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윤소원! 일어나야지. 어서 일어나. 안 그럼 지각한다.”
“네에? 매니저 형 무슨 일인데요? 오늘 스케줄 오후 3시부터 아니었어요? 오전에 스케줄 없던데요. 저 4시 넘어서 겨우 잤어요. 지금 7시 반인데.”
“스케줄 오후 3시에 있는 게 맞아. 그런데, 넌 공지가 안 되는 별도 스케줄이 있잖아. 학교 가야지. 어서 일어나. 학교 가자.”
“아, 학교..아 맞네. 생각을 안했네.”
“빨리 씻고 옷 입어. 형들 깨우지 않게 조심하고.”
숙소 이모님이 해준 다이어트 메뉴인 귀리 죽을 급하게 먹고 차에 오르니 그제야 교복을 입고 학교로 가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예술공연고등학교는 학교 자체가 특성화 고등학교이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다니기에, 오전에 등교했다가 활동 문제로 조퇴를 하면 방과 후 학습으로 올려주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출석 일수는 문제가 없을 거야. 그러다 보니 더 연예인이나 지망생들이 몰려.
몇몇 기획사는 일부러 고등학교를 자퇴시켜서 중졸로 공익근무를 하게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우리 MSM은 생각이 좀 달라.
연예인이 한국의 학교생활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거든. 고등학교를 일반인들과 같이 다녔다면 같은 또래의 심경을 잘 알게 되고, 어떤 게 먹히는지를 느낄 수 있거든.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했거나 중,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은 연예인들을 보면 한국의 일반인들과는 사고방식이 많이 달라서 그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어.
그래서 우리 회사는 될 수 있으면 고등학교까지는 꼭 졸업하게 만들어.
대학은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특히나, 어린 나이에 연예인으로 데뷔하면 또래의 친구를 사귈 기회 자체가 없어지니깐 그것도 문제야.
같은 연습생 출신들이 있으니 괜찮다곤 하지만, 사람 관계란 게 안 그렇거든.
사회에선 배울 수 없는 것 중에서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건 학교에서 배워야지. 그래야 그 위 단계로 갈 수 있는 거야.”
“네 매니저 형 알겠어요.”
“이 서류 들고 2층 교무실로 가면 될 거야. 건물 안까진 안 따라가도 되겠지? 이런 일은 직접 할 수 있어야 해. 오전 수업 이후 데리러 올게.”
“네. 다녀오겠습니다.”
*
*
“그래 내가 2-2반 담임인 황기철이다. MSM 소속이구나. 일단 데뷔한 아이돌이니 활동 시기엔 평균적으로 1교시 하고 조퇴를 계속하겠네.
다행히 우리 반에 같은 MSM 소속 정은채랑 이수나가 있으니깐 적응은 빠르겠네. 자 조회시간에 같이 올라가자.”
소속은 MSM이지만 실제 MSM 연습생은 본적이 없다 보니 그 2명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같은 소속사이니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어? 윤소원이다.”
“헉 진짜다. 엔오원이 우리 반에 전학 오는 거야? 대박!”
“조용. 오늘부터 우리 학교로 전학 온 윤소원이다. 뭐 다들 알고 있는 거 같으니 따로 소개는 필요 없겠네.
같은 소속사인 은채랑 수나가 학교 적응하는 거 도와주고, 뭐 이미 데뷔를 했으니 학교는 잘 나오지 않을 거지만 다들 한 반 친구들이니 잘 지내라.
그래도 연예인인데, 전학생 인사는 좀 특별해야겠지? 잘하는 게 노래면 한번 해봐.”
“아. 예. 흠흠.”
이른 아침부터 노래를 시킬 줄 몰랐기에 목도 안 풀었지만, 그래도 노래를 불렀다.
[모자를 눌러쓰고, 눈치를 서로 보며 서로가 어색했던 날.
얇은 옷을 입고 너무 추웠던 날.
여기에 모였던 모두가 타인처럼 보였지만.......
이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격려와 용기죠.
우린 잘하고 있어~
우린 잘하고 있어~
우린 잘하고 있어~
서툴지만,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목을 제대로 풀지 않은 상태로 노래를 부르다 보니 생목 라이브가 되어 버려서 음 이탈을 몇 번이나 할 수밖에 없었다.
“야, 티비서 볼 때는 노래 엄청 잘하던데, 오늘 보니 영 아니네.”
“그러게. 믹싱기계가 만들어 준 가창력인가보다.”
“목을 못 푼 것 같네.”
“그래, 윤소원이는 격려와 용기가 필요하겠네. 저기 빈자리에 앉으면 될 거다. 오늘 청소당번은...”
삑사리를 내다보니 얼굴이 새빨개져서 자리에 앉았다.
“생목이라 어쩔 수 없었던 거지. 난 이지안이야 잘 부탁해.”
“어 그래, 윤소원이야. 그런데 너 어디서 본 거 같아.”
“‘에이스 리스트’ 멤버야.”
“아 NFC 소속의 6인조 아이돌 밴드 맞지? 시타형 폰 사진에서 본 거 같다.”
“어 맞아. 서로 활동 시기만 맞으면 음악방송같이 할 수 있을 거야.
우리처럼 데뷔한 애들은 우리 반에 4명 정도 있고, 연습생도 10여 명 있어.
한 반의 절반이 아이돌 관련이고, 나머지 절반도 연기, 공연, 연출, 안무 같은 다 방송연예 쪽 지망이라 적응은 쉬울 거야.
여긴 오전 수업은 일반 고등학생들처럼 수업받고, 오후는 다들 전공 살려서 댄스, 연기, 연출 같은 수업을 받으러 가게 되어 있어.
그래서 우리가 오전만 수업하고 오후에 활동하러 가도 수업 인정을 받는 거고.
같은 회사 은채랑 수나 오네.”
“네가 윤소원이구나 이야기는 들었어. 내가 수나고 이쪽이 은채야.
일단, 회사에서는 무조건 오전 수업은 잠자지 말고 수업 다 들으라고 한 건 알고 있지?
예전 F&S 그룹의 멤버들이 상해 임시 정부가서 독립운동가 못 알아보고 한 사건 이후로 역사, 세계사 수업은 필기한 거까지 무조건 회사에 제출해야 해. 샘 오신다.”
“어, 고마워.”
이수나는 150cm 정도 되는 작은 키에 올망졸망한 귀여운 애라서 붙임성이 있었고, 170cm는 되어 보이는 정은채는 긴 생머리에 딱 봐도 미인인 얼굴이라서 배우지망인 것 같기도 했다.
연예인이 많이 다니는 공연, 예술 특성화 학교라서 수업이 좀 널찍하긴 했지만, 원래부터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내용을 따라가는 게 조금 힘들었다.
*
*
“매니저 형 같은 반에 이수나, 정은채라는 연습생이 같이 있는데, 둘 다 아이돌 연습생이에요?”
“수나는 아이돌 지망이 맞고, 은채는 배우지망이야. 은채는 이미 영화 몇 편에 나왔을걸.
수나는 데뷔 조에도 아직 들지 못했을 거야. 둘 다 지방파니깐 아마 너랑 같을 거야.”
“지방파요? 지방에서 올라온 연습생들 이야기하는 건가요?”
“그래, 설명하자면, 너도 의무활동이 끝이 나게 되면 연습생 스케줄을 하게 될 건데, 그러면 기숙사가 배정될 거야.
빌라 2동인데, 한 동은 남자 전용, 한 동은 여자 전용으로 빌라 기숙사에 들어가는 연습생은 다 서울 밖에 사는 연습생들이야.
그래서 그냥 지방파라고 불러.
그리고,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왔다 갔다 하는 애들은 수도파라고 연습생들끼리 불러.”
“연습생도 파벌이 있는 거네요?”
“음.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한울타리 안에서 다들 평화로우면 성장이 늦거든. 약간의 경쟁과 마찰로 자극을 줘야 다들 힘을 내서 목표를 향해 뛰지.
홀수달마다 연습생 품평회를 하는데, 그때 서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중에서도 1위에 오르기 위해 다들 힘을 써.
서로 간의 경쟁이 있으니 그게 좀 더 실력을 길러주는 거지.
이 시스템을 이젠 다른 기획사에서도 다 할 거야. 경쟁은 수준을 끌어 올려줘서 상향 평준화를 시켜 버리니깐.”
“하긴, K-POP이 경쟁력 있는 것도 작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키우고 외국에 진출하다 보니 경쟁력이 있는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 그렇게 MSM은 업계최고가 된 거야. 내부에서부터 경쟁을 이기고 올라선 아이돌이니깐. 왜 MSM 출신들이 다 만능이고, 심지어 중도 포기하고 나간 MSM 출신 연습생들도 다른 기획사에 가면 바로 데뷔 조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거야.”
“네. 뭐가 데뷔해도 쉬운 게 없네요.”
“야야, 이제 그걸 알았냐? 너 고생길 열렸어. 오늘 신곡도 나와서 이제 그것도 준비해야 할 거다.”
*
*
“야! 앞에 있는 여자 팬에게 웃어주면서 안아줘야지.!
마치 남자친구가 안아주는 것 같이 웃으면서 안아주란 말이야.
아이돌과 팬은 사실 유사연애라는 감정으로 물질적인 돈과 정신적인 팬질을 끌어들이는 거야.
애초에 아이돌을 물고 빨고 하는 아이돌 시장의 핵심인 덕후들은 현실에서 이성들과의 접점이 낮은 사람들이야.
솔직히 굿즈를 사주고 CD플레이어도 없는데, CD 앨범을 사주는 사람들이
진짜 노래가 좋아서 사주는 사람들이겠냐?
아이돌 음악은 보는 음악인데 CD를 왜 사? 듣지도 않는데.
사인회 당첨권이나 포토카드 뽑고는 그냥 CD는 쌓아두는 게 전부야.
그 사람들은 돈이 썩어 남아도는 사람들이겠냐? 힘들게 돈을 모아서 내가 사랑하는 아이돌을 위해 써주는 거야.
그렇다면 돈 쓰는 팬들에게 유사연애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라고.
그게 팬을 늘리는 핵심 방법이야.
나중에 건방 떤다고 아티스트로 마케팅 노선을 바꾸는 게 아닌 이상 다 팬들의 주머니에서 돈 빼내는 건 마찬가지야.
서비스로 웃음을 보여주고, 안아주면서 호주머니에서 돈을 빼오는 게 너희 일이야.
그러니 이미지 관리가 제일 중요하다고.
이미지 관리에 실패해서 사생활이 노출되어 버린 아이돌에게
유사연애의 감정이 사라져 버리면 아무도 그 아이돌을 안 빨아줘.
빨아 재낄 가치가 없는 아이돌이 되는 거야.
음악성? 개뿔이. 눈앞에 아무리 못생긴 애가 있더라도 웃으면서 진짜 연인처럼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아이돌을 원한다고. 그러니 거울 보면서 더 연습해.
다들 얼굴 표정과 거기서 드러나는 감정이 언제나 웃는 상이 된다면, 핸드폰 제출하는 것도 없애준다.
그만큼 어려운 거야.
그래, 김민호! 역시 잘하네. 이 여자가 내 애인이라는 생각으로 안아줘.
준영이도 잘하고 있어. 그래!”
우리의 첫 싱글이 결정되었는데, 노래 제목이 ‘My Love’ 였다.
그리고, 원래 곡의 엔딩 안무는 혼자서 사람을 안 듯이 포옹을 하는 것인데, 행사나 콘서트에서는 미리 관객에서 9명을 뽑아 진짜 포옹을 해주는 것으로 엔딩 안무가 결정되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연습하는데, 김 실장이 대상 프랜차이즈 전체를 돌며 험상궂게 생긴 남자들을 다 데리고 와서는 엔딩 안무 연습을 시켰다.
험상궂게 생긴 남자를 안으며 여자친구 쳐다보듯이 웃어야 하는 게 참 힘들었다.
“잠시 휴식 타임. 김민호 잠시 나와봐.”
민호 형이 김 실장과 20여 분이나 이야길 하다 들어오고, 그 뒤로는 준영 형을 또 불러서는 한참이나 이야길 하는 게 보였다.
이미 시간이 새벽이라 다른 매니저들이 없어서 그런지 평상시의 김상현 실장과는 느낌이 달랐다.
민호 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뭔가 복잡한 걸 고민하는 표정이라 쉽게 민호 형에게 말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야! 윤소원! 너 이리 나와 인마!”
아까 민호 형과 준영 형과는 완전 다른, 화가 난듯한 말투로 나를 불렀다.
“너 이 새끼야 이거 뭐야? 이 영상 뭐야?”
“네?”
김 실장이 핸드폰을 내밀어서 영상을 보여주는데, 짜증이 확! 났다.
“이 노래 뭐야? 뭐 이렇게 삑싸리가 많아? 어디서 노래 부른거야?”
“어제 학교 전학 갔을 때 찍힌 거 같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연예인이니 노래라도 한국 하라고 해서 불렀습니다.
아침 8시 반이라 목을 못 풀고 부른 거라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럼 이건 학교 친구가 찍어서 올린 거네. 그놈이나 년이 누구인지 찾아내.”
[윤소원 실력 개 거품임. 노래 개 못함]
┗원래 딴따라 아이돌이 다 그렇지. 뭘 기대함?
┗알고 보면 오토튠이 있어야만 노래 부를 수 있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래도 라이브 하는 거 봤을 땐 잘하던데.“
┗MR이었는지도 모르지. 야 그런데, 윤소원 이 영상 말고도 흑역사 영상 또 있음.
┗그 영상은 뭐임? 그 영상도 노래 부르다 삑사리 나서 망하는 거야?
┗아니 밥 먹는 영상인데, 울면서 밥 먹는 영상이야.
링크는 여기 : www.you....
┗야 밥 먹는 거 찍은 이 영상이 더 서프라이즈 하네.
┗미친, 뭔가 병신처럼 밥 먹는데, 김에 밥 싸먹는 게 진짜 맛있어 보인다.
┗눈물 먹방 오지네. 나도 김 싸먹어야지 헤헤.
┗병신 같은 시식 방송에 빨려든다. 크하하
“이 울면서 김 싸먹는 영상은 또 뭐야? 이미 커뮤니티에 다 퍼졌네.”
“아, 가족끼리 찍은 영상인데, 다이어트 하다가 오랜만에 밥을 먹어서 그렇게 울면서 먹었습니다.”
“그럼, 이 동영상은 가족이 올린 거야? 얼씨구, 밥 먹는 영상이 벌써 유튜브 급상승 영상 순위 7위네. 500만 뷰? 미쳤네. 미쳤어.
내가 유튜브를 잘 모르지만, 이 정도면 그냥 이미지 씹창난거야. 너 그냥 탈퇴해라.
눈물 쳐 흘리면서 김에 밥 싸 먹는 병신하고 유사연애 감정 느끼려는 팬이 있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