 빨간 펀치 애들보다 더 좋은데.”
“이 편곡도 직접 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애를 대타로 세워주고 갔네요. 요즘 아이돌들 수준이 이 정도라면 가요계가 재미있겠는데요.”
“고등학생 감성이 아니야! 녹화 날 이수애 선생님 평가가 기대되는데.”
“안 그래도 ‘애희’를 부르기로 한 빨간 펀치 대신에 남자 아이돌 가수가 한다는 소리를 듣고는 엄청 실망하셨다고 했거든요, 과연 이 노래 듣게 되시면 어떻게 이야기하실지 궁금하네요. 노래 끝났다. 박수~!”
“와아~~ 오빠 멋져요~!” “오빠 끝내줬어요~!”
“아유, 형님들이 오빠라고 하시니깐 무서워요. 이 정도 무대면 망신은 안 당하겠지요?”
“당연하지. 박 PD님은 너 못 믿겠다고, 막 걱정하시던데, 음악 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보컬 좋다는 밴드들 다 뒤져봐도 소원이 정도의 보컬을 찾기 힘들 걸. 부드러우면서 굴곡이 살아있는 목소리 톤도 참 좋아.”
“칭찬 감사합니다. 그럼 한 번만 더하고, 연습 끝내는 거로 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한 번만 더 가고 마칩시다. 방송용으로 사용할 소스 촬영은 다 했지? 오케이. 그럼 연습 마지막 곡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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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소원이 다시 봤다. 회사의 댄스 스쿨 선생님들은 그냥 연습생 평균 정도라고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칭찬을 거의 안 했는데, 보컬 스쿨 선생님들은 너 칭찬을 엄청 했거든.
난 그래서 댄스에 비해서 노래는 그냥 좀 부르나 싶었었다. 그런데, 오늘 들어보니깐 보컬 스쿨 선생님들이 칭찬하는 이유가 있었네.
어떻게 팝페라 같은 창법으로 트로트를 이렇게 땡겨 부르냐?
거기다 편곡도 직접 했다며? 행사랑 다른 스케줄도 하면서 편곡할 시간이 어떻게 난 거야. 대단하다.”
“하하하. 보컬 선생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는 건 진짜 잘하니깐 칭찬을 하는 거죠.
그리고, 애희 노래는 이미 많은 분이 리메이크도 했고 해서 편곡 소스가 많거든요. 그걸 팝페라처럼 살짝 바꾼 거밖에 없어요. 창법은 프로듀스99에서 트로트 가수 김윤빈 선생님한테 배운 팔세토 창법을 살짝 변형한 거고요.
“김윤빈씨한테도 배우고, 확실히 넌 프로듀스99에서 제대로 용이 된 거다.
사실, 네가 빨간 펀치 연락받고 무턱대고 ‘전설의 명곡’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진짜 걱정을 많이 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잘하다니. 이제 노래 때문에 못 받은 행사 같은 게 있으면 무조건 다 받아 오마.
화제성과 이런 보컬 실력이라면 어디서 무슨 행사를 하든 다 좋아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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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아!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혼자 전설의 명곡 나간다면서?
난 진짜 너를 내 친동생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형을 빼고 혼자서 나간다니. 정말 이 형은 가슴이 아프구나. 이 형만 너를 친 동생처럼 생각한 거냐? 난 진짜 친동생처럼 너를 생각했는데. 너무 슬프다.”
“앗! 시타형 그 드립 제가 써먹은 거잖아요.”
“이야~ 이거 안 통하네. 드립도 치는 사람이 쳐야 먹히는구나.
그래도 진짜 혼자 방송에 나가는 거 맞잖아.”
“네 그게 사실은....(중략)....이런 사정으로 이렇게 된 거라.”
“흠 빨간 펀치랑 사귀는 건 아니고?”
“전혀 아닙니다. 형님. 엄근진입니다.”
“믿어주겠어. 연애할 시간이 없는 건 우리도 다 아니깐. 그날 우리 스케줄도 없으니깐 방청객으로 응원을 가마. 매니저 형 이야기로는 편곡도 장난 아니게 잘 되었다고 하니깐 기대하마.”
“아, 내일 연습 오기 전에 목 관리받으러 병원 가면서 빨간 펀치 누나들 병문안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있어요?”
“이거 병문안까지는 가는 사이면 진짜 뭔가 있는 거 아니냐?”
“대현 형 진짜 아니에요. 내일 확인시켜 줄 테니 같이 갑시다.”
결국, 내일 병원은 대현형, 태평형, 준영형이 혹처럼 따라가기로 했다.
*
형들과 병문안을 오니 크지 않은 2인실에 빨간 펀치 누나들이 그냥 누워있었는데, 나와 내 뒤를 따라 들어오는 형들을 보더니 눈이 커질 정도로 반가워해 주었다.
누나들에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필담을 하고 있으니 채연이 누나의 언니가 음료와 과일을 내어주었다.
“우리 동생이 데뷔하고 나선 친해진 가수들이 없다길래 설마 했는데, 진짜 병문안을 온 가수는 여러분들이 처음이에요. 이거 좀 더 드세요.”
“그런데,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신인이기에 아는 사람도 없고, 오디션 출신이다 보니 기존 가수들과는 데뷔한 방법이 달라서 친해지기도 좀 모호하고. 그런데, 진짜 3일 넘게 아무도 안 왔어요?”
“매니저님과 대표님은 한 번씩 왔고, 이후로는...”
그러고 보니 1인실 병실의 좋은 병실이 아니라, 단순한 일반 2인실 병실이라 넓지도 않았고, 남자 4명이 들어서자 좁아서 앉을 곳도 없을 정도의 좁은 병실이었다.
왠지 제대로 정산도 받지 못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기 앨범을 들고 왔는데, 사인 좀.. TO. 대현 오빠라고도 좀.. 오~ 하트까지 해주시고 감사합니다. 헤헤”
“응? 그런데, 원희누나 혹시 이거 혹시 신곡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곡 좀 봐도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