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더 콜업?
“뭐?! 윤소원 이거 미친거 아냐?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KBC 예능국장한테 ‘음악축제’ 방송에 출연시켜 달라고 들이대는 또라이가 어디에 있어?
매니지 하라고 보낸 김기봉인가 하는 애는 뭐했데?”
“그..그게 현장에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돌겠네. 어쩐지 이름이 맨발의 기봉이랑 같더라니, 매니저도 기봉이같이 멍청한 걸 붙여두었으니. 환장하겠네.
휴 내일 오전에 내가 KBC에 한 번 들어가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으니 윤소원 그놈도 데리고 와. 같이 가서 사과시켜야겠다.
회사 들어 올 때도 문제를 만들더니, 이놈 완전 트러블 메이커네.”
“그런데, 본부장님 우리 마케팅팀에서 작업한 게 아닌데, 이런 글이 커뮤니티마다 올라오고 있습니다.
엔오원이 케이블 방송 출신이라서, KBC 방송국에선 자기들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방송출연 금지 시켰다고 이런 거도 블랙리스트 아니냐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닌 건 확실해? 우리 말고, 다른 기획사에서 작업을 치는 거야? 이렇게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 더 골치 아파지는데, 가뜩이나 블랙리스트로 시끌벅적한 상태인데.
햐. 내일까지 못 있겠다. 기봉이한테 연락하고 다른 기획사 매니저나 실장들 있으면 스케줄 중이라도 애들 데리고 빨리 KBC 앞으로 오라고 해. 나도 지금 방송국으로 가니깐 본관 앞에서 보자고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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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본부장. 진짜 이거 MSM에서 기획한 거 아니야?”
“권 국장님 우리가 알고 지낸 지 20년입니다. 저 절대 이런 짓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여기 같이 온 매니저들 한테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애들이 즉흥적으로 사고를 친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믿어 달라고 말하는 사람을 제일 못 믿는 거야.
오늘 주차장에서 있었던 일이 인터넷에 올라가면서 출연금지 항의와 함께 진짜 출연금지가 아니라면 게스트로 섭외해 주거나, 신청곡으로 엔오원의 노래를 틀어달라는 연락이 폭증했어.
이건 조직적인 작업이 아니면 힘든 거라는 거 자네도 알잖아.
그런데도, 아니라고 잡아떼고 있으니 이거 참...
좋아, 뭐 한번은 믿어보지.
그리고, 우리도 이런 세력을 좀 이용해야겠어.
내일 있는 ‘음악축제’ 방송에 엔오원 애들 출연시켜.
서 PD한테 미리 이야기해두지. 그리고, 앞으로 음악축제는 물론이고 다른 방송도 출연금지는 없을 거야.”
“저..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대신에 조건이 있어. 회사로 돌아가면 기자들 시켜서 기사 내도록 해.
원래 엔오원이 음악축제에 출연하지 않은 건, 비밀리에 특집방송을 준비 중이었기에 출연하지 않은 거라고 기사 올려.
그 특집방송은 이번에 우리가 만드는 ‘더 콜업’ 오디션 프로그램과의 교류전이라고.”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음악축제 및 KBC 방송의 출연을 허락하는 조건으로 ‘더 콜업’ 프로그램의 홍보를 위해 작은 이벤트를 하자는 거야.
한일 야구처럼 교류전을 하는 거지.
뭐, 먼저 데뷔한 만큼 어느 정도 핸디캡은 있어야 하겠지만, ‘프로듀스99’ 출신인 엔오원과 ‘더 콜업’에서 만들어지는 그룹과의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거야.
‘더 콜업’ 방송 전에 엔오원이 나와서 더 콜업에서 만들어지는 데뷔 팀과 관중동원이든 음반판매든 해서 라이벌로 승부를 겨루겠다고 하는 거지. 어때?”
“어...어. 권 국장님 갑자기 큰 건을 던지시니 바로 확답을 드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이봐 전 본부장. 생각을 해봐.
MSM의 ‘SHOT’이 있었을 때, 대상 프랜차이즈의 ‘클래스 식스’가 같이 치고 나가 줬기 때문에 인기를 더 끈 것도 있어.
그 경쟁 덕분에 아이돌 문화나 관련 사업이 믿기 힘들 정도로 확장했었다고.
어때? 엔오원 대 ‘더 콜업’의 데뷔팀 간의 대결구도.
딱 돈이 되는 냄새가 슬금슬금 나지 않아?
더구나, 엔오원은 기간 한정 데뷔라면서? 1년 지나면 끝이 난다면 1년 안에 돈을 바짝 땡겨야지. 팬들 간에 경쟁이 붙으면 투표경쟁, 응원경쟁, 화환전쟁 등등
관련 산업들까지 덩달아 이득을 보게 되는 거잖아. 정부에서 외치는 창조경제와 딱 맞는 거 아니겠어?”
“들어보니 굉장히 좋은 이야기를 국장님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꽤 긍정적으로 생각되는데, 일단 9개의 기획사가 모여있으니 이야기할 시간을 좀 주십시오.”
“그러지. 그럼 여기서 이야길 해. 내 잠시 나가지.”
“김기봉 대리! 애들 데리고 차에 가 있으세요. 이 부분은 우리들끼리 이야기 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 다른 매니저님들은 사장님들한테 전화해서 한번 이야기를 드리도록 하세요.”
계속 이 건에 대해서 이야길 듣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차로 갈 수밖에 없었다.
“매니저 형 이제껏 아이돌 그룹들이 대 놓고, 경쟁했던 적이 있었어요?”
“처음 데뷔를 했을 때 어그로를 끌기 위해서, ‘실탄 소년단 비켜! 우리가 왔다.’ 같은 자극적인 문구로 홍보하는 것은 있지만, 기획사 측면에서 서로 경쟁을 하며 활동을 하는 그런 경우는 없었어.
사실 이쪽 산업의 특성상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큰 게 공개경쟁이니깐.
은연중에 ‘SHOT’과 ‘클래스 식스’, ‘SESS’와 ‘블루핑크’ 같은 라이벌 구도는 언론에서 부채질하고, 공개방송에서의 기 싸움이 만들어 낸 허구의 라이벌이었고, 이렇게 대 놓고 컨셉을 잡는 건 아마 처음 일 거야.”
“아마도, 우리가 1년이라는 기간 한정된 그룹이니 이런 경쟁 구도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경쟁에서 지든 이기든 끝이 있는 그룹이니.”
민호형의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는 다들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우린 끝이 정해져 있는 그룹이었으니깐.
차에 내려온 지 2시간 가까이 되자, 그제야 사람들이 내려왔는데, 만족스러운 거래가 되었던 것 같았다.
“일단, 국장님이 내건 조건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일부터 KBC의 음악축제는 물론이고, 다른 예능 2개를 더 출연 확정받아 왔다.
세부사항 중에 중요한 건, 약 4~5개월 후 ‘더 콜업’에서 선발된 데뷔 팀과 1박 2일간의 팬 동원 경쟁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는 팀은 바로 해체하는 것으로 파격적인 공약을 걸었다.
우리 엔오원이든 더 콜업에서 선발되는 팀이든 벼랑 끝에 서 있는 아이돌들이라고 방송에서 홍보로 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뭐, KBC에서는 더 콜업 방송 중에 인기가 어중간하면 데뷔 팀을 손절해서 처리하기 쉬운 방법이기도 하고, 만약 인기가 대박이 터진다면 우리라는 경쟁자를 없애는 이득을 볼 수 있겠지.”
“지는 팀이 해체하는 거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가 손해일 것 같은데요.”
“냉정하게 계산해봐. 우리에겐 크게 손해가 없어.
아마도, 더 콜업 프로그램의 선발에 4~5개월, 신곡 준비 등의 준비에 1개월, 그리고 데뷔 후 우리와의 경쟁을 위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2개월이 걸릴 거야.
짧으면 7개월 길면 8개월이야.
만약, 우리가 지게 된다면, 해체 콘서트 2개월 해서 전국투어를 해야지.
그러면 총 10개월 정도의 시간이 들어갈 거야.
우리의 현재 의무활동은 11개월.. 아니 이제 10개월 하고 27일 남았으니 거의 손해 보는게 없다고 봐야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끼리의 그룹대결에서 지는 쪽이 해체된다는 걸 홍보하고, 경쟁 효과로 유명세와 화제성이 확대된다면 충분히 우리에겐 이득인 거지. 어때? 다들 이해가 되는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기면 되는 거야 안 그래? 쉽게 가자.”
‘도박꾼들도 도박에서 이기면 된다고 판돈을 올립니다.’라고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이제 모든 방송국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것과 패배를 하더라고, 실질적인 팀 해체로 인한 손해가 1개월 정도밖에 안 된다고 계산이 나오자 KBC 예능국장과 한 협약이 나름의 좋은 결과물인 것도 같았다.
“그리고, 소원이 넌 앞으로 이런 사고 치지 마라. 봐주는 건 이번 한 번뿐이다. 기봉이 너도 경고다.”
“아 참, 본부장님, MSM에서 인터넷 커뮤니티 작업하신 것 맞죠? 우리 마케팅팀에서 작업 잘 친다고 노하우 좀 공유해 달라고 하는데 좀 알려주십시오.”
“어허, 우리 팀이 진짜 아니라니까. 어디 회사에서 작업을 친 거야?”
기획사 실장들이 서로 자기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할 때, 김기봉 대리와 난 마주 보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KBC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더 콜업’ 프로그램은 우리 프로그램보다 흥행 면에서 떨어졌었고, 거기서 데뷔한 남자팀, 여자팀 모두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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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본부장. 신문 보니깐 KBC에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한 것에, 우리도 한 다리 걸치게 되었더라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네, 회장님 그게....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 이 합의 좋네. 만약 져서 해체하더라도 KBC 쪽에 예능으로 솔로로 꽂아 준다고 하니 차후 개인 활동에는 오히려 더 이득이야.
그런데, 이 대결에서 승리하고 대결 중에 팔리는 매출보고, 1년 한정이 아쉬우면 또 1년 활동 연장하는 것도 다른 기획사와 이야길 해봐.
아마도 팬들은 연장하는 걸 더 좋아 할 거야.”
“네, 팬들은 좋아할 것 같지만, 다른 기획사들은 보유하고 있는 다른 연습생과 팀을 만들어서 그룹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매출이 좀 오른다고 하더라도, 1년 활동이 거의 끝일 것 같습니다.”
“아쉽네. 그건 그렇고, 윤소원이라는 이놈 진짜 똘끼가 있네.
창준이도 미친놈이었는데, 이놈은 더 한 놈인데.
창준이도 방송국 국장을 찾아갈 생각은 못 하는 놈이었는데, 이놈은 그냥 들이받아 버리네.
이런 놈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네. 하하하.
권기호 국장도 이런 놈이 있을 줄은 몰랐을 거야. 대처법을 보면 은퇴할 나이가 된 사람치고는 아직까진 잔머리가 쓸만하군.
이렇게 방송출연 금지 시킨걸 새 프로그램 홍보와 연계해서 홍보하니, 역시 예능국장다워.
권 국장 은퇴하면 뭐 한다고 하는 말 없었어?”
“내 후년이 은퇴하는 시기라 아직 특별한 말은 없습니다.”
“감각이 꽤 좋은 거 같은데, 아마도 하나 차리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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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님 기획사 56곳에서 70팀의 아이돌 멤버들이 지원을 했습니다. 데뷔하고서 방치되다시피 한 애들은 다 나오는 것 같습니다.”
“진짜 아이돌 판이구먼. 기획사에는 데뷔멤버가 되었을 때 계약하는 계약서 다 전달했지? 계약서 관련해서 다른 말은 없고?”
“네, 사실 기획사 대표들과 이야길 해보니, 기획사에서도 못 뜬 애들의 처리에 곤란을 겪고 있더라고요.
더 콜업에 출연해서 뜨기만 하다면 뭐든 된다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정산 비율이나 1년 활동 후 자동 추가 연장계약 부분은 그냥 다 쉽게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래? 흠. 김 사장이 이야기한 게 다 들어 맞네.
김 사장 이렇게 계약을 하면 된 거지?”
“네, 국장님. 우리 GSH 엔터에서 데뷔팀을 매니지 대행하게 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목줄을 잡게 되는 겁니다.
Nnet은 참 멍청하게도 이런 목줄을 그냥 놔주었거든요.
사실 차명 기획사나 마찬가지인 대행사를 사이에 두었다면 그냥 빨대 꽂아두고서 쪽쪽 빨아 먹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나도 내년엔 은퇴야. 김 사장이 내 은퇴자금 두둑이 챙겨줘야 할 거야.”
“아니, 권 국장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은퇴라니요?
당연히 저희 GSH엔터의 대표이사님으로 계속 활동을 하셔야죠. 아직 한창나이이십니다. 가지신 능력을 묻어두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허허허. 그래? 역시 김상현 사장은 참말을 이쁘게 잘해. 그럼 오늘은 참치회로 가볼까?”
“네. 국장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