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최종 데뷔무대.(1)
“햐, 막상 합숙소에서 짐을 빼려고 하니 섭섭하네요.”
“소원이 넌 섭섭하기만 하냐? 난 섭섭함도 있지만, 이 선물들을 어떻게 다 들고 가지 하는 걱정이 더 큰데. 너 이거 좀 가져갈래?”
“시타형이 받은 건데 제가 들고 가서 쓰고 있으면 팬들이 뭐라고 할거에요.
그리고, 캐리어가방에 더는 넣을 수가 없어요. 나름대로 짐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6개월 가까이 쌓인 짐들이 많네요. 인형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4명이 쓰던 방이 어느새 너랑 나랑 두 명이 쓴지 오래네.
넌 왜 다른 방으로 안 갔냐? 다들 또래들끼리 같이 생활한다고 숙소 방을 옮기던데. 난 재미도 없는데, 왜 같이 있었어?”
“짐 옮기는 것도 귀찮은 것도 있고요. 그리고, 시타형이랑 성향이 비슷했어요. 뭐, 연습실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숙소에선 거의 잠만 잤으니 옮길 이유도 없었고요.”
“덕분에 나도 편하게 있었다. 둘 다 데뷔 멤버로 걸리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안되더라도 계속 연락하자.”
“에? 시타 형은 설마 제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와~ 난 이미 시타형과 같이 일본, 중국, 미국을 휩쓸면서 K-POP 국뽕을 만들겠다고 각오까지 하며 시타형을 친형처럼 생각했는데, 시타형은 제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 와 형 실망이에요.”
“아..아니..그게 아니고. 난 그러니깐..그게..내가 말을 잘못했다. 미안하다.”
“하하하 형 농담이에요. 농담. 형이 너무 유머를 모르시네요. 이럴 땐, ‘네가 아닌 내가 떨어질까 봐 그랬지. 친동생아.’ 하면서 역 드립을 치셔야죠.”
“아직 그런 건, 무리야. 그런데, 넌 긴장을 하나도 안 하는구나?”
“저도 긴장되죠. 긴장되니깐 일부러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 하는 거고요. 인생이 걸린 데뷔무대인데, 긴장 안 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오죽하면 대현 형이 짐 싸서 집에 가는데 분신 같은 기타를 안 들고 갔겠어요?”
“그러게 하하. 나도 그냥 긴장돼서 깜박 잊고, 못 챙겨 갔다고 하면서 선물 받은 거 좀 버려야겠다.”
시타형의 짐을 챙기는것도 도와주고 같이 숙소의 문을 나섰다.
“6개월간 신세 졌던 침대야, 사물함아 그동안 고생했다. 수고해.”
[딸각!]
짐을 다 챙겨 나가며 방의 불을 껐는데, 복도의 불빛을 받아 보이는 2층 침대와 사물함을 보니 뭔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학창시절의 아쉬움이 이렇게 끝이 나버린 것 같아서 뭔가 씁쓸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찍고 있는 카메라도 안녕~!”
*
*
“다들, 알고 있겠지만. 오늘 밤 데뷔멤버에 들지 못해서 데뷔하지 못하더라도 소속회사에선 대우가 일단 달라질 거야.
아마도, 프로듀스99의 인기에 힘입어 회사 내의 데뷔 조로 발탁이 되거나, 행사를 잡거나 해서 지금 너희가 가진 지명도를 이용하려 할 거야.
당연히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아 이제 내가 연예인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절대 안심하지 말라는 거야.
아마도, 케이블에서 시청률이 5% 이상 나왔으니 Nnet방송국에서는 자연스레 다음 시즌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을 거야.
시즌2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데뷔를 하게 된 친구들은 괜찮을 거야. 하지만, 데뷔를 못 한 나머지 친구들은 어떻게 될까?
그냥 사라지는 거야. 짧으면 1년, 길어야 2년이면 너희는 그냥 대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거야.
결국, 소모품이야. 기획사에서 쓰고 버리는 소모품이 되지 않게 어떻게든 발버둥 쳐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오늘 방송에서 데뷔를 못 하게 되면, 어떻게 하든 1년 안에 데뷔를 꼭 해야 괜찮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었어. 그동안 다들 힘들게 노력했고, 수고했어.
다들 꿈을 이루어서 무대 위에서 동료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멘토님도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솔한 MC이정이의 조언에 나도 눈물이 고였고, 최준영을 비롯한 몇몇은 눈화장이 번질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데뷔를 위해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을 해야 하지만, 하나씩 하나씩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게 우리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있었다.
*
*
“안녕하세요. 여러분과 함께 방송을 진행할 MC이정이입니다.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민아이돌 – 프로듀스99의 공개 생방송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 드립니다.
오늘은 6개월 동안 국민 프로듀서님들과 함께해온 프로듀스99의 마지막 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최종 데뷔심사를 기다리는 20명의 소년이 여기 있습니다.
이 20명 소년의 운명을 결정지을 날이기에 저도 떨리며, 아마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소년들도 떨릴 겁니다. 그리고 국민 프로듀서님들도 떨리실 겁니다.
오늘 밤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선택을 받아, 데뷔의 꿈을 이룰 주인공들은 과연 누가 될지 다들 궁금하신가요?”
“네에~”
“사실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바로 투표에 참여해주시는 국민 프로듀서 여러분들의 손끝에 달려있습니다.
먼저 데뷔심사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데뷔하는 멤버의 선정은 철저하게 국민 프로듀서님들의 투표에 의해서 선정이 되며, 1위부터 20위까지의 순위 중 1위부터 9위까지의 연습생들만이 데뷔할 수 있습니다.
오늘 오전 12시까지 진행된 온라인 사전투표와 지금 진행되는 생방송 문자투표가 합해져서 순위를 결정하게 됩니다.
자 그럼, 20명의 소년과 그 소년들의 투표번호를 공개합니다.
투표번호 1번은 NFC 소속의 김시타 연습생입니다.
투표번호 2번은......
자, 투표번호를 다 기억하셨죠?
그럼! 생방송 문자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5.4.3.2.1! 투표 시작되었습니다!”
“와아~~~!!”
“오늘 이날을 위해 20명의 연습생은 두 개의 팀으로 나누어져 각각 데뷔 평가 무대를 준비했습니다.
이 두 개의 팀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미션곡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하시지 않나요?”
“네에 궁금해요~”
“그렇다면 지금 바로 마지막 무대의 메이킹이 시작되겠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대기실에서 보여주는 TV 화면에서 순위에 따른 곡 선택과 프로듀서와 만나서 연습하는 장면, 녹음 장면이 나오고 오늘 무대 전에 합숙소의 짐을 빼는 장면도 나왔다.
“오~ 소원이 문학 소년이네. 침대랑 사물함과 이야기도 하고.”
“어? 다들 안 보이세요? 침대 요정이랑 사물함 요정이 저기서 잘 가라고 손 흔들고 있잖아요! 그래서 난 인사해 준 건데. 다들 안 보이시는구나.”
“캬~ 소원이 클래스 끝내주네. 오늘도 저런 드립을 칠 줄이야. 넌 내가 인정한다! 인정!”
*
*
“자 그럼 메이킹 영상에서 철저하게 준비한 연습생들의 무대를 보실 시간입니다. 먼저 ‘히어로’팀의 I’m Here입니다.”
“우리가 첫 무대니깐 어떻게든 기선을 제압해야해. 그래야 우리 다음에 하는 슈퍼스타팀 보다 더 기억에 남을 테니. 몸 아끼지 말고 마지막 무대를 불태우자. 우린 히어로니깐! 자 가자!”
리더인 민호형의 구호와 함께 무대로 나와서 종이로 만들어진 차양막 뒤에 서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전주와 함께 등 뒤에서 강한 빛이 시작을 알리듯이 쏟아졌다.
“와아~ 드디어 시작이다! 저 흰색 차양막 같은 건 뭐야? 와 그림자로 보여주는 무대연출 멋진데. 찢고 나온다!”
“헐, 소원이 머리 염색한 건 알고 있었는데, 다른 멤버중에 금발염색이 없다 보니 더 눈에 띄네. 거기다 올블랙 정장스타일!”
[모델에 비교해도 좋은 몸매,
어디를 다니든 시선을 받는 내 얼굴.
잘나가는 나에게 아무도 뭐라 말 못해.....]
우리에겐 댄스에 강점을 가진 민호 형과 원섭 형이 있기에 초반부터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댄스 멤버들이 앞줄에서 치고 나갔다.
춤 잘 추기로 소문난 둘의 화려한 댄스에 관객들의 반응도 열광적이었다.
‘좋아, 이런 반응을 위해서 보컬을 뒤로 보낸 의도가 성공했다.’
인원도 10명이다 보니 보컬 부분을 쪼개어 나누기 때문에 보컬 부분이 많이 흔들릴 일도 없었다.
댄스로 인해 조금이라도 보컬이 흔들릴 기미가 보이면 나와 대현 형이 뒤를 받쳐주며 곡의 완성을 위해 힘썼다.
[그런 내가 여기에 있어.
여기에서 내가 춤을 추고 있어.
I’m Here~ I’m Here~]
노래가 끝이 나고 엔딩 포즈를 잡는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반짝이 꽃비가 연출해 주는 무대의 모습에 나도 뭉클한 감정이 솟구쳤다.
“와 이씨! 첫 무대인데, 반짝이 꽃 날아다니고 바로 엔딩 피날레 무대네. 오진다!”
“검은 정장에 하늘에서 내리는 반짝이는 진리네. 사진 작살난다!”
핀 조명이나 캐논 축포, 이동 무대를 다음 조인 슈퍼스타에서 다 쓰는 조건으로 반짝이 꽃비를 우리가 쓴 게 신의 한수인 것 같았다.
무대를 내려가는데, 상남자 같던 루이스형이 대성통곡을 하듯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민호형도 나와 멤버들을 감싸 안듯이 안으며 한참이나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다들 수고했어. 하지만, 눈물 그만 흘려. 지금 바로 화장 고쳐라.
단체 무대가 또 있어. 아직 끝난 거 아니야. 눈물도 짧게 흘려.”
다음 무대가 또 있고,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민호 형의 말에 다들 흘리던 눈물이 쏙 들어가는 것 같았다. 민호 형은 이런 공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냉정했다.
슈퍼스타의 ‘Healing Magic’이 끝나고, 무대에서 슈퍼스타팀이 내려왔다. 우리들은 내려오자마자 눈물을 흘렸는데, 다음 무대가 바로 이어지다 보니 슈퍼스타 팀은 무대의 여운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했다.
무대에서는 나와 대현 형, 민호 형이 만든 ‘잘하고 있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최종 데뷔평가 무대에 서지 못한 21위부터 30위였던 연습생들이 무대를 채우며 노래를 불렀다.
[모자를 눌러쓰고, 눈치를 서로 보며 서로가 어색했던 날.
얇은 옷을 입고 너무 추웠던 날.
여기에 모였던 모두가 타인처럼 보였지만.......
이런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격려와 용기죠.
우린 잘하고 있어~
우린 잘하고 있어~
우린 잘하고 있어~
서툴지만,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1절이 끝나자 우리 히어로팀과 슈퍼스타팀도 노래를 부르며 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늘 오전에 한번 있었던 리허설 때 했던 무대와는 다르게, 관중들의 엄청난 환호를 들으며 감정이 격해졌는지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와 이 노래도 좋은데, 따로 음원은 안 나오나?”
“역시 이런 락 발라드풍의 단체 곡이 있어야 뭔가 감동이 커지는 거야.”
‘잘하고 있어’ 노래가 끝이 나자 전주가 빨라지며, 테마곡인 ‘주인공’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대 뒤에서 대기하던 수십 명의 연습생이 뛰어나왔다.
방출되었던 모든 연습생이 프로듀스99의 첫 방송 때처럼 단체 군무를 추니 오늘이 끝이 아닌 다시 시작한다는 그런 상징성을 가지는 무대였다.
연습생이란 불확실한 신분에서 무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는 마지막 방송에 맞는 진행이었다.
그리고, 그런 진행은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제대로 먹혀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