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관객이 원하는것.
“옷은 갑자기 왜?”
“중간점검을 실제 무대에 올랐을 때처럼 한다고 힙합 스타일로 입었잖아요. 이걸 다 벗자고요.
랩 포지션이라도 힙합으로 갈 필요가 없으니 의상, 안무 다 바꾸어야지요.”
“그럼, 의상이나 안무도 댄스 포지션처럼? 완전히 댄스 포지션 애들과 차별성이 없어지면 힙합이나 랩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 이게 무슨 랩 포지션 무대냐 라고 뭐라고 하지 않을까?”
“태평형 말대로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쇼 미더 달러’ 보는 힙합부심 부리는 애들이 우리 방송을 볼까요?
아마도, 힙합러라고 부심 부리는 사람은 우리 방송 아예 안 볼 것 같은데요.
특히나 우리가 투표를 받아야 하는 공개방송에는 1명이나 있을까요?
결국, 우리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은 10대~20대 여자들이잖아요.
힙합 가수 보단 전형적인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자 관객들이 와서 투표를 해줄 거잖아요.
우리에게 투표해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야죠.
음악적인 성향이나 랩 포지션에 대한 음악적 신념도 좋지만, 우리 다 살아남아서 다음 미션으로 가는 게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그래도. 랩 포지션인데...그렇게 해도 될까?”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욕 안 듣기 위해 랩 포지션에 맞는 랩송을 해서 무대를 꾸밀 것인지, 아니면 방송의 주 대상인 10대, 20대 여자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아이돌의 무대를 꾸밀 것인지부터 결정을 하죠.”
“소원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랩 포지션에 너무 몰입하면 결국 우리가 바닥 깔아줄 것 같아요.
대중성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현장에 온 관중에게 맞는 무대를 하는 것에 전 찬성합니다.”
“저도요. 전 하위권이라 위로 올라가야 해요.”
“그럼, 다들 소원이 생각에 동의하는 거야?”
“완전 동의는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보다는 좋아질 것 같으니 저도 찬성합니다.”
원래 포지션인 랩 지망의 백선호도 찬성을 하자, 힙합에 대한 자부심이 있던 주태평도 어쩔 수가 없었다.
개인 파트로 있던 가사들을 모두 같이 부르는 부분으로 변경하고, 곡을 완전히 뜯어고쳐서 댄스 포지션의 곡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편곡을 다시 했다.
“이왕 여자 팬들을 위해 하는 거라면, 철저히 투표를 해주는 여자 팬들 입맛에 맞게 무대를 준비해요.
목에 차는 넥밴드도 하고, 스키니 바지에 정장 스타일로 의상도 다 변경하죠.
정장 웃옷 안에는 따로 셔츠를 입지 말고, 망사로 된 옷을 입어서 살색이 보이게 하고요.”
“야! 이환희 그게 무슨 말이야. 너무 게이 같잖아.”
“선호야 컬러렌즈도 끼고, 머리도 형형색색 염색하는 건 뺀 거야.
넥밴드와 망사셔츠는 필수야 손발이 오그라들더라도 뻔뻔하게 소화해야 해. 게이 같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목적이 있잖아.
태평이 형도 해야 합니다. 소원이 보세요. 먼저 넥밴드를 하고 있잖아요. 태평이 형도 빨리해보세요.”
“아이씨. 내가 개 목걸이 같은 넥밴드를 하게 될 줄이야. 이 무대가 내 흑역사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구나.
그런데, 환희 넌 이런 패션스타일이 원래 스타일이냐?”
“원래는 아니었는데, 바뀌었죠.
우리회사에서는 기본이 망사에 퍼(fur) 모피 털이 무대의상에 기본으로 들어가요.
사장님이 일본진출 한다고 일본 아이돌들 분석했는데, 쟈니스 애들은 기본이 깃털에 퍼 목도리, 컬러렌즈래요. 그걸 보고 와서는 우리한테도 주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스타일이 변했어요.
일단 메이크업은 짧은 속눈썹 붙이고, 아이라인도 그립니다.”
“에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긴 하지만, 진짜 이렇게 하면 인기 있어지는 거 맞지?”
“네 선호형. 저 한번 믿어보세요. 여자 팬들은 이런 걸 좋아한다고요.
그리고,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꿈을 이루어 준다고.
우리가 순위 오르는 걸 간절히 원하니 전 우주가 도와줘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무한 긍정론자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 그런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하하.”
“안무도 댄스 브레이크를 넣어서 어필 타임이 있어야 해. 주완이는 엔딩을 어떻게 할지 생각해 주고, 다들 머리를 모아보자.”
*
*
“소원아 바뀐 무대 컨셉에 맞게 편곡을 다시 했는데, 센터 겸 메인 보컬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우리 중엔 너 말곤 보컬이 없으니 소원이가 센터 겸 메인 보컬을 해야겠다.”
“네? 그렇게 해도 되겠어요?”
“그래 다들 이야기하며 파트 나누고 하다 보니 이렇게 하는 게 팀을 살리는 길이더라, 랩이 아니게 되어 버렸지만, 형식상 랩 포지션 3팀 중에서 우리가 이기기만 하면 베네핏 3만 표가 오니깐 그, 베네핏을 받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에 질러줘서 표를 끌어줄 보컬이 필요해. 여기 스티커 받아”
태평형이 건네주는 스티커를 기쁘게 날름 받아서 옷에 붙이고 싶었지만, 연속된 두 번의 미션에서 센터를 하게 되는 게 부담도 되었기에 쉽게 손이 움직이지 못했다.
“겸손한 척한다고 안 받는 거야?”
“아니 저 그게 아니고..그게...”
기쁜데, 눈치 본다고 기뻐할 수 없는 그런 묘한 상황이라 마치 설날 친척들이 용돈을 줄 때, ‘아유, 이모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하면서 쭈뼛쭈뼛 손을 뻗어서 신사임당 님을 받아오는 그런 상황 같았다.
“내가 달아줄게. 이리 줘요. 자! 이거 달고 앞장서서 투표수 받아와야 해.
랩 포지션 1위만 해서 3만 표만 받자! 소원이 믿는다~!”
쭈뼛거리는 나를 대신해서 선호형이 스티커를 받아선 내 가슴에 붙여줬다.
종이 한 장처럼 가벼운 스티커 한 장이었지만, 이 센터 스티커 한 장의 무게가 무거웠다.
그리고, 새로운 안무까지 정해지자 최종 리허설 하루 전에 최코쌤에게 따로 우리의 무대를 보여줬다.
“재미있네. 댄스 브레이크도 좋고, 엔딩 포즈도 어필이 되겠네.
자기 파트 분량 때문에 다들 싸우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이런 식의 방향전환이 될지는 몰랐다.
보여주기 위한 쇼 비즈니스적인 무대를 위해 협동심을 극대화한 것이 느껴지네. 한국의 아이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대였어.
그런데, 너희 그거 아니?
중국이 전 세계의 모든 국가 중에서 인구가 제일 많잖아. 그런데, 중국은 단체경기 중에서 잘하는 건 없어.
탁구, 수영, 육상 같은 개인이 이루는 스포츠는 이미 강국이야. 그런데, 야구는 물론이고 중국에서 가장 인기 많다는 축구도 아직까지 월드컵에 가본 게 딱 한 번밖에 없어.
그것도 우리나라와 일본이 월드컵을 공동주최하면서 아시아 쿼터 득을 봐서 출전한 게 전부야.
왜 그럴까?
희생정신, 협동 정신 같은 팀원을 위해 양보하겠다는 협동심이 없기 때문이야. 그래서 단체 스포츠에서 중국이 약한 거야.
단체 스포츠는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타심이 있어야 하는 거니깐.
아무리 개인이 뛰어나더라도 단체를 이길 수는 없어.
가수도 마찬가지야.
가사와 리듬에 관객과 청중에 대한 배려가 들어가 있어야 해.
내가 랩을 얼마나 빨리하고, 남들과는 다른 스웩이 있으니 그 개성을 극대화한다고 다 좋은 게 아니야.
팀이라면 팀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팀에 깔려있어야 하고, 가수는 팬을 생각하는 이타적인 마음과 사고방식이 있어야 하는 거야.
한국의 아이돌 무대에는 그런 팀원과 팬에 대한 이타심이 느껴지는데, 너희들이 방금 보여준 무대에는 그게 느껴졌어. 잘했다.”
최코쌤이 우리의 바뀐 무대를 보곤 잘했다고 말을 하자 며칠간 매일 밤을 새우며 준비를 하며 쌓였던 피로감이 다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가 이번 미션의 정답을 알아낸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리고, 공개방송 전 최종 리허설에서 바뀐 우리의 무대를 보곤 다들 놀라워했다.
그리고 두 번째 공개방송의 날이 밝았다.
“자 그럼 4번째 무대를 만나볼 차례인데요.
원곡인 빅턴의 SOBER와는 완전 다른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All Crazy’ 팀입니다.”
“와아~”, “태평오빠~!”, “소원아!!”
“대박! 애들 의상 장난 아니다. 이거 랩 포지션이라고 안 했어? 의상은 랩이나 힙합 스타일이 아닌데.”
“그러게, 검은색 정장에 망사셔츠가 퇴폐적인 느낌이야.”
“목걸이 개취저격하네. 오진다!”
“주태평 군 All Crazy 팀도 파트분량 관련으로 진통을 겪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해결을 했나요?
앞 팀 루이스군처럼 팀원들 간에 멱살잡이라도 했나요?”
“하하하 저희도 멱살잡이를 할 뻔했지만, 멤버들과 이야길 많이 해서 내린 결론이 그냥 잘생긴 소원이를 센터와 메인보컬로 두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시각적인 부분으로는 가장 좋았거든요.”
“좋아요. 그럼, 대화로서 파트분량을 결정한 ‘all crazy’팀의 무대를 보겠습니다~!”
“와아아아~~”
MC 이정이가 내려가고 V형태로 줄을 맞추어 서자 무대를 비춰주던 조명의 색상이 바뀌었다.
은파란 색의 핀 조명들이 V라인의 중심에 선 나를 비추었다.
조명뿐만 아니라, 무대를 보는 모든 관객들의 시선이 내게로 쏟아지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지금 무대 위에서 모든 시선을 받는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춤추는 게 재미가 있으면 그게 재능이라는 민호 형의 칭찬 한마디에 즉흥적으로 댄스 포지션을 선택했고, 방출되어 랩 포지션으로 온 것이 오히려 더 좋은 기회를 나에게 만들어 준 것이었다.
미디엄 템포의 전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we are~ we are~
we are~ we are~ sober!
you are~ you are~
you are~ you are crazy~!
여기 완전 Hot해!
.
.
나와 같이 미쳐줘!
How you think about that~
이제 같이 놀아~!
이제 같이 하늘을 날 수 있어~!]
날 수 있다는 가사와 함께 나를 포함해 앞열 4명이 무릎을 꿇었고, 뒷열의 4명이 앞사람의 등을 밟고 앞으로 날아오르듯이 튀어나가 댄스 브레이크를 펼쳤다.
[맨정신으로도 놀 수 있어.
가만히 있기 힘들 정도로 재미가 있어.
다들 즐거운데, 혼자 쓸쓸한 건 싫어.
너 없인 즐겁지 않아.
네가 날 미치게 만드니깐
나와 함께해줘.
나와 같이 미쳐줘!
How you think about that~]
엔딩 포즈 또한 정장 윗옷을 반쯤 벗어 상체를 보여주는 포즈였는데, 안무 후라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상체가 검은색 망사셔츠 안에서 비치듯 보이자 더 퇴폐적이었다.
“꺄~” “꺅!!” “태평 오빠 날 가줘~ 엉엉엉~”
“와우~! 랩 포지션에서 이런 퇴폐적인 섹시 안무와 무대가 나올줄은 생각도 못 했네요. 고정관념을 깨준 것 같아요.
그런데, 소원군! 소원군은 아직 미성년자 아니에요? 이렇게 섹시해도 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헉헉 아 숨차. 이제 고2입니다. 휴우. 그런데, 여러분 우리 무대가 그렇게 섹시했나요?”
“네에~!”
“그러면 섹시한 만큼 투표 부탁드려요~!”
“꺄아악~”
투표를 부탁한다고 하면서 윙크를 하자 반응이 더 좋았다.
처음엔 환희형이 제시한 게이 느낌의 컨셉이 부담스러웠지만, 관객의 대부분인 10~20대 여자 팬들이 좋아하자, 나도 모르게 재미가 붙었는지, 윙크는 그냥 막 나왔다.
“자 그럼, All Crazy 팀은 대기실로 이동해 주시고요. 관객 여러분들께서는 리모컨을 들고 투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점수가 공개되는 대기실로 이동을 하는데, 첫 미션때와는 다르게 실수한 사람도 없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아주 좋았기에 다들 웃으며 이동을 했다.
“개인 득표보단, 소원이나 태평 형이 어떻게든 표 많이 받아서 베네핏 받았으면 좋겠다.”
“베네핏 3만표!! 플리즈~ 아 투표수 나온다!”